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순수법학

켈젠 순수법학 강독[9] - 법동태학 上 (근본규범)

斧針 2025. 12. 2. 15:59

한스 켈젠(변종필/최희수 역), 《순수법학》, 길안사, 1999 
Hans Kelsen, Reine Rechtslehre (1963)

<차 례>

[01] - 법과 자연 上

[02] - 법과 자연 下(사회질서, 법질서)

[03] - 법과 도덕

[04] - 법과 과학 上

[05] - 법과 과학 下

[06] - 법정태학 上(제재, 의무, 책임, 권리)

[07] - 법정태학 中(행위능력과 권리능력)

[08] - 법정태학 下(법률관계, 권리주체)

[09] - 법동태학 上 (근본규범)

[10] - 법동태학 中(법질서의 단계구조 1: 위계질서)

[11] - 법동태학 下(법질서의 단계구조 2: 규범충돌)

[12] - 법과 국가 上(공법-사법 이원론 비판)

[13] - 법과 국가 下(국가-법 이원론 비판)

[14] - 국가와 국제법

[15] - 해석

[16] - 부록 1(정의의 규범들)

[17] - 부록 2(자연법론)


 

34. 규범질서의 효력근거: 근본규범

 

a) 효력근거에 관한 물음의 의미

규범이 효력을 가진다는 말은 곧 그 규범이 인간을 구속한다는 의미, 다시 말해 그렇게 행해야 한다는 당위가 인정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 당위는 단순한 사실의 존재로부터 도출될 수 없다.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그것이 존재해야 한다는 결론은 나올 수 없고,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규범의 효력을 사실에 환원하려는 시도는 원리상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와 관련된 어떤 규범이 ‘효력이 있다’는 말은 그 규범이 구속력이 있다는 것, 즉 인간이 그 규범에 정해진 방식대로 행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규범이 효력을 갖는가, 다시 말해 왜 인간이 그렇게 행위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존재사실을 확정함으로써는 대답되지 않는다는 점, 즉 어떤 규범의 효력근거가 그러한 사실일 수 없음은 이미 앞에서 상세히 설명했다.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어떤 것이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 나올 수 없다.」(301쪽)

따라서 효력의 근거는 필연적으로 또 다른 규범의 존재를 전제할 수밖에 없다. 규범의 효력은 다시 상위규범에 의해 정당화되고, 이렇게 효력근거를 제공하는 규범이 하위규범에 대해서 상위규범이 된다. 신적 권위의 예는 이 구조를 잘 보여주는데, 가령 십계명의 효력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었다는 사실에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상위규범에서 나온다. 사실명제는 삼단논법에서 단지 사실적 조건일 뿐이고, 효력의 관점에서 진짜 결정적인 것은 상위의 당위명제라 할 수 있다.

「대전제에서 언급된 규범은 결론에서 언급된 규범의 효력근거이다. 소전제로서 기능하는 존재명제는 결론과의 관계에서 다만 사실적 조건(conditio sine qua non)일 뿐이다. 다시 말해 소전제에서 확정된 존재사실은 결론에서 언급된 규범의 효력근거가 아니다.」(302쪽)

어떤 존재가 실제로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은 그 명령을 곧바로 구속력 있는 규범으로 만들지 못한다. 그 명령을 규범으로 인정하도록 만드는 것은 그 권위자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또 다른 규범이다. 그런데 이처럼 효력근거를 따라 올라가는 과정이 무한히 계속될 수는 없다. 결국 어느 지점에서는 더 이상 상위규범에 근거지워지지 않고 단순히 전제되는최고규범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그 작업은 종국적이며 최고의 것으로 전제되어 있는 규범에서 끝날 수밖에 없다. 최고의 규범으로서 그것은 ‘전제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더 상위의 규범에서 권한의 근거를 구해야 하는 그 어떤 권위에 의해 정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의 효력은 더 이상 상위규범에서 나올 수 없고, 그 효력의 근거는 더 이상 문제대상이 될 수 없다. 최고의 것으로 전제되어 있는 그와 같은 규범을 이 책에서는 근본규범(Grundnorm)이라 부른다.」(303쪽)

근본규범은 실제로 입법행위나 관습에 의해 정립된 실정규범이 아니라, 법질서를 이해하기 위해 이론적으로 전제되는 규범이다. 하나의 동일한 근본규범에 효력을 의존하는 규범들의 집합이 바로 하나의 규범질서를 구성하며, 근본규범은 그 질서 전체의 공통된 효력근거로서, 규범들의 통일성을 보장하는 역할을 맡는다.

 

b) 정적 원리와 동적 원리

규범체계는 그 효력구조의 속성에 따라 두 가지 유형, 정적 규범체계동적 규범체계로 나뉘는바, 근본규범의 형식 또한 각 체계에 따라 차이를 보이게 된다.

정적 규범체계는 규범이 그 내용 때문에효력을 갖는다고 여겨지는 체계를 의미한다. 여기서는 하위규범의 내용이 상위규범의 내용 속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간주되며, 논리적·내용적 연역을 통해 상위규범에서 하위규범이 도출된다. 가령 이웃을 사랑하라는 규범에서 이웃에게 해를 가하지 말라’, ‘이웃을 죽이지 말라’, ‘곤경에 처한 이웃을 도와주라와 같은 개별 규범들이 내용상 연역될 수 있다고 보는 식이다. 이때 가장 상위의 규범(: ‘우주와 조화롭게 살아라’)을 도덕질서의 근본규범처럼 상정할 수 있고, 그 아래의 규범들은 모두 그 내용의 특수화로 이해된다.

「정적 유형의 질서에 속한 규범들은 그 내용 때문에 효력을 갖는다. … 그 규범들의 효력이 어떤 규범, 즉 질서의 구성부분인 제반 규범들의 내용(일반성에 기초한 개별성)을 내용상으로 포섭할 수 있는 규범으로 환원될 수 있음을 말한다.」(303-304쪽)

정적 체계에서 근본규범은 이성에 직접 주어져 있는 자명한 규범으로 이해된다. 칸트식 표현으로 말하자면 실천이성이 스스로 제시하는 규범인 것이다. 켈젠은 이러한 관념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이성의 역할은 인식이지 의욕이 아니므로, 규범(당위)은 이성에 직접 주어진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성에서 직접 나온 자명한 규범이라는 가정은 결국 초인적 권위(신의 의사)나 관습에 대한 신앙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때문에 켈젠은 정적 체계에 기초해서는 규범의 궁극적 효력근거를 설명할 수 없으며, 동적 원리의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직접적으로 해명 가능한 규범이란 존재할 수 없다. … 그러한 규범의 효력은 결국 전제된 규범에 의해서만 근거지워질 수 있다. … 이러한 규범들은 동적 규범체계(dynamisches Normensystem)를 이룬다.」(305쪽)

동적 규범체계란 규범의 효력이 그 내용 자체가 아니라 누가, 어떠한 절차에 따라 그것을 정립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체계다. 여기서 근본규범은 무엇이 옳은 내용인가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절차로 규범을 정립할 권한을 가지는가를 정한다. 규범의 내용이 아니라 규범창설의 방식과 권한을 규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근본규범은 이웃을 사랑하라가 아니라 신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관습에 따라 행위해야 한다’, ‘권위자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와 같은 형식을 띠게 된다. 이에 따르면, 우선 i) 근본규범이 누구의 명령/행위가 규범을 창출하는가를 정하고, 그에 따라 ii) 권한 있는 권위(부모, , 입법자, 관습 등)가 구체적 규범을 정립한다. 개별규범의 효력은 그 내용이 옳아서가 아니라, ‘바른 절차와 권한에 의해 정립되었기 때문에인정되는 것이다.

「켈젠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학교에 가라’고 명령하는 경우를 예로 든다. 아들이 ‘왜 학교에 가야 하느냐’고 물을 때, 아버지는 ‘내가 명령했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다. 다시 ‘왜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느냐’고 물을 때, 신이 부모에게 복종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왜 신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상위규범을 제시할 수 없고, 단지 ‘그 규범을 전제할 뿐’이라고 답하게 된다. 이 최종 규범이 동적 체계의 근본규범인 것이다.」(305-306쪽)
「근본규범은 효력근거만을 제공하지, 그 체계를 이루는 제반 규범들의 내용까지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 내용은 다만 근본규범에 의해 권한을 부여받은 권위 및 나아가 그 권위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또 다른 권위가 그 체계의 실정규범들을 정립하는 행위에 의해서만 규정될 수 있다.」(306쪽)

실제 현실의 많은 규범체계는 정적 원리와 동적 원리가 결합되어 있다. 가령 십계명 안에는 부모에게 순종하라처럼 권위를 설정하는 규범(동적 측면)우상을 두지 말라처럼 그 내용 자체가 일반규범인 명령(정적 측면)이 공존한다. 또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은 그 자체가 매우 일반적인 내용 규범이라서 여기서 수많은 개별 도덕규범들이 논리적으로 연역될 수 있지만(정적 측면), 동시에, ‘그리스도의 계명에 복종해야 한다는 근본규범이 전제되며, 이 점에서 권위에 대한 복종이라는 동적 원리가 작동한다. ‘신의 계명’, ‘그리스도의 계명로부터 하위 도덕규범을 뽑아내는 방식은 정적 원리에, ‘신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계명에 복종해야 한다는 근본규범의 효력을 설정하는 방식은 동적 원리에 입각한다. 이렇듯 내용연역(정적 측면)과 권위 위임(동적 측면)이 동시에 작동하는 것이 바로 규범체계다.

「전제된 근본규범이 동적 원리에 따라 오로지 규범창설적 권위에게만 권한을 부여하는 경우, 그리고 그 권위 또는 그로부터 수권받은 또 다른 권위가 또 다른 규범정립적 권위들에로의 위임을 가능하게 해 주는 그런 규범들을 정립할 뿐만 아니라 수범자들에게 일정한 행위를 명령하는 그러한 규범들―이들로부터는 논리적 조작을 통해 또 다른 규범들(일반성으로부터 나오는 개별성)을 연역할 수 있다―도 정립하는 경우에는 정적 원리와 동적 원리가 하나의 동일한 규범체계에 결합되어 있는 경우이다. 십계명에는 부모가 규범정립적 권위로 설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예컨대 너는 우상을 두지 말라는 규범과 같이, 규범정립적 행위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 내용으로부터 개별규범들을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게 해주는 일반적 규범들도 제정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에서는 수많은 개별적 도덕규범들이 논리적으로 도출될 수 있다. 신의 계명 및 그리스도의 계명으로부터 도출되는 규범들의 근거제시에는 정적 원리가 적용되고, 신의 명령에 복종하라는 근본규범에 의해 신의 명령의 효력근거를 제시할 때 그리고 그리스도의 계명에 복종하라는 근본규범에 의해 그리스도의 계명의 효력근거를 제시할 때에는 동적 원리가 적용된다.」(307쪽)

 

c) 법질서의 효력근거

켈젠은, 법질서는 그 구조상 정적 체계가 아니라 동적 체계에 속한다고 한다. 어떤 법규범이 효력을 갖는 이유는 그 내용이 정의롭거나 이성에 부합하기 때문이 아니라, 헌법과 상위규범이 규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정립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법질서로 표현되는 규범체계는 그 본질상 동적 성격을 갖는다. 어떤 법규범이 효력을 갖는 것은 그것이 일정한 내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즉 그 내용이 전제된 근본규범으로부터 논리적 추론의 방식으로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일정한 방식으로, 더욱이 종국적으로는 전제된 근본규범에 의해 정해진 방식대로 창설되었기 때문이다.」(308쪽)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원칙적으로 어떤 내용이든 이 될 수 있다. 법규범의 효력은 그 내용이 도덕규범과 모순되는지 여부에 의해 부정되지 않는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내용의 법도, 헌법과 상위 법규범에 의해 정해진 절차와 기관에 따라 정립되었다면 법으로서의 효력을 가진다. 근본규범은 무엇이 정당한 내용인가를 미리 정해 놓는 실체규범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규범이 만들어질 것인가를 정하는 절차적 규범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근본규범이란 법창조의 기본요건의 설정이며, 이런 의미에서 실정법적 의미의 헌법과 구분하여 법논리적 의미의 헌법이라 부를 수 있다. 그것은 절차, 즉 실정법창조절차의 출발점이다.(309쪽)

현행 법규범의 효력근거를 끝까지 추적하면 결국 역사상 최초의 헌법에 도달하게 된다. 이 최초의 헌법은 이전 헌법의 개정절차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니므로, 그 효력을 더 이상 상위의 실정규범에서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이 헌법의 효력은 단지 그것이 효력을 가진다고 전제된다는 가정으로서만 설명될 수 있다. 이 가정이 바로 해당 국가법질서의 근본규범인 것이다. 역사상 최초의 헌법과 그에 따라 정립된 규범들은 강제행위는 그 헌법과 그 아래 규범들이 정한 방식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는 근본규범을 전제로 했을 때에만 비로소 효력을 갖는바, 이때 헌법이 규정하는 대로 행위해야 한다는 명제가 그 국가법질서의 근본규범이 된다. 근본규범을 전제함으로써 개별 판결이나 입법행위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비로소 법규범의 창조 및 적용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강제행위를 확정하는 질서인 법질서의 근본규범이기 때문에 이 규범을 표현하는 명제(이는 우리의 논의대상인 국가법질서의 원칙이다)는 다음과 같다: ‘강제행위는 역사상 최초의 국가헌법 및 그 헌법에 따라 정립된 규범들이 확정하는 조건과 방식에 따라 정립되어야 한다.’ 이는 다시 ‘헌법이 규정하는 대로 행위해야 한다’는 명제로 간략히 표현할 수 있다.」(312쪽)

 

d) 선험적논리적 전제로서의 근본규범

◎ 사유상의 규범

근본규범은 i) 직접적으로는 사실상 정립되어 있고 관습이나 규정에 의해 창조된, 대체로 실효성을 가진 특정 헌법과 연결되고, ii) 간접적으로는 그 헌법에 따라 창설된, 실효성을 가진 강제질서 전체와 연결된다. 근본규범은 바로 헌법과, 그 헌법을 기초로 한 법질서의 효력을 근거짓는 규범이다

「근본규범의 본질을 인식하려면 우리는 무엇보다 근본규범이 직접적으로는 사실상 정립되고 관습이나 규정에 의해 창조된 대체적으로 실효성을 갖는 일정한 헌법과 관련되어 있으며, 간접적으로는 이러한 헌법에 따라 창설된 대체적으로 실효성을 갖는 강제질서와 관련되어 있음을, 그리하여 근본규범이 헌법의 효력과 그 헌법에 따라 창설된 강제질서의 효력을 근거지운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312쪽)

이 근본규범은 마음대로 선택되는 규범이 아니다. 어떤 사회적 사실들을 법적 질서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 사실들의 주관적 의미(사람들이 그렇게 의도하고 행위했다는 의미)를 객관적 의미인 효력 있는 법규범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해 주는 하나의 근본규범이 필연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가 전적으로 특정된 헌법에 관련된 그러한 근본규범을 전제로 할 경우에만, 즉 우리가 전적으로 특정된 그러한 헌법에 따라 행위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할 경우에만, 우리는 헌법제정행위 및 합헌적으로 정립된 행위의 주관적 의미를 그 객관적 의미, 즉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법규범들로 해석하고 이러한 규범들에 의해 형성된 관계를 법적 관계로 해석할 수 있다.」(313쪽)

여기서 헌법내용의 정당성·도덕성·평화 보장 여부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근본규범의 전제는 이 법질서가 정의로운가?’, ‘이 질서가 실질적 평화를 보장하는가?’와 같은 실천적 가치판단과 무관하다. 순수법학의 관점에서 근본규범은 어디까지나 실정법질서를 으로 인식하기 위한 전제일 뿐이다.

「이러한 헌법 및 그에 근거하여 창설된 국가법질서가 어떤 내용을 갖는지, 이러한 질서가 정당한지 여부는 여기서 문제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법질서가 그것에 의해 형성된 공동체 내에서 사실상 상대적인 평화상태를 보장해 주는지 여부도 중요하지 않다. 근본규범의 전제에서는 실정법을 초월하는 어떤 가치도 인정되지 않는다.」(313쪽)

칸트가 자연과학이 형성한 자연법칙들을 통해 감각자료가 경험으로 인식될 수 있으려면 어떤 선험적 조건이 필요한가를 물었듯, 순수법학은 신이나 자연과 같은 초월적 권위를 전제하지 않고도, 일정한 사실들의 주관적 의미를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법규범들의 체계로 해석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묻는다.

「헌법제정이라는 요건사실 및 그 헌법에 따라 정립된 요건사실들의 주관적 의미를 그 객관적 의미, 즉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법규범으로 해석하는 것이 근본규범을 전제함으로써만 가능하다면, 법학을 통해 설명되는 근본규범은―칸트의 인식론의 개념을 유비적으로 적용해 볼 수 있다면―그와 같은 해석을 가능케 하는 선험적・논리적 조건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러므로 칸트가 모든 형이상학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연과학에 의해 형성된 자연법칙 안에서 우리의 감각에 주어진 사실에 관한 해석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묻듯이, 순수법학은 신이나 자연과 같은 초법적인 권위에 근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정한 사실들의 주관적 의미를 법명제들을 통해 서술할 수 있는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법규범들의 체계로 해석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묻는다.」(313쪽)

규범의 효력을 정당화하는 아래의 삼단논법 구조에서,

대전제: ‘우리는 X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소전제: ‘Xφ를 명령했다.’
결론: ‘우리는 φ를 해야 한다.’

대전제에 등장하는 규범이 바로 하위규범의 효력을 근거짓는 상위규범이다. 이 상위규범이 더 이상 다른 규범에서 그 효력을 도출할 수 없고, 또한 어떤 개인의 의사행위(헌법제정자·신 등)로 정립된 것으로도 설명될 수 없을 때, 그 규범은 근본규범으로 선험적으로 전제될 수밖에 없다. 근본규범은 즉, 실정법질서(대체로 실효성을 가진 강제질서)를 인간의 의사행위에 의해 정립된 규범들의 객관적 효력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해 주는 ‘선험적인 논리적 조건인 것이다.

「근거제시를 수행하는 명제인 대전제에서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것으로 간주된 규범은 그 객관적 효력이 더 이상 의문시되지 않을 경우에 근본규범이 된다. 그 효력이 더 이상 삼단논법을 통해 근거지워질 수 없을 경우에 그 규범은 의문시되지 않는다.」(314쪽)

신학적 윤리에서, ‘신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규범은 더 이상 상위의 규범이나 사실로 그 효력을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에 근본규범 역할을 한다. 이 규범 자체가 신의 또 다른 명령에서 나온 규범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신의 명령 전체의 효력근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법실증주의는 역사상 최초의 헌법제정자위에 다시 어떤 상위 권위를 상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 헌법에 따라 행위해야 한다는 규범만이 법질서 효력의 최종 근거로서 전제된다. 이 근본규범은 사유상의 규범(gedachte Norm)으로, 은 어떤 개인의 의사행위로 정립된 것이 아니라 법적 해석 및 인식행위 속에서 전제되는 규범일 뿐이다.

앞서 켈젠은 헌정국가의 근본규범은 강제행위는 그 헌법과 그 아래 규범들이 정한 방식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를 그 내용으로 한다고 파악한 바 있다. 그런데 그보다 앞서 켈젠은, 규범은 상위규범에 따라 사실적으로 정립되고 대체적으로 실효성이 있을 때 효력이 있다고도 말했었다. 결국 근본규범의 내용은 강제행위는 사실적으로 정립되고 대체적으로 실효성 있는 헌법과, 그 헌법에 따라 사실적으로 제정되고 대체적으로 실효성 있는 규범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 된다.

책 초반에 켈젠은 법학의 기능은 다르며, 규범을 정립하는 것은 법 그 자체이지 법학이 아니라고 말했었다. 비록 근본규범의 전제는 법이 아니라 법학의 사유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학이 규범정립적 권위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이는 법학을 전개하는 주체에 의해 의욕된 규범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유상의 규범, 선험적으로 전제된 규범이기 때문이다.

「이 근본규범은 결코 의욕된 규범일 수 없고 따라서 법학(즉 법학을 전개하는 주체)에 의해 의욕된 규범일 수도 없기 때문에 그리고 이 규범(정확하게는, 규범의 언명)은 실정법규범들의 객관적 효력을 근거짓는 데 불가피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다만 사유상의 규범, 더욱이 대체적으로 실효성을 갖는 강제질서를 효력 있는 법규범들의 체계로 해석할 경우에 그 전제로서 사유되는 규범일 수밖에 없다. 근본규범은 결코 의욕된 규범이 아니며 법학에 의해 의욕된 규범도 아니며 다만 사유상의 규범이기 때문에 법학은 근본규범을 확정했다고 해서 스스로를 결코 규범정립적인 권위로 내세울 수 없다.」(316-318쪽)

켈젠은 근본규범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이를 사유상의 규범으로 보지 않고 실정헌법 안에서 찾으려는 입장들에 대해 반론을 전개한다.

i) 엥기쉬는 근본규범을 실정헌법 속 규칙으로 파악하려 했다. 법을 만들 권한이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있는가를 정하는 실정 헌법규칙이 바로 근본규범이라는 것이다.

「엥기쉬(Karl Engisch)는 물론 원칙적으로 근본규범이론을 인정하지만 실정헌법 속에서 근본규범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근본규범을, “우리가 형식적인 것에 사로잡혀 있기를 원치 않는다면 법창조의 임무를 띤 최고의 심급을 정당화하는 규칙, 즉 예컨대 국민대표제를 취하는 의회국가와 오늘날의 독일(1935년)에서와 같이 제국수상과 총통에게 모든 타인을 대표하는 최고의 법제정권능을 부여하는 규칙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명백히 보았듯이, 우리는 ‘근본규범’을 완전히 내용적인 것으로 본다. 그 이유는 첫째 구체적인 헌법은 단순히 법창조에 관한 규칙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함할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 헌법은, 비록 우리가 헌법을 법창조와 관련되어 있는 부분에서만 살펴본다 할지라도, 종종 이미 사전에―예컨대 혁명을 통해 공포되고 승인된―근본규범 속에 암시적으로 내포되어 있었던 것을 보다 더 상세하게 전개하고 구체화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며, 나아가 헌법은 법창조의 시점에도―곧 근본규범에 기초하여―근본규범의 존립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개별적인 개정과정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엥기쉬는 근본규범을 헌법과 ‘구분’하지만, 근본규범을 ‘헌법’이라 불리는 문서, 즉 형식적 의미의 헌법과 동일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만 그러할 뿐이다. 그러나 그의 ‘근본규범’은 실정법규범, 따라서 실질적 의미의 헌법이라 불리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는 근본규범에 대한 ‘법논리적’ 해석을 거부한다.」(316쪽)

이에 대해 켈젠은, 이처럼 근본규범을 실정헌법의 한 내용으로 파악하는 관점은 그렇다면 실정헌법의 효력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대해 답하지 못한다고 한다. 애당초 근본규범을 전제하는 이유는 역사상 최초의 헌법의 효력근거를 찾기 위함이라는 점을 엥기쉬는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질적 의미의) 헌법이 법창조절차의 실정법적 토대가 된다는 점―그리고 이것은 엥기쉬가 주목하고 있는 ‘근본규범’을 의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은 자명하며 이를 확인하기 위해 굳이 근본규범에 관한 특별한 이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순수법학이 근본규범이론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실정헌법의 효력근거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제기될 경우에 비로소 발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효력근거가 되는 규범은 실정규범(즉 정립된 규범)일 수 없고 다만 전제된 규범일 수 있을 뿐이다.」(316-317쪽)

ii) 타멜로(Ilmar Tammelo)근본규범이 실정성이 없다면 그 근본규범에 근거한 법규범 역시 실정성을 지닐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켈젠은, ‘실정성(Positivität)’은 어디까지나 사실적 정립성과 실효성에서 나오는 것일 뿐, 근본규범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근본규범은 실정성을 만들어내는 장치가 아니라, 실효성 있는 강제질서를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질서로 해석할 수 있게 하는 논리적 조건으로만 작동한다는 것이다.

「타멜로(Ilmar Tammelo) 역시 ‘근본규범을 단순히 법논리적 또는 법인식론적 소여로만 보고 동시에 실정법규범으로 보지 않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근본규범의 실정법규범으로서의 속성을 부인하면 근본규범에 바탕을 둔 실정법규범들과 규범체계들에 대해서도 실정성이 부여되지 않는다는 논리적 결론에 이른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적절치 않다. 왜냐면 법질서의 실정성(Positivität)은 근본규범에 근거하고 있는 것도, 그로부터 도출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 실정성의 본질은 규범의 사실적 정립성(tatsächliche Gesetztheit)과 실효성(Wirksamkeit)에 있다.」(317쪽).

iii) 패터슨(Edwin W. Patterson)은 다소 다른 차원의 문제를 제기한다. 헌법이 효력 있는 것은 결국 정치적 권위와 지지, 현실의 권력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근본규범이론보다는 오스틴이나 벤담이 제시한 복종의 습성이론이 더 그럴듯하다고까지 한다. 이에 대해 켈젠은, 복종은 효력의 근거가 아니라 실효성의 원인이 될 수 있을 뿐이라고 반론한다. 근본규범은 법규범의 효력에 관한 것이고, 복종은 실효성의 조건에 관한 것으로서 서로 논점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패터슨(Edwin W. Patterson)은 근본규범이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헌법이 효력 있고 그 헌법에 근거해 창설된 규범들이 효력 있다는 전제는 궁극적으로 헌법을 창조한 관료들 및 현재 그 헌법을 주장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권위에 달려 있다. 이는 헌법 또는 그 헌법에 따라 창조된 규범들의 외부에 놓인 그 무엇이다.” … 순수법학이 강조하듯이, 실효성은 효력의 조건이지 근거가 아니다. 그는 말한다. “대체로, 문서상의 권력구상을 실제적인 권력구상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이냐를 간단히 설명해야 한다면, 오스틴과 벤담의 ‘복종의 습성’(habit of obedience)이 근본규범보다 더 그럴 듯해 보인다.” 이 점은 패터슨이 주목하고 있는 물음이 법질서의 실효성의 원인에 관한 물음이며 그와는 별개의 물음, 즉 효력의 근거에 관한 물음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그의 반론은 그 목표에서 빗나가 있다.

한편 패터슨은 켈젠의 이론이 법창조에서 무엇을 목표로 삼을지에 관해 전혀 말하고 있지 않다는, 즉 법가치론을 결여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한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야말로 근본규범이론, 나아가 순수법학이 지향하는 바라고 할 수 있다. 근본규범은 내용을 정하지 않는다. 내용은 어디까지나 실정법에서만 오는 것이다. 당초 켈젠은 패터슨이 말하는 유의 법가치론은 법학의 과제가 아니라고 밝혔었다.

「패터슨은 (칸트의 인식론적 의미에서의) 선험적・논리적 전제로서의 근본규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의를 제기한다. “켈젠의 이론은 법률가나 관료들이 새로운 법을 창조할 경우에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지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법가치론(legal axiology)을 결하고 있다.” 그러나 … 자연현실의 인식을 위한 선험논리적 조건들이 어떤 식으로도 자연법칙의 내용을 규정할 수 없듯이, 근본규범 역시 법규범 또는 법규범을 기술하는 법명제의 내용을 규정할 수 없다. 자연법칙의 내용을 오로지 경험으로부터만 얻을 수 있듯이, 우리는 법규의 내용을 오로지 실정법으로부터만 얻을 수 있다. 근본규범은 실정법에 대해 일정한 내용을 규정하지 못한다. 이는 마치 경험의 선험적・논리적 조건들이 경험에 대해 내용을 규정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 점에 바로 칸트의 선험논리와 그가 거부한 형이상학적 사변, 순수법학과 형이상학적 법이론(예: 자연법론)간의 차이점이 놓여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법을 다룰 때, 사실은 두 가지 전혀 다른 방식의 사고를 섞어서 사용하고 있다. 하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설명하는 사실의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이 유효한가를 묻는 규범의 관점이다. 예컨대 어떤 집단이 헌법을 제정했고, 그 헌법에 따라 국회가 법률을 만들고, 법원이 판결을 내린다는 것은 사실의 차원에서는 단순한 인간행위의 연쇄에 불과하다. 그러나 법률가는 이런 사실들을 그저 인과관계로 연결된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헌법은 효력이 있고, 그 헌법에 따라 제정된 법률은 지켜져야 하며, 법원의 판결은 법적으로 구속력을 가진다고 이해한다. 다시 말해 법률가는 사실을 사실로만 보지 않고, 그 사실의 주관적 의미를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으로 해석한다.

법원의 판결이 단순한 종이가 아닌 구속력 있는 규범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이를 뒷받침하는 법률이 있기 떄문이다. 그리고 국회가 입법한 법률의 효력은 헌법이 뒷받침한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렇다면 헌법은 왜 효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국민의 의사, 정의, 도덕, 혁명, 정치적 정당성 등을 그 근거로 제시하지만, 켈젠에게 이러한 답변들은 모두 법 바깥의 이야기이다. 그것들은 법이 왜 정당한가에 대한 답은 될 수 있어도 법이 왜 규범으로서 효력을 갖는가에 대한 답은 아니다. 법률가들은 헌법이 효력이 있다는 점을 어떤 상위의 규범으로부터 증명하거나 정당화하지 않고, 단지 그것이 효력 있음을 전제로 삼은 채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고 있다. 이 전제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근본규범이다. 즉 근본규범이론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새로운 법학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가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던 작업에 숨겨져 있던 논리적 구조를 끄집어내 의식화한 것에 다름 아니다. 법의 효력을 신이나 자연법, 도덕적 질서 같은 초법적 기준에서 찾지 않고, 법을 오로지 실정법으로 파악하는 경우, 그 출발점으로서 이 헌법은 효력이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법률가들은 대부분 이 명제를 자각하지 못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작업은 이 명제를 전제로 했을 때에만 가능하다.

「순수법학은 근본규범이론으로써 결코 새로운 법학방법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다. 순수법학은 모든 법률가들이 위에서 지칭한 사실들을 인과법칙적으로 규정된 사실들로 파악하지 않고 그 주관적 의미를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들로, 즉 규범적 법질서로 해석할 경우에 그들이 행하고 있는 바, 그것도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행하고 있는 바를 의식할 따름이다. 그리고 실제로 법률가들은 법적 권위보다 상위에 있는 권위에 의해 정립된 초법적인 상위의 규범에서 이러한 질서의 효력을 찾지 않고 법을 오로지 실정법으로 파악한다. 근본규범이론은 실증주의적 법인식이 종전부터 적용해왔던 절차를 분석한 결과일 뿐이다.」(319쪽)

◎ 혁명과 근본규범

법질서의 규범은 그 법질서가 스스로 정해 놓은 방식대로 폐지되거나 다른 규범으로 대체되지 않는 한 계속 효력을 가진다. 이를 정당성의 원칙이라 부를 수 있다.

「법질서의 제반 규범들은 그 법질서의 효력이 그 법질서의 규정들에 따라 만료되지 않는 한에서 효력을 갖는다. 법질서는 그 자신의 창설과 적용에 관해 규율함으로써 그 법질서에 속해 있는 제반 규범들의 효력의 시기와 종기를 규율한다. 성문헌법은 통상 절차와 관련된 개별규정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헌법은 오로지 이 절차에 의해서만 개정될 수 있다. 법질서의 규범은 그 규범의 효력이 그 법질서에 정해진 방식대로 만료되거나 그 법질서의 다른 규범의 효력에 의해 대체될 때까지 효력을 갖는다는 원칙이 정당성의 원칙(das Prinzip der Legitimität)이다.」(324-325쪽)

이 정당성의 원칙이 작동하지 않는 예외적인 때가 있는데 바로 혁명이 일어난 경우다. 여기서 혁명이란 헌법규정에 의하지 아니한 방식으로 헌법을 변경하거나 다른 헌법에 의해 기존의 헌법을 대체하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다. 혁명이 일어나면 근본규범 자체가 바뀌게 된다. 혁명 이후에도 통상적으로는 구헌법 아래에서 제정된 많은 법률들이 그대로 효력을 유지한다고들 표현하지만, 켈젠에 따르면 이것은 엄밀한 표현이 아니다. 실질적으로는 새로운 헌법 아래에서 혁명정부가 명시적으로 혹은 묵시적으로 그 법률들을 수용하기 때문에, 그 법률의 효력근거는 더 이상 옛 헌법이 아니라 새로운 헌법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구헌법 아래에서 제정되었으나 수용되지 못한 법률들은 더 이상 효력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으며, 구헌법에 따라 임명된 기관들은 더 이상 권한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327쪽)

혁명이 성공하면, ‘역사상 최초의 국가헌법에서 출발해 위계적으로 이어져 오던 헌법 계열이 단절되고, 전혀 다른 헌법을 정점으로 하는 새로운 층위구조가 시작된다. 이때 근본규범을 표현하는 명제도 바뀐다. 예컨대 절대군주제에서 의회공화제로 넘어가는 경우, 이제 군주의 헌법과 그 아래에서 제정된 규범에 따라 강제가 행사되어야 한다는 근본규범은 사라지고, ‘새 헌법 및 그 헌법에 의해 구성된 의회와 그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기관들에 의해 강제가 창설되고 적용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근본규범이 전제된다.

이때 근본규범은 임의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실효성의 변화를 따라 변경된다. 새로운 헌법과 그 아래의 규범들이 현실에서 실제로 적용되고 준수되어 대체적으로 실효성을 가지게 되면, 그때 비로소 법인식은 옛 근본규범을 버리고 새로운 근본규범을 전제하기 시작한다. 반대로 혁명이 실패한다면, 즉 새로운 헌법이 실효성을 획득하지 못한다면, 구헌법은 계속 실효성을 가지고, 혁명행위는 단지 기존 형법에 따른 반란죄로 해석될 뿐이다. 이 경우에는 새로운 근본규범을 전제해야 할 계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켈젠은 이를 정당성의 원칙이 유효성의 원칙(das Prinzip der Effektivität)에 의해 제한된다고 표현한다. 정당성의 원칙은 헌법 내부의 합헌 절차를 기준으로 정통성을 판단하지만, 혁명시에는 실효성이 새로운 근본규범의 전환을 이끌어내는 마지막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근본규범의 변경은 효력 있는 법규범들의 창조과 적용으로 해석될 수 있는 요건사실들의 변경의 결과이다. 근본규범은 입법행위나 관습에 의해 사실상 정립되고 또 실효성을 갖는 헌법에만 관련된다. 헌법은 그 헌법에 따라 정립된 규범들이 대체적으로 적용되고 준수될 경우에 실효성이 있다. 얼핏 보기에, 구헌법이 그 실효성을 상실하고 신헌법이 실효성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다시 말해 일반적 규범이 더 이상 구헌법에 따라 권한을 갖는 군주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헌법에 따라 권한을 갖는 의회에 의해 창조되고, 더 이상 군주에 의해 제정된 법률이 아니라 의회에 의해 제정된 법률이―군주에 의해 제정된 법률에 따라 임명된 기관이 아닌―그 법률에 따라 임명된 기관에 의해 적용되기 때문에, 법규범들을 창조하거나 적용한다는 주관적 의미를 띠고 나타나는 행위들은 더 이상 종전의 근본규범을 전제한 상태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근본규범을 전제한 상태에서 해석된다. 구헌법 아래에서 제정되었으나 수용되지 못한 법률들은 더 이상 효력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으며, 구헌법에 따라 임명된 기관들은 더 이상 권한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혁명이 성공하지 못한 경우라면, 즉 구헌법에 따라 성립된 것이 아닌 혁명헌법이 실효성을 갖지 못하게 되면, 그 혁명헌법에 의해 규정된 기관들은 법률적용기관들이 사실상 적용하게 될 어떤 법률도 제정하지 못할 것이고, 이런 의미에서 구헌법이 계속해서 실효성을 갖게 되며 종전의 근본규범 대신에 새로운 근본규범을 전제해야 할 어떤 계기도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 경우 혁명은 새로운 법을 창설하는 절차로 해석되지 못하고, 구헌법 및 그 헌법에 기초하여 여전히 효력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형법에 따라 반란죄로 해석될 것이다. 여기서 적용되는 원칙을 우리는 유효성의 원칙(das Prinzip der Effektivität)이라 부른다. 정당성의 원칙은 유효성의 원칙에 의해 제한된다.」(326-327쪽)

◎ 국제법의 근본규범

지금까지의 설명은 국제법이 한 국가의 헌법에 의해 승인되는 한에서만 그 국가 내에서 국내법에 준하는 효력이 있다고 보는 관점을 전제한 것이다. , 헌법이 상위규범이고, 국제법은 그 아래에 종속된 구성부분이 되는 틀에서는, 근본규범이 국가헌법의 효력을 근거지우고, 그 헌법에 의해 국제법의 효력이 근거지워진다. 그런데 관점에 따라서는 국제법이 개별 국가법질서 위에 있는 최상위의 주권적 법질서라고 볼 여지도 있다. 즉 국제법이 각 국가법질서의 효력근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효력근거가 되는 국제법규범은 통상 다음과 같은 언명, 다시 말해 ‘일반적 국제법에 따라 다른 정부들로부터 독립되어 일정한 영역 내의 사람들에 대해 효과적인 통제를 행사하는 정부가 정당한 정부이며, 그러한 정부 아래에서 그 영역에 살고 있는 국민은 국제법적 의미의 국가를 이룬다’는 언명으로 표현된다.」(336쪽)

이와 같이 보는 경우에는 개별 국가 단위에서 근본규범을 전제할 필요가 없다. 대신 그 국제법 자체의 최초적 효력근거가 되는 근본규범이 필요해지게 된다. 이 근본규범은 관습과 조약을 통해 형성된 일반 국제법 규범들을 제반 국가를 구속하는 법규범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해 주는 전제로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갖게 된다.

「제반 국가, 즉 제반 국가의 정부는 그 상호관계에 있어 국가간에 존재하는 관습에 합치되는 방식으로 행위해야 하거나 또는 국가 간의 강제는 국가간에 존재하는 관습에 합치되는 조건과 방식에 따라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근본규범이다.」(337쪽)

조약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원칙도, 조약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조약을 법으로 인정해 주는 관습법규범에서 나온 것이고, 그 관습법규범은 관습은 법이다라는 국제법의 근본규범을 불가결한 전제로 한다.

이처럼 파악된 국제법의 근본규범에도 도덕적 가치나 평화라는 이상은 들어 있지 않다. 국제법이 효력을 갖는 이유는 평화를 실현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국가 간 관습을 법으로 해석하겠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국제법이 실제로 평화에 기여할 수는 있지만, 그건 결과일 뿐 근거는 아니라는 것이다.

◎ 자연법과 근본규범

근본규범은 실정법의 객관적 효력을 근거짓는 선험적·논리적 전제일 뿐, 실정법이 정의로운지 부정의한지 평가하는 윤리적·정치적 기준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순수법학에 의해 객관적 법효력의 조건으로 확정된 근본규범은 모든 실정법질서, 즉 인간행위에 의해 정립되고 대체적으로 실효성 있는 모든 강제질서의 효력을 근거지운다. 실증주의법이론인 순수법학에 의하면 어떠한 실정법질서도 그 근본규범에 합치되지 않는 것으로, 따라서 효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실정법질서의 내용은 그 근본규범과는 완전히 무관하다. 왜냐하면―분명하게 강조되어야 하는 바와 같이―근본규범으로부터는 단지 법질서의 효력만이 나올 수 있을 뿐, 그 내용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실효성 있는 모든 강제질서는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질서로 해석될 수 있다. 어떠한 실정법질서도 그 규범의 내용 때문에 효력이 박탈될 수는 없다. 이 점은 법실증주의의 본질적인 요소이다.」(339쪽)

즉 대체적으로 실효성이 있는 한, 그 내용이 무엇이든 모든 강제질서는 으로서 효력을 가진다. 이것이 법실증주의의 핵심이다. 근본규범은 그런 법질서를 법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해 주는 전제일 뿐, 그 법을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가치척도가 아니다.

반면 자연법론은 실정법의 효력근거를 자연법이라는 상위 규범질서에서 찾는다. 자연법은 실정법과 독립된 규범체계이며, 실정법의 내용이 그에 일치할 수도,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자연법론은 이렇게 말한다. ‘자연법에 합치하는 실정법은 정당하고 효력 있지만, 자연법에 어긋나는 실정법은 부당하며 효력이 없다.’ 이 점에서 자연법은 실정법에 대한 윤리적·정치적 가치척도로 기능한다.

「자연법은 실정법에 대한 윤리적・정치적 가치척도로, 그리하여 실정법에 대한 가능한 윤리적・정치적 정당화기준으로 기여할 수 있다. 이 점이 바로 자연법의 본질적 기능이다. 자연법론으로 불리는 법이론이 실정법의 효력근거로 나타나는 규범이나 규범질서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면, 즉 예컨대 실정법질서가 어떤 행위를 규정하고 있더라도 자연은 그 모든 실정법질서에 복종할 것을 명령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실정법의 효력근거가 되는 규범이나 규범질서와 그 실정법 사이의 충돌이 해결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연법론(즉 정의론)이기를 포기하는 셈이 된다. 따라서 그러한 자연법론은 윤리적・정치적 가치척도이자 실정법에 대한 정당화기준이라는 자연법의 본질적 기능을 포기하는 꼴이 된다.」(341-342쪽)

그런데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자연법론이 실제로 확고한 기준을 제공한 것은 아니다. 지금껏 자연법론자들은 모두 자연법을 말하면서도 재산제도나 국가형태 등 근본적인 지점에서 서로 정반대의 자연법을 내세웠다. 어떤 자연법론은 사유재산을 자연적인 것으로, 다른 자연법론은 집단재산을 자연적인 것으로 보았다. 어떤 이론은 민주주의만이 자연적이라 하고, 다른 이론은 독재정만이 자연적이라고 했다.

「자연법론은 그에 의해 설명되고 있는 자연법규범, 즉 일정한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규정하는 자연법규범이 스스로가 요구하는 절대적 효력을 가질 경우에만, 다시 말해 그러한 행위와 대립되는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규정하는 규범이 효력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는 경우에만 그와 같은 확고한 기준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법론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사실이 그렇지 않음을 보게 된다. 자연법론이 자연에 내재되어 있고 자연에서 연역된 규범의 내용을 규정하려는 순간, 그것은 첨예한 대립상태에 빠지게 된다. 자연법론의 주장자들은 하나의 자연법이 아니라 매우 상이하고 서로 모순되는 여러 가지 자연법을 선언해 왔다.」(343쪽)

형식적 관점에서 보면 실증주의와 자연법론 사이에 공통구조가 있기는 하다. 실증주의는 실정법의 효력근거를 정립된 규범이 아닌 전제된 근본규범에서 찾는다. 자연법론 역시 실정법의 효력근거를 실정법과 구분되는 상위규범에서 찾는다. 양쪽 모두 어떤 형태의 실정법이 아닌 규범을 효력근거로 두고 있다는 의미에서는 일정한 유사성이 있다. 그러나 이 둘 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근본규범은 어디까지나 인식론적·법논리적 조건인 반면, 자연법은 실정법을 평가하는 윤리적·정치적 기준으로 등장한다.

「실증주의법이론에 의하면 실정법의 효력이 정립된 규범이 아닌 전제된 규범, 따라서 실정법규범이 아니면서 실정법의 객관적 효력을 근거지우는 근본규범에 근거하고 있고, 또한 자연법론에 의하면 실정법의 효력이 실정법규범이 아니면서 실정법의 가치척도로 기능하는 규범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법실증주의의 원칙에 대해 그어진 일정한 한계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실증주의법이론과 자연법론 사이의 차이를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단순히 상대적인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하지만 양자 간의 차이는 그러한 차이를 무시하는 견해, 즉 순수법학이 주장하는 실증주의적 근본규범이론은 일종의 자연법론이다라고 보는 견해를 뿌리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차이이다.」(342쪽)

그리고 자연법론 자체도 사실상 어떤 근본규범을 전제하고 있다. 자연법론은 겉으로는 자연이 명령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실정법의 효력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자연이 무엇을 명령한다는 것은 하나의 존재사실 주장일 뿐이고, 존재사실은 규범의 효력근거가 될 수 없다. 존재로부터 당위가 나올 수 없다는 점은 이미 앞에서 충분히 논증되었다.

그렇다면 자연법론이 성립하려면, 사실상 이런 규범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연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연법론의 근본규범인 것이다. ‘자연법에 합치하는 실정법만 효력을 가진다고 말하려면, ‘자연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당위규범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이 규범은 결코 직관적으로 자명한 것이 아니다. 자연은 과학에 있어서 인과법칙적으로 조직된 사실의 체계일 뿐이고, 의지나 명령을 가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연법을 진지하게 유지하려면, 자연 속에 신의 의지를 투사하는 등의 형이상학적 가정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

「물론 어떤 자연법론은 인간이 일정한 형태로 행위해야 할 것을 자연이 명령한다는 것을―설령 자연법론이 이 점을 입증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사실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규범의 효력근거일 수 없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올바른 자연법론이라면 우리가 자연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규범을 전제로 할 때에만 자연법에 합치되는 실정법을 효력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이 자연법의 근본규범이다. 자연법론 역시 실정법의 효력근거에 대한 물음에 대해 단지 제한적인 대답만을 할 수 있다. 만약 자연법론이 우리는 자연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규범이 직접적으로 해명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그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일반적으로는 직접적으로 해명 가능한 인간행위의 규범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고, 개별적으로는 그 규범 역시 더구나 직접적으로 해명 가능한 그 어떤 다른 규범으로 보아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과학에 있어서 자연이란 인과법칙적으로 규정된 요소들의 체계이다. 자연은 의지도 없고, 따라서 어떠한 규범도 정립하지 못한다. 우리가 자연 속에서 신의 의사를 인정할 경우에만 규범은 자연에 내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343-344쪽)

그렇기에 자연법론은 순수한 법이론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신학적 전제에 의존하는 규범이론일 수밖에 없다. 켈젠의 순수법학은 이러한 전제를 거부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