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 켈젠(변종필/최희수 역), 《순수법학》, 길안사, 1999
Hans Kelsen, Reine Rechtslehre (1963)
법(철)학 필독서임에도 오래 전 절판되어 시중에서 구할 수가 없으므로, 학생들과 연구자들을 위해 이 책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려 한다. 목차는 위 책의 편제에 따라 그대로 쓰고 본문을 해설하면서 중간중간 원문을 인용하기로 한다. 근시일 내에 위 책이 리파인되어 다시 출간되기를 희망한다.
<차 례>
[10] - 법동태학 中(법질서의 단계구조 1: 위계질서)
[11] - 법동태학 下(법질서의 단계구조 2: 규범충돌)
1. 순수성
‘순수법학’은 현실 속에서 만들어지고 적용되는 실정법만을 연구하는 이론이다. 켈젠은 법학이 정치나 도덕, 심리학 같은 다른 학문과 뒤섞이면 본연의 목적을 잃게 되며, 오직 ‘법’이라는 대상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선언으로 논의의 포문을 연다. 그는 종래의 법학이 윤리학이나 사회학의 영향 아래에서 지나치게 가치판단에 치우쳐 법의 고유한 성격을 흐릿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하면서, 다른 학문으로부터 독립된 ‘순수한 법 인식’을 추구해야만 법학이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학문으로 설 수 있으며, 이로써 그 본질과 한계가 명확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켈젠이 말하는 순수법학은 법이 어떤 가치나 이상을 실현해야 하는지를 따지기보다는, ‘법이 실제로 어떻게 존재하고 작동하는가’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론으로서의 순수법학은 오로지 그 대상만을 인식하고자 한다. 그것은 법이란 어떻게 존재해야 하며 어떻게 형성되어야 하는가의 물음이 아니라 법이란 무엇이며 또 어떻게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에 답하려고 시도한다. 그것은 법학이지만, 법정책은 아니다.」(23쪽)
「순수법학이 이들 분과들과 스스로를 구분하면서 법의 인식을 도모하려는 것은 상호 관련성을 무시하거나 부인하려는 이유 때문이 아니고, 법학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법학의 대상적 속성으로 인해 법학이 갖는 한계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방법혼합주의(Methodensynkretismus)를 피하고자 하기 때문이다.」(24쪽)
켈젠이 이렇게 ‘법학의 대상’을 순수하게 규정하려고 한 이유는, 결국 법을 하나의 ‘규범질서’로서 파악하기 위해서다. 순수법학이 분석하는 대상은 심리적 사실이나 도덕적 가치가 아니라, “무엇이 요구되고, 무엇이 금지되며, 위반 시 어떤 제재가 발생하는가”를 기술하는 ‘규범 그 자체’다. 그런데 이러한 규범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규범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즉 행위만을 겨냥하는지, 아니면 그 행위가 일어나는 조건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까지 포함하는지—를 우선 밝힐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켈젠은, 규범은 단순히 인간의 행위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가령 살인을 처벌하는 법은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행위’만이 아니라 그 결과인 죽음까지 포함해 규정한다. 즉, 법은 인간의 행동뿐 아니라 그 행동이 일어나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까지 규율해야 한다는 것이다.
2. 행위와 그 법적 의미
‘법이 자연현상인가, 사회현상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켈젠은, 법은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동시에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행위에 기초하기에, 단순히 어느 한 쪽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법과 관련된 모든 사건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i)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외부적 행위, 즉 우리가 눈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인간의 행동이다. 다른 하나는 ii) 그 행위가 가지는 법적 의미다.
가령 국회의원들이 손을 들어 투표하는 장면은 단순히 신체의 움직임일 뿐이지만, 법적으로는 ‘법률이 제정되는 행위’로 해석된다. 마찬가지로, 판사가 법복을 입고 법정에서 주문을 낭독하는 것은 단순한 ‘발언’이지만, 그 진정한 의미는 ‘판결의 선고’다. 또 다른 예로, 두 상인이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합의하면 그것은 단순한 ‘서신교환’이 아니라 ‘계약의 체결’로 해석된다. 그리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단순히 생리적 사건이 아니라, ‘살인’이라는 법적 의미를 갖게 된다. 즉,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행동은 자연적 사실에 불과하지만, 법은 그 위에 규범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법적 사실로 바꾼다. 켈젠은 바로 이 지점에서 ‘법은 단순한 현실이 아니라, 현실에 의미를 부여하는 체계’라고 본다.
3. 행위의 주관적 의미와 객관적 의미, 그리고 자기해석
우리가 어떤 행동을 볼 때, 단순히 눈에 보이는 그 행동만으로는 그 법적 의미를 알 수 없다. 가령 누군가가 서류에 서명을 하거나, 어떤 장소에서 말을 하는 모습을 피상적으로 관찰하는 것만으로는 그게 법적으로 계약인지, 판결인지, 선언인지를 바로 알 수 없다. 법적 의미는 ‘자연적 사실’이 아니라, 규범에 따라 부여되는 ‘해석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켈젠은 인간이 스스로 의도하고 의미를 담아 행동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우선, i)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려 한다. 이때 그 의미를 ‘주관적 의미’라고 부른다. 하지만, ii) 그 행위가 실제로 법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즉 ‘객관적 의미’가 무엇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가령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문서로 남기며 ‘이건 내 유언이야’라고 생각했더라도, 민법이 정한 절차나 형식을 지키지 않았다면 그것은 법적으로 유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또 비밀조직의 강령에 ‘우리는 재판을 통해 배신자에게 사형을 내린다’고 쓰여 있더라도, 국가의 법적 절차에 근거한 것이 아닌 이상 그것은 형사사법절차를 거친 사형집행이 아니라 단순한 살인일 뿐이다.
인간의 행위는 단순히 외부에서 관찰되는 몸짓이나 행동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켈젠은 이런 점에서 인간의 행위를 ‘자기해석적 행위’라고 부른다. 즉,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하면서 동시에 ‘이건 법적으로 이런 의미를 가진다’고 직접 선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스스로 선언함으로써 그 의미가 현실로 성립되는 경우의 대표적인 예가 입법과 계약이다. 가령 국회의원들이 ‘법률이 통과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보고가 아니라, 그 자체로 법률이 효력을 갖게 하는 행위다. 말로 선언하는 동시에 ‘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두 사람이 ‘이로써 합의가 성사됐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바로 그 순간 계약을 성립시키는 법적 행위이다.
이처럼 인간의 행위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자신의 의미를 스스로 드러내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법을 이해하는 일은 단순히 외부에서 해석을 덧붙이는 게 아니라, 이미 인간의 행위 속에 담긴 의미, 즉 행위가 스스로 말하고 있는 법적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법을 파악하는 인식은 때때로 소재에 대한 법적 자기해석을 미리 찾아내며, 이러한 해석은 법인식에 의해 수행되는 해석에 앞선다.」(27쪽)
4. 규범
a) 해석양식으로서의 규범
인간의 행위 그 자체는 단지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즉, 우리가 보는 인간의 행위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자연적인 사건일 뿐이며 그 자체로는 아무런 법적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 객관적 의미에 비추어 법적(또는 불법적) 행위가 되는 외부적 사실은 이제 모든 경우에 있어 시공 속에서 진행되는 감각적으로 지각 가능한 생기이기 때문에 자연의 일부이며 그 자체 인과법칙적으로 규정된다.」(27쪽)
그런 자연적 행위가 법적 행위로 바뀌는 것은 바로 행위에 ‘규범’이 결합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 단순한 사실을 넘어 법적 의미를 가지려면, 그 사건은 법규범의 내용과 관련되어야 한다. 그래서 켈젠은 ‘규범은 해석양식(Deutungsschema)으로 기능한다’고 말한다(27쪽). 규범이란 곧 인간의 행위를 법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특별한 해석의 틀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사실을 법적(또는 불법적) 행위로 만드는 것은 그 사실성 … 이 아니라 그 행위에 결합되어 있는 객관적 의미, 즉 그 행위가 갖는 의미이다.」(27쪽)
가령 살인과 사형집행의 차이는 감각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우리가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 이유는 형법 및 형사소송법과 대면함으로써 비로소 생겨난다(28쪽). 법이라는 규범이 그 사건에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상인 간의 편지 교환이 단순한 의사소통이 아니라 법적으로 ‘계약체결’이 되는 것도, 그것이 민법의 규정에 들어맞기 때문이다.
켈젠은 법이란 단순히 명령이나 규칙이 아니라, 현실에서 일어나는 행위를 법적으로 해석하게 만드는 인식의 틀이라고 설명한다. 사실이 법규범이 정한 요건과 일치할 때, 비로소 그 안에서 법적 의미가 발생한다는 것이다(28쪽).
b) 규범과 규범창조
법이란 결국 인간 행위를 규율하는 규범의 체계이며, 법을 인식한다는 것은 어떤 사실들이 법적 행위나 불법적 행위의 성격을 갖게 되는지를 그 규범들을 통해 파악하는 일이다. 켈젠은 이렇게 말한다.
「법인식은 법규범의 성격을 띠면서 일정한 사실들에 대해 법적(또는 불법적) 행위의 성격을 부여하는 규범들에게로 지향되어 있다.」(28쪽)
여기서 ‘규범(Norm)’이란, 단순히 어떤 사실을 설명하는 문장이 아니라 ‘어떤 것이 존재하거나 일어나야 한다는 것, 특히 인간이 일정한 방식으로 행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28쪽). 즉, 규범은 ‘무엇이 실제로 존재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진술이며, 특히 ‘인간이 일정한 방식으로 행위해야 한다’는 진술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켈젠은 규범이란 본질적으로 ‘타인의 행위를 향해 있는 인간행위의 의미’라고 설명하는데(28쪽), 다소 어렵게 들릴 수 있다. 풀어 설명하자면 이렇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하라’, ‘그렇게 해도 좋다’, ‘당신은 이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경우를 떠올려보자. 이러한 말들은 모두 상대방의 행위를 겨냥해 있다. 발언 그 자체는 물리적 행위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상대방에게 일정한 행위를 요구하거나, 혹은 허용하거나, 또는 권한을 부여하는 데 있다. 바로 이 타인의 행동을 지향하는 의미작용을 켈젠은 ‘규범’이라 부르는 것이다. 즉 ‘규범’이란, ‘인간이 다른 인간의 행위를 의도적으로 겨냥하여 요구하거나 허용하거나 권한을 부여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에 바로 그 행위가 갖는 의미’로 정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켈젠은 여기서 중요한 구별을 강조한다. 바로 ‘의사행위(Willensakt)’와 규범의 구분이다. 의사행위는 인간의 실제 행위이므로 존재(Sein)의 영역에 속하고, 그 의미인 규범은 당위(Sollen)의 영역에 속하는바(29쪽), 이때 당위의 언명은 존재의 언명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한다(30쪽). 다시 말해 누군가가 ‘이 일은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누군가 그렇게 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다른 차원에 속한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언명에서 어떤 것이 존재해야 한다는 언명이 나올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어떤 것이 존재해야 한다는 언명에서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언명이 나올 수 없다.」(30쪽)
이것이 저 유명한 ‘존재-당위 이원론’이다. 사실로부터 규범을 도출할 수 없고(‘is’에서 ‘ought’을 끌어낼 수 없음), 또 규범으로부터 사실을 도출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켈젠은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 영국 철학자 아서 프라이어(Arthur N. Prior)의 말을 인용한다(30쪽). 「완전히 비윤리적인 전제로부터 윤리적 결론을 연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이 구별이 존재와 당위가 서로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존재는 당위와 일치할 수 있고, 당위는 존재를 향해 ‘지향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현실의 행위가 동시에 규범에 부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당위 이원론이 존재와 당위가 서로 무관하게 병렬적인 관계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어떤 것은 그것이 존재해야 하는 방식대로 존재할 수 있다.」(30-31쪽)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규범 속에 ‘이렇게 해야 한다’고 정해진 행위(당위)는, 그와 일치하는 실제 행위(존재)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양식(mode)에 속한다는 것이다.
「존재적 행위는 규범 속에 당위화된 행위와 일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자의 경우에는 존재, 후자의 경우에는 당위라는 서로 다른 양식을 띠기 때문이다.」(32쪽)
켈젠은 규범이 반드시 언어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가령 교통순경이 팔을 흔들어 멈추라고 하거나, 신호등의 빨간불이 차량의 정지를 의미하는 것은 모두 ‘몸짓’이나 ‘기호’로 표현된 규범이다. 마찬가지로 ‘입 다물어!’라는 말도 명령을 담은 규범이고, ‘나는 네가 침묵할 것을 명령한다’는 명제적 문장 역시 언어적 형식으로 표현된 규범이다.
「그 의미가 규범인 행위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 몸짓을 통해서도 가능하고, 다른 상징을 통해서도 가능하다.」(32쪽)
가령 ‘너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단순한 진술이 아니라 명령(Gebot)이고, ‘그렇게 해도 좋다’는 허용(Erlauben)이며, ‘그렇게 해도 된다’ 혹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수권(Ermächtigen)이다. 규범은 명령할 뿐만 아니라 허용 또는 수권하기도 하는바, 이는 실로 다양한 표현방식 속에서 실현될 수 있다. 언뜻 존재사실에 관한 언명처럼 보일 수 있어도 그 실질은 당위규범인데, 가령 ‘절도는 자유형에 처한다’는 형법조항은 겉으로는 사실을 서술하는 문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절도를 자유형으로 처벌하라’는 명령 또는 수권의 의미를 가진다.
여기서 켈젠은 주관적 의미와 객관적 의미를 명확히 구분한다. 누군가가 명령이나 허용, 수권을 ‘의도했다’고 해서, 그것이 자동으로 법적 효력을 가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당위’란 그 의도에 있어 타인의 행위로 지향된 (인간의) 모든 의사행위가 갖는 주관적 의미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모든 행위가 객관적으로도 이러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33쪽)
주관적 당위는 개인이 타인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사표시이지만, 그것이 객관적 당위, 즉 실제로 효력을 가진 법규범이 되려면 상위 규범(헌법, 법률, 관습)에 의해 수권되어야 한다. 가령 강도와 세무공무원 모두 ‘돈을 내라’고 명령하지만, 여기서 세무공무원의 행위만이 규범정립행위인 것은 그것이 세법에 의해 수권되어 있기 때문이다(34쪽). 즉, 법적으로 정당한 근거(상위규범)가 있을 때만 명령은 효력을 지니며, 이로써 그것을 비로소 객관적 당위, 즉 (‘단순한 의사표시’를 넘어) ‘효력 있는 규범’이라 부를 수 있다. 즉, 법적 효력은 단순히 인간의 행위(존재)에서 생기는 게 아니라, 항상 상위규범(당위)으로부터 내려온다.
「객관적 의미에서 타인이 의사행위의 주관적 의미에 맞게 행위해야 한다는 규범의 효력은 그 타인의 일정한 행위로 지향된 의사행위라는 존재사실에서가 아니라 다시금 당위규범으로부터만 도출된다.」(35쪽)
이어서 켈젠은 관습(custom)이 규범을 창설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논의한다. 사람들이 오랜 시간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면, 처음에는 단순한 습관이었던 것이 점차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바뀌어 공동체적 의사가 되지만, 이런 관습이 효력 있는 규범이 되려면 반드시 ‘그 관습이 상위규범에 의해 규범창설요건으로 도입’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35쪽). 다시 말해 관습도 그 자체로는 주관적 당위이지만, 헌법 등 상위규범이 ‘관습을 법창설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고 인정할 때만 비로소 법규범으로 승격되며, 그때 비로소 실정적 규범이 된다(36쪽). 덧붙여 그는 모든 규범이 실제로 ‘정립된(입법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즉 「어떤 규범은 단지 의욕될 수는 없고, 의욕되지 않은 채 단순히 사유될 수 있다」고 한다(36쪽). 인간이 실제로 만들어놓지 않았더라도 ‘사유 속에서 전제된 규범’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뒤에서 설명하게 될 근본규범(Grundnorm)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c) 규범의 효력과 적용범위
우리는 보통 ‘존재한다’고 말할 때 의자나 돌처럼 물리적으로 눈앞에 놓여 있는 대상을 떠올린다. 그러나 법은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조항이 종이에 적혀 있다고 해서 그 글자 자체가 우리를 구속하는 것은 아니다. 종이는 단지 물리적 사물일 뿐이며, 법이 현실에서 구속력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사회적으로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당위로 받아들여질 때에만 성립한다.
「‘효력’이라는 말로써 우리는 규범의 특별한 존재를 지칭한다. … ‘효력’이라 부를 때, 이것은 그 규범이―자연적 사실의 존재와는 달리―존재하고 있는 특별한 방식을 표현하는 것이다.」(36쪽)
즉, 규범은 눈에 보이거나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규범이 가지는 의미—즉 인간의 행위에 대해 일정한 요구나 금지 또는 허용을 부여하는 당위적 구조—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법규범의 효력은 입법자의 심리적 의지나 물리적 행동에 의존하지 않는다. 입법자가 법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 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법규범이 후속의 법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당위적으로 인정될 때 비로소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입법자가 죽거나 사라졌다고 해서 그들이 만든 법이 함께 소멸하는 것이 아닌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규범은 의사행위―이것의 의미가 규범이다―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경우에 효력을 가질 수 있다.」(36쪽)
켈젠은 효력(Geltung)과 실효성(Wirksamkeit)을 명확히 구분한다.
「규범의 효력은 당위이고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규범의 효력은 규범이 사실적으로 적용되고 준수된다는 … 존재사실인 그 실효성과도 구분되어야 한다.」(37쪽)
‘효력’은 법이 유효한가의 문제, 즉 ‘이 규범이 법질서 내에서 살아 있는가?’의 문제다. 반면 ‘실효성’은 ‘실제로 사람들이 그 법을 따르고 있는가’의 문제다. 가령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지켜야 한다’는 법은 제정되는 순간부터 ‘효력’을 가지지만, 사람들이 신호를 지키지 않는다면 실효성은 떨어진다.
물론 실효성이 효력의 조건이 될 수는 있다. 만약 법이 완전히 무시된다면 더 이상 ‘살아 있는 법’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일정한 정도마저도 실효성이 없는 규범은 효력 있는 법규범으로 여겨지지 않는다.」(37쪽)
그러나 분명한 것은 효력과 실효성을 동일시해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가령 지켜지기 전에 이미 효력을 지니는 법이 많기 때문이다(이를테면 시행 직후 법원에 의해 적용되는 경우). 실효성이 완전히 사라지면 법은 효력을 상실하지만, 그렇다고 법의 존재 근거가 현실적 복종에 있는 것은 아니며, ‘지켜지는 법만이 좋은 법’이라는 생각은 ‘사실에서 당위를 끌어내는 오류’에 해당한다.
「법규범은 그것이 실효성을 갖기 이전에, 즉 그것이 준수되고 적용되기 이전에 이미 효력을 발생한다.」(38쪽)
「효력과 실효성은 일치한다는 명제를 추론하는 것은 … 논리적 오류이다. 이러한 논리적 오류를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부른다.」(39쪽, 주 8)
흥미롭게도 켈젠은 법이 실제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오히려 이상적이라고 말한다. 가령 ‘살인을 하면 처벌받는다’는 규범이 있고, 그 목적이 처벌이 아니라 행위 예방, 즉 사람들이 규범을 내면화하여 스스로 준수하게 만드는 데 있다면, 이 규범이 이상적으로 작동하는 상태는 살인이 전혀 일어나지 않아 처벌할 일이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법규범의 실효성은 … 제재를 피하려는 방향에서 행위가 이루어진다는 사실로도 이해될 수 있다. … 제재의 확정이 제재의 원인이 되는 행위(범죄행위)를 방지하려는(예방) 목적을 갖는 한, 그 규범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법규범이 이상적으로 효력을 발휘하는 경우이다.」(38쪽)
이어 켈젠은 규범이 작용하는 시간과 공간의 범위, 즉 시공적 효력에 관해 설명한다. 법은 ‘언제 어디서나’가 아니라, 항상 특정한 시간적 조건(언제부터 언제까지 적용되는가)과 공간적 조건(어디서 적용되는가) 속에서만 효력을 가진다.
「규범이 효력을 갖는다는 것은 언제나 그 규범이 일정한 시간과 공간에 한해 효력을 가짐을 의미한다.」(39쪽)
하지만 규범이 때로는 소급효를 가질 수도 있다. 과거에 이미 일어난 행위도 새로운 규범이 정립된 후 다시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혁명정부가 기존 정권의 법을 무효로 하거나, 과거에는 불법이었던 행위를 사후에 정당화하는 경우가 바로 그렇다. 켈젠은 이런 소급적 규범변경이 법의 시간적 효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본다.
「과거에 일어난 것에 관한 규범적 해석은 … 사후적으로 변경될 수 있다.」(41쪽)
나아가 켈젠은 규범의 인적 적용범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규범에 의해 파악되고 규범에 예속되는 것은 인간 자체가 아니라 언제나 인간의 일정한 행위일 뿐이다.」(41쪽)
즉, 법은 인간 자체를 규율하지 않는다. 사람이 무엇을 했는가, 어떤 방식으로 행위했는가만을 규율한다. 가령 국가는 그 국민의 ‘사상’이나 ‘감정’ 자체를 강제할 수 없지만, 그 사상이 표현된 ‘행위’(예: 발언, 행동)는 규율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그 영토에서 살고 있거나 국가시민인 인간의 행위’만을 규율할 수 있다(42쪽).
아울러 켈젠은 규범이 다루는 행위의 종류, 즉 경제·정치·종교 등과 같은 사항적(내용적) 적용범위에 관해서도 언급한다. 법질서는 통일된 하나의 체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사항적 적용범위에 따라 다양한 부분법질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규범이 담당하는 대상과 효력의 범위가 서로 다를 수 있다.
「규범화된 인간행위의 다양한 측면, 예컨대 경제행위, 종교행위, 정치행위 등에 주목할 때 우리는 이를 사항적 적용범위라고 말할 수 있다. … 예컨대 전체 법질서가―연방국가의 예에서와 같이―몇몇 부분법질서로 나뉘는 경우 사항적 적용범위라는 개념이 사용된다. 이러한 부분법질서의 적용범위는 그러한 질서의 적용대상과 관련하여 서로 구분된다.」(42쪽)
「그러나 전체법질서의 사항적 적용범위는 그 법질서가 본질상 그에 복종하는 사람들의 행위를 모든 측면에서 규율할 수 있는 한에서 언제나 무제한적이다.」(43쪽)
d) 적극적 규율과 소극적 규율
「어떤 법질서에 의해 규율된 인간의 행위는 그 질서에 의해 규정된 행위(작위)이거나 그러한 행위를 중지하는 행위(부작위)이다.」(43쪽)
법은 인간의 ‘행위’를 대상으로 한다. 그 행위는 무엇인가를 하는 것(작위)일 수도, 하지 않는 것(부작위)일 수도 있다. 가령 납세의 의무를 부과하는 조항은 작위를 요구하고, 폭력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은 부작위를 요구한다. 켈젠은 이처럼 법이 인간의 행위를 규율하는 두 가지 방식을 ‘적극적 방법’과 ‘소극적 방법’으로 구분한다.
먼저 적극적 규율이란, 인간의 행위를 법질서가 직접 규정하고 지시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에는 세 가지 대표적인 형태가 있는데, i) 명령(Befehl), ii) 수권(Ermächtigung), iii) 허용(Erlaubnis)이 그것이다.
i) 먼저, 법이 어떤 사람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작위) 혹은 ‘무엇을 해서는 안 된다’(부작위)고 요구하는 것은 명령(Befehl)의 형태를 띤 규율이다.
「적극적인 방법이라 함은 인간의 행위가 규범질서에 의해 규율되는 것을 말한다. 먼저, 어떤 인간에게 일정한 작위 또는 부작위가 요구될 때(부작위가 요구된다면 그 행위는 금지된 것이다)가 그러하다.」(43쪽)
가령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작위를 명령하는 것이고,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부작위를 명령하는 것이다. 이때 인간은 법이 명령하는 대로 행위하면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고, 반대로 행하지 않으면 의무를 위반하게 된다. 즉, 명령은 인간에게 ‘해야 한다’는 당위적 지시를 내리고, 그에 대한 행위 여부가 법 준수와 위반의 기준이 된다.
「규범이 명령하는 대로 행위함으로써 그는 그의 의무를 이행하고 그 규범을 준수한다. 그와 반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그는 규범 또는 의무를 ‘침해’한다.(43쪽)
ii) 두 번째는 수권(Ermächtigung)이다. 이는 어떤 개인이나 기관에게 특정 행위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규율이다. 가령 법은 국회에게는 입법권을, 법관에게는 재판권을, 일부 행정기관에는 인허가권을 부여한다. 이러한 경우 법은 단순히 ‘하지 마라’고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절차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정해준다.
「어떤 사람이 규범질서에 의해 수권을 받을 때에도 인간의 행위는 적극적으로 규율되는 것이다. 예컨대 일정한 행위에 의해 규범질서가 정해 놓은 일정한 결과를 야기하도록 수권을 받은 경우, 특히 질서가 그 자신의 창조를 규율하는 경우―규범을 창조하거나 규범의 창조에 같이 참여하도록 수권을 받은 경우―가 그러하다.」(43쪽)
iii) 세 번째는 허용(Erlaubnis)이다. 이는 어떤 행위가 일반적으로는 금지되어 있으되, 특정한 경우 예외적으로 가능하게 됨을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정당방위다. 일반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만, 자기나 타인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폭력은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즉, 정당방위는 폭력행사를 적극적으로 ‘허용’하는 규범에 의해 보호받는다.
「또는 어떤 인간에게 그 밖의 사람에게는 금지되어 있는 일정한 행위를 … 허용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규범에 의해 일방의 타방에 대한 폭력행사가 일반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정당방위의 예와 같이 개별적 규범에서 그러한 폭력행사를 허용하는 경우도 역시 적극적인 규율방법에 해당한다.」(43-44쪽)
이러한 규율들은 법관이나 행정기관 또는 개인의 구체적 행위로 ‘적용’된다. 즉, 법을 적용하는 주체는 판사나 관료에 한정되지 않는다.
「법관은 개별적 규범인 결정을 통해 일정한 구체적 사례에 법률을 적용한다. 법관의 결정에 의해 일정한 형벌을 집행하도록 수권받은 경우, 형집행기관은 법관의 결정이라는 구체적 규범을 적용한다. 정당방위를 행사함으로써 행위자는 폭력행사를 적극적으로 허용하는 규범을 적용한다.」(44쪽)
그렇다면 소극적 규율이란 무엇일까? 켈젠은 이렇게 말한다.
「규범질서를 통해 인간의 행위가 소극적으로 규율되는 경우는 인간의 행위가 규범질서에 의해 금지되어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금지규범의 적용범위를 제한하는 규범에 의해 적극적으로 허용되어 있지도 않은 경우, 따라서 그 행위가 소극적 의미에서만 허용되어 있는 경우이다.」(44쪽)
즉, 법이 그 행위를 명시적으로 ‘허용’하지는 않았지만, 금지하지도 않은 상태를 뜻한다. 가령 법이 어떤 행위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 행위는 소극적 의미에서 허용된 것이다.
적극적으로 허용되는 행위란, 특정 조건에서 법이 명시적으로 ‘해도 된다’고 승인한 행위다. 반면, 소극적으로 허용된 행위란 법이 단순히 금지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위다. 즉, 적극적 허용은 ‘허가된 자유’, 소극적 허용은 ‘남겨진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켈젠은 ‘허용’이란 단순히 금지의 부재가 아니라 명령의 반영이라고 설명한다.
「‘허용한다’(erlauben)는 말은 ‘권한을 가진다’(berechtigen)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 B에게는 일정한 방식으로 행위하는 것이 허용되어 있다는 명제는 A에게는 B가 일정한 방식으로 행위하는 것을 수인할 것이 요구된다는 명제에 다름 아니다.」(45쪽).
즉, 누군가에게 어떤 행위를 허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다른 누군가에게 그것을 받아들일 의무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가령 ‘A가 B의 발언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은 동시에 ‘B가 발언할 권한이 있다’는 허용을 의미한다. 또 ‘A는 B에게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명령은 동시에 ‘B가 임금을 받을 권한이 있다’는 허용을 의미한다.
「B의 행위가 ‘허용되어 있다’는 것은 단지 A의 행위가 명령되어 있다는 것의 반영일 뿐이다. 이러한 ‘허용’은 결코 ‘명령’과 다른 규범질서기능이 아니다.」(45쪽)
다시 말해 허용은 독립적인 규범 기능이라기보다는, 명령에 구조적으로 내포된 또 다른 얼굴, 곧 ‘명령의 상대적 결과’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e) 규범과 가치
켈젠은 법이 단순히 행위를 명령하거나 금지하는 체계가 아니라, 가치를 창출하는 질서라고 본다. 규범이 어떤 행위를 ‘해야 한다’고 정하면, 그 규범에 따라 인간의 실제 행위는 규범에 부합하거나 혹은 위반될 수 있다. 규범에 맞게 이루어진 행위는 그 자체로 긍정적 의미를, 반대로 규범을 어긴 행위는 부정적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규범이 효력을 지닌 한, 그 규범은 행위의 선악을 판단하는 가치의 기준이 된다.
「규범이 일정한 행위를(요구된다는 의미에서) 당위적인 것으로 확정하면, 사실적 행위는 그 규범에 합치될 수도 위반될 수도 있다. 규범에 따라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하는 경우에 그 행위는 규범에 합치되며, 규범에 따라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 그 행위는 규범합치적 행위와 반대되는 행위이기 때문에 규범에 모순된다.」(46쪽)
이렇듯 규범에 부합하는 행위는 적극적 가치, 즉 ‘선함’의 속성을 지닌다. 반대로 위반하는 행위는 소극적 가치, 즉 ‘악함’의 속성을 갖는다.
「사실행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따라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은 가치판단이며, 더욱이 적극적 가치판단(positives Werturteil)이다. 이것은 사실행위가 ‘선하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행위가 규범합치적 행위와 반대되는 행위인 까닭에 그것은 효력 있는 규범에 따라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단은 소극적 가치판단(negatives Werturteil)이다. 이것은 사실행위가 ‘악하다’, ‘나쁘다’는 것을 의미한다.」(46쪽)
‘가치판단’은 ‘현실판단(Wirklichkeitsurteil)’과 구별된다. 현실판단은 단순히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묘사하는 것이지만, 가치판단은 ‘그 행위가 규범에 비추어 어떤가’를 평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악의 판단은 단순한 사실기술이 아니라 규범적 해석의 산물이다.
「가치판단은 현실판단과 구분되어야 한다. 여기서 현실판단이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것으로 간주된 규범과 관계없이, 즉 결국 전제된 근본규범과 관계없이 어떤 것의 존재 여부 및 그 존재방법을 언급하는 판단이다.」(46쪽)
그렇다면 규범은 어디서 오는가? 만약 규범이 인간의 의사행위, 즉 인간이 스스로 만든 사회적 합의에서 비롯된다면, 그 규범이 창출하는 가치는 상대적이다. 인간이 정립한 규범은 다른 인간의 의사에 의해 언제든 대체될 수 있고, 그러면 가치도 바뀐다. 그래서 켈젠은 「전자에 따르면 선한 것이 후자에 따르면 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47쪽). 결국 인간이 만든 규범에는 절대적 가치는 없으며 단지 ‘특정 질서 안에서 인정되는 가치’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만약 규범이 초인간적 권위, 이를테면 신의 의지나 자연법에서 유래한다고 본다면, 그 규범은 반대규범의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고 절대적 가치의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 법이론은 초월적 권위를 전제하지 않는다. 학문은 인간이 정립한 규범과 그 규범에서 파생되는 상대적 가치만을 다룬다. 이 점에서 켈젠은 ‘법학의 가치론’은 종교적 절대가치가 아니라, 사회 속 규범질서가 현실의 행위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라고 한다.
「초인간적인 권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 정립된 규범들은 상대적 가치만을 지닌다. 즉 일정한 행위를 당위적인 것으로 설정하는 그러한 규범의 효력 및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대립되는 행위를 당위적인 것으로 설정하며 대립되는 가치를 형성하는 규범이 효력을 지닐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살이나 거짓말을 모든 경우에 금지하는 규범도 그것들을 경우에 따라 허용하거나 또는 곧바로 명령하는 규범과 마찬가지로 효력을 가질 수 있다. 이 경우 단지 일방만이 효력 있고 타방은 효력이 없는 것으로 볼 수 있음을 입증할 만한 합리적인 방법은 없다. 물론 우리는 둘 다 동시에 효력 있는 것으로 볼 수는 없지만, 일방 또는 타방의 규범을 효력 있는 것으로 볼 수는 있다. 그러나 가치를 형성하고 일정한 행위를 규정하는 규범이 초인간적인 권위, 예컨대 신 또는 신에 의해 창조된 자연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 규범은 그와 반대되는 행위를 규정하고 있는 규범의 효력가능성을 배제하려는 요청을 띠고 나타난다. 그러한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를 우리는 절대적이라 부른다. 그러나 학문적 가치론에서는 인간의 의사행위에 의해 정립된 규범 및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만이 고려의 대상이 될 뿐이다.」(47-48쪽)
켈젠은 가치판단과 규범 그 자체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규범은 이를테면 ‘참’이나 ‘거짓’으로 양분되지 않고 단지 효력이 있거나 없을 뿐이다. 반면 가치판단은 규범과 사실의 관계를 서술하므로 그에 대해 ‘참’, ‘거짓’의 판단이 가능하다.
「인간행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부합된다거나 위반된다는 언명을 가치판단이라 부를 경우, 그 가치판단은 가치를 형성하는 규범과 구분되어야 한다. 판단으로서의 가치판단은 효력 있는 질서의 규범과 관련되어 있는 까닭에 참 또는 거짓일 수 있다.」(49쪽)
어떤 윤리적 판단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그 판단이 어떤 규범을 전제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가령 기독교윤리에 따를 때 자신의 친구를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는 것은 선하다는 판단은, 효력 있는 기독교 윤리규범이 자신의 친구뿐만 아니라 원수도 사랑하라고 명령하는 경우에는 거짓이다(49쪽). 한편 현행법에 따르면 절도범에게 사형을 부과할 수 없기 때문에, ‘절도범에게 사형을 부과하는 것은 적법하다’는 판단도 거짓이 된다(49쪽). 반면 규범 자체는 진리명제가 아니라 명령명제다. 법률도 마찬가지고, 판결도 논리적으로는 판단이 아니라 규범이다.
「이른바 법관의 ‘판결’은, 그 판결을 통해 적용해야 하는 법률과 마찬가지로 그 말의 논리적 의미에서 판단이 아니라 규범이다. 더욱이 구체적 사례에 그 효력이 국한되어 있는 개별적 규범이며, ‘법률’이라고 불리는 일반적 규범과는 구별된다.」(50쪽)
켈젠은 가치의 두 형태를 구분한다. 먼저 객관적 가치는, 행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로부터 생겨난다. 반면 주관적 가치는, 그 행위를 바라보는 인간의 욕구나 의사와의 관계에서 생긴다. 쉽게 말해 전자는 ‘규범의 기준에 따라 선한지 악한지’의 판단이고, 후자는 ‘내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의 평가다.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규범에 의해 형성되는 가치와, 그러한 규범과의 관계를 본질로 삼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그 대상으로 지향된 개인이나 다수 인간의 욕구 또는 의사와의 관계를 그 본질로 하는 가치는 구분해야 한다.」(50쪽)
주관적 가치는 단순히 심리적 반응의 문제다. 어떤 것이 좋다거나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그 대상이 자신의 욕구에 부합하거나 반하는 데 대한 감정적 표현일 뿐이다. 따라서 그런 표현은 ‘가치판단’이 아니라 감정의 표현이다. 이런 관점에서 주관적 가치는 오직 그 감정을 느끼는 사람에게만 존재한다.
「어떤 것이 좋다거나 나쁘다는 누군가의 표현이 그가 그 어떤 것(또는 그 반대)을 원한다는 데 대한 직접적인 표현에 불과하다면, 그 표현은 가치판단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식의 기능이 아니라 의식 내의 감정적 요소들의 기능이기 때문이다.」(50쪽)
반면, 객관적 가치는 특정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규범이 존재하기만 하면 성립한다. 가령 살인을 금지하는 법규범이 존재하는 한, 살인은 ‘나쁘다’는 객관적 가치를 가진다. 그 사람이 스스로 그 규범을 원하든 아니든 상관없다.
「일정한 인간행위가 좋다는 판단이 그 행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부합됨을, 그리고 일정한 인간행위가 나쁘다는 판단이 그 행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위반됨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좋다’는 가치와 ‘나쁘다’는 반가치는 자신들의 행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의해 당위적인 것으로 규정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적용된다.」(50쪽)
따라서 주관적 가치는 인간의 욕구 강도에 따라 등급을 매길 수 있지만, 객관적 가치는 등급화가 불가능하다. 규범에 부합하면 선, 위반하면 악일 뿐 ‘조금 선하다’거나 ‘덜 악하다’는 식의 중간은 없다.
「객관적 가치를 등급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행위는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단지 합치되거나 합치되지 않거나 또는 단지 위반되거나 위반되지 않을 뿐이지, 다소간 합치되지 않거나 다소간 위반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51-52쪽)
이때 유의할 것은, ‘객관적 가치판단’과 ‘주관적 가치판단’이라는 말에서의 ‘객관적’, ‘주관적’은, 판단기능 자체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 판단이 언급하는 가치의 성격을 지칭하는 것이다. 인식기능으로서의 ‘판단’ 그 자체는 언제나 객관적 작용으로서 판단자의 감정과 무관해야 한다.
객관적 가치를 언급하는 가치판단을 객관적 가치판단으로, 주관적 가치를 언급하는 가치판단을 주관적 가치판단으로 부를 경우, 유념해야 할 것은 ‘객관적’, ‘주관적’이라는 빈사(賓辭)가 인식으로서의 판단기능이 아니라 언급된 가치에 관련된 것이라는 점이다. 인식기능으로서의 판단은 언제나 객관적이어야 한다(52-53쪽).
객관적 가치판단, 즉 어떤 행위가 규범에 합치하는가의 판단은, 그 규범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과는 무관하게 행해져야 한다. 가령 ‘기독교윤리 하에,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선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평가자가 원수에 대한 사랑을 승인하든 아니든, 언제나 ‘기독교윤리라는 규범’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살인에 대한 사형이 현행법하에 허용되는가(가치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도, 사형제에 대한 개인의 찬반 입장과는 무관하게 현행법 규범이 어떻게 정하고 있는가에 따라 판단된다.
「기독교윤리에 따를 때 자신의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선한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 및 그에 대한 가치판단은 그 물음에 답해야 하는 자, 따라서 가치판단을 내린 자가 원수사랑을 승인하는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질 수 있고 또 이루어져야 한다. 현행법에 따를 때 살인자에 대해 사형을 과해야 하는가, 살인에 대한 사형이 현행법의 의미에서 가치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그 물음에 답해야 하는 자가 사형을 승인하는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질 수 있고 또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그리고 그렇게 할 경우에만 그 가치판단은 객관적이다.」(53쪽)
여기서 켈젠은 한 가지 반론을 다룬다. ‘규범도 결국 인간의 행위나 관습이라는 사실에서 생겨나므로, 가치판단 역시 사실판단일 뿐’이라는 비판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켈젠은 ‘규범창설행위’와 ‘규범 그 자체의 의미’는 완전히 다른 층위에 있라고 반박한다. 명령행위나 관습 자체는 ‘사실’이지만, 그 사실이 표현하는 ‘규범의 의미내용’은 별개의 존재영역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의는 명령행위나 관습이라는 사실과 그 사실에 의해 창설되는 규범이 서로 상이한 것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하나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의미내용이다.」(54쪽)
따라서 우리는 어떤 행위가 규범에 합치하는지 판단할 때, 그 규범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몰라도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 법이나 도덕규범은 오래전에 형성되어 창설자의 의식에서는 사라졌을 수 있지만, 여전히 효력을 갖는 ‘의미내용’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오래 전에 정립이 되고 이미 오래 전에 사멸하고 잊혀진 인간들의 행위에 의해 창설된 규범들 그리고 특히 전세대의 관습에 의해 실현된 규범들이 논의의 대상으로 되고 그리하여 이러한 규범들이 그 행위규율의 대상인 사람들에게 단지 의미내용 그 이상으로 의식되는 경우가 그런 경우라는 점은 분명하다.」(54쪽)
마지막으로 켈젠은 목적과 가치의 관계, 즉 합목적성을 논한다. 어떤 행위가 어떤 목적과의 관계에서 ‘적절하다’라고 ‘부적절하다’라고 평가될 수 있다는 점에 비추어, 목적 또한 가치의 일종이라고 한다.
「어떤 대상(특히 인간행위)이 어떤 목적과 갖는 관계 역시 가치라고 부른다. 합목적성은 적극적 가치이고 목적위반성은 소극적 가치이다.」(55쪽)
여기서 ‘목적’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된다. 하나는 객관적 목적, 즉 규범에 의해 당위적인 것으로 정해진 목적이다. 다른 하나는 주관적 목적으로, 개인이 스스로 설정한 욕구나 희망이다. 목적에 합치하는 가치는 전자의 경우 객관적 가치, 후자의 경우 주관적 가치로 대응된다.
「객관적 목적이란 실현되어야 하는 목적, 다시 말해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것으로 간주된 규범에 의해 확정된 목적을 말한다. … 주관적 목적은 개별 인간이 스스로 정립한 것으로서 그가 실현하기를 원하는 목적을 말한다.」(55쪽)
어떤 행위가 합목적적이라는 판단이 가능하려면, 그 행위가 실제로 목적을 실현하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즉, A가 B라는 목적을 실현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A는 합목적적이다’라고 평가할 수 있다.
「‘A와 B 사이에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존재한다’. 즉 ‘A는 결과인 B의 원인이다’는 점을 인식했을 경우에만 우리는 (주관적 또는 객관적) 가치판단에 이를 수 있다. 즉 B가 목적으로서 희망되었거나 또는 규범 속에서 당위적인 것이라면, A는 합목적적이다.」(55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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