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 켈젠(변종필/최희수 역), 《순수법학》, 길안사, 1999
Hans Kelsen, Reine Rechtslehre (1963)
<차 례>
[10] - 법동태학 中(법질서의 단계구조 1: 위계질서)
[11] - 법동태학 下(법질서의 단계구조 2: 규범충돌)
7. 사회규범으로서의 도덕규범
법은 물리적 사물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를 규율하는 의미적·당위적 구조로서 자연세계와 다른 차원에 놓인다. 그런데 인간의 행동을 규율하는 규범이 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덕 역시 특정한 행위를 요구하거나 금지하는 방식으로 인간 상호작용을 조정한다. 이에 켈젠은 도덕규범이 법규범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며, 따라서 도덕을 연구하는 윤리학도 규범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법학과 병렬적인 위치에 놓인다고 설명한다.
「법규범 외에 인간의 상호행위를 규율하는 다른 사회규범들 … 은 도덕이라는 이름 아래 결집될 수 있으며, 도덕의 인식과 서술을 목적으로 하는 분과를 윤리학이라 부를 수 있다.」(109쪽)
물론, 도덕규범 중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와 같이 겉보기에는 사회적 관계 없이 성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규범도 있다. 예컨대 용기, 정조, 절제 같은 미덕은 타인의 존재와 무관해 보인다. 하지만 켈젠은 이러한 규범들 역시 사회구성원의 의식 속에서만 의미를 가지므로 본질적으로 사회적 성격을 지닌다고 본다. 완전히 고립된 개인에게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인간의 자기자신에 대한 의무 역시 사회적 의무이다. 고립상태에서 생활하는 개인에게 그 의무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111쪽)
규범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관해 켈젠은 논리실증주의자들과 입장을 달리한다. 가령 슐릭 같은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규범을 단지 ‘사실의 반영’으로 보아 윤리학을 사실학의 한 분과로 취급하려 했다. 규범을 단지 ‘사람들이 어떤 행위를 승인한다’는 심리적·사회적 사실의 기술로 파악했을 뿐, 독자적 의미 세계를 갖는 대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견해에 정면으로 반대하여 켈젠은, 규범을 정립하는 행위 자체는 사실일 수 있지만, 정립된 규범의 의미내용은 결코 사실이 아니라 당위이며, 이 때문에 법학과 윤리학은 자연과학과 본질적으로 다른 ‘규범과학’에 속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행위가 규범에 부합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행위인 ‘평가’는 가치를 형성하는 규범을 정립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존재사실이다”라는 명제는 정당하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에 의해 정립되고 평가행위를 통해 적용되는 규범은 결코 존재사실이 아니며 의미내용이다. 더욱이 규범정립행위가 갖는 ‘의미’이다. 규범의 의미는 당위이다. 윤리학과 법학은 규범과학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의미내용인 당위규범을 대상으로 하지, 인과관계에 놓인 존재행위를 대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109쪽)
즉 규범은 인간 심리나 사회행태에 관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행위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정립하는 당위적 구조, 다시 말해 사실세계와 구별되는 ‘의미의 세계’이다.
켈젠은 ‘정의’라는 가치가 도덕의 요청인 이상 도덕과 법의 관계 안에는 필연적으로 정의와 법의 관계 문제가 포함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법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순수법학의 핵심작업이 아니므로, 추후 부록에서 따로 다루겠다고 언급한다. 여기서 그는 법과 도덕, 법학과 윤리학을 혼동하면 법이론의 순수성이 훼손된다는 점을 주로 지적한다. 우선 켈젠은 일상언어에서 이루어지는 혼동을 언급한다. 흔히 법은 ‘법학’과, 도덕은 ‘윤리학’과 혼용되지만, 켈젠은 이들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법과 도덕은 일정한 권위에 따라 인간행위를 규율하고, 의무와 권리를 정하는 규범을 정립한다. 반면 법학과 윤리학은 그러한 규범을 ‘인식’하고 ‘기술’한다.
켈젠은 법학의 방법적 순수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 위협받는데, 하나는 i) 법학과 자연과학 간의 경계를 무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ii) 법학과 윤리학 간, 그리고 법과 도덕 간의 경계를 흐리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후자의 위험이 더 치명적이라고 본다. 법의 당위구조를 도덕적 가치를 실현하는 체계로 이해하면, 법은 더 이상 스스로의 논리적 구조를 가진 독자적 규범질서로 설명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학의 방법적 순수성은 법학을 자연과학과 구분시켜 주는 한계를 존중하지 않음으로 인해서뿐만 아니라―그보다 훨씬 더―법학을 분명하게 윤리학과 구분하지 않음으로 인해서도, 즉 법과 도덕을 분명히 구분하지 않음으로 인해서도 위험에 빠지게 된다.」
8. 내적 행위를 규율하는 도덕
법과 도덕을 구분할 때 흔히 ‘법은 외적 행위만 규율하고, 도덕은 인간의 내면·동기를 규율한다’고 설명하지만, 켈젠은 이 구분이 실제로는 거의 아무런 설명력을 갖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i) 우선, 도덕규범은 내면만 규율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 미덕이라고 불리는 용기, 정조, 절제 등은 일견 내면적 성향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구체적 외적 행위 속에서 드러난다. 용기는 위험 앞에서 실제로 물러서지 않는 행동 속에서 확인되며, 정조 또한 특정한 외적 의사결정에서 나타난다. 결국 도덕도 인간의 외적 행위를 규율하는 체계인 것이다. ii) 반대로 법이 외적 행위만 다루는 것도 아니다. 가령 살인죄는 ‘사람을 죽였다’는 외적 결과만으로는 부족하고 행위자의 내심상태, 즉 고의가 있어야 성립한다는 것은, 내적 상태 역시 법의 규율대상에 포함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요컨대,
「두 질서규범은 내적 행위와 외적 행위 모두를 규정한다.」(111쪽)
칸트는 어떠한 행위가 도덕적 가치를 가지려면 그것이 ‘의무에서 우러난 동기에서’ 행해진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켈젠은 이를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법과 도덕의 구별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도덕적 가치를 인정하려면 우선 행위 자체가 도덕규범에 합치해야 하므로, 동기의 판단은 이미 외적 행위규범을 전제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동기 중심의 도덕 개념만으로 도덕이 오직 내적 행위만 규율한다고 볼 수 없으며, 도덕과 법의 구별 역시 이 기준으로 해결될 수 없다.
「행위는 그 동기뿐만 아니라 행위 자체도 도덕규범에 합치될 경우에만 도덕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 도덕적 판단에서 동기는 동기지워진 행위와 분리될 수 없다. 이러한 이유에서라도 도덕개념은 너의 경향을 억제하라거나 너의 이기적 관심의 실현을 중지하라는 규범에 국한될 수 없다. … 도덕개념이 그러한 규범에 국한되어 있는 경우에만, 도덕은 내적 행위에만 관련되어 있는 반면 법은 외적 행위도 규정한다라는 식으로 도덕과 법을 구분할 수 있다.」(113쪽)
9. 강제의 성격 없는 실정질서로서의 도덕
도덕규범 역시 단순한 추상적 규범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관습이나 종교적 권위에 의해 ‘정립’될 수 있다. 사회구성원들이 지속적으로 승인하는 방식으로 실정적 질서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도덕은 법과 달리 규범위반에 대해 조직적인 집행기구를 갖지 않는다. 어떤 도덕적 요구가 위반되더라도, 개인에게 가해지는 것은 물리적 제재가 아니라 평가·비난·칭찬·존경과 같은 사회적 승인 또는 불승인이다. 즉, 도덕규범은 규범으로서 존재하지만, 그 집행이 제도적으로 조직되어 있지는 않다.
켈젠은 법과 도덕은 본질적으로 그것이 어떤 내용을 지니고 있는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효력을 갖는가’, 즉 규범위반이 어떻게 처리되는가에 따라 구별된다고 설명한다. 대수롭지 않은 명령이나 금지라도 사회적으로 조직화된 강제(형벌, 강제집행, 과징금 등)와 결부되면 법에 속하고, 반대로 아무리 강력한 요구라도 제도적 제재를 수반하지 않는다면 법이 아니라 도덕에 속한다는 것이다.
「법은 그것이 야기하고자 하는 행위와 반대되는 행위에 대해 사회적으로 조직화된 강제행위를 연계시키는 반면, 도덕은 어떠한 강제도 확정하지 않는 사회질서이다.」(115쪽)
10. 도덕의 일부로서의 법?
켈젠은 법과 도덕의 관계에 관한 질문은 두 가지 다른 물음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하나는 i) ‘법과 도덕이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사실적 물음(ist)이고, 다른 하나는 ii) ‘법과 도덕이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가’ 하는 당위적 물음(soll)이다.
첫 번째 물음(법과 도덕은 사실적으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법은 본질적으로 도덕적이며, 도덕에 반하는 규범을 명령하는 사회질서는 정당하지 않으므로 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켈젠은 법이 도덕적일 수는 있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도덕적이지 않은 질서라도 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116쪽).
‘법은 도덕의 일부이며 본질상 도덕적 가치체계에 속한다’는 주장은 곧 ‘도덕적으로 옳은 규범만이 법’이라는 견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이 타당하려면 그 전제로서 하나의 절대적 도덕체계가 존재해야 한다.
「법은 도덕의 영역 내에서 효력을 갖는다, 법질서는 도덕질서의 구성부분이다, 법은 도덕적이다(즉 그 본질상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 … 은 단지 스스로 효력을 갖는 하나의 절대적 도덕, 즉 하나의 절대적 도덕가치만이 존재한다는 것과 이러한 절대적 도덕에 합치되어 절대적 도덕가치를 형성하는 규범들만이 ‘법’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116쪽)
그러나 켈젠은 이러한 관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11. 도덕가치의 상대성
왜냐면 과학적 관점에서 절대적 도덕가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대·민족·계급·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도덕체계가 현실에서 실제로 작동하며, 서로 모순되는 경우도 흔하다. 법이 도덕과 일치해야 한다는 주장은 ‘모든 도덕체계에 공통되는 내용’을 전제로 해야 하는데, 그런 내용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상이한 시대에 따라 상이한 민족에게 있어 그리고 동일한 민족이라 하더라도 상이한 지위나 계급 또는 직업에 따라 매우 상이하고 서로 모순되는 도덕체계들이 효력을 갖는다는 점, 서로 다른 상황 아래에서 서로 다른 것이 선과 악, 정당함과 부당함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그 어떤 것도 상황과 무관하게 선이나 악, 정당함이나 부당함으로 간주될 수 없다는 점, 따라서 단지 상대적인 도덕가치들만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 상이한 도덕체계들의 내용에 공통되는 요소는 확인될 수 없다.」(117쪽)
가령 평화를 최고의 도덕적 가치로 본 사람들은 평화가 모든 도덕체계에 공통된다고 주장하지만, 켈젠은 ‘전쟁은 모든 것의 아버지이자 모든 것의 왕이다 … 투쟁의 법은 정당하다.’라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을 예로 들어, 폭력·투쟁·전쟁도 어떤 도덕체계에서는 ‘가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118쪽). 평화는 보편적이지 않으며 도덕체계는 극히 다양하다. 예수조차 「나는 이 땅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쟁을 주러 왔다」고 하여 ‘평화’와 ‘분쟁’을 함께 말한 바 있다(118쪽). 도덕적 가치의 일관성이나 절대성은 확립될 수 없는 이상, 법이 ‘도덕의 최소한’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모든 도덕체계의 공통분모는 그 내용이 아니라 단지 형식, 즉 ‘규범으로서 인간행위를 당위적으로 확정한다는 점’에 있을 뿐이다.
「가능한 모든 도덕체계에 공통되는 것은 그 형식이다. 즉 당위이며, 규범으로서의 성격이다.」(119쪽)
12. 법과 도덕의 분리
만약 법이 본질상 도덕적이라면, ‘법은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요청은 그 자체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법과 도덕은 반드시 구분되어야 한다. 법과 도덕을 구분하라는 요청은 전통적으로 ‘유일한 절대적 도덕’이라는 전제를 반박하려는 것이다. 절대도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법은 도덕에 종속될 수 없는 것이다.
「실정법질서의 효력은 그 어떤 도덕체계와의 관계에서 그것에 합치되느냐 합치되지 않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122쪽)
법은 선하거나 악할 수 있고,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상대적 도덕체계들 가운데 하나를 기준으로 한 판단일 뿐이며,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 따라서 ‘법은 도덕과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은 법이 가치와 무관하다는 뜻이 아니라, 법의 효력과 도덕적 평가는 서로 독립된 영역이라는 뜻이다.
「상대주의적 가치론이란―종종 오해되고 있듯이―어떠한 가치도, 특히 어떠한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절대적 가치나 절대적 정의도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상대적인 가치와 상대적인 정의만이 존재한다는 것, 우리가 규범정립행위를 통해 형성하고 우리의 가치판단의 기초로 삼는 가치들은 그와 대립되는 가치들의 존재가능성을 배제해야 한다는 요청을 띠고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122쪽)
도덕의 상대성 때문에, 같은 법도 어느 관점에서는 악하고, 다른 관점에서는 선할 수 있다. 법이 도덕적으로 악하다고 해서 법이 아니게 되는 것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도덕적으로 선하다고 해서 법이 되는 것도 아니다.
13. 도덕에 의한 법의 정당화
이처럼 도덕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하고, 어떤 도덕체계는 특정 집단의 가치와 일치하더라도 다른 집단의 도덕과는 충돌한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법과 도덕의 동일시는 곧 국가의 법질서를 비판 없이 정당화하는 위험한 태도로 이어진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로써 순수법학에서 전통법학의 테제인 ‘법은 본질상 도덕적이다’는 거부될 수밖에 없다. 특정 국가의 법질서를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단정하는 순간, 그것은 과학적 인식이 아니라 정치적 선전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유일한 도덕, 스스로 효력 있는 하나의 절대적 도덕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극단적으로 다른 아마 서로 모순되는 다수의 도덕체계들이 존재한다는 통찰, 실정법질서는 수범자 내의 일정한 집단이나 계층, 특히 지배적인 집단이나 계층의 도덕적 견해에는 아마도 대체적으로 합치될 수 있고 또 사실상 대체적으로도 합치되지만 동시에 다른 집단이나 계층의 도덕적 견해와는 모순된다는 통찰이다(124쪽).
이제 켈젠은 두 번째 물음(법과 도덕은 어떤 관계에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 답한다. 우선 켈젠은 도덕체계가 법을 정당화하거나 비판하는 논거로 활용될 수 있음을 일응 인정하는 전제하에 한 가지 예리한 지적을 한다. 도덕이 실정법을 ‘정당화’하려면, 도덕과 법이 충돌할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어떤 도덕체계가 ‘법은 언제나 지켜야 한다’고 규정한다면, 그 도덕체계는 법을 비판할 수 없고 정당화 기능도 상실하게 된다.
「어떤 도덕질서가 법적 권위에 의해 정립된 규범들을 어떤 경우에도 준수할 것을 규정하고 그리하여 애당초 그 자체와 실정법과의 모든 모순을 배제하고 있는 경우, 그 도덕질서는 실정법질서에 도덕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이를 정당화하려는 그 의도를 실현할 수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신에 의해 의욕되었다는 이유로 선하듯이 모든 실정법이 신에 의해 의욕되었다는 이유로 정당하다면, 그리고 존재하는 어떤 것도 악일 수 없듯이 어떠한 실정법도 부당할 수 없다면, 즉 법과 정의, 존재와 당위를 동일시한다면, 정의의 개념은 선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그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123쪽)
그러나 켈젠의 답은 여기서 그친다. 왜냐면 법학은 어디까지나 법규범을 ‘설명·기술하는 학문’일 뿐, 도덕적으로 승인하거나 비난하는 학문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법학은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법의 구조를 기술해야 하며, 법을 도덕적 기준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법학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이다.
「법학은 그 대상을 승인해야 하는 것도 불승인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다만 그것을 인식하고 서술해야 하기 때문이다.」(123쪽)
결국 두 물음에 대한 켈젠의 답은 이렇게 요약된다. i) 법은 도덕의 일부가 아니다. 그리고 ii) 도덕은 법을 정당화하거나 비판하는 기제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은 법학의 과제가 아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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