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순수법학

켈젠 순수법학 강독[4] - 법과 과학 上

斧針 2025. 11. 16. 15:11

한스 켈젠(변종필/최희수 역), 《순수법학》, 길안사, 1999 
Hans Kelsen, Reine Rechtslehre (1963)

<차 례>

[01] - 법과 자연 上

[02] - 법과 자연 下(사회질서, 법질서)

[03] - 법과 도덕

[04] - 법과 과학 上

[05] - 법과 과학 下

[06] - 법정태학 上(제재, 의무, 책임, 권리)

[07] - 법정태학 中(행위능력과 권리능력)

[08] - 법정태학 下(법률관계, 권리주체)

[09] - 법동태학 上 (근본규범)

[10] - 법동태학 中(법질서의 단계구조 1: 위계질서)

[11] - 법동태학 下(법질서의 단계구조 2: 규범충돌)

[12] - 법과 국가 上(공법-사법 이원론 비판)

[13] - 법과 국가 下(국가-법 이원론 비판)

[14] - 국가와 국제법

[15] - 해석

[16] - 부록 1(정의의 규범들)

[17] - 부록 2(자연법론)


 

14. 법학의 대상으로서의 법규범

법학의 대상은 법이다라는 명제는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보다 구체적인 이론적 함의가 포함돼 있다. 이 문장은 법학의 대상은 인간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법규범이다라는 말로 풀이된다. , 인간행위는 그 자체로는 법학이 분석할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법규범 속에서 조건 또는 효과로 포섭될 때에만 비로소 법학의 인식대상이 된다. 사람들 간의 관계 역시, 단순한 사회적 관계를 넘어 법규범에 의해 구성된 법률관계에 이를 때에만 비로소 법학의 범주 안에 들어오게 된다.

「‘법학의 대상은 법이다’라는 자명한 주장 속에는, 법규범은 법학의 대상이지만 인간의 행위는 그것이 법규범 속에 조건이나 효과로서 규정되어 있는 한에서만, 다시 말해 그것이 법규범의 내용인 한에서만 법학의 대상이라는 주장이 포함되어 있다.」(129쪽)

무언가를 법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곧 이를 법규범 자체 혹은 법규범의 내용으로 파악한다는 의미가 된다. 다시 말해, 법학은 현실에서 발생하는 행위를 직접 탐구하는 사회과학이 아니라, ‘특정 행위가 어떤 법규범에 의해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가를 분석하는 규범과학이다.

이러한 전제에서 켈젠은 인간행위 그 자체를 법학의 최종적 대상으로 삼는 자아론적 법이론(egologische Rechtstheorie)이나 법을 경제적 사실의 단순한 반영으로 파악하는 마르크스주의 법이론과 거리를 둔다. 전자는 법을 인간의 주관적 행위로, 후자는 법을 경제구조의 부산물로 환원하려는 접근인데, 순수법학은 이러한 설명방식을 모두 거부한다. 순수법학에서 법은 어떠한 사실에도 환원되지 않는 규범적 질서이며, 법학의 임무는 바로 그 규범구조를 기술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법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법으로, 즉 법규범으로 또는 법규범의 내용으로, 즉 법규범에 의해 규정된 것으로 파악한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129쪽)

 

 

15. 정적 법이론과 동적 법이론

법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i) ‘법규범자체, 이미 주어진 규범체계에 초점을 맞추는 정적 법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ii) 규범을 만드는 행위나 적용절차 같은 법을 둘러싼 행위들에 초점을 맞추는 동적 법이론이다.

「인간행위를 규율하는 규범인가 아니면 규범에 의해 규율되는 인간행위인가 하는 양자택일 중에서 어느 쪽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 정적 법이론과 동적 법이론으로 나눌 수 있다.」(130쪽)

i) 정적 법이론은 이미 효력을 가진 규범체계를 일종의 정지된 건축물처럼 파악해, 이를 정연하게 정리하고 그 구성요소들 간 논리적 관계를 밝히는 데 초점을 둔다. 법규범의 내용과 그들 사이의 위계·체계·논리적 구성을 중심으로 법질서를 이해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반면 ii) 동적 법이론은 법이 단순히 고정된 규범들의 집합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변경·적용되는 과정이라는 점에 주목하며, 그리하여 법질서를 움직이게 하는 행위들, 즉 법창조행위와 법적용행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분석한다.

그런데 켈젠은 여기서 중요한 점을 하나 더 강조한다. 법창조행위와 법적용행위 그 자체도 다시 상위 법규범에 의해 규율된다는 것이다. 입법행위는 헌법이 정한 절차와 권한 안에서만 유효하게 이루어지며, 재판이나 행정처분 역시 상위규범인 소송법 및 개별행정법이 정한 방식에 따라야 한다. 결국 동적 법이론도 법의 창설과 적용을 규율하는 법규범 그 자체를 향할 수밖에 없다.

「법절차를 나타내는 행위인 법창조행위와 법적용행위는 그것들이 법규범의 내용을 이루고 법규범에 의해 규정되는 한에서 법인식의 고려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동적 법이론 역시 법규범, 더욱이 법의 창조와 적용을 규율하는 법규범에로 향해 있다.」(130쪽)

말하자면, 규범체계의 구조에 초점을 맞추든 아니면 규범에 의해 규율된 법의 생성·적용 과정을 조명하든, 법학의 중심에는 언제나 법규범이라는 대상이 놓이게 되는 것이다.

 

 

16. 법규범과 법명제

앞서 켈젠은, 법과 법학은 그리고 도덕과 윤리학은 엄연히 다르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110), 이처럼 규범 자체와 규범을 기술하는 학문적 진술을 명확히 가르는 작업이 중요한 첫째 이유는 양자 간 역할과 기능을 분명히 확정하기 위함이다. 학문의 기능은 어디까지나 인식과 서술(Erkenntnis, Beschreibung)에 있지, 의사결정과 규정(Vorschreibung)에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언어관용상 법이 법학과 엉켜있듯이 도덕은 매우 자주 윤리학과 엉켜있다는 점, 그리고 도덕의 기능으로나 언급해야 할 것을 흔히 윤리학의 기능으로 언급한다는 점―즉 윤리학의 기능이 인간행위를 규율하고 의무와 권리를 확정하는 것, 다시 말해 권위적으로 규범을 정립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실상 윤리학은 단지 도덕적 권위나 관습에 의해 정립되거나 성립된 도덕규범을 인식하고 기술할 수 있을 뿐임에 유의해야 한다.」(110쪽)
「학문은 인식기능이자 서술이지, 의사기능과 규정이 아니기 때문이다.」(133쪽 주 6).

가령 도덕은 규범으로서 명령이지만, 윤리학은 도덕을 서술하는 학문일 뿐 스스로 도덕규범을 정립할 권위는 없다. 윤리학자가 자신의 글에서 실제로 규범을 만들어내는 말을 한다면, 그 순간 그는 윤리학자의 본분을 벗어나 도덕적 권위자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며, 그 작업은 이미 학문으로 부를 수 없다. 또한 강제를 통해 인간행위를 규율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권위에 의해 정립된 ’, 법규범이고, 그 법규범의 내용 및 그것이 규정하는 요건들 사이의 관계를 인식분석기술하는 것은 법학의 산물인 법명제인바, 법명제 그 자체는 법규범이 아니고 스스로 법규범의 역할을 하려 해서도 안 된다.

「법학은 인간행위에 의해 창조되고 그러한 행위에 의해 적용되고 준수되는 법규범과 그러한 법규범에 의해 형성된 관계, 즉 그 법규범에 의해 규정된 요건들 사이의 관계를 서술한다. 법학이 그러한 관계를 서술하는 명제는 법명제(Rechtssätze)로서 법규범(Rechtsnormen)과 구분되어야 한다.」(131쪽).

인식기술의 대상인 규범과, 그 규범에 대한 인식기술 사이의 구분이 절실한 또 하나의 이유는, 논리학의 원리(가령 모순율, 추론규칙 등)가 일차적으로 후자에만 적용될 수 있다는 데 있다. 가령 i) 법규범은 명령허용수권과 같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해도 되는지, 할 수 있는지를 정한다. 그것은 어떤 사실의 진위에 대한 판단이 아니므로 참이거나 거짓일 수 단지 효력이 있거나 없을 뿐이다. 반면, ii) 법명제는 이 법질서에 따르면, 이런 조건이 충족되면 이런 법적 효과가 발생해야 한다고 서술하는 문장이기 때문에,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다.

「법규범은 판단이 아니다. … 그것은 그 의미상 요구이고 그 자체 명령이다. … 법은 명령하고 허용하며 수권하지, ‘가르치지’ 않는다.」(131쪽)

전통적 법학에서는 법규범과 법명제가 혼동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입법기술상 법규범이 평서문(‘~한다’)의 언어형식으로 표현되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가령 절도죄 처벌규정은 절도하면 처벌해야 한다는 규범의 실질을 지니지만, 문언상 절도는 자유형에 처한다라는 사실서술적 명제의 형태를 띨 수 있다. 법을 가르침(Lehre)이라고 부르면서 법학의 기능과 법적 권위의 기능을 뒤섞어버리는 일이 빈번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전통적인 독일법학의 용어로는 물론 ‘법규범’과 ‘법명제’라는 표현이 동의어로 사용된다. 이는 전통법학이 법적 권위의 규범적 기능을 법학의 인식기능과 혼동하고 있다는 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132쪽 주 5)

비슷한 혼동은 ‘당위(Sollen)’라는 말의 용례에서도 나타난다. ‘당위’는 명령일 수도 있고(‘절도는 자유형에 처해져야 한다’), 어떤 규범이 존재한다는 취지의 명제(‘이 규정은 절도는 자유형에 처해져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일 수도 있는데, 양자는 자주 혼용되지만 본질을 달리한다. 전자는 법규범의 언어이고, 후자는 그 규범을 서술하는 법명제의 언어이다.

법학에 의해 형성되고 법을 서술하며 누구에 대해서도 또 그 무엇에 대해서도 의무나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 당위명제(Sollsätze)는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지만, 법적 권위에 의해 정립된 당위규범(Sollnormen)은 참일 수도 거짓일 수도 없고 다만 효력이 있거나 효력이 없을 뿐이다.(134)

 

 

17. 인과과학과 규범과학

켈젠은 법을 규범질서로 파악하는 관점이 단지 법철학적 정의에 그치지 않고, 법학의 학문적 성격을 규정하는 결정적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대상을 ()규범으로 한정함으로써, 법학은 비로소 자연과학과 구별되는 독자적 학문범주를 확보하게 된다는 것이다.

「법을 규범(더 정확하게는, 규범체계 또는 규범질서)으로 규정하고 법학을 법규범의 인식과 서술 및 법규범에 의해 규정된 요건들 사이의 관계에 국한시킴으로써 우리는 법을 자연과 구분하게 되며, 규범학으로서의 법학을 … 여타의 모든 다른 과학과 구분하게 된다.」(137-138쪽)

규범은 자연의 세계와 다르게 구성된다. 자연은 원인과 결과의 연쇄, 즉 인과관계에 의해 작동하는 질서다. 그리고 자연과학은 이러한 인과적 결합을 서술하는 명제를 제시하며, 그 명제적 결과물이 바로 자연법칙이다.

「자연이란 … 인과관계(Kausalität)라고 불리는 원칙에 따라 결합되어 있는 요소들의 체계이다. 자연과학이 자연을 서술하는 방법인 이른바 자연법칙, 예컨대 금속은 가열되면 팽창한다라는 명제는 이러한 원칙을 적용한 예이다. 열과 팽창 사이의 관계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이다.」(138쪽)

그러나 인간행위는 양면적 성격을 지닌다. 인간행위는 자연현상의 일부로서 인과적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오로지 원인과 결과의 연쇄로만 이해될 수는 없다. 우리의 언어와 사회적 실천을 분석할 때 또 다른 원리, 규범에 따른 결합이 항상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행위에 관한 우리의 언급을 분석해 보면, 원인과 결과의 관계인 인과관계의 원칙에 따라서뿐만 아니라 인과관계와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원칙―과학에서는 아직까지 이 원칙에 대해 일반적으로 승인된 명칭이 없다―에 따라서도 우리가 인간행위 상호간을 결합시키며 또 인간행위를 다른 사실과 결합시키고 있음을 알게 된다.」(138-139쪽)

이것이야말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경계를 가르는 핵심요인이라 할 수 있다. 사회는 단순히 인간행위들의 총합이 아니라, 인간행위들이 규범에 의해 상호연결되는 규범적 질서이다. 따라서 사회과학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인과법칙과는 다른 원리, 즉 규범에 따른 결합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자연과학과 구분되는 사회과학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인과관계와는 다른 원칙에 따라 그 대상을 서술해야 한다. … 사회란 인간행위의 규범적 질서를 말한다.」(138쪽)

인간행위 그 자체는 사실이지만, 법은 그 사실 위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하는, 즉 인간 상호행위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는 규범이다. 규범은 원인과 결과처럼 사실적 연쇄로 구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규범질서를 연구하는 법학은. 사실을 연구하는 자연과학과 질적으로 다른 학문일 수밖에 없다.

「사회를 인간의 상호행위에 관한 규범질서로 이해할 경우에만, 사회는 자연이라는 인과법칙적 질서와는 다른 대상으로 파악될 수 있고 사회과학은 자연과학에 대비될 수 있다. 법이 인간의 상호행위를 규율하는 규범질서인 한에서만,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법은 자연과 구분될 수 있고 사회과학으로서의 법학은 자연과학과 구분될 수 있다.」(139쪽)

 

 

18. 인과관계와 귀속 : 자연법칙과 법적 법칙

자연과학은 경험적 필연성에 의해 일어나지만, 법적 결합은 법적 권위의 정립행위에 의해 형성된다. 법질서는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발생한 경우 법적 효과를 귀속(Zurechnung)이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인과적 필연과 규범적 귀속은 외형적으로 유사해 보이지만 전자는 자연적 사실, 후자는 법적 의미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전혀 동일하지 않다.

따라서 자연과학적 설명과 법학적 설명 역시 서로 완전히 다른 원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 자연과학은 사건들 사이의 사실적필연적 인과관계를 기술하지만, 법학은 특정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법규범이 정한 효과가 귀속된다고 기술함으로써 규범적 연결을 설명한다. 가령 범죄자에게 형벌을 부과해야 하고, 채무불이행시 강제집행을 행해야 하는 것은 인과적으로 발생하는 연결이 아니라 법규범이 정한 귀속의 결과다. 따라서 그러한 법규범을 기술하는 법명제도 항상 ‘A이면 B가 존재한다가 아니라 ‘A이면 B가 존재해야 한다라는 형식으로 표현된다. 법학의 언어는 존재를 기술하는 문장이 아니라 규범적 의미를 진술하는 언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상호행위의 규범질서를 서술할 때에는 인과관계와 구분되는 다른 질서원칙이 적용되는데, 우리는 이를 귀속(Zurechnung)이라 부를 수 있다. 법적 사유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법학이 그 대상인 법을 서술하는 수단이 되는 명제인 법명제에서는, 사실상 인과관계의 원칙과 유사하지만 그럼에도 그 원칙과 특징적인 방법으로 구분되는 다른 원칙이 적용됨을 밝힐 수 있다.」(139쪽)
「법명제는 자연법칙과 같이 ‘A가 존재하면 B가 존재한다’라고 언급하지 않고, ‘A가 존재하면 … B가 존재해야 한다’라고 언급한다. 법명제에서 두 요소의 결합이 갖는 의미와 자연법칙에서 두 요소의 결합이 갖는 의미의 차이는, 법명제에서의 결합이 법적 권위에 의해 정립된 규범에 의해 제시되는 반면, 자연법칙에서 언급되는 원인과 결과의 결합은 그러한 법적 권위의 개입과 무관하다는 데 있다.」(140쪽)

자연법칙과 법명제의 구분은 종교적·형이상학적 세계관에서는 흐려질 수 있다. 만약 자연현상들의 인과성이 신의 의지에 의해 설정된 규범으로 이해된다면, 자연법칙 역시 규범적 질서를 기술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증주의적 법이론이 자리하는 과학적 세계관에서는 이러한 동일시는 허용될 수 없다. 자연법칙은 단지 사실의 규칙성을 진술하는 반면, 법명제는 법적 권위가 정립한 규범을 기술하는 언명이며, 이 둘은 논리적·기능적으로 엄격히 분리되어야 한다.

켈젠은 ‘~해야 한다라는 계사(繫辭)가 법명제 내부에서 특수한 기능을 수행하며, 이것이 통상적 명령의 의미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일상언어에서 ‘~해야 한다는 대개 명령을 표현하지만, 법명제가 이러한 표현을 사용해 당위(sollen)를 언급하는 것은 단지 법규범이 조건과 효과를 어떻게 결합시키고 있는가를 기술하는 논리적 표현일 뿐, 개인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법과 법학을 엄격히 구분하는 관점하에서 당연한 설명이다. 법학자는 규범을 제정하거나 승인하는 주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이미 정립된 규범이 조건과 효과를 어떻게 결합시키는지를 분석하는 관찰자이기 때문이다. 비록 당위명제를 쓰더라도 법명제는 명령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규범의 구조를 인식적 차원에서 진술하는 판단문이다. 가령 ‘A이면 B가 발생해야 한다는 법명제는 명령이 아니라, ‘이 법규범에 따르면 A가 일어나면 B가 발생해야 한다서술이다. 여기서 B라는 효과는 명령일 수도, 수권일 수도, 허용일 수도 있다. 따라서 법명제에서의 ‘~해야 한다는 그 대상이 되는 법규범의 속성에 따라 명령, 수권, 허용의 기능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고 하겠다.

「법명제가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 일정한 효과가 발생해야 한다라고 표현되는 경우, 즉 법규범에 의해 제시된 결합(즉 조건과 효과로서 규정된 요건들의 결합)이 법명제에서 ‘~해야 한다’(sollen)라는 계사(繫辭)를 통해 표현되는 경우 강조해야 할 것은 그 말이 통상의 의미대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 ‘당위’(Sollen)라는 말로써 우리는 통상적으로 수권이나 허용이 아니라 명령을 표현한다. [그러나] 법명제에서 조건과 효과를 결합시키는 계사인 법적 당위는 효과에 대한 명령, 수권, (적극적)허용이라는 세 가지 의미를 모두 포괄한다. 다시 말해 법명제가 언급하는 ‘당위’는 세 가지 규범적인 기능을 모두 지칭한다. 이 ‘당위’는 조건과 효과라는 두 요건이 법규범을 통해, 즉 법규범속에서 서로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가 하는 그 특별한 의미만을 표현한다. 법학은 법규범에 의해 제시된 이러한 결합, 특히 불법과 불법효과의 결합을 ‘~해야 한다’라는 계사에 의하지 않고서는 표현할 수 없다.」(140-141쪽)

켈젠은 이어서 법학의 언명이 사실을 기술한다는 주장, 즉 법학은 규범을 기술하는 대신 규범이 유효하다라는 사실을 말할 뿐이라고 보는 견해를 비판한다. 이러한 입장은 법학을 자연과학처럼 관찰가능한 사실을 다루는 학문으로 만들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는 규범과 규범을 기술하는 명제의 논리적 성격을 오해한 것이라고 켈젠은 본다. 규범의 유효성(‘이 규범이 유효하다’) 자체가 이미 당위(‘이 규범은 마땅히 지켜져야 할 규범으로서 법질서 안에 있다’)를 의미한다는 이유에서다. 규범이 유효하다는 진술은 곧 그 규범이 명령하는 행위가 행해져야 한다는 당위명제이지, 그것이 실제로 행해지고 있음을 언급하는 사실명제가 아니다.

「‘법학이 언급하는 바는 일정한 법질서내의 법규범이 일정한 시간에 ‘발효’되거나 ‘효력’을 갖는다는 것에 다름 아니며, 따라서 법학이 법규범과는 달리 ‘당위’를 언급하지 않고 존재를 언급한다‘라고 주장한다면, 그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일정한 행위를 명령하거나 수권 또는 (적극적으로) 허용하는 규범이 ‘발효’되거나 ‘효력’을 갖는다라는 언명은 그 행위가 사실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할 수는 없고, 다만 그 행위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을 따름이다.」(141쪽)
「법학에 의해 형성된 법명제가 ‘~해야 한다’(sollen)라는 말을 사용하더라도 그것은 그 법명제에 의해 서술된 법규범이 갖는 권위적 의미를 갖지 못한다. … 법명제는 특히 명령이 아니며, 판단이다. 즉 인식에 주어진 대상에 관한 언명이다.」(143쪽)

법학이 규범을 서술할 때 절대로 효과가 사실적으로 발생한다는 식으로 기술해서는 안 된다고 켈젠은 강조한다. 만약 법학이 불법효과가 실제로 발생한다고 언급한다면, 현실에서는 불법이 있어도 효과가 집행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므로 즉시 모순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법학은 사실세계의 불완전한 집행현실을 설명하는 학문이 아니라, 법질서가 어떻게 규범적 의미 구조를 조직하는지를 기술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규범이 명령하는 행위가 실질적으로 얼마나 이행되었는지는 법학의 서술대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법질서의 실효성은 단지 규범의 효력성립을 위한 조건일 뿐 효력 그 자체는 아니다. 이런 이유로 법학은 언제나 효과가 발생해야 한다라는 당위 구조만을 진술할 수 있고, 그것이 실제로 발생했는지 여부는 법학적 서술에 포함될 수 없다.

「특히 법학은, ‘일정한 법질서에 따르면 불법이 저질러진다는 조건 아래에서 불법효과가 사실적으로 발생한다’라고 언급할 수 없다. 그와 같이 언급하게 되면 법학은 현실, 즉 불법이 저질러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질서에 의해 확정되어 있는 불법효과가 발생되지 않는 경우가 매우 빈번하다는 그런 현실과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은 법학이 서술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법학에 의해 서술되는 법질서의 규범들이 효력을 갖는 것은, 다시 말해 그들 법규범에 의해 규정된 행위가 객관적 의미에서 당위적인 것은 그 행위가 법질서와 어느 정도 사실적으로 부합되는 경우에만 그러하다는 사실 역시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법질서의 이러한 실효성은―언제나 되풀이해서 강조하듯이―효력의 조건일 따름이지, 효력 자체는 아니다.」(141-143쪽)

 

19. 원시적 사유에서의 귀속의 원칙

켈젠은 귀속의 원칙이 근대 법이론에서 새롭게 발명된 개념이 아니라, 인간 사고의 가장 원초적 단계에서도 이미 작동해 왔다는 점을 밝힌다. 가령 원시인은 자연현상을 자연과학적 인과관계로 설명하지 못한다. 인과법칙은 문명화된 과학의 산물이며, 원시인은 자신이 이미 사회적 삶을 통해 익힌 규범구조특히 상벌이 결합된 응보의 원칙을 자연해석에도 그대로 투사한다. 자연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사회 내부에서의 상벌구조와 같은 방식으로 이해되며, 이는 자연을 규범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원시인은 자연현상을 아직 인과관계의 원칙에 따라 설명하지 않았을 개연성이 크다… 원시인은 그가 감각적으로 지각한 사실을 동료 인간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데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원칙에 따라, 즉 사회규범에 따라 해석했다.」(148쪽)

원시인의 자연해석은 원인결과의 연쇄가 아니라, ‘누가 책임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자연 속의 불행흉년, 패배, 질병, 죽음은 규범적 위반행위에 대한 벌로 해석되고, 반대로 자연 속의 성공풍년, 전쟁의 승리, 건강, 장수은 규범적 준수에 대한 상으로 해석되었는데, 이러한 구조에서는 자연세계 전체가 규범질서의 일부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결과가 해악으로 지각되는 경우 그것은 악한 행위에 대한 벌로서 해석되고… 좋은 결과들은 선한 행위에 대한 상훈으로 해석된다. 원시인은 무엇이 그 원인인가를 묻지 않고 누가 그에 대해 책임이 있는가를 묻는다.」(149쪽)

이 해석 방식이 확장되면서 애니미즘이 형성된다. 원시인은 인간뿐 아니라 만물과 무생물도 영혼을 갖는다고 믿고, 이 영혼이 응보의 원칙에 따라 인간에게 상벌을 가져온다고 이해한다. 자연을 움직이는 것은 물리적 법칙이 아니라, 사회규범과 닮은 상벌 규칙에 복종하는 인격적 존재들의 의지라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자연은 인과법칙의 장이 아니라, 규범적 귀속의 장으로 해석된다.

「애니미즘은 자연에 대한 인격주의적이면서 사회규범적인 해석이라는 점, 즉 인과법칙이 아니라 귀속원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해석이라는 점에 그 본질이 있다.」(140쪽)

역사적으로 시간선후를 따지면 귀속원칙이 먼저 생겨났고, 자연 개념이 나중에 그로부터 분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인간과 사물, 인격과 물체를 구분하고, 사물 사이의 관계를 인과관계로 설명하는, ‘자연-사회 이원론은 문명화의 산물이다. 자연이라는 개념은 인과관계의 법칙이 자리잡음에 따라 비로소 형성된 것이다(150).

 

 

 20. 응보원칙으로부터 인과원칙의 발생

그렇다면 그러한 분화는 언제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켈젠은 인과관계의 원칙이 자연 속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라, 원시적 규범구조인 응보의 원칙이 변형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고 설명한다. 자연을 규범적으로 해석하던 시대에서 인과적으로 해석하는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은 연속적이며, 인과개념 자체가 초기에는 규범적 어휘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스 철학에서 원인을 뜻하는 αιτια(아이티아)가 본래 책임을 의미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원인은 결과를 야기한다기 이전에, 결과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초기의 자연법칙은 여전히 법명제와 유사한 규범적 구조를 지니고 있었으며, 자연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여야 하는지를 마치 규정된 것처럼 진술했다.

「인과관계의 법칙은 응보의 규범으로부터 생겨났을 개연성이 크다. … 원인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αιτια(‘아이티아’)는 원래 책임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즉 원인은 결과에 책임이 있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며, 형벌이 불법에 귀속되듯이 결과는 원인에 귀속된다.」(151쪽)

초창기의 인과개념은 형벌보상 구조에서 파생된 귀속의 의미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사물의 질서 또한 규범적으로 유지된다고 여겨졌지만, 문명이 점차 발전하면서 인간은 사물간의 관계가 규범이나 의지의 개입 없이 스스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인과는 귀속과 분리되고, ‘사물들의 행위는 어떤 권위가 규정하거나 허용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관념이 자리잡았다. 귀속적 사고에서 벗어나고, 필연성이라는 요소를 신적 의지의 절대성이 아니라 인식의 보편성에서 찾게 된 것은 점진적인, 오랜 시간에 걸친 변화 끝의 결과였다.

「사물간의 관계가 인간간의 관계와는 달리 인간이나 초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규정된다는 점, 즉 … 인과관계를 귀속과는 다른 원칙으로 규정하는 것은 점진적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151-152쪽)

 

 

 21. 인과적 사회과학과 규범적 사회과학

이처럼 인과관계의 원칙이 확립된 이후, 인간행위를 연구하는 사회과학 내부에서도 두 가지 전혀 다른 종류의 학문이 생겨났다고 켈젠은 말한다. 그 하나는 i) 인간행위를 자연현상처럼 인과적으로 해명하는 인과적 사회과학이고, 다른 하나는 ii) 인간행위를 규율하는 규범의 구조를 해명하는 규범적 사회과학이다. 두 과학은 똑같이 인간행위를 다루지만, 인간행위를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한다. 전자는 인간행위를 자연적 과정처럼 다루고, 후자는 인간행위를 규범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려 한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심리학・민속학・역사학・사회학 등은, 인간행위가 인과법칙에 의해 규정되는 한, 즉 인간행위가 자연 또는 자연적 현실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한, 인간행위를 그 대상으로 삼는 과학이다.」(152쪽)

켈젠은 이러한 인과적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인간행위를 설명하는 것이든 물리적 사건을 설명하는 것이든, 인과적 해석이라는 동일한 원리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행위는 복잡하기에 인과적으로 해명되는 범위에 한계가 있을 뿐이다.

반면, 규범적 사회과학은 인간행위를 자연적 과정으로서 설명하지 않는다. 규범적 사회과학은 인간이 만든 실정규범이 어떤 인간관계를 만들어 내고, 그러한 규범이 인간행위를 어떤 방식으로 요구하는가를 서술한다. 이때 규범적 사회과학이 다루는 가치는 초월적 가치가 아니라, 인간행위를 통해 정립된 실정규범이 만든 가치질서이다. 켈젠은 이 규범적 사회과학이야말로 자연과학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할 수 있다고 한다.

「본질적인 차이는 다만 자연과학과, 인간의 상호행위를 인과관계의 법칙에 따라서가 아니라 귀속의 원칙에 따라서 해석하는 그러한 사회과학 … 사이에 존재한다.」(153쪽)

규범적 사회과학의 대표적 예는 윤리학과 법학이다. 윤리학은 도덕규범에 의해 형성된 관계를, 법학은 법규범에 의해 형성된 관계를 서술한다. 앞서도 거듭 언급했듯이 여기서도 켈젠은 규범과학이 규범을 창설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이미 형성된 규범을 서술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규범과학자는 사회적 권위를 지니지 않으며 규범을 만들지도 않는다. 그리고 규범과학의 대상인 사회는 단순한 인간 집합체가 아니라, 인간 상호행위를 규율하는 규범질서 그 자체다. 인간은 이러한 규범질서에 의해 행위가 규정되고 허용되는 한에서 그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이 규범과학의 핵심적 전제다.

「규범적 사회과학의 대상으로서의 사회는 인간의 상호행위를 규율하는 규범질서이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가 그러한 질서에 의해 규율되고 … 허용되는 한에서 그 사회의 일원이다.」(153쪽)

켈젠은 이 규범질서의 성격이 특히 법질서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언어인종종교를 가진 사람들이라도 동일한 법규범을 적용받는 한 하나의 법공동체에 속한다. 법질서가 실효성이 있을 경우, 법질서가 규정한 조건 아래에서 규정된 효과가 실제로 나타날 가능성은 높아지지만, 이 가능성은 자연법칙의 필연성처럼 해석될 수는 없다. 자연법칙은 사실과 모순되면 폐지되지만, 법규범은 준수되지 않는 사례가 존재하더라도 일정한 실효성을 유지하는 한 효력을 잃지 않는다.

「법규범은 그것이 완전히 실효성이 있을 경우에 비로소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을 경우, 즉 어느 정도 적용되고 준수되는 경우에는 효력이 있다. 규범이 실효성을 갖지 못할 가능성, 즉 규범이 개별 사례에서 적용되고 준수되지 않을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바로 이 점에서 법적 법칙과 자연법칙의 차이점이 밝혀진다. 자연법칙과 모순되는 어떤 사실이 발견되면, 그 자연법칙은 과학에 의해 잘못된 것으로 폐지되고 그 사실과 합치되는 다른 자연법칙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하지만 법학의 경우에는 법규범에 반하는 행위의 빈도가 일정 정도를 초과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행위에 의해 침해된 법규범을 효력 없는 것으로 보고서 법을 서술하는 그 법명제를 다른 법명제로 대체해야 할 이유가 없다. 자연과학에 의해 형성된 자연법칙은 필연적으로 사실에 주목해야 하지만(müssen), 인간의 작위와 부작위라는 사실은 법학에 의해 서술되는 법규범에 주목해야 한다(sollen). 따라서 법을 서술하는 법명제들은 당위언명임이 분명하다.」(155-156쪽)

켈젠은 미국의 법현실주의가 법을 법원이 미래에 어떻게 재판할 것인지에 대한 예측으로 정의하는 것은 법과 법학을 혼동한 결과라고 비판한다. 법원 판결은 존재사실에 대한 언명이지만, 법학이 서술하는 법명제는 규범이 정한 귀속구조를 기술하는 당위명제다. 법학은 법원이 실제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예측하는 학문이 아니라, ‘법규범에 따르면 무엇이 귀속되어야 하는가를 서술하는 학문이다.

법원의 결정을 예견하는 것이 법학의 과제는 아니다. 법학은 무엇보다 법원에 의해 정립된 개별적 법규범의 인식에 주목하며, 입법기관과 관습에 의해 창설된 일반적 법규범에 주목한다. 따라서 일반적 법규범의 경우 예견이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헌법은 통상 입법의 절차만을 미리 규정하고 있지, 법률의 내용을 미리 규정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관의 재판에 대한 예견은 본질상 법원이 입법기관이나 관습에 의해 창설된 일반적 법규범을 대체적으로 적용하곤 한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따라서 그러한 예견의 본질은 다름 아니라 법원은 효력 있는 일반적 법규범에 따라 재판해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재판할 것이라는 언명에 있다. 현실주의법학의 예견이 규범적 법학의 법명제와 구분되는 것은, 그러한 예견이 당위 언명이 아니라 존재언명이지만 존재언명으로서 법의 특별한 의미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법원이 재판을 통해 새로운 법을 창조하는 한, 입법기관에 의해 창조되는 일반적 법규범에 대한 예견과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예견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러한 법규범이 법학의 대상인 법의 대다수를 이룬다. 그러나 예견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예견은 법원에 의해 창조된 개별적 법규범과 입법기관이나 관습에 의해 창조된 일반적 법규범이 발효된 이후에야 비로소 서술할 수 있는 법학의 과제는 아니다. 장래의 법원의 재판을 예견하는 것은 자신의 의뢰인을 원조하는 실무가인 변호인의 임무에는 해당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법인식은 법적 상담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대체적으로 실효성 있는 법질서가 자연법칙처럼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 일정한 효과가 사실적으로 발생한다고 언급하는, 즉 그 법질서에 따라 법적용기관이 불법이라고 특징지은 어떤 것이 일어나면 그 법질서에 의해 규정된 불법효과가 발생한다고 언급하는 명제의 형태로 서술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서술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 법학은 아니다. 왜냐하면 법학에 의해 형성된 법명제를 통해 법학은 그 대상요소들 간의 인과관련성이 아니라 귀속관련성을 밝히고자 하기 때문이다.」(156-157쪽)

 

 

22. 인과원칙과 귀속원칙의 차이

인과원칙과 귀속원칙은 모두 일정한 조건에 일정한 결과를 결합시키는 가언판단으로 표현되지만, 둘 사이에는 크게 세 가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하나는 그 결합이 갖는 의미이다. 인과원칙은 ‘A가 존재하면 B가 존재한다(또는 존재할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귀속원칙은 ‘A가 존재하면 B가 존재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다른 하나는, 인과원칙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성립하지만, 귀속원칙(에 따른 결합)은 인간이 정립한 규범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도덕법칙 또는 법적 법칙을 통해 조건과 효과 사이의 관계를 제시하는 행위의 특별한 의미가 규범인 까닭에, 그러한 관계는―인과적 관계와는 달리―규범적 관계라 말할 수 있다. ‘귀속’이란 규범적 관계를 지칭한다.」(158쪽)

마지막 하나는, 귀속원칙과 달리 인과원칙에는 이 없다는 것이다. i) 인과관계의 세계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무한하게 확장되는 사슬을 형성한다. 모든 결과는 또 다른 결과의 원인이 되고, 모든 원인은 또 다른 원인의 결과가 되며, 여기서 이를테면 1원인을 전제하는 사유는 원시적 사고나 신적 창조를 전제한 형이상학적 사고의 잔재로 간주된다. ii) 귀속관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규범은 특정 행위에 특정 효과를 귀속시키는 고리를 제한적으로 구성할 뿐이며, 그 고리는 무한정 확장되지 않는다. , 귀속에는 종국점이 존재한다.

「귀속망을 구성하는 고리의 수는 인과망을 구성하는 고리의 수와 같이 무제한적이지 않고 제한적이다. 즉 귀속의 종국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인과망에서는 종국점에 해당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159쪽).
「제1원인(prima causa)을 전제하는 것은 인과관계의 이념, 적어도 고전물리학에서 표현되는 인과관계의 이념과는 조화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신의 창조의지 또는 인간의 자유의사로서 종교적 형이상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제1원인에 관한 관념은 인과관계의 원칙을 귀속의 원칙에서 아직 해방시키지 못했던 원시적 사유의 잔재이다.」(159쪽)

이러한 점에서 자연적 생기를 설명하는 인과법칙와 규범적 질수를 서술하는 귀속원칙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이 둘을 혼동할 경우, 법적도덕적 규범을 자연적 필연성으로 오해하거나, 반대로 자연현상을 규범적 책임구조로 해석하는 애니미즘적 사고로 회귀할 위험이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