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 켈젠(변종필/최희수 역), 《순수법학》, 길안사, 1999
Hans Kelsen, Reine Rechtslehre (1963)
<차 례>
[10] - 법동태학 中(법질서의 단계구조 1: 위계질서)
[11] - 법동태학 下(법질서의 단계구조 2: 규범충돌)
30. 행위능력; 권한; 기관성
a) 행위능력
앞서 켈젠은 법의 세 가지 규율형태인 명령, 허용, 수권에 관해 언급했었다. 그중 수권(Ermächtigen)은 어떤 개인이나 기관에게 특정 행위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규율인데, 가령 국회에게 입법권을, 법관에게 재판권을, 일부 행정기관에 인허가권을 부여하는 것이 그 예다. 이러한 경우 법은 단순히 ‘하지 마라’고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절차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정해준다. 쟁송을 제기할 수 있는 주관적 사권이나 정치적 권리 등 법적 권능은 이 수권의 대표적 형태라 할 수 있다.
「앞에서 주관적 권리―사권 또는 정치적 권리―로 표현했던 법적 권능은 다만 이 책에서 ‘수권’이라 지칭한 법질서기능의 특별한 경우일 뿐이다.」(238쪽)
「소송능력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법질서에 의해 부여된 것으로서, 법관의 재판과 더불어 정립되는 개별적 법규범의 창설에 함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이다. 그것은 법적 권능이며, 법질서가 그러한 권능을 부여하는 것은 최협의의 특별한 의미의 ‘수권’에 해당한다.」(240쪽)
여기서 수권이란 ‘승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법질서가 어떠한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수권한다는 것은 단지 그 행위를 법적 요건이나 효과로 규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수권은 도덕적 정당화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법적 기능배분인 것이다. 가령 범죄능력 또한 법질서가 부여하는 수권 중 하나인데, 이는 범죄를 승인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범죄를 저질렀을 때 제재가 귀속될 수 있는 법적 지위를 인정한다는 의미다.
어떠한 행위를 수권한다는 것은 동시에, 그러한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수권은 곧 행위능력의 부여이며, 이 점에서 행위능력은 자연적 능력이 아니라 법질서 내에서 창출되는 규범적 지위인 것이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법질서에 의해 조건 또는 효과로 규정되어 있는 모든 인간의 행위는 법질서에 의해 ‘수권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인간은 법질서에 의해서 그렇게 행위할 수 있는 능력이 부여된 것이다. 그는 법질서에 의해 그에게 부여된 능력을 가진다. 이러한 능력을 법질서가 수권이라 부를 때, 이 수권이라는 표현은 결코 승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른바 범죄능력(Deliktsfähigkeit) 역시 단지 일정한 특성을 지닌 인간들에게만 법질서에 의해 부여된 능력으로서 자신의 행위를 통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능력, 즉 제재로 기능하는 강제행위의 조건을 정립할 수 있는 능력이다. 법질서에 의해 특징지워진 이들 인간들은, 그리고 이들만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다시 말해 법질서에 의해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여된 것이다. 그러나 범죄행위는 법질서에 의해 금지된다. 즉 법질서가 그 행위를 범죄인(또는 그 구성원)에 대해 가해지는 제재의 조건으로 삼음으로써 금지되며, 또 ‘금지된’ 것으로서 승인받지 못한다.」(239-240쪽).
전통법학에서는 ‘수권’의 그 의미내용에 ‘승인’을 포함시킴으로써 행위능력과 범죄능력을 엄격히 구분했다. 이에 따라 행위능력은 ‘자신의 행위를 통해 법률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됐고, 여기서 법률효과란 주로 계약 등 법률행위를 통한 의무·권리의 창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240쪽). 즉 행위능력은 주로 ‘법률행위능력’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수권’을 넓은 의미에서 ‘자신이 한 일정한 행위를 통해 일정한 법률효과의 조건을 정립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하고, ‘승인’을 그 개념요소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범죄능력도 행위능력의 일종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법률행위능력이든 범죄능력이든 둘 다 법질서의 수권이며, 법효과의 내용이 다를 뿐 행위능력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법률행위능력(Geschäftsfähigkeit)이란 법질서에 의해 개인들에게 부여된 것으로서, 입법이나 관습에 의해 창설된 일반적 법규범에 바탕하여 하위단계의 법규범을 창설하고 법원에 의해 창설되는 개별적 법규범의 창설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것은 순수한 법적 권능이다.」(241쪽)
「행위능력을 자신의 행위를 통해 법률효과를 야기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한다면, 그리고 법률행위에 의해 창설된 법적 의무, 즉 개별적 규범의 효력발생을 그 법률행위의 효과로 본다면, 법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그 자신의 행위를 통해 제재를 피할 수 있는 능력 역시 (법률행위능력이라는 의미에서) 행위능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점에 의무이행이라는―소극적―법률효과의 본질이 있다.」(241-242쪽).
당연한 말이지만 법질서는 인간의 행위에만 수권을 부여할 수 있다. 가령 ‘전염병의 발생’은 자연적 사실이기에 수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반면 ‘전염병 환자를 수용할 권한’은 인간에게만 부여되는 것으로서 수권의 대상이다.
「수권이라 불리는 법질서의 기능은 인간의 행위에만 관련된다. 인간의 행위만이 법질서에 의해 수권된다. … 법질서가 전염병에 걸린 사람은 병원에 수용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면, 이 경우 법질서는 일정한 개인에게 수용이라는 강제행위를 취할 수 있도록 수권하고 있는 것이지, 전염병의 발생을 수권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239쪽)
b) 권한
따라서 켈젠은 입법기관·법원·행정기관의 기능과 사인(私人)의 법률행위능력・소송능력 등을 서로 다른 범주의 것으로 취급하는 통념은 옳지 않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규범질서에 규정된 방식으로 법규범을 창조하거나 구체화하는 기능을 지닌다는 점에서 본질적 유사성을 지니며, 모두 ‘법적 권능’(수권)이라 할 수 있다. 입법자·법원·행정기관의 권능을 ‘소관(Zuständigkeit)’·‘권한(Kompetenz)’이라 부르고, 사인에게 부여된 법률행위능력·소송능력·선거권 등은 그와 분리시키는 전통법학의 설명은 그러한 구조적 동일성을 은폐한다는 것이다.
가령 계약은 사적 거래라는 형식을 띠지만, 실제로는 법질서가 부여한 권능을 통해 하위규범을 창출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입법행위와 구조적으로 동형이다. 계약을 체결하는 사인, 소송을 제기하는 당사자, 선거권을 행사하는 시민 모두, 법질서가 부여한 법적 권능을 행사함으로써 법규범의 생성·변동·적용 과정에 참여한다. 전통법학이 이들을 ‘기관’의 범주에서 제외시키고 그 기능을 ‘소관’이나 ‘권한’으로 부르지 않는 것은 기능의 내용이 아니라 주체의 명목상 지위에 따른 준별로서 엄밀하지 못한 언어관용이다. 규범을 창출·적용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사인의 법률행위능력·소송능력·선거권은 ‘권한’ 개념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이러한 법적 권능의 행사는 법기능으로서 본질상 법질서에 의해 수권된 입법기관의 기능, 즉 일반적 법규범을 창설하는 기능 및 법질서에 의해 수권된 재판기관과 행정기관의 기능, 즉 일반적 규범의 적용을 통해 개별적 법규범을 창설하는 기능과 같은 종류의 것임을 쉽게 통찰할 수 있다.」(242쪽)
「전통적 이론은 많은 경우에, 특히 일정한 공동체기관, 특히 법원 및 행정기관의 기능과 관련하여 ‘소관’(Zuständigkeit) 또는 ‘권한’(Kompetenz)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사인’에게 부여된 법적 권능, 법률행위를 행함으로써 법규범을 창설하거나 또는 소송이나 상소, 소원 및 선거권 행사를 통해 법규범의 창설에 참여할 수 있는 권능, 즉 기술적 의미에서의 주관적 권리들은 그 사인의 소관 또는 권한이라 부르지 않는다. 법질서에 의해 부여된 법적 권능의 행사에 그 본질이 있는 기능을 고려하는 한, 위와 같이 권한개념을 제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한 개인의 법률행위능력과 주관적 권리―사권 또는 정치적 권리―는 법률을 의결하고 재판을 선고하며 행정처분을 발하는 일정한 개인의 능력과 동일하다는 의미에서 그의 ‘소관’ 또는 ‘권한’이다. 전통적 용어는 이들 법적 권능을 행사하는 모든 기능들 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적 유사성을 숨기고 분명히 표현하지 않는다.」(242쪽)
c) 기관성
공동체는 실체가 아니라 다수 개인의 행위를 규율하는 규범질서에 불과하다. 많은 경우 법률가들은 마치 공동체가 스스로 행위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공동체의 행위라는 것은 실제로는 규범질서에 의해 구성된 개인의 행위를 공동체에 되돌려 읽는 의인화적 해석이라고 켈젠은 말한다.
「개인의 행위가 공동체에 귀속되고 공동체의 행위로 해석된다는 점에서 공동체는 행위주체인 인격으로 묘사된다. 다시 말해 규범질서에 규정되어 있고 개인에 의해 수행된 기능을 이러한 질서에 의해 구성된 공동체의 것으로 돌리는 것은 공동체의 의인화를 의미한다.」(244쪽)
기관성이란 결국 i) 개인의 행위가 규범질서에 의해 조건이나 효과로 규정되고, ii) 그 행위가 법질서에 의해 구성된 공동체의 기능으로 돌려짐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 두 단계가 충족될 때, 우리는 그 개인을 ‘기관’으로, 그 행위를 ‘기관기능’으로 부른다.
이러한 결합도 넓은 의미에서는 앞서 보았던 귀속(Zurechnung)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켈젠은, 이전에 제시된 ‘귀속’ 개념은 어디까지나 두 가지 사실 간의 규범적 결합―즉 법률요건과 법률효과(인간행위)라는 두 구성요소 간의 결합―을 가리키는 반면(이른바 ‘주변적 귀속’), 여기서 설명하는 결합은 개인이 행한 바를 공동체(법적 인격)가 행한 것으로 간주함을 가리킨다고 한다(이른바 ‘중심적 귀속’; zugeschrieben). 그리고 혼동을 피하기 위해 기관성에 관해서는 ‘귀속’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혀둔다.
「앞에서 나는 문제의 사유기제를 “Zurechnung”(귀속)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말은 무엇보다 두 가지 구성요소(조건, 효과)의 규범적 결합―이는 인과적 결합과 유사하다―을 그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기능의 공동체로의 귀속(‘중심적’ 귀속)을 두 구성요소의 규범적 결합(‘주변적’ 귀속)과 구분할 수밖에 없다. 이 용어는 만족스럽지 못하며, 오해를 초래한다. 따라서 나는 이제 “Zurechnung” 이란 말을 두 가지 구성요소의 규범적 결합에 국한시켜 사용하고자 한다.」(243쪽 주 11).
켈젠은 기관성에 관한 전통법학의 관념들 가운데 이론적 엄밀성을 결여하는 것 두 가지를 지적한다.
그 하나는 불법을 공동체의 것으로 돌리지 않으려는 경향성이다. 전통적 언어관용에서 법률가들은 금지된 행위(불법)를 공동체의 행위로 잘 돌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언어관용은 일관된 것이 아니며, 불법을 법공동체에 귀속시키는 구조 역시 현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국가배상책임, 법인의 불법행위능력, 양벌규정 등). 켈젠은, 규범질서에 의해 조건·효과로 규정된 모든 행위―심지어 불법(범죄)도 포함해서―는 원칙적으로 공동체의 것으로 돌려질 수 있으며, 그 행위를 수행하는 모든 개인은 얼마든지 공동체의 기관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불법을 법공동체에 돌리지 않곤 한다. …공 동체를 형성하는 질서에 규정되어 있지만 범죄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은, 따라서 금지되어 있지는 않은 개인의 행위만을 법공동체의 것으로 돌리려는 일정한 경향이 존재한다.」(245쪽)
「인간의 행위를 공동체가 한 것으로 돌린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 행위를 공동체를 구성하는 질서에 관련시킨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행위를 (최광의의 의미에서의) 규범질서에 의해 수권된 행위로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규범질서에 의해 규정되고 이러한 최광의의 의미에서 그 질서에 의해 수권된 개인의 모든 행위는 규범질서에 의해 구성된 공동체에 돌려질 수 있고, 공동체의 기능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또한 자신의 행위가 규범질서에 규정되어 있고 이런 의미에서 규범질서에 의해 수권된 모든 개인, 즉 질서에 의해 구성된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은 공동체의 기관으로 간주될 수 있다. 개인은 그가 공동체의 것으로 돌려질 수 있는 행위를 수행하기 때문에 또 그런 한에서 공동체의 기관이다. 그리고 행위는 그것이 공동체를 구성하는 규범질서에 조건이나 효과로 규정되어 있을 때에는 공동체가 행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244쪽)
다른 하나는, 통상의 개념정의에 비추어 기관성의 요건이 충족됨에도 불구하고 ‘기관’으로 지칭하지 않는 비일관성이다. 법적 언어관용에서는 대개 i) 자격의 부여(성별·연령·정신·육체적 상태 등) 또는 임명행위(헌법·법률·관습법에 따른 지명·선출·추첨 등)와, ii) 분업적 수행(임의의 사람 누구나가 아니라, 이 자격을 가진 일부만이 그 기능을 담당함)이라는 요건이 구비되면 ‘기관’이라 볼 수 있다고 하면서도, 일정한 경우 그러한 설명을 일관되게 적용하지 않는다. 가령 선거인은 헌법이 규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자격 있는 개인이며, 선거행위는 법창조기관(의회·국가원수)을 구성하는 법창조적 기능임에도, 통상 선거인은 ‘국가기관’으로 불리지 않고 오직 선출된 의회와 국가원수만이 기관이라 불린다.
「개인이 일정한 방식으로 자격을 부여받고 있을 경우에만 그 개인의 행위는 법공동체의 기능으로서 법공동체에 귀속되며, 그 기능을 수행하는 개인은 ‘기관’으로 지칭된다. 규범질서에 규정된 일정한 기능이 그 질서에 따라 그 질서에 복종하는 임의의 모든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지 일정한 자격이 부여된 개인에 의해서만 수행될 수 있는 경우에는, 기능적 분업이 존재하게 된다.」(248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출된 의회와 선출된 국가원수는 국가기관으로 불리지만 선출자는 그렇게 불리지 않고, 선출된 의회와 선출된 국가원수의 기능은 국가기능으로 불리지만 선출자의 기능은 그렇게 불리지 않으며, 두 국가기관의 선출행위는 국가기능으로 불린다.」(251쪽)
켈젠은, 모든 법적 기능은 규범질서에 의해 규정된 행위이고 원칙적으로 공동체의 것으로 돌려질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중 일부만을 협의의 ‘기관기능’으로 보고 그 수행자를 ‘기관’으로 부르는 것은, 단지 언어관용과 제도설계의 문제에 불과하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어떤 행위를 어떤 사유작용을 통해 공동체의 기능으로 돌릴 것인지(즉, ‘중심적 귀속’의 작동기제는 무엇인지)를 분석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공동체기관, 개별적으로는 국가기관의 문제와 관련하여 항상 다시금 강조되어야 할 것은 대부분의 경우 언어관용이 문제되며 이러한 언어관용이 일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이것은 법질서에 규정된 기능을 법질서에 의해 형성된 공동체에 돌리려는 것이 단지 하나의 가능한 사유작용일 뿐 필연적인 사유작용은 아니라는 점 때문에 특히 그러하다. 법질서에 규정된 기능을 수행하는 개인은 법공동체의 ‘기관’으로 불릴 수는 있으나 반드시 그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개인의 기능이 공동체의 것으로 돌려질 수 있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법적 사태는 이러한 사유작용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서술될 수 있다. 법에 대한 과학적 인식에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기능을 법공동체에게 돌리는 것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관한 통찰이다. 즉 기관성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관한 통찰이다.」(253-254쪽)
31. 권리능력: 대리
전통적 이론은 권리능력과 행위능력을 엄격히 구분한다. 권리능력이란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일반적 능력(의무부담능력)이고, 행위능력은 자신의 행위를 통하여 법적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된다. 근대법에서는 모든 개인이 권리·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하여 권리능력은 모든 사람에게 인정되지만, 행위능력은 미성년자나 정신병자에게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본다. 켈젠은 이 구분이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제재와 의무의 구조를 면밀히 분석하면 그렇지 않다는 점이 드러난다고 한다.
「전통적 이론은 권리와 법적 의무를 가지거나 혹은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권리능력(Rechtsfähigkeit)이라 부른다. 근대법하에서는 더 이상―노예와 같이―권리능력이 없는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행위능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며, 어린이나 정신병자는 행위능력이 없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은 근대법에 따를 경우 그들을 대신해서 그들의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하며, 그들을 위해서 법률행위를 하고 이를 통해 의무와 권리를 창조할 수 있는 법정대리인을 가진다. 전통적 이론에 의하면 권리능력과 행위능력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론은 비판적 분석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254쪽)
앞서 켈젠은 권리라는 것은 주관적 사권이나 정치적 권리가 아닌 이상은 결국 의무의 반사라고 한 바 있다. 따라서 권리능력이란 곧 의무부담능력이다. 어떤 개인이 법적으로 의무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그의 행위가 제재의 조건으로 규정되어 있음을 의미하는바, 이는 그것을 이행하거나 이행하지 않을 수 있는 행위를 할 능력, 즉 의무위반을 통해 제재를 초래할 수 있는 행위능력이 있어야 비로소 인정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의무부담능력은 행위능력을 당연한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켈젠은 범죄능력을 예로 든다. 앞서 켈젠은 행위능력이란 곧 수권이며, 이는 ‘승인’을 필수적 개념요소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범죄능력도 행위능력의 한 종류라고 했었다. 그런데 미성년자와 정신병자는 이 범죄능력이 없다고 간주되기에 형사법적 의미에서 의무부담능력도 가질 수 없다. 이들의 행위는 형사제재의 조건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법적으로 일정한 행위를 할 의무를 부담하는 경우, 즉 그의 의무위반행위가 그 자신(또는 그의 구성원)에 대해 가해질 제재의 조건이 되는 경우, 다시 말해 그가 자신의 행위를 통해 제재(법적 효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경우, 그가 의무부담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행위능력, 즉 범죄행위능력을 가져야만 한다. 그러나 어린이와 정신병자는 범죄행위능력이 없고 따라서 의무부담능력도 없다. 그들의 행위는 제재의 조건이 아니다.」(254쪽)
따라서 형사제재의 영역에서는, 전통적 이론이 말하는 ‘권리능력(=의무부담능력)은 있으나 행위능력(범죄능력)은 없다’는 구조는 유지될 수 없다.
그러나 전통법학은 재산법·집행법 영역에서는 이런 논리구조를 띠지 않는다. 벌금이나 민사집행은 재산적 제재를 특징으로 하는바, 전통적 이론은 행위무능력자도 재산권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토지세를 내지 않았을 때 미성년자 소유의 부동산에 대한 강제집행이 가능하고, 이로부터 ‘행위무능력자도 재산법상의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다시 말해 행위능력을 부인하면서도 재산법상의 의무를 그에게 지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결론을 벌금형이나 민사집행의 기초가 되는 불법행위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진다. … 행위무능력자도 재산권 특히 소유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러한 사실로부터 행위무능력자도 그가 재산권의 주체가 될 수 있는 한 토지세를 납부할 의무의 주체이기도 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255쪽)
과연 이 사안에서 ‘의무의 주체’는 정확히 누구라고 봐야 할까? i) 만약 ‘자신의 행위를 통해 의무를 이행하거나 위반할 수 있는 자만이 의무의 주체’라면 행위무능력자는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재산법상의 의무를 실제로 이행·위반하는 이는 어린이가 아니라 그의 법정대리인이기 때문이다. ii)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의무의 주체는 행위무능력자가 아니라 법정대리인으로 해석해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전통적 이론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법정대리인이 자신의 재산이 아니라 행위무능력자의 재산으로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iii)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 이론이 이를 ‘주체 없는 의무’로 간주하는 것도 아니다.
「법정대리인은 그 의무(재산법상의 의무)를 자기 재산으로써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전통적 이론에 따를 경우―행위무능력자 본인의 재산으로써 이행해야 하기 때문에 법정대리인을 문제되고 있는 의무의 주체로 간주하는 것을 부인한다면, 그렇다면 주체 없는 의무가 존재하게 되며, 이 경우 그러한 의무의 불이행에 대해―재산에 대한 처분권을 가지며 따라서 강제집행이 가해지는 대상인―법정대리인은 인적 책임만을 질 뿐이지 그의 재산으로써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전통적 이론은 대리인을―그가 행위무능력자의 재산으로써 이행해야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침해할 수도 있는―의무의 주체로 간주하기를 거부한다. 다른 한편 전통적 이론은 주체 없는 의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256쪽)
해결책은 주체 없는 의무 개념을 인정하거나, 법정대리인과 행위무능력자 중 어느 한 쪽에 해당 의무를 ‘강제로’ 지워버리는 것뿐인데, 여기서 전통적 이론은 재산에 대한 제재와 이익귀속의 구조를 근거로 행위무능력자에게 그 의무를 지우는 길을 택했다고 켈젠은 말한다. 즉 행위무능력자의 재산에 기초해 이행되고, 불이행시 제재도 그 재산에 가해진다는 점에서 그러한 의무는 행위무능력자 본인의 의무이고, 대리인은 단지 그 의무의 이행‘행위’를 하여 행위무능력자의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을 회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설명상의 의제라 할 수 있다.
「전통적 이론은 행위무능력자를 문제되고 있는 의무의 주체로 간주한다. 다시 말해 그러한 의무를 행위무능력자에게 귀착시킨다. 대리인의 행위를 내용으로 하는 의무는 행위무능력자 본인에게 귀속된다. 왜냐하면 그 의무(재산법상의 의무)는 전통적 이론에 의할 경우 행위무능력자의 재산으로부터 이행되고 그의 대리인의 재산으로부터 이행되는 것이 아니며, 그리고 의무불이행의 경우 제재는 행위무능력자의 재산에 대해 가해지기 때문이다.」(256-257쪽)
「대리인은 전술한 의무를 행위무능력자를 위해, 즉 행위무능력자의 이익을 위하여 이행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대리인이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그는 행위무능력자의 재산으로 간주되는 재산에 대한 소유권의 강제적 박탈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의무를 행위무능력자의 의무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은 행위무능력자를 권리의 주체로 간주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257쪽)
이 문제에 대한 켈젠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i) 앞서도 언급했듯 진정한 의미에서 주관적 권리란 소송을 통해 의무불이행을 주장할 수 있는 법적 권능이다. ii) 이러한 권능은 행위무능력자에게는 인정되지 않고 대리인에게만 인정될 수 있다. iii) 따라서 대리인의 권능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행위무능력자의 이익을 위해 행사되어야 한다는 제한을 근거로 권리주체를 행위무능력자로 보는 것은 따라서 의제일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기관의 행위를 공동체에게로 돌리는 것과, 법정대리인의 행위를 행위무능력자에게 돌리는 것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공동체는 스스로 행위할 수 없는 인격으로서 그 기능은 언제나 ‘기관’으로 지칭되는 개인을 통해 수행되는데, 이것을 언어관용상 공동체가 직접 행위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의인화적 의제다. 법정대리도 이처럼 의제적 귀착 구조를 띤다. 행위무능력자는 스스로 의무를 이행하거나 법적 권능을 행사할 수 없지만, 우리는 ‘마치’ 그가 대리인을 통해 의무를 이행하거나 권능을 행사하는 것‘처럼’ 설명한다. 대리인이 한 법률행위의 효과를 행위무능력자에게 귀착시키는 조작적 사유작용인 것이다.
「법정대리와 기관성은 유사한 개념이다. 일정한 개인이 공동체의 기관으로 간주되는 것은 우리가 그러한 상황을, 마치 공동체가 그 개인을 통해―사실상 그 개인에 의해 수행되는―기능을 수행하는 것처럼 설명하기 때문이다. 일정한 개인이 행위무능력자의 대리인으로 간주되는 것은 우리가 그러한 상황을, 즉 행위무능력자는 그 스스로 의무를 이행할 수는 없지만 마치 그러한 개인을 통해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것처럼, 다시 말해 행위무능력자가 일정한 행위를 할 수 있고 그러한 행위에 위반되는 행위가 강제행위―이러한 제재는 행위무능력자를 그 권리주체로 하는 재산을 대상으로 한다―의 조건이 되는 것처럼 설명하기 때문이다.」(259-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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