
한스 켈젠(변종필/최희수 역), 《순수법학》, 길안사, 1999
Hans Kelsen, Reine Rechtslehre (1963)
<차 례>
[10] - 법동태학 中(법질서의 단계구조 1: 위계질서)
[11] - 법동태학 下(법질서의 단계구조 2: 규범충돌)
45. 해석의 본질: 유권해석과 비유권해석
법이 적용되는 모든 경우에 해석은 필연적으로 요청된다. 해석은 법규범의 의미를 밝히는 보조적 작업이 아니라, 상위규범이 하위규범으로 구체화되는 법적용과정 그 자체에 내재한 정신적 작용이다.
따라서 해석은 법률적용에만 국한되지 않고, 헌법·국제조약·국제관습법·판결·행정명령 등 모든 법규범의 적용에 수반된다. 또한 법규범을 준수해야 하는 개인 역시 자신의 행위가 제재를 회피하는지 판단하기 위해 규범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법학 역시 실정법을 기술하는 과정에서 해석을 수행한다.
「법이 법기관에 의해 적용되어야 하는 경우, 법기관은 자신이 적용할 규범의 의미를 확정해야 하며 그 규범을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해석(Interpretation)이란 상위단계로부터 하위단계로 진행되어 가는 법적용절차에 수반되는 정신적 과정이다. 해석이라고 말하는 경우 대개 법률해석을 연상하게 되며, 이 경우 법률상의 일반적 규범을 구체적 사실에 적용함에 있어 그 일반적 규범으로부터 연역되는 개별적 규범(법관의 판결이나 행정처분)에 어떠한 내용이 주어져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해야 한다. 하지만―입법절차나 긴급명령의 제정 또는 기타 헌법직접적인 행위의 경우와 같이―헌법을 하위단계에 적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헌법해석 역시 필요하게 되며, 나아가 구체적 사례에서 정부 또는 국제재판소나 국내법원 또는 행정기관에 의해 적용되어야 하는 경우에는 국제법상의 조약이나 일반적인 국제관습법규범에 대한 해석도 필요하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한에서, 개별적 규범인 법관의 판결・행정명령・법률행위 등에 대한 해석, 결국 모든 법규범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법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준수해야 하는 개인들 역시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준수해야 할 법규범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확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법학 역시 실정법을 기술할 경우에는 실정법규범을 해석해야 한다.」(513쪽)
그러나 이 모든 해석이 동일한 성격을 띠는 것은 아니다. 특히 법적용기관에 의한 해석과 사인 또는 법학에 의한 해석은 동일한 범주에 놓일 수 없다. 전자는 법질서 내부에서 법을 적용하고 동시에 창조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반면, 후자는 그러한 권한을 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해석론을 전개할 때 가장 먼저 법적용기관의 해석을 독립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서로 확연하게 구분될 수 있는 두 가지 종류의 해석이 존재한다. 법적용기관에 의한 법해석과 법기관이 아닌 사인(私人), 특히 법학에 의해 이루어지는 법해석이 그것이다. 여기서는 먼저 법적용기관에 의한 해석만을 고찰대상으로 삼아야 하겠다.」(514쪽)
a) 법적용행위의 상대적 불확정성
법적용기관의 해석을 분석하려면 상위규범과 하위규범의 관계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헌법과 법률, 법률과 판결 사이의 관계는 규정과 구속의 관계이지만, 이 구속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상위규범은 하위규범의 정립절차를 규정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그 내용까지 규정하지만, 모든 요소를 완전히 확정할 수는 없다. 이로 인해 하위단계에는 필연적으로 선택과 재량의 여지가 남는다. 법적용행위는 구조적으로 불확정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확정성은 법적용의 예외가 아니라 정상상태이다.
「법질서의 상위단계와 하위단계 사이의 관계, 예컨대 헌법과 법률 사이의 관계 또는 법률과 법관의 판결 사이의 관계는 규정 또는 구속의 관계이다. 즉 상위단계의 규범은 이미 언급했듯이 보다 낮은 단계의 규범을 창설하는 행위 또는 더욱이 집행행위가 취급대상이 되는 경우에는 그 집행행위를 규율한다. 이 경우 상위규범은 하위규범이나 집행행위의 정립절차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정립되어야 할 규범이나 집행행위의 내용까지도 규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은 결코 완벽한 규정이 못된다. 상위단계의 규범은 그 규범이 적용되는 행위를 모든 방향에서 구속할 수는 없다.」(514쪽)
b) 법적용행위의 의도된 불확정성
상위규범은 하위규범이 따라야 할 틀을 제공할 뿐이며, 그 틀 안에서 구체적 결정을 내리는 것은 하위기관의 몫이다. 따라서 법관의 판결이나 행정처분은 단순한 규범적 연역의 결과가 아니라, 선택과 결정의 산물이다. 이 점에서 법적용행위는 이미 법창조적 성격을 부분적으로 내포한다.
「이로부터 모든 법적 행위(Rechtsakt)는, 그것이 법창설행위이든 법을 적용하는 순수한 집행행위이든, 법을 통해 단지 부분적으로만 확정될 뿐이며 부분적으로는 불확정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불확정성(Unbestimmtheit)은 조건이 되는 사실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그 조건에 의해 제약되는 효과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즉 적용되어야 할 규범을 정립하는 기관에 의해 의도적으로 불확정성을 띠게 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단순한 일반적 규범의 정립은―그 본질상―언제나 그 규범의 적용을 통해 나타나는 개별적 규범이 결정의 과정―이 과정은 법규범들이 단계적으로 연속되어 있다는 의미를 띤다―을 밟아간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진다.」(515쪽)
의도된 불확정성은 입법자가 하위기관에게 결정을 위임하는 경우에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법률은 특정 행위를 명령하거나 금지하면서도, 그 구체적 내용이나 강도를 하위기관이 정하도록 남겨두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입법기술의 실패가 아니라, 현실의 다양성을 고려한 의도적 구조이다. 법관이나 행정기관은 이러한 위임을 통해 개별 사안에 적합한 결정을 내리도록 요청받는다.
「보건법은 전염병이 발흥했을 경우에 시의 주민이 다른 처벌에도 불구하고 전염병의 전파를 방지하기 위한 일정한 예방수단을 취할 것을 규정한다. 행정기관은 전염병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러한 예방수단을 규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 형법은 일정한 범죄에 대해 벌금형이나 자유형을 규정하고 법관에게 구체적 사례에서 형벌의 종류(벌금형이나 자유형)와 그 정도를 결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다. 이 경우 형벌의 정도를 결정함에 있어 법률 그 자체에서 형벌의 상한선과 하한선이 확정될 수도 있다.」(515쪽)
c) 법적용행위의 의도되지 않은 불확정성
이와 달리 불확정성이 규범정립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는 규범의 언어적 표현이 다의적이거나, 규범체계 내부에 긴장이 존재하는 경우이다. 언어는 본질적으로 완전한 일의성을 갖지 않으며, 따라서 규범문언은 복수의 의미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 이때 해석자는 규범문언, 입법자의 의사, 체계적 맥락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법적 행위의 불확정성이―당해 행위를 통해 적용되어야 하는―법규범의 속성에 따른 의도되지 아니한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먼저 규범을 표현하는 단어나 문언이 다의적이다. 즉 규범의 언어적 의미가 불분명하다. 이때 규범을 적용하는 기관은 있을 수 있는 다양한 의미에 직면하게 된다. 규범집행자가 규범의 언어적 표현과 규범정립권자가 그러한 언어적 표현을 통해 표현하려는 의사 사이에 불일치가 존재함을 인정할 수 있다고 믿는 경우 그와 같은 상황이 존재하게 된다.」(515-516쪽)
d) 적용대상인 법: 다양한 적용가능성을 내포하는 테두리
이러한 불확정성은 해석을 통해 제거될 수 있는 결함이 아니다. 오히려 해석은 불확정성을 전제로 작동한다. 따라서 적용대상인 법은 단일한 결론을 명령하는 명제가 아니라, 여러 가능한 결정을 허용하는 틀, 이른바 ‘테두리(Rahmen)’를 이룬다.
「의도되었건 의도되지 않았건 법적용의 하위단계에서 그러한 불확정성이 나타나는 그 모든 경우에 있어서의 법적용은 다양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법을 집행하는 행위는 다양한 형태를 필 수 있다. 즉 법집행행위는 법규범의 다양한 언어적 의미들 가운데 어느 일방에 합치되도록 형성될 수도 있고, 그 어떤 식으로든 확인될 수 있는 규범정립자의 의사에 합치되도록 형성될 수도 있다. 또는 서로 모순되는 두 규범 중의 어느 일방에 합치되도록 형성될 수도 있다. 적용대상인 법은 이 모든 경우에 단지 다양한 적용가능성을 제공해주는 테두리만을 이룬다.」(516-517쪽)
법관의 판결이 법률에 근거한다는 것은, 그 판결이 법률이 허용하는 테두리 안에 위치한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따라서 법률로부터 단 하나의 유일하게 정당한 판결이 도출된다는 전통적 사고는 성립할 수 없다. 켈젠은 법적 정당성은 유일성이 아니라 테두리 내 적합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해석’을 해석대상의 의미에 대한 인식적 확인으로 이해한다면, 법해석의 결과란 다만 해석을 요하는 법이 서술하는 테두리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며, 따라서 그러한 테두리 내에 주어져 있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다. 그렇다면 법률의 해석은 반드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으로서의 단 하나의 결정에로 나아갈 필요는 없으며 다양한 결정으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적용해야 할 법률에 근거하고 있는 한, 비록 그러한 결정들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의 결정만이 법적용기관의 행위에 의해 실정법이 된다 하더라도, 그러한 모든 결정은 등가적이다. 법관의 판결이 법률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그 판결이 법률이 정한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517쪽)
전통적 법학은 해석을 통해 법률이 이미 내포하고 있는 유일한 결론을 발견할 수 있다고 가정해 왔다. 이 관점에서는 해석이 법적용기관의 의사를 배제한 순수한 인식행위로 이해된다. 그러나 켈젠에 따르면 이러한 이해는 법규범의 구조를 오해한 것이다. 해석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규범이 허용하는 가능성의 범위일 뿐이며, 그 범위 안에서의 선택은 필연적으로 의사결정을 수반한다.
「전통법학은 해석에 대해 정립되어야 할 법적 행위를 위한 테두리를 확인하는 데 국한되지 않으며, 해석으로부터 또 다른 임무의 수행을 기대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 즉 해석은 확인된 테두리를 정당하게 충족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통상의 해석이론은 구체적 사례에 적용되는 법률은 언제나 오로지 하나의 정당한 결정을 제공할 수 있음을, 그리고 그러한 결정의 실정법적 ‘정당성’은 법률자체에 근거하고 있음을 믿게 하려고 한다. 통상의 해석이론은 해석에서는 마치 해명 또는 이해라는 지적 행위만이 중요한 것처럼, 법적용기관은 오직 자신의 오성만을 동원하고 자신의 의사를 동원해서는 아니되는 것처럼 해석의 과정을 설명한다.」(517-518쪽)
이와 같은 전통적 관점은 해석방법에 대한 신뢰로 이어진다. 문언해석, 목적론적 해석, 체계적 해석, 반대해석, 유추해석 등은 해석을 객관화하기 위한 시도로 제시된다. 그러나 켈젠은 이러한 방법들이 실정법적으로 어떤 결론을 우선시할 기준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동일한 규범에 대해 상반된 해석결과가 서로 다른 방법에 의해 도출될 수 있으며, 어느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다시 해석자의 의사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
「오로지 실정법에로 지향된 관점에서만 본다면, 적용해야 하는 법의 테두리 내에 존재하는 여러 해석가능성 가운데 일방의 가능성을 타방의 가능성보다 앞세울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규범에 대한 여러 가지 언어적 의미 가운데서 어느 하나만을 “정당한” 것이라고 지칭할 수 있게 해주는―실정법적으로 특징지워진―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 전통법학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의사와 표현사이의 충돌을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방법으로 전자 또는 후자에 유리하도록 결정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전개되었던 모든 해석방법은 언제나 가능한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을 뿐이지, 유일하게 정당한 결론에는 이르지 못했다.」(518쪽)
이 점은 특히 상충되는 해석방법들이 동시에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문언을 중시하는 해석과 입법자의 의사를 중시하는 해석은 서로 다른 결론을 정당화할 수 있다. 반대해석과 유추해석 역시 동일한 사안에서 상반된 규범을 도출할 수 있다. 실정법은 이들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문언을 무시함으로써 입법자의 추정적 의사를 고수하는 방법이나 문언을 엄격하게 준수하되 입법자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는 방법은 실정법상으로는 확실히 등가적인 것이다. 같은 법률 내의 두 규범이 서로 모순되는 경우가 존재하는 경우, 앞서 언급한 법적용의 논리적 가능성들은 실정법적으로 동등하게 취급된다. 반대 추론(argumentum a contrario)이나 유추와 같은 통상의 해석방법이 전혀 무가치하다는 것은 양자의 방법이 서로 대립되는 결론에 이르며, 일방 또는 타방의 방법이 언제 적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어떤 기준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미 충분히 강조되고 있다.」(518-519쪽)
이익형량 역시 해석을 객관화하는 수단으로 자주 제시되지만, 켈젠은 이를 하나의 수사적 공식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서로 다른 이익을 비교하기 위한 객관적 척도는 법규범 그 자체로부터 도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익의 서열은 이미 법적용을 통해 새롭게 정립되어야 할 규범에 속한다. 이익의 서열확정에 관한 결정은 규범창조행위, 예컨대 법관의 판결에 맡겨져 있다.
「이른바 이익형량의 원칙 역시 하나의 공식일 뿐이며, 이 문제에 대한 어떤 해결책도 되지 못한다. 그것은 대립되는 이익을 서로 비교하여 그에 따라 이익충돌을 결정할 수 있게 해주는 객관적 기준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한 객관적 기준은 해석해야 할 규범이나 그 규범을 포함하는 법률 또는 전체 법질서로부터 나올 수 없다.」(519쪽)
46. 인식행위 또는 의사행위로서의 해석
해석은 법규범의 가능한 의미들을 인식하는 단계에 머무르는 한에서는 인식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법적용에서 해석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가능한 의미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해석은 의사행위로 전환된다. 이 선택은 규범에 의해 결정되지 않으며, 따라서 법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법정책의 문제로 성격이 규정된다. 이 점에서 법관은 단순한 법의 발견자가 아니라, 하위단계의 법을 창조하는 행위자인 것이다.
「전통적 해석이론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관념, 즉 정립해야 하는 법적 행위에 대한 확정―이것은 적용해야 하는 법규범에 의해 행해지지 않는다―이 이미 존재하는 법에 대한 그 어떤 인식을 통해 획득될 수 있다는 생각은 가능한 해석의 한 방법이라는 전제에 위반되는 자기기만적인 모순적 생각이다. 적용되어야 하는 법의 테두리 내에 존재하는 가능성들 가운데 어떠한 가능성이 ‘정당한’ 가능성인가 하는 물음은 실정법에로 지향된 인식의 물음, 즉 법이론적 문제가 아니라 법정책적 문제다. 법률로부터 유일하게 정당한 판결이나 유일하게 정당한 행정행위를 획득하려는 임무는 헌법의 테두리 내에서 유일하게 정당한 법률을 창조하려는 임무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헌법으로부터 해석을 통해 유일하게 정당한 법률을 획득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법률로부터 해석을 유일하게 정당한 판결을 획득할 수 없다.」(519-520쪽)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법관은 단순히 이미 존재하는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존재가 아니다. 법관은 일반규범의 테두리 안에서 개별규범을 창조하는 법창조자이다. 다만 그 법창조는 무제한적이지 않으며, 상위규범이 설정한 테두리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이 점에서 입법과 재판의 차이는 질적인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
「헌법으로부터 해석을 통해 유일하게 정당한 법률을 획득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법률로부터 해석을 유일하게 정당한 판결을 획득할 수 없다. 이 양자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차이는 양적인 것일 뿐 질적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양자의 차이는 입법자의 구속이 실질적 측면에서 법관의 구속보다 그 정도에 있어 훨씬 더 경미한 것이라는 점 … 에 있다. 하지만 법관 역시 법창조자이며 그 역시 법창조적 기능에 있어서 비교적 자유롭다.」(520쪽)
따라서 법적용절차에서 개별규범의 형성은 필연적으로 의사결정을 수반한다. 이 의사결정은 실정법 자체에서 도출될 수 없으며, 실정법 외부의 가치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정의, 도덕, 공공의 안녕, 국가이익과 같은 기준들은 이러한 지점에서 등장하지만, 그것들은 실정법의 관점에서 보면 외재적 규범에 해당한다.
「법적용절차에서의 개별적 규범의 획득은, 일반적 규범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 의사기능이다. … 여기서 법창조절차에로 유입될 수 있는 것은 실정법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다른 규범들, 예컨대 도덕규범이나 정의규범 또는 사회적 가치판단에 대한 인식이다. 실정법의 관점에서는 그러한 규범들의 효력과 확인가능성에 대한 그 어떤 것도 언급할 수 없다.」(520쪽)
이 지점에서 켈젠은 법적용기관에 의한 해석과 그 밖의 모든 해석을 엄격히 구분한다. 법적용기관의 해석은 법을 창조하는 효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유권해석이다. 반면 개인이나 법학에 의한 해석은 법을 창조하지 못하며, 단지 의미가능성을 ‘제시’할 뿐이다.
「단순히 법원이나 행정기관에 의한 법률해석뿐만 아니라 극히 일반적으로 법적용기관에 의한 법해석을 취급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도, 법기관에 의한 법의 적용에는 적용되어야 할 법에 대한 인식적 해석이 의사행위와 결합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의사행위와 더불어 하위단계의 규범이 창조되거나 또는 적용해야 하는 규범에 확정되어 있는 강제행위가 집행된다. … 법적용기관에 의한 법해석은 언제나 유권적이다.」(521쪽)
유권해석은 반드시 일반규범의 형식을 취할 필요는 없다. 구체적 사건에 대한 판결처럼 개별규범을 창조하는 경우에도, 그 해석은 법적 효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유권적이다. 특히 최종심 법원의 판결은 더 이상 폐지될 수 없다는 점에서 새로운 법을 창조하는 효과를 갖는다.
「법적용기관에 의해 개별적 법규범이 창조되는 경우에도 그러한 유권해석을 통하여―법적용기관의 행위가 더 이상 폐지될 수 없는 즉시, 즉 그것이 확정력을 갖는 즉시―법이 창조될 수 있다. 그러한 유권해석에 의해 흔히 새로운 법이―특히 최종심급의 법원에 의해―창조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521-522쪽)
이에 반해 개인이나 법학의 해석은 어떠한 경우에도 법을 창조하지 못한다. 개인은 자신의 행위를 결정하기 위해 규범을 해석할 수 있지만, 그 해석은 법적용기관을 구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개인의 해석은 언제나 법적 위험을 내포한다.
「어떤 개인이 자신의 행위를 규율하는 어떤 법규범을 준수한다면 … 다양한 가능성 가운데서 불가피하게 선택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은 유권적이지 않다. 그것은 그 법규범을 적용해야 하는 기관에 대해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522쪽)
47. 법학적 해석
켈젠에 따르면 법학적 해석은 법적용기관의 해석과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법학은 법을 적용하지 않으며, 법을 창조할 권한도 갖지 않는다. 따라서 법학이 수행할 수 있는 해석은 언제나 비유권적 해석에 머문다. 이 해석은 규범의 의미를 인식적으로 밝히는 작업일 뿐,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법으로 확정하는 행위가 아니다. 법학이 법을 ‘보충’하거나 ‘완성’한다는 관념은 이 점에서 배제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법학에 의한 법해석은 비유권해석이라는 점에서 법기관에 의한 해석과 가장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그것은 법규범의 의미를 순수하게 인식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이다. 법기관에 의한 해석과는 달리 그것은 법창조가 아니다.」(522쪽)
이러한 구분은 전통적인 개념법학이 전제해 온 관념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개념법학은 법규범의 개념적 분석을 통해 이미 주어진 법 속에서 새로운 법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켈젠에게 그러한 사고는 법학의 인식적 기능과 법적용기관의 의사결정 기능을 혼동한 결과에 불과하다. 법학은 가능한 의미들을 제시할 수 있을 뿐, 그 가운데 하나를 정당한 법으로 선언할 수 없다.
「현행법에 대한 순수한 인식적 해석에 의해서 새로운 법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견해는 개념법학의 기초를 이루고 있으나 순수법학은 이를 거부한다. 따라서 법학이 행하는 순수한 인식적 해석은 이른바 법의 흠결을 보충할 수도 없다. 이른바 법흠결의 보충은 법적용기관에 의해서만 행해질 수 있는 법창조적 기능이다.」(522-523쪽)
켈젠은 법학의 임무를 명확히 제한한다. 법학은 규범이 허용하는 모든 가능한 의미를 드러내는 데 그쳐야 하며, 어떤 해석이 ‘정당하다’거나 ‘옳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특정 해석을 옹호하는 순간, 법학은 인식의 영역을 떠나 정책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법학적 해석은 법규범의 가능한 의미들을 제시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 대상에 대한 인식으로서의 법학적 해석은 그것에 의해 밝혀진 여러 가능성 가운데서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으며, 법질서에 따라 법을 적용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법기관에게 그 결정을 위임해야 한다.」(523쪽)
이 점에서 변호사나 주석서 저자가 수행하는 작업 역시 엄밀한 의미의 법학과는 구별된다. 특정 해석을 법원에 제시하거나, 하나의 해석만을 유일하게 정당한 해석으로 주장하는 행위는 법정책적 행위이지 법학적 인식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법창조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이다.
「자신의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당해 사례에서 적용해야 하는 법규범에 대한 가능한 여러 해석들 가운데서 어느 하나만을 법원에 제시하는 변호인, 주석서를 통해 가능한 여러 해석들 가운데서 특정된 하나의 해석만을 유일하게 “정당한” 해석이라고 주장하는 해석자는 법학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법정책적 기능을 수행한다.」(523쪽)
켈젠이 특히 경계하는 것은 ‘정당한 하나의 해석’이라는 의제이다. 전통법학은 법적 안정성을 이유로 대부분의 규범이 단 하나의 의미만을 갖는 것처럼 서술하려 한다. 그러나 다의성을 본질로 하는 법언어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이러한 태도는 과학적 설명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요청에 가깝다.
「법학적 해석은 법규범이 언제나 하나의 ‘정당한’ 해석만을 허용한다는 허상을 피하도록 세심하게 노력하여야 한다. 그러한 허상은 전통법학이 법적 안정성의 이상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의제이다. 대부분의 법규범이 갖는 다의성에 비추어 볼 때 그러한 법적 안정성의 이상은 단지 근사적으로만 실현될 수 있다.」(523쪽)
물론 일의성의 이상이 정책적으로 유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켈젠은 그러한 정책적 가치판단을 과학적 진리로 위장하는 것을 거부한다. 법학은 바람직함을 판단하는 학문이 아니라, 실정법이 허용하는 의미의 구조를 드러내는 학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정법을 과학적으로 설명함에 있어 주관적・정책적 관점에 비추어 논리적으로 가능한 다른 어떤 해석보다 좀 더 바람직한 어떤 해석을 객관적인 과학적 관점에 비추어 유일하게 정당한 해석이라고 선언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러한 의제를 사용하는 것은 정당화되지 않는다.」(523-524쪽)
켈젠은 과학적 해석의 실천적 의의를 전혀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판적 법해석은 입법자나 규범정립자에게 규범의 다의성과 불명확성을 드러냄으로써, 보다 정교한 법기술을 요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엄격한 과학적 해석은 법정립권위에 대해 법규범을 가급적 일의적으로 표현하여야 한다거나 다의성을 띠는 것이 불가피하더라도 그것은 최소한에 머물도록 법규범을 표현하여야 한다는 법기술적 요청으로부터 그의 작품이 얼마나 뒤쳐져 있는가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524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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