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 켈젠(변종필/최희수 역), 《순수법학》, 길안사, 1999
Hans Kelsen, Reine Rechtslehre (1963)
<차 례>
[10] - 법동태학 中(법질서의 단계구조 1: 위계질서)
[11] - 법동태학 下(법질서의 단계구조 2: 규범충돌)
35. 법질서의 단계구조(2/2)
◎ 규범충돌의 의미
하나의 동일한 근본규범을 전제하는 법질서에 속하는 모든 규범은, 그 효력의 연원이 같기 때문에 하나의 통일체를 이룬다. 이 통일성은 특히 ‘그 법질서에 대해 서술하는 법명제들이 서로 모순되지 않게 배열될 수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입법기관이나 법원이 서로 모순되는 규범을 정립하는 일이 흔히 있다. 가령 한 규범이 ‘간통을 처벌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다른 규범이 ‘간통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는 경우, 또는 한 규범이 ‘절도는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규범이 ‘절도는 자유형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할 때 규범상 충돌이 발생한다.
켈젠은 여기서 중요한 구별을 도입한다. 규범 자체는 ‘참/거짓’이 아니라 ‘효력 있음/없음’의 속성을 가질 뿐이다. 반면 법규범을 서술하는 법명제(‘이 법질서에 따르면, 조건 X에서는 강제행위 Y가 정해져 있다’와 같은 명제)는 참/거짓이 될 수 있다.
「규범은 참도 거짓도 아니며, 효력이 있거나 효력이 없을 뿐이다. 하지만 어떤 규범질서를 서술하는 언명, 즉 그러한 질서에 따르면 일정한 규범은 효력을 갖는다는 언명과 특히 어떤 법질서를 서술하는 법명제, 즉 그러한 질서에 따르면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 일정한 강제행위가 설정되거나 설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언명은 위에서 보았듯이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다. 따라서 논리적 원칙들 일반과 모순률이 법규범을 서술하는 법명제들에 적용될 수 있으며, 이 점에서 간접적으로 법규범들에도 적용될 수 있다.」(320쪽)
따라서 두 규범이 충돌한다는 말은, 정확히는 ‘두 규범 모두를 유효한 것으로 서술하는 법명제들을 동시에 참으로 유지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 의미에서 규범충돌은 논리적 모순과 유사하며, 하나의 법질서 안에서는 충돌하는 두 규범이 모두 유효하다고 가정할 수 없다.
「두 규범 가운데 하나만이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A는 존재해야 하며 동시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명제는 A는 존재하며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와 마찬가지로 무의미하다. 규범충돌은 논리적 모순과 마찬가지로 의미없는 그 무엇이다.」(320-321쪽)
◎ 동일단계 규범 사이의 충돌
같은 기관·다른 시점에서 정립된 일반규범이 충돌하는 때에는 신법우선(lex posterior)의 원칙이 적용된다. 즉, 동일한 입법기관이 서로 다른 시점에 서로 모순되는 규범을 제정한 경우, ‘나중 규범이 먼저 규범을 폐지한다(lex posterior derogat priori)’는 원칙이 적용된다. 이는 입법기관이 통상적으로 가진 ‘개정·폐지 권한’에 내재한 것이다.
서로 다른 기관이 정립한 규범들이 충돌하는 때에도 신법우선 원칙이 적용된다. 헌법이 예컨대 군주와 의회 모두에게 동일한 규율 영역에 대해 규범을 만들 권한을 부여했을 수 있다. 혹은 성문법 입법과 관습법이 동시에 법창설 원천으로 인정될 수도 있다. 이들 경우에 기본적으로는 시간적 선후관계에 따른 우선 원칙이 작동할 수 있다.
동일한 행위 속에서 동시에 정립된 규범이 서로 모순되는 경우, 가령 하나의 법령 안에 ‘간통을 범한 자는 처벌해야 한다’와 ‘간통을 범한 자는 처벌해서는 안 된다’가 함께 들어 있거나, ‘모든 범죄자는 처벌되어야 한다’와 ‘14세 미만자는 처벌되어서는 안 된다’가 동시에 명시된 경우처럼, 동일 행위로 동시에 설정된 규범이 모순될 수도 있다.
만약 양자가 전체적으로 모순된다면, 법원을 포함한 법적용기관이 규범들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두 규범이 부분적으로만 모순된다면, 하나가 다른 하나의 효력을 부분적으로 제한·수정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도 저도 불가능하다면 입법행위 자체가 무의미한 행위에 불과해지며, 따라서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법규범이 성립하지 않게 된다. 가령 i) ‘간통을 범한 자는 처벌되어야 한다’와 ‘간통을 범한 자는 처벌되어서는 안 된다’가 병존할 때, 법명제 수준에서는 ‘간통을 범한 자는 처벌되어야 하거나 처벌되어서는 안 된다’ 같은 식의 불완전한 규칙으로밖에 기술할 수 없다. 만약 ii) ‘모든 범죄자는 처벌되어야 한다’와 ‘14세 미만자는 처벌되어서는 안 된다’가 병존한다면, 법명제는 ‘14세 미만자를 제외하고 모든 범죄자는 처벌되어야 한다’로 구성될 것이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될 수 없다면, 입법자는 무의미한 것을 규정하는 꼴이 되고 무의미한 규범정립행위가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그 주관적 의미를 그 객관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행위란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법규범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322쪽).
동위규범 간 충돌은 일반규범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개별 규범(법원의 판결·결정) 사이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동일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두 법원이 한쪽은 유죄, 다른 쪽은 무죄를 선고하거나, 한쪽은 소를 인용하고 다른 쪽은 기각할 수 있다. 이때 실제 집행단계에서는 강제집행기관이 어느 쪽 결정을 따를지 선택해야 한다. 선택된 쪽의 규범은 실효성을 획득하고, 반대쪽은 실효성을 얻지 못한 채 결국 효력을 상실한다(323쪽). 실효성은 법규범의 효력을 위한 필수조건으로서 근본규범 속에 이미 포함되어 있음은 전술한 바와 같다.
◎ 상위규범과 하위규범 사이의 충돌?
상위단계 규범과 하위단계 규범 사이에는 원리상 규범충돌이 있을 수 없다. 하위규범의 효력은 항상 상위규범에의 합치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하위규범이 유효한 것으로 인정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상위규범과의 관계에서 합헌·합법적인 것으로 해석된 상태이다. 만약 상위규범과 조화될 수 없는 내용이라면, 그 하위규범은 애초부터 유효한 규범으로 승인될 수 없고, 법질서에 속하지 않는다.
「상위단계의 규범과 하위단계의 규범 사이에는, 즉 어떤 규범의 창조를 규정하는 규범과 그 어떤 규범 사이에는 결코 충돌이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위단계의 규범은 상위단계의 규범에서 그 효력근거를 구하기 때문이다. 하위단계의 규범이 효력 있는 것으로 간주되면, 그것은 상위단계의 규범에 합치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324쪽)
가령 정신병원에 있는 환자가 스스로 법률을 제정했다고 주장하면서 여러 조항들을 문서에 기재했더라도 누구도 그것을 법규범이라 간주하지 않는다. 이것은 법질서가 사전에 ‘무효’를 선험적으로 규정해 놓았기 때문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것이 법의 영역 밖에 있기 때문이다. 규범으로 인정받을 조건 자체가 충족되지 않기에, 즉 상위규범에 근거가 없기에 애당초 규범 자체가 아닌 것이다.
「법질서는 법규범이라는 요청을 띠고 나타나는 어떤 것을 선험적으로 무효로 만듦으로써 이를 규범으로 간주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러한 조건을 확정할 수는 없다. 예컨대 정신병원에 수용된 자가 법률을 제정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만약 이러한 경우에 무효가 선험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것은 법의 영역을 벗어나 있는 것이다.」(417쪽)
따라서 켈젠은 전통법학이 흔히 말하는 ‘위헌적 법률’이라는 표현은 그 자체 개념적 모순이라고 비판한다. 상위규범인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애초에 법률이 아니기에 법질서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규범은 그 창조를 규율하는 상위규범과 합치될 경우에만 일정한 법질서에 속하기 때문에 상위규범과 하위규범간의 충돌의 문제, 즉 규범이 그 창조를 규율하는 규범 … 에 합치되지 않을 경우 어느 것이 정당한가라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전통법학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일정한 표현들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마치 그런 충돌이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전통법학은 법관의 “위법한” 재판 또는 “위헌적” 법률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마치 일반적으로는 규범에 반하는 규범, 개별적으로는 위법한 법규범이 존재할 수 있다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법 그 자체는 위법한 법을 예상하여 위법한 법의 폐지를 그 목적으로 하는 다양한 규정들을 둠으로써 위법한 법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위법한 법과 같은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법질서(Rechtsordnung)라는 개념에서 표현되고 있는 규범체계의 통일성은 파괴될 것이다. 한편 “규범에 반하는 규범”이란 자기모순이다. 그리고 어떤 규범이 그 창조를 규율하는 규범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면, 그 법규범은 유효한 법규범으로 간주될 수 없고 무효인 규범으로서 결코 법규범이 아닐 것이다. 무효인 어떤 것을 법적 방법에 의해 무효로 할 수는 없다. 규범을 무효로 한다는 것은 그 의미가 규범인 행위를 무효로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제로 일어난 것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할 수는 없다.」(403쪽)
*물론, 그렇게 불법적인 방식으로 제정된 규범도 실효성을 획득해 법질서에 편입될 수는 있다. 쿠데타나 혁명으로 권력이 전복되어 새로운 규범이 실효성을 갖게 되는 경우, 헌법은 사실상 변경되며, 새로운 체계 아래에서 ‘합헌적 법률’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당면한 쟁점과는 층위를 달리하는 문제다.
「권력찬탈자에 의해 제정된 일반적 규범이 실효성을 갖게 된다면, 혁명에 의한 헌법개정이 존재하게 되고, 이로써 새로운 헌법에 합치되는 합헌적 법률이 존재하게 되는 셈이다.」
전통법학이 실제로 ‘위법하여 무효’, ‘위헌이어서 무효’라고 부르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정말로 ‘무효’인 것이 아니라 단지 법질서가 정한 방식에 따라 ‘폐지’될 수 있는 상태에 불과하며(이른바 ‘고도의 폐지가능성’), 실제로 그렇게 폐지되기 전까지는 모두 유효한 규범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폐지’라는 의미에서의 ‘무효’는 단순히 행위 자체를 소급적으로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에 부여되었던 ‘규범적 의미’를 제거하는 것이다. 실제로 일어난 행위 자체는 지워지지 않지만, 그 행위가 규범으로서 효력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유효한 법률이 ‘위헌’이라는 언명은 형용의 모순이다. 왜냐하면 법률은 헌법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경우에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어떤 법률이 유효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면, 이 법률의 효력근거는 헌법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효인 법률에 대해 그것이 위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무효인 법률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결코 법률이 아니며, 따라서 그에 관한 어떠한 법적 언명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통법학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위헌법률이라는 주장이 어떤 가능한 법적 의미를 가지려면, 그러한 주장을 글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아니된다. 이러한 주장은, 문제의 법률이 헌법상 통상적 절차에 따라서, 즉 신법우선의 원칙에 따라 다른 법률에 의해 폐지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헌법에 규정된 특별한 절차에 따라서도 폐지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따름이다. 법률은 폐지되지 아니하는 한 유효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리고 법률이 유효한 것인 한 위헌일 수는 없다.」(408쪽)
법질서는 이러한 폐지 여부를 확정할 권한이 있는 기관을 규정해야 하고, 그 확정행위는 단순한 사실확인이 아니라 바로 그 순간 규범을 소급적으로 없애는 창설적 효과를 갖는다. 규범을 폐지하는 결정은 그 자체 새로운 규범을 창조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무효선언’이라는 표현도 엄밀히 말해 적절한 것이 아니다.
「규범을 무효로 한다는 것은 그 주관적 의미가 규범인 행위로부터 규범으로서의 객관적 의미를 박탈한다는 것을 뜻한다.」(403쪽)
「전술한 설명을 통해 법질서에 있어서는 무효와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법질서에 속하는 법규범은 무효가 아니라 단지 폐지가능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도 알 수 있다. 법규범의 폐지는 원칙적으로 장래에 대해서만 효력이 있고 이 법규범에 따라 이미 성립된 법적 효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법규범은 과거에 대해서도 소급적으로 폐지될 수 있으며, 따라서 그에 기초하여 성립된 모든 법적 효력이 무효로 된다.」(416쪽)
「따라서 법률을 폐지하는 결정을 무효선언이라고 부르거나, 법률을 폐지하는 기관이 그 결정에서 법률을 처음부터 무효라고 선언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러한 결정은 단순히 선언적 성격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창설적 성격을 가진다. 규범을 폐지하는 행위의 의미는 규범이다.」(416쪽)
「문제가 된 규범이 처음부터 무효인 것은 아니다. 규범이 무효라는 결정은 결정주체에 대해 그 규범을 소급적으로 폐지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법은 미다스 왕과 흡사하다. 즉 그가 만진 모든 것은 금으로 변했듯이, 법이 관계하는 모든 것은 법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법질서에 있어 무효란 단지 고도의 폐지가능성일 따름이다.」(418쪽)
물론, 헌법이 입법기관과 절차, 나아가 장래 법률의 내용까지 일정 부분 규율하는 이상, 현실에서는 헌법을 완전히 준수하지 않은 입법행위도 항상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법률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주장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권한 있는 기관에 의해 폐지되기 전까지는 유효한 법질서의 일부로서 적용될 수밖에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폐지 여부의 판단권한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 즉 주관적으로 ‘법률을 제정했다’는 의미를 가지는 행위가, 객관적으로도 헌법적 의미의 법률로 승인될 수 있는지 여부를 누구에게 판단시킬 것인지에 있다.
「구체적 사안에서 법규범이 일정한 효과를 결부시키고 있는 구성요건이 존재하는가라는 문제가 이 문제에 답할 권한이 있는 자가 누구인가라는 문제과 결부될 수밖에 없듯이, 법기관에 의해 창조된 규범이 그 창조나 그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상위규범과 합치하는가라는 문제 역시 누가 법질서에 의해 이 문제에 대해 결정할 권한을 부여받고 있는가라는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404쪽)
「헌법은 입법기관과 입법절차를 규율하고 때때로 장래의 법률의 내용까지도 어느 정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헌법제정자는 헌법상의 규범들이 언제나 그리고 완전하게 준수되지는 않는다는 것, 비록 입법행위가 이루어진 절차나 입법행위를 통해 창조된 법률의 내용이 헌법규범에 합치되지 않더라도, 법률을 제정했다는 주관적 요청을 띤 그러한 행위가 나타남을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구체적 사안에서 헌법규범에 합치되었는지 여부, 즉 헌법적 의미의 법률이라는 주관적 의미를 지닌 것이 그 객관적 의미에서도 법률로서 간주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결정권한이 헌법상 누구에게 부여되어 있는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408-409쪽)
만약 이 결정을 ‘모두에게’ 허용한다면 법질서는 붕괴한다. 누구든 임의로 ‘위헌이므로 복종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법은 이 판단권을 일정한 기관에만 집중시켜야 한다. 그 기관이 입법기관일 수도 있고, 법원이나 특별법원일 수도 있다. 또한 헌법이 아무 규정을 두지 않는다면, 법률을 ‘적용할 권한’을 가진 기관, 특히 법원이 이 심사권을 암묵적으로 갖게 된다.
「헌법이 이 문제에 대한 결정권한을 모든 사람에게 부여하고 있다면, 수범자와 법기관을 구속하는 법률은 결코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태를 피하기 위해 헌법은 일정한 법기관에게만 그런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 단 하나의 중앙입법기관만이 설치되어 있다면, 재판절차와 같은 심급절차는 배제된다. 이 경우 입법기관 자신이나 또는 그와는 다른 기관만이 법률의 합헌성문제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질 수 있다. 누가 법률의 합헌성을 심사할 권한을 가지는지에 관해 헌법이 아무런 규정도 두고 있지 않다면, 헌법이 법률을 적용할 권한을 부여한 기관, 특히 법원이 그러한 심사를 행할 권한을 갖는다. 법원은 법률을 적용할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주관적 의미가 법률인 어떤 것이 객관적으로도 그러한 의미를 가지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법률은 헌법에 합치되는 경우에만 그러한 객관적 의미를 가진다.」(409쪽)
만약 어떤 헌법이, 법률의 합헌성을 심사할 권한을 오직 입법자에게만 위임했다면, 입법기관이 법률을 제정했다는 사실 자체에 합헌성에 대한 긍정적 결정이 포함된다. 이때 입법기관은 최종심 법원처럼, 자신의 행위에 대해 ‘확정력’을 갖는 기관이 된다.
「입법기관은 자신의 재판에 대해 확정력을 부여받게 되는 최종심급법원과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입법을 규율하는 헌법규범의 의미가, 유효한 법률은 오로지 헌법에 의해 직접적으로 규정된 방법으로만 성립될 수 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다른 방법으로도, 즉 입법기관이 스스로 규정하는 방법으로도 유효한 법률이 성립할 수 있다는 데 있음을 뜻한다. 헌법은 헌법규범에 의해 직접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절차와는 다른 절차를 통해서도 일반적 법규범을 창조할 수 있는 권한과 헌법규범이 직접 규정하고 있는 내용과는 다른 내용도 그 일반적 규범에 제공할 수 있는 권한을 입법자에게 부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직접적 규율을 행하는 헌법규범들은 헌법이 제시하고 있는 두 가지 가능성 중의 하나일 뿐이다. 헌법이 제시하고 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은, 입법기관에 의해 법률로 제정된 규범이 헌법적 의미의 법률인지 여부에 대한 결정권을 헌법이 다른 기관이 아닌 입법자에게 위임하고 있다는 점이다. 입법을 규율하는 헌법규정들은 대안적 규정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헌법은 직접적 방법과 간접적 방법으로 입법을 규율하고 있으며, 입법기관은 양자 가운데서 선택할 수 있다. 헌법제정자나 입법자는 이러한 상황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또는 완벽하게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법률의 합헌성심사를 입법자 외의 어떤 기관에도 위임하고 있지 않는 헌법에 의해―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창조된 법상황에 대한 객관적 서술은 다른 결론에 이를 수 없다.」(410-411쪽)
그 반대의 경우, 즉 헌법이 특정 법원에 합헌성심사권을 부여한다면 구조는 달라진다. 개별 법원이 심사권을 가진 경우, 각 법원은 자신이 다루는 사건에 한해 법률 적용을 거부할 수 있지만 법률 자체를 폐지할 수는 없다. 반면 최고심급법원이 이 권한을 독점하면, 해당 법원은 모든 사안에 대해 법률을 폐지할 수 있다. 그러나 폐지 전까지 법률은 여전히 유효하다. ‘위헌법률’이란 결국 ‘폐지될 때까지 유효한 법률’인 것이다.
「비록 입법을 규율하는 직접적인 헌법규정에 합치되지 않는 법률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폐지되지 않는 한 그리고 헌법에 규정된 방식에 따라 폐지되지 않는 한, 마땅히 효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음을 뜻한다. 이른바 ‘위헌’ 법률은 합헌적 법률이다. 하지만 그것은 특별한 절차에 따라 폐지될 수 있는 법률이다.」(412쪽)
재판이 ‘위법하다’는 것도 무효라는 뜻이 아니라 단지 상급기관이 부여한 절차에 따라 ‘파기될 수 있는 암시’에 지나지 않는다. 즉, 위법성은 무효를 의미하지 않으며, 재판은 파기되기 전까지 유효하다. 재판은 무효가 아니라 ‘파기 가능’할 뿐이며, 그전까지는 완전한 효력을 갖는다.
「1심법원의 재판은 현행법상 이 문제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 법원에 의해 위법한 것으로 간주되더라도 무효는 아니며, 단지 법질서가 정한 일정한 절차에 따라 파기될 수 있을 뿐이다.」(404쪽)
상급심이 1심판결을 파기할 때조차, 파기의 이유는 ‘위법’이 아니라 법질서가 보장한 ‘다른 대안적 규범’의 선택이다. 여기서 법적 유효성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최종성’에 있다. 최종심급의 재판은 더 이상 불복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재판의 적법성 여부는 더 이상 문제될 수 없다. 최종심 판단의 유효성은 그 내용의 적합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법질서가 일반적 규범을 통해 그 기관에 부여한 ‘최종성 권한’에서 나오는 것이다.
「법원의 재판은―그것이 유효한 것인 한―위법한 것일 수 없다. 따라서 법원의 재판에 의해 창조된 개별적 법규범과 입법이나 관습에 의해 창조되고 법원에 의해 적용되어야 할 일반적 규범간의 충돌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불복가능하고 파기가능한 1심법원의 재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심법원의 재판을 파기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는 재판의 위법성, 즉 재판이 그에 의해 적용되어야 할 일반적 규범과 합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니라 법질서가 예정하고 있는 가능성, 즉 불복한 재판에서 실현되지 아니한 또 하나의 대안에 대해 이를 위해 규정된 절차에 따라 종국적 효력을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406쪽)
「법원에 의해 적용되어야 하는 일반적 규범, 즉 법원의 재판을 통해 창조되는 개별적 규범의 내용을 사전에 규정하고 있는 일반적 규범이 효력이 있다 하더라도, 최종심급법원에 의해 창조된 개별적 규범은 그 내용에 있어 그러한 일반적 규범과 합치되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효력을 가질 수 있다. … 법질서가 최종심급법원의 재판에 확정력을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법원의 재판내용을 사전에 규정하고 있는 일반적 규범뿐만 아니라 법원이 그에 의해 창조되는 개별적 규범의 내용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해 주는 일반적 규범도 효력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405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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