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순수법학

켈젠 순수법학 강독[12] - 법과 국가 上(공법-사법 이원론 비판)

斧針 2025. 12. 17. 13:48

한스 켈젠(변종필/최희수 역), 《순수법학》, 길안사, 1999 
Hans Kelsen, Reine Rechtslehre (1963)

<차 례>

[01] - 법과 자연 上

[02] - 법과 자연 下(사회질서, 법질서)

[03] - 법과 도덕

[04] - 법과 과학 上

[05] - 법과 과학 下

[06] - 법정태학 上(제재, 의무, 책임, 권리)

[07] - 법정태학 中(행위능력과 권리능력)

[08] - 법정태학 下(법률관계, 권리주체)

[09] - 법동태학 上 (근본규범)

[10] - 법동태학 中(법질서의 단계구조 1: 위계질서)

[11] - 법동태학 下(법질서의 단계구조 2: 규범충돌)

[12] - 법과 국가 上(공법-사법 이원론 비판)

[13] - 법과 국가 下(국가-법 이원론 비판)

[14] - 국가와 국제법

[15] - 해석

[16] - 부록 1(정의의 규범들)

[17] - 부록 2(자연법론)


 

36. ~ 37. 공법과 사법의 구별

공법과 사법의 구별은 근대 법학체계의 핵심적인 기준으로 기능해 왔다. 전통적으로 사법은 법적으로 동등한 주체들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영역으로, 공법은 상위 주체와 하위 주체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영역으로 이해되어 왔다. 특히 국가와 국민의 관계는 공법의 전형적 사례로 제시되며, 이때 국가는 국민에 대해 우월한 법적 지위를 갖는 주체로 상정된다.

「매우 특징적인 실례로서 공법과 사법의 구별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근대법학의 체계화에 기초가 되었으며, 앞에서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까지도 양자를 만족스럽게 구분하는 데 이르지는 못했다. 법률관계에 따른 구분은 널리 알려져 있는 구별방법이다. 이 견해는 사법을 법적으로 동등한 가치를 지닌 대등한 주체들 간의 관계로 보며, 공법을 상위의 주체와 하위의 주체간의 관계, 즉 일방이 타방에 비해 우월한 법적 가치를 가지는 두 주체간의 관계로 본다. 전형적인 공법관계는 국가와 국민간의 관계이다.」(422-423쪽)

이러한 구별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켈젠은 그것이 법의 본질을 설명하는 기준으로서 충분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공법과 사법의 차이는 관계의 외형이 아니라, 법질서 내부의 구조적 원리에서 다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주체가 다른 주체에 대해 우월한 지위를 갖는다고 할 때, 그 우월성의 실질적 의미는 무엇인가?

법규범은 일정한 인간행위와 제재로서의 강제행위를 결합시키는 규범으로서, 반대행위를 제재의 조건으로 삼아 특정 행위를 해야 할 법적 의무를 성립시킨다. 이는 그 창조과정에 수범자가 참여하는지 여부에 따라 자율적 규범과 타율적 규범의 두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다. 자율적 규범이란 의무를 부담하는 자가 그 창조에 참여하는 규범을, 타율적 규범이란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나아가 그 의사에 반하여 창조되는 규범을 말한다. 전자의 경우 의무가 그 참여자 자신의 의사에 따라 발생하는 반면, 후자의 경우 그렇지 않다.

「만약 우리가 법질서의 주된 구성부분을 이루고 있는 법규범, 즉 일정한 인간행위에 제재로서의 강제행위를 연계시키고 있는 그러한 법규범을 고려하고 나아가 일정한 행위와 반대되는 행위가 제재의 조건이 됨으로써 인간이 그 일정한 행위를 해야 할 법적 의무를 지게 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와 같이 법적 의무를 확정하는 법규범을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의무를 부담하는 인간이 그 창조과정에 참여하게 되는 법규범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참여없이 성립되는 법규범이다. 이러한 구별의 기초가 되는 원칙은 자기결정이라는 의미에서의 자유원칙이다. 규범에 복종하는 자(수범자)의 관점에서 결정적인 문제는 곧 의무부담이 그의 의사에 따른 것인가 아니면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심지어 그의 의사에 반하여 발생하는 것인가이다.」(421쪽)

켈젠은 이 구분에 초점을 맞추어, 여기서의 우월성이란 결국 특정 주체에게 일방적인 규범창조능력이 부여되어 있음을 뜻한다고 본다. 공법과 사법의 차이는 권력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규범이 어떤 방식으로 창조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국가에게 귀속되는 우월적 가치, 다시 말해 국민과의 관계에서 국가기관에 귀속되는 법적인 우월한 가치는, 법질서가 국가기관으로서의 자격을 가진 인간들, 특히 이들 가운데서 일정한 기관―이른바 행정당국―에게 일방적인 의사표시(명령)를 통해 국민에게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고 있다는 데 그 본질이 있다.」(423쪽)

먼저, i) 공법관계에서 국가기관은 일방적인 의사표시를 통해 국민에게 법적 의무를 부과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의무를 부담하는 국민은 해당 규범의 창조과정에 참여하지 않는다. , 공법적 규범창조는 본질적으로 독재적 성격을 지닌다. 이때 독재적이라는 것은 정치적 비난의 의미가 아니라, 단지 법형식상 수범자의 자기결정이 배제된다는 중립적 의미다.

다음으로, ii) 사법관계, 특히 계약은 당사자 상호 간의 의사 합치를 통해 개별적 규범을 창조하는 방식이며, 이때 의무를 부담하는 자는 바로 그 규범의 창조에 참여한다. 자기결정의 원리를 따른다는 점에서 민주적(이 역시 정치적 옹호의 의미가 아니다) 법창조형식이라 할 수 있으며, 전통적으로 사법영역이 사적 자치의 영역이라 불려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공법과 사법의 차이는 권력과 비권력의 차이가 아니라, 자기결정의 참여 여부라는 법형식의 차이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켈젠은 본다.

「공법관계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행정명령, 즉 행정기관에 의해 정립된 개별적 규범을 들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수범자는 명령에 따른 행위를 해야 할 법적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이에 비해 전형적인 사법관계로는 법률행위 특히 계약을 들 수 있으며, 계약에 의해 창조된 개별적 규범을 통해 체약당사자는 상호간에 일정한 행위를 해야 할 법적 의무를 부담한다. 이 경우에는 의무를 부담하는 주체가 의무를 지우는 규범의 창조에 참여하는 반면―계약에 의한 법창조의 본질은 바로 이 점에 있다―, 공법상의 행정명령의 경우에는 의무를 부담하는 주체가 의무를 지우는 규범의 창조에 참여할 수 없다. 이것은 독재적인 규범창조의 전형적 예인 반면, 사법적 계약은 민주적인 법창조방법이라 할 수 있다.」(423-424쪽)

 

38. 공법-사법 이원론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켈젠은 공법과 사법을 절대적으로 대립시키는 전통적 이원론이 단순한 이론적 구분을 넘어 강한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만약 공법과 사법을 두 개의 본질적으로 상이한 법영역으로 이해한다면, 국가의 행위는 법적 행위라기보다는 초법적 권력의 행사로 오해될 위험이 생긴다. 특히 행정명령과 같은 공법적 행위가 법의 지배를 덜 받는 영역처럼 인식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공법 영역에서 법원칙의 효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순수법학의 관점에서 보면, 행정명령이든 사적 계약이든 모두 법질서가 허용한 방식에 따라 이루어지는 법창조적 요건사실에 불과하다. 행정기관의 명령 역시 국가의사형성과정의 일부이며, 계약 또한 일반적 규범이 개별화되는 한 방식일 뿐이다. 따라서 두 경우 모두 법질서의 통일성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순수법학은 국가의 행위와 개인의 행위를 본질적으로 구별하지 않고, 모두를 법질서 내부의 현상으로 파악한다.

「만약 우리가 사법과 공법의 차이를 두 가지 법창조방법의 차이로 파악한다면, 이른바 국가의 공적 행위 속에서 사적 법률행위에서와 마찬가지의 법적 행위를 인정한다면, 무엇보다 법창조적 요건사실을 이루는 행위들은 두 경우 모두에 있어 이른바 국가의 의사형성과정의 연장에 불과하다는 점 그리고 행정당국의 명령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적 법률행위에서도 일반적 규범(전자의 경우에는 행정법, 후자의 경우에는 민법)의 개별화가 실행된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그렇다면 순수법학이, 언제나 이른바 국가의사라고 불리는 법질서 전체를 지향하는 보편주의적 관점으로부터, 행정당국의 명령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적 법률행위에서도 국가의 행위, 즉 법질서의 통일성에 귀착될 수 있는 법창조적 요건사실을 읽어내고 있음은 결코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424쪽)

공법과 사법의 대립을 절대화하는 이원론은, 공법영역에서는 법이 완전한 의미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낳는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헌법이나 행정법이 지배하는 영역에서는 엄격한 법적 구속 대신 국가이익이나 공공복리가 우선하며, 법률은 경우에 따라서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상대화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 결과 공법 영역에서는 법률의 적용이 사법 영역과 동일한 의미와 강도를 가지지 않는다는 사고가 정당화된다. 켈젠은 이러한 사고가 법이론적으로도, 실정법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입법기관, 통치기관, 행정기관이 법원의 활동에 비해 덜 법적으로 구속된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실정법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기관별로 허용된 재량의 범위가 다를 수 있을 뿐이다.

「만약 우리가 공법과 사법의 대립을 권력(또는 적어도 국가권력)과 법의 절대적 대립이라고 설명한다면, 마치 공법 특히―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헌법이나 행정법의 영역에서는 법원칙이, 이른바 법의 고유한 영역으로 간주되고 있는 사법의 영역에서와 같은 의미로 그리고 같은 정도로 효력을 갖지 못하는 듯한 인상을 낳게 된다. 따라서 전자의 경우에는 후자의 경우와는 달리 엄격한 법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이익이나 공공복리가 지배하게 될 것이며, 이러한 이익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공법영역에서 일반적 규범과 집행기관간의 관계는 사법영역에서와는 다른 관계가 될 것이다. 즉 후자의 경우처럼 구체적 사안에 대해 구속력 있는 법률적용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긴급사태시―이른바 국가긴급권의 경우―에는 법률의 테두리 내에서, 심지어 법률에 반해서도 국가목적을 자유롭게 실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비판적 고찰에 따른다면, 이러한 완전한 구별은 결코 실정법에 기초하고 있지 않음이 밝혀진다. 즉 이러한 구별을 통해, 입법기관이나 통치기관 또는 행정기관의 활동이 일반적으로 법원의 활동에 비해 법률에 의한 구속의 정도가 덜하다는 것, 법원의 경우 대개 전자의 기관들에 비해 실정법적으로 허용되는 자유재량의 정도가 미약하다는 것 그 이상을 말하려고 하는 한, 실정법상 근거없는 것이다.」(424-425쪽)

켈젠은 위와 같은 이원론은 입헌주의로부터 발전한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통치기관과 행정기관에게 법률로부터의 자유를 부여하는 기능을 수행해 왔으며, 그러한 사고는 입헌군주제뿐만 아니라 민주공화국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났음을 지적한다.

공법과 사법을 절대적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에서는 공법영역을 정치의 영역’, 사법영역을 비정치의 영역(순수한 법기술의 영역)으로 오인하기 쉬우나, 켈젠은 이러한 구분 역시 허구적이라고 본다. 사적 권리도 국가의사형성 과정에 참여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사적 계약과 사유재산권 역시 정치적 지배의 형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한편 공법과 사법의 대립을 절대화함으로써 마치 헌법이나 행정법과 같은 공법영역만이 정치적 지배의 영역이고 사법영역에서는 정치적 지배가 전적으로 배제되어 있는 듯한 인상도 낳게 된다. 하지만 주관적 권리의 영역에서는 ‘정치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완전한 대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나아가 사권 역시 우리가 흔히 정치적 권리라고 부르곤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에서 정치적 권리라는 점은 이미 앞에서 확인한 바 있다. 왜냐하면 양자는 비록 서로 방법은 달리하지만 이른바 국가의사형성, 즉 정치적 지배에 대한 참여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공적・정치적 법영역과 사적・비정치적 법영역을 원칙적으로 구별하는 것은 법률행위적 계약을 통해 창조된 ‘사’법이 입법이나 행정을 통해 창조된 공법 못지 않게 정치적 지배의 무대라는 인식을 방해하게 된다.」(426쪽)

사법은 개별적 법규범을 자기결정의 원리에 따라 창조하는 형식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특히 적합한 법형식이지만, 그렇다고 사법영역이 필연적으로 민주정과 결합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사법적 법형식은 민주적 헌법 아래에서도, 독재적 헌법 아래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법형식과 정치체제 사이에는 자동적 대응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일반적 법규범의 창조 단계에서는 민주적 형식이 채택되면서, 개별적 법규범의 창조 단계에서는 독재적 형식이 채택될 수 있다. 반대로 일반적 법규범이 독재적으로 창조되면서, 개별적 규범은 자기결정의 원리에 따라 창조될 수도 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자본주의 국가들은 물론 민주적 헌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사유재산제도와 자기결정의 원리에 입각한 개별적 법규범의 창조는 절대군주제하에서도 가능하며 사실상 절대군주제하에서도 존재해 왔다. 집단소유만을 허용하는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법질서 내에서 개별적 법규범의 창조는 공법상의 행정행위가 사법적 계약을 대체함으로써 독재적 성격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 역시 일반적 법규범의 창조에 있어서는 민주적 형식은 물론 독재적 형식과도 결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민주적 헌법은 물론 독재적 헌법과도 결합할 수 있는 것이다. 법의 단계구조에 대한 통찰의 결여로 인해, 동일한 법질서의 상이한 단계에서는 상이한 법창조형식이 적용될 수 있으며, 나아가 일반적 법규범의 민주적 창조가 개별적 법규범의 독재적 창조와, 그 반대로 일반적 법규범의 독재적 창조가 개별적 법규범의 민주적 창조와 결합될 수도 있다는 인식 역시 방해받아 왔다.」(426-427쪽)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