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베토벤 6

베토벤: 교향곡 9번 - 벤자민 잰더, 필하모니아

벤자민 잰더(Benjamin Zander)가 지휘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Philharmonia Orchestra) 및 동 합창단(Philharmonia Chorus)의 2018년 연주다. 해석, 특히 템포설정과 다이나믹 면에서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녹음이라고 하겠다.2악장[링크 참조] 404마디의 급가속(stringendo il tempo)과 Presto 부분의 템포(온음표=116)를 준수하는 몇 안 되는 연주 중 하나다. 첼리비다케(EMI 1989)가 Presto 부분을 빠르게 진행하기는 하지만 전반적 템포 자체가 느려터져서 의미가 없고, 그나마 현대적 경향의 모범적 연주인 진만(ARTE NOVA 1998)도 급가속을 구현하고 템포를 잘 지키는 편이나 메트로놈 표기에 비해서는 살짝 느린 편이다..

음악/베토벤 2024.10.03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연주시간 비교표

첼리비다케의 말마따나 음악은 '스포츠 기록'이 아니다. 하지만 템포가 특히 해석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베토벤 교향곡의 경우에는 러닝타임 비교가 지휘자들의 해석에 대한 일종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연주시간 비교표를 쓴다. 참고로 2악장은 스케르초 A부분의 도돌이표 처리와 트리오 부분의 템포 조절 등만으로도 러닝타임이 쉽게 달라진다. 극단적인 예로, 스케르초의 템포가 가장 빠른 플레트뇨프의 녹음와 가장 느린 첼리비다케의 녹음이 똑같이 12분대이다. 그리고 시대악기 녹음 중 노링턴, 굿맨, 호그우드의 연주는 전체적으로는 아주 스피디한 템포를 보여주지만 4악장 중반의 알라 마르시아 부분을 아주 느리게 처리해서 러닝타임이 길어졌는데 이 부분의 메트로놈 지시에 오기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기 전의 ..

음악/베토벤 2021.09.24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의 베토벤 교향곡 5번 마스터클래스

4악장 초반부에서 저음현 파트에 바순의 소리를 충분히 살려주라고, 비올라가 비브라토를 너무 많이 쓰면 클라리넷이 묻힌다고 경고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오케스트라에 사유할 기회를 부여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아르농쿠르스럽다. 4악장 연습 중 다시 1악장으로 돌아가서, 'C장조가 이렇다. 그렇다면 C단조는 어떻게 연주되어야 하겠는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도입부 1-5마디의 '빠바바밤' 부분에서는 독재자에게 속박당한 자의 몸부림을 예로 들며 '진정으로 고통스러운 포르티시모'를 요구하고, 6-9마디는 '독재자가 버티고 있고 경찰이 감시하고 있으니 너무 강하게 치고 나와서는 곤란하다'고 하며 흥분하지 말라고 단지 속삭이기만 하라고 조언한다. 6-9마디의 4개 마디는 단순히 덤덤한 피아노가 아니라, 1마디부터 5마디까지..

음악/베토벤 2013.09.06

리스트: 베토벤 교향곡 9번 편곡 - 애슐리 와스, 리언 매컬리

리스트는 베토벤을 존경했고 그의 교향곡들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오케스트라 실연을 듣기 어려웠던 당시에는 베토벤의 교향곡들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리스트는 베토벤의 교향곡들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하여 좀더 자주 연주되도록 하기로 결심했고 1843년 작업에 착수했다. 전곡 편곡은 근 30여년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9번의 편곡이 특히 까다로웠다. 합창 없는 세 악장들만 해도 다른 8개 교향곡들에 비해 대위법적 구조가 더 복잡해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잘 나오지 않았고, 특히 4악장의 성악과 합창 파트를 열 손가락 악보 안에 빈틈없이 압축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럭저럭 완성을 했지만 '베토벤 9번 교향곡의 피아노판'이라는 상징성이 더 강했으며, 독주 피아노 작품으로서는 앙상하고 부자연스러운 면이 ..

음악/베토벤 2013.07.02

베토벤: 교향곡 7번 - 브루노 바일, 타펠무지크

교향곡 5번의 경우 전 악장을 관통하는 스토리가 있고 1,3,4악장에 비슷한 동기가 반복해서 제시된다. 암흑에서 광명으로 나아가는 기승전결이 가지는 설득력과 특정한 동기의 반복이 주는 통일성이 곡 자체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밑그림을 신경쓰지 않고 세부묘사에만 천착해도 해석의 공백이 잘 생기지 않고, 소규모 악단으로도 의외로 들을만한 연주를 현출할 수 있다(이것은 3번에서도 비슷함). 반면에 7번은 악장들의 통일성이 거의 전적으로 리듬에만 의존하는 편인데, 4개의 악장들이 각자 성격이 완전히 다른 독특하고 중독성 있는 리듬을 발산한다는 것 자체가 7번이 제시하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악장들 전체를 궤뚫는 의도적인 흐름이 내재되지 않은 작품이기 때문에 지휘자가 직접 밑그림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음악/베토벤 2013.06.30

베토벤: 교향곡 전곡 - 미하일 플레트뇨프,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

미하일 플레트뇨프(Mikhail Pletnev)와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Russian National Orchestra)의 2006년 전집이다.  플레트뇨프의 전집 이전에는 러시아에서 변변한 베토벤 교향곡 전집이 나온 일이 없었다. 스베틀라노프도 3번과 5번만을 남겼고, 로제스트벤스키도 6번 녹음만을 남기고 있다. 주목할 만한 베토벤 레코딩들을 여럿 남긴 므라빈스키도 8번과 9번은 녹음하지 않았다. 러시아 지휘자와 러시아 악단이 남긴 베토벤 교향곡 전집으로는 이것이 최초가 되겠다. 동시에 베토벤 교향곡에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깨주는 결과물이다.  베토벤이 지시한 메트로놈 속도를 전체적으로 흉내는 내지만 루바토와 아첼레란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관계로 템포가 일관되어 있지 않다...

음악/베토벤 2013.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