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 켈젠(변종필/최희수 역), 《순수법학》, 길안사, 1999
Hans Kelsen, Reine Rechtslehre (1963)
<차 례>
[10] - 법동태학 中(법질서의 단계구조 1: 위계질서)
[11] - 법동태학 下(법질서의 단계구조 2: 규범충돌)
42. 국제법의 본질
a) 국제법의 법적 성격
법은 인간행위를 규율하는 질서이다. 국제법은 국가의 행위를 규율하지만, 국가의 행위 역시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행위에 의해 실현되므로, 국제법 역시 인간행위를 규범화하는 질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행위를 규율하는 질서라고 해서 다 법질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규범체계가 법질서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행위를 조건으로 하여 그 행위에 반대되는 강제행위를 효과로 연계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국제법이 국내법과 마찬가지로 ‘법’이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법학의 대상이 될 수 있으려면, 불법에 대해 제재로서의 강제행위를 확정하고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 제안하고 있는 법개념규정에 따른다면 이른바 국제법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법이라 할 수 있다. 즉 인간행위를 규율하는 주권적인 것으로 전제된 강제질서인 경우에, 다시 말해 그 법에 의해 규정된 구성요건이라는 조건에 그 법에 의해 규정된 강제행위라는 효과를 연계시킴으로써 국내법과 마찬가지로 법명제를 통해 서술될 수 있을 경우에, 국제법도 법인 것이다.」(475쪽)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국제법이 이러한 행위를 규율함에 있어 불법인 일정한 행위에 대해 불법효과인 제재로 대응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는지 여부이다. 그러므로 결정적인 문제는 국제법이 제재로서 강제행위를 확정하고 있는가이다.」(475-476쪽)
켈젠은 국제법상의 특수한 제재로서 전쟁과 보복을 지목한다. i) 보복은 침해를 당한 국가가 상대국의 이익영역을 제한적으로 침해하는 것이고, ii) 전쟁은 일국의 이익영역에 대한 무제한적 침해를 수반하는 무력행사인바, 이 둘 모두 국제법상 허용된 강제행위이다.
「왜냐하면 어떤 국가가 다른 국가의 행위로 인해 자신의 일정한 이익이 침해되었다고 믿는 경우 그 국가에 대해 보복을 취할 권한을 갖는다는 것은 일반적 국제법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보복이란 다른 상황하에서는 국제법상 금지되어 있는 것으로서 일방 국가의 이익영역에 대한 침해를 말한다. 보복이란 다른 상황하에서는 국제법상 금지되어 있는 것으로서 일방 국가의 이익영역에 대한 침해를 말한다. 이러한 침해는 침해를 받는 당해 국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더욱이 그 의사에 반해서 행해지는 침해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강제행위이다. … 무력을 수반하는 보복과 전쟁간의 차이는 양적인 차이에 불과하다. 보복은 일정한 이익의 침해에 국한된 개입임에 반해, 전쟁은 타국의 이익영역에 대한 무제한적인 침해이다.」(476쪽)
「일반적 국제법에 의하더라도 전쟁은 국제법위반, 즉 일국의 이익침해에 대한 대응행위로서만 허용되며, 이 경우 피해국은 일반적 국제법을 통해 보복이나 전쟁으로써 대응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이른바 정당한 전쟁(bellum justum)의 원칙이다.」(477쪽)
이러한 제재는 내용상 국내법의 제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생명, 자유, 재산의 박탈이라는 점에서 국제법상의 제재 역시 강제행위이다. 다만 국제법의 제재는 ‘국가에 대해 가해진다’고 표현되는데, 실제로 제재의 해악을 감수하는 것은 국가의 일원인 인간이다. 단지 국제법질서에 복종하는 인간들이 국가로 의인화된 법질서에 속해 있다는 점에서, 제재의 감수를 국가에 ‘귀착’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법상의 제재는 그 내용상으로는 국내법상의 제재와 구별되지 않는다. 하지만 국제법상의 제재는―흔히 말하듯이―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전쟁과 보복이 제재로서의 성격을 갖고 이러한 제재가―직접적으로는 인간에 대해 가해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국가에 대해 가해지는 것이라고 지칭된다면, 다시 말해 제재의 감수가 국가에게 귀착된다면, 이러한 귀착을 통해 표현되고 있는 바는 다음과 같다. 즉 제재의 해악을 사실상 감수하는 사람이 국가의 일원이라는 것, 다시 말해 국제법의 주체이자 동시에 제재의 조건이 되는 국제법상의 범죄의 주체인 국가로 의인화되는 법질서에 복종한다는 것이다.」(478쪽)
b) 원시적 법질서로서의 국제법
이로써 국제법은 제재를 결여한 도덕질서나 정치적 규칙이 아니라, ‘전쟁’과 ‘보복’이라는 강제행위를 제재로 수반하는 법질서로 파악된다. 다만 국내법과는 그 구조와 작동방식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켈젠은 이 차이를 ‘원시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때 원시적이라는 표현은 부정적 가치판단이 아니라, 규범의 창조와 적용이 분업적으로 조직되지 않았다는 구조적 특징을 가리키는 것이다.
「국제법은 물론 강제질서로서 국내법과 동일한 성격을 갖지만, 국내법과는 구별되며 나아가 원시사회의 법과 어느 정도 유사한 면을 가지는바, 이것은 적어도 모든 국가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일반적 법으로서의 국제법이 분업적으로 기능하는 규범창조기관과 규범적용기관을 도입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러하다.」(478-479쪽)
국내법에서는 입법·사법·행정이라는 분업화된 기관이 일반적 규범의 창조와 그 적용을 담당하지만, 국제법에서는 이러한 기능적 분화가 충분히 실현되지 않았다. 국제법은 여전히 광범위한 분권화 상태에 머물러 있다. 국제법의 일반규범은 독립된 입법기관이 아니라 관습이나 조약을 통해 형성되는바, 이는 곧 법공동체의 구성원인 국가들 스스로가 규범창조의 주체로 기능함을 의미한다.
「일반적 규범의 형성은 특별한 입법기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관습이나 조약을 통해, 즉 법공동체의 구성원 스스로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479쪽)
법창조뿐 아니라 법적용에서도 사정은 동일하다. 국내법에서는 법원의 재판을 통해 불법 여부가 객관적으로 확정되지만, 국제법에서는 그러한 객관적 판단기관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불법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는 바로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국가 자신이다. 분쟁당사국 사이에 불법구성요건의 존재에 관해 합의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 이를 최종적으로 판단할 강제적 관할권을 가진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국제법은 규범의 적용이 객관화되지 않은 질서로 남아 있다.
「다른 국가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 불법구성요건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믿는 국가, 즉 피해국 자신이다. 만일 어떤 국가가 자국이 저질렀다고 주장되고 있는 불법을 부인하고 나아가 관련당사국 상호간에 불법구성요건의 존재와 관련해 어떠한 합의도 성립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분쟁을 법적으로 규율된 절차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 객관적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479쪽)
나아가, 국제법상의 제재를 실제로 집행할 권한 역시 중앙기관이 아닌 피해국 자신에게 귀속되어 있다. 보복이나 전쟁이라는 제재수단은, 법질서에 의해 조직된 집행기관이 아니라 이해관계 당사자인 국가에 의해 직접 행사된다.
「가해국을 상대로 일반적 국제법에 의해 도입된 강제행위인 전쟁이나 보복을 통해 대응할 수 있는 권한을 쥐고 있는 것도 역시 피해국 자신이다.」(479쪽)
그렇다고 해서 국제법이 법질서의 성격을 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국가법질서 역시 동일한 경로를 거쳐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초기의 국가법질서에서도 불법에 대한 대응은 자력구제에 의존하였다.
「국제법은 여전히 광범위한 분권화의 단계에 놓여 있다. 그것은 국가법이 이미 거쳐 지나온 발전의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다. … 이것은 개별 국가법질서의 발전과정에서도 그 출발점이 되었던 자력구제의 기술이다.」(479쪽)
c) 국제법의 단계구조
국제법 역시 국내법과 마찬가지로 단일한 규범들의 집합이 아니라, 서로 다른 수준의 규범들이 위계적으로 결합된 단계구조를 이룬다. 다만 그 단계구조는 국가법질서와 동일한 방식으로 제도화되어 있지 않으며, 역사적으로 형성된 관습과 조약을 토대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특수성을 지닌다.
국제법의 최상위에는 모든 국가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일반적 국제법 규범이 존재한다. 이는 특정 국가의 동의여부와 무관하게 국제법공동체의 성원인 국가에게 효력을 미치는 규범들로서 주로 관습을 통해 형성되며, 국가 상호간의 행위에 대해 기본적인 의무와 권한을 설정한다. 이 일반적 국제법 규범 가운데 특히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이른바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 원칙이다. 이 규범은 국가들이 조약을 통해 상호관계를 규율할 수 있도록 하는 법창조적 권한을 부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국제법은 본래 국가의 행위, 즉 개별국가법질서에 따라 권한을 부여받은 기관의 행위를 통해 국가 상호간의 관계를 규율하기 위한 목적에서 창조된, 더욱이 관습의 형태로 창조된 규범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모든 국가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권한을 부여하는 일반적 국제법의 규범들이다. 이들 규범 중에서, 우리가 흔히 계약은 준수되어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공식으로써 표현하고 있는 규범이 특히 중요하다.」(479쪽)
위 원칙에 근거하여 국가는 조약이라는 형식을 통해 새로운 국제법 규범을 창조할 수 있다. 이때 조약은 단순한 정치적 합의가 아니라, 법적 의무와 권한을 발생시키는 규범정립행위로 이해된다.
「이 규범은 국제법공동체의 주체들에게 그들 상호간의 행위, 즉 이들 주체의 기관이나 국민이 다른 주체의 기관이나 국민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행하는 행위를 조약을 통해 규율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479-480쪽)
이처럼 조약을 통해 창조된 국제법규범은 일반적 국제법과 대등한 범위의 효력을 갖지 않는다. 조약국제법은 원칙적으로 당사국에게만 효력을 미치며, 국제법공동체 전체가 아니라 부분공동체를 형성한다.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 원칙을 비롯한 일반적 국제법과 조약국제법은 위계적 관계에 있다.
「오늘날 적용되고 있는 조약국제법은 몇몇 예외를 제쳐둔다면 단지 국지적 성격만을 갖고 있다. … 이 경우 국지적 조약국제법이나 일반적 관습국제법이 대등한 규범집단으로 간주될 수 없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480쪽)
국제법의 단계구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조약에 근거하여 설치된 국제재판소나 기타 국제기관이 정립하는 규범 역시 국제법질서의 일부를 구성한다. 이 규범들은 다시 조약에 의해 수권된 기관의 활동을 통해 창조된다는 점에서 하위단계에 위치한다.
「그리고 국제재판소 및―조약에 의해 창조된―다른 국제기관에 의해 창조되는 법규범까지 고찰대상으로 삼는다면, 이 규범은 국제법의 구조상 세 번째의 단계에 해당한다.」(480쪽)
이러한 다층적 구조는 결국 국제법 역시 근본규범을 전제로 하는 규범체계임을 보여준다. 국제법의 근본규범은 국가 상호간의 관습을 법창조적 사실로 승인하는 규범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국가 상호간의 행위를 통해 형성된 관습을 법창조적 요건사실로 도입하고 있는 규범을 국제법상의 전제된 근본규범으로 간주하지 않을 수 없다.」(480쪽)
d) 국제법에 의한 단순히 간접적인 의무부과와 권한부여
국제법이 국가에게 의무와 권한을 부여한다는 통설적 표현은, 규범이론적 관점에서 볼 때 엄밀한 의미에서의 실재기술이라기보다는 의제적 귀착을 전제로 한 서술이다. 모든 법규범은 본질적으로 인간행위를 규율하며, 국제법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단지 개별 인간을 직접 규율하지 않고, 국가법질서를 매개로 하여 간접적으로 인간행위를 포착한다는 점에서 구조적 특수성을 지닐 뿐이다. 그 간접성 때문에, 국제법규범은 인적 요소를 스스로 완결적으로 규정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규범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규범적 불완전성은 국제법이 개별국가법질서에 대해 보충적 기능을 위임하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국제법이 국가에게 의무와 권한을 부여한다는 것은 국제법이 개별인간에게―개별국가법질서와 같이―직접적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간접적으로, 즉 개별국가법질서(바로 이것의 의인화적 표현이 곧 “국가”이다)를 매개로 하여 의무와 권한을 부여한다는 의미일 따름이다. 국가는 법인이며, 국가 자신에게 의무와 권한을 부여하는 국제법규범은 보충을 필요로 하는 불완전한 규범이다. 국제법규범은 그것이 불가피하게 내용으로 삼고 있는 인간행위의 요소들 중 내용적 요소만을 규정할 뿐, 인적 요소는 규정하지 않는다. 국제법규범은 무엇이 행해져야 하고 무엇이 행해져서는 안되는지를 규정할 뿐, 누가 즉 어떤 개인이 규정되어 있는 작위나 부작위를 행해야 하는지는 규정하지 않는다.」(481-482쪽)
국제법은 행위의 내용만을 규정하고, 그 행위의 담당자를 특정하지 않음으로써 인적 요소의 확정을 국가법질서에 위임한다. 국제법에 의해 명령되거나 금지된 행위는, 국가법질서에 의해 국가기관으로 조직된 개인의 행위로서 비로소 구체화된다. 이때 해당 행위는 국가에 귀착되며, 국제법은 이를 통해 국가를 의인화된 행위주체로 파악한다. 이러한 귀착은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식의 편의를 위한 사유조작에 불과하다. 실재하는 것은 언제나 개인의 행위이며, 국가는 그 행위가 규범적으로 통일된 방식으로 해석된 산물이다.
국제법상의 범죄와 제재 역시 이러한 간접적 구조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국제법이 범죄를 국가에 귀착시키는 것은, 해당 범죄가 국가기관으로 기능하는 인간의 행위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국제법은 국내법질서와 달리 범죄행위의 담당자를 직접 특정하지 않으며, 제재 역시 분업적 집행기관에 의해 수행되지 않는다. 전쟁이나 보복이라는 제재는 국가구성원 전체에게 해악을 발생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로써 국제법상의 제재는 국가구성원의 집단책임이라는 독특한 형태를 띠게 된다. 이처럼 행위주체와 제재대상이 일치하지 않는 집단책임구조는 국제법이 여전히 원시적 법질서의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국제법상 금지된 행위를 국가에 귀착시키는 데는, 즉 국제법상 국가의 범죄능력을 인정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아마도 국내법질서는 국가기관에게 국제법질서에 의해 제재가 결부되어 있는 일정한 행위를 하도록 권한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며, 심지어는 그러한 행위를 하도록 의무를 부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482쪽)
「국제법상의 제재인 전쟁과 보복이 국가에 대해 가해진다는 언명은 제재라는 해악―실제로는 국가의 일원인 인간이 이를 감수한다―의 감수가 국가인격에 귀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태는 이상과 같은 의제적 귀착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더 현실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483쪽)
국제법이 전통적으로 국가만을 주체로 삼아 왔다는 명제는, 켈젠에 따르면 절대적인 원칙이라기보다는 역사적 발전단계의 산물에 가깝다. 국제법이 원시적 법질서의 성격을 띠고 있는 한, 의무와 권한은 국가를 매개로 하여 간접적으로 개인에게 귀속된다. 그러나 국제법이 규율하는 대상이 확대됨에 따라, 이러한 간접성은 점차 완화되고 있다. 특히 국제범죄 영역에서 개인에게 직접 의무를 부과하는 규범이 등장하면서 국제법의 구조는 변형되고 있다. 이 변화는 국제법이 더 이상 순수한 집단책임의 법질서로 머물 수 없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이는 국제법이 집중화된 사법구조를 필요로 하게 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다.
국제법이 개인에게 직접 책임을 묻는 대표적 사례는 전범 처벌과 같은 국제형사법의 영역에서 확인된다. 이 경우 국제법은 단순히 국가법질서에 집행을 위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제법조약에 의해 국제재판소가 창설되고, 제재의 확정과 집행이 국제적 기관에 의해 수행된다. 이는 국제법이 규범창조와 규범적용의 분업화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분업화는 국제법의 집중화를 의미한다. 동시에 국제법은 더 이상 국가만을 주체로 삼는 법질서로 이해될 수 없게 된다.
「국제법이 개별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의무를 부과하는 방법은 이들 개인의 일정한 행위에다가 국제법상의 특수한 제재인 전쟁이나 보복을 연계시키는 그런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국제법이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부과하고 있는 의무는 국내법상의 고유한 제재인 형벌과 강제집행을 통해 구성된다. 국제법은 이들 제재의 확정과 집행을, 예컨대 국제법상의 범죄인 해적행위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국내법질서에 위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재는 국제법조약에 기초하여 창조된 규범에 의해서도 확정될 수 있으며, 나아가 개별사안에 대한 이러한 제재의 적용은, 예컨대 1945. 8. 8.의 런던협약에 따라 행해진 전범들에 대한 형사소추에서 볼 수 있듯이, 국제법조약을 통해 창설된 국제재판소에 위임될 수도 있다. 국제법이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권한과 의무를 부여하는 경향이 증대되고 있는 것은 국제법이 지금까지는 개별국가법질서에 의해서만 규율되던 소재들에 대해서까지 그 규율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과 그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이로써 또한 그러한 경향에 발맞춰 집단책임이나 결과책임 대신에 개별책임이나 행위책임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단지 국지적 국제법공동체 내에서만 관찰될 수 있는 현상, 즉 법규범을 창조하고 집행할 중앙기관을 구성하는 현상이 이와 병행하여 나타나게 된다.」(484-485쪽)
43. 국제법과 국내법
◎ 국내법과 국제법의 통일성
켈젠은, 세계국가의 현실적 성립을 전제하지 않더라도, 법인식을 수행하는 한 국내법과 국제법을 하나의 관점에서 모순 없이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전통적 이원론은 국제법질서와 국내법질서를 각기 다른 근본규범에 기초한 독립체계로 놓음으로써 동시에 유효하다고 말하려 하지만, 켈젠은 바로 그 ‘동시 유효’가 논리적으로 성립하려면 통일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때 통일성의 소극적 기준은 논리일관성, 즉 동일한 사태에 관해 상반된 규범이 동시에 유효하다고 서술하는 모순을 회피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일성의 소극적 기준이 논리일관성(Widerspruchslosigkeit)이다. 이러한 논리적 원칙은 규범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인식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우리는 A는 존재해야 한다는 규범과 A는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규범이 동시에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식으로 규범질서를 서술할 수는 없다. 국내법과 국제법의 관계를 규정함에 있어 특히 문제되는 것은 두 규범체계 간에 해소할 수 없는 충돌이 존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486쪽)
흔히 국제법과 국내법 사이의 ‘충돌’이 발생하는 사례로서 조약의무와 국내입법의 대립을 든다. 그러나 켈젠은 그런 대립이 곧 규범충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가령 국내법질서 내부에서도 상위규범(헌법)과 배치되는 하위규범(위헌법률), 혹은 법률에 반하는 판결이 ‘유효한 규범’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그 상황이 법질서의 통일성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규범위반성’은 상하규범이 동시에 무효가 되는 모순이 아니라, 하위규범에 ‘폐지가능성’이나 ‘제재가능성’이 결부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구조가 그대로 국제법·국내법 관계로 옮겨진다. 국제법을 위반하여 정립된 국내법도 유효하되, 그 정립행위가 국제법상 제재의 조건이 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위 ‘충돌’은 국제법질서와 국내법질서를 통일적으로 파악하는 데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이른바 위헌법률도 유효한 법률이며, 그로 인해 헌법이 폐지되거나 개정된 것으로 간주될 필요없이, 여전히 유효한 법률로 남아 있다. 이른바 법률위반적인 판결 역시 유효한 규범이며, 다른 판결에 의해 파기되기 전까지는 유효하다. 어떤 규범의 ‘규범위반성’이란 하위규범과 상위규범간의 충돌이 아니라 단지 하위규범의 폐지가능성 또는 책임 있는 기관의 처벌가능성을 의미할 뿐이라는 점은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범죄 역시―‘불법(Un-recht)’이란 말이 의미하듯이―법의 부정 즉 법과 대립되는, 법 아닌 어떤 것이 아니라 단지 법이 특수한 효과를 연계시키고 있는 특수한 조건에 불과하다는 점, 따라서 이른바 ‘불법’과 법 사이에는 어떠한 모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이미 앞에서 밝혔다.」(488-489쪽)
◎ 가능한 설명방식
국제법과 국내법을 하나의 체계로 구성하는 방식은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첫째는 i) 국제법이 국내법을 위임하여 상위질서가 되는 구상이고, 둘째는 ii) 국내법이 국제법을 승인하여 국내법의 구성부분으로 편입시키는 구상이다. 두 일원론 간 차이는 내용이 아니라 효력근거의 설정에 있다. 전자는 국가간 관습을 법창조적 요건사실로 도입하는 전제된 근본규범을 출발점으로 삼고, 후자는 역사상 최초헌법의 정립을 요건사실로 도입하는 근본규범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국제법우위론을 취할 경우, 국내법질서는 국제법이 위임한 부분질서로서만 법적 위치를 얻고, 그 장소적 병존과 시간적 선후도 국제법에 의해 가능해진다고 설명하게 된다. 이때 국제법은 무엇이 국가인지, 누가 정부인지, 어디까지가 영토인지,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효력인지 같은 국가개념의 구성요건을 규범적으로 규정한다. 그 결과 주권성은 국내법질서에 귀속되지 않고 국제법질서에 귀속되며, 국가는 국제법에 의해 제한된 적용범위를 갖는 상대적으로 집중화된 부분질서로 파악된다.
「만일 우리가 국제법의 효력으로부터 출발한다면, 이러한 출발점으로부터 어떻게 국내법질서의 효력을 근거지울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 경우 효력근거는 국제법질서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가능한데, 왜냐하면 이미 다른 곳에서 언급했듯이 실정국제법규범인 유효성의 원칙이 개별국내법질서의 효력근거는 물론 그 영토적・인적・시간적 효력범위까지 규정하고, 따라서 국내법질서는 국제법에 의해 위임된 부분법질서 즉 국제법의 하위에 있으면서 국제법에 의해 보편적 세계법질서에로 편입되는 부분법질서로서 파악될 수 있으며, 나아가 이들 부분법질서의 장소적 병존과 시간적 선후가 법적으로 국제법에 의해 비로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제법질서의 우위를 의미한다.」(496쪽)
이는 ‘국제법이 더 중요하다’ 식의 가치판단이 아니라, 효력근거의 계통을 국제법 쪽으로 배치하는 인식론적 선택이다. 국내법질서는 국제법이 규정하는 유효성원칙 아래에서만 성립하며, 병존·교체·멸실 같은 국가현상도 법적 현상으로 해석된다. 또한 국가영토는 사실적 지리공간이 아니라 국내법질서의 지속적 실효성이 미치는 장소적 범위로 규정되고, 국민은 그 범위에서 국내법질서에 복종하는 자로 구성된다. 국제법조약이 규율대상을 확장하면 국내법질서의 내용적 효력범위가 제약된다는 논리도 이 틀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따라서 국제법을 최고질서로 놓는 한, 국내법질서의 “권한고권”은 부정되고 포괄적 규율권도 국제법의 유보 아래에서만 인정된다.
이때 역사적 선후(국가가 먼저 존재했다)는 규범논리적 관계(국내법의 효력근거가 국제법에 있다)를 반박하지 못한다. 가령 가족이 국가보다 오래되었어도 가족법의 효력연원은 국가법이다. 또 연방헌법이 지방국가보다 뒤에 성립했어도 지방질서의 효력근거는 연방헌법이다. 국제법이 뒤에 정립되었다는 사실은 국내법의 효력근거가 국제법에 있을 수 없다는 논증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사실들간의 역사적 관계와 규범들간의 논리적 관계를 구별하지 않는 데 기인한다. 가족 역시 법적 공동체로서―수많은 가족을 포괄하는 집중화된―국가보다 더 오래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가족법질서의 효력연원이 되는 것은 바로 국가법질서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전부터 각자 독립성을 유지하던 개별국가들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연방국가의 헌법은 개별국가들보다 시간상으로는 뒤에 성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국가질서의 효력연원이 되는 것은 연방국가헌법이다. 우리는 역사적 관계와 규범논리적 관계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499쪽)
◎ 각 설명방식에 따른 실정적 차이?
국내법우위론과 국제법우위론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하든 국제법의 내용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국제법우위론에서 ‘국제법에 반하는 국내법은 무효’가 곧바로 나오지 않고, 국내법우위론에서 ‘국가는 조약에 구속되지 않는다’가 곧바로 나오지 않는다. 국제법우위론을 취하더라도 무효는 오직 법질서가 무효 또는 폐지의 절차를 규정하고 있을 때에만 법기술적으로 성립한다. 국내법우위론도, 국제법을 국내법으로 편입시킨 이상 조약구속을 회피하는 근거로 남용될 수 없다(국가가 국제법을 승인해 국내질서의 구성부분으로 삼는 순간, ‘국가는 자신이 체결한 조약에 구속된다’는 국제법규범이 그대로 적용된다). 두 일원론은 인식적 통일성을 위해 가능한 ‘틀’일 뿐, 실정적 결론을 마음대로 꺼내기 위한 정치적 도구는 될 수 없다.
「국제법과 국내법의 관계에 관한 두 가지 일원론적 구상의 차이는 국제법의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효력근거에 있을 뿐이다.」(500쪽)
「예컨대 국제법질서 우위론자들은 국제법이 국내법의 상위에 있고 국내법보다 상위의 법질서라는 사실로부터, 양자간에 충돌이 있을 경우에는 국제법이 우선권을 갖는다는, 즉 국제법에 모순되는 국내법은 무효라는 결론이 도출된다고 주장한다. 앞에서 이미 분명하게 언급했듯이, 국제법과 국내법간의 그러한 규범충돌은 결코 있을 수 없다. … 일반적 국제법은 그러한 절차를 두고 있지 않다.」(503쪽)
켈젠은 국제법우위론과 국내법우위론이 각각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남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법우위론은 평화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국제법이 국내법보다 상위에 있다는 점으로부터 곧바로 세계법형성이나 강제적 국제질서의 가능성을 도출하려는 경향을 낳는다. 반대로 국내법우위론은 국가주권성의 개념과 결합하여, 국제법의 구속력을 상대화하거나 국제적 의무의 이행을 국가의 재량으로 환원하는 논리를 제공하려 한다. 그러나 켈젠에게 이 두 구상은 모두 인식・기술의 틀로서만 기능할 수 있을 뿐, 어느 쪽도 실정법의 내용을 대체하거나 정책적 결론을 자동으로 산출할 수 없다. 특히 주권성 개념은 최고법질서의 전제 문제와 국가의 행위자유 문제를 혼동할 때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국제법의 우위는 평화주의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국제법의 우위를 전적으로 배제하는 국가주권성은 국제법에 의해 제한되는 국가주권성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전자는 최고의 법적 권위를 의미하지만, 후자는 국가의 행위자유를 의미한다. 주권성의 제한은, 국제법을 국내법질서에 편입된 법질서로 보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제법을 초국가적 법질서로 보는 경우에도, 국제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전자의 구상을 따르든 후자의 구상을 따르든 간에, 효과적인 세계법형성은 가능하다.」(504쪽)
국제법이 국가의 행위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주권의 부정이 아니라, 국제법이 정한 의무를 통해 이루어지는 규범적 제한일 뿐이다. 국제법우위론을 채택하든 국내법우위론을 채택하든, 주권은 ‘제한될 수 없는 실체’가 아니라 법적으로 규정되는 관계개념일 따름이다. 국제법이 국가의 승인에 의해서만 효력을 갖는다는 관점에서는 조약의 구속력이나 국제재판의 강제력이 국가의 주권과 충돌한다는 주장이 쉽게 등장하지만, 이러한 논증은 국제법의 내용이 아니라 주권개념에 정책적 판단을 투사한 결과에 불과하다. 국제법이 국가를 구속하는지 여부,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구속하는지는 오직 실정국제법의 규범 내용으로만 판단될 수 있으며, 주권개념 자체에서는 어떠한 한계도 도출되지 않는다. 주권을 ‘면책의 논거’로 사용하는 모든 시도는 이데올로기적 남용이라고 켈젠은 본다.
「국가주권성을 인정하는 데 기초하고 있는 국내법질서우위론은 국제법우위론보다 훨씬 더 남용되고 있다. 국제법은 국가의 승인에 의해서만 이로써 국내법질서의 구성부분으로서만 효력을 가진다거나 또는―같은 말이지만―국가가 주권적이라는 사실로부터, 국가는 자신이 체결한 조약에 반드시 구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 국제법에 따르면 국가간의 조약을 통해 창조된 규범의 내용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조약당사국의 속성인 국가의 주권성과 조화될 수 없다는 이유로 배제될 수는 없다. 국가의 주권성이 그보다 상위에 있는 어떤 국제법에 의해서도 제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국가가 그의 주권성에 기초하여 국제법을 승인하고 이를 국내법질서의 구성부분으로 삼음으로써 자신의 주권성(여기서는 국가의 행위자유)을 스스로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과 전적으로 조화될 수 있다. 그런데 이 경우 국가는 일반적 국제법 및 이에 바탕하여 체결된 조약을 통해 확정된 의무를 떠맡음으로써 그의 행위자유를 스스로 제한한다. 주권국가의 이러한 주권성이 그에 의해 승인된 국제법을 통해 어느 정도까지 제한될 수 있는가의 문제는 국제법의 내용에 기초해서만 대답될 수 있지, 주권성의 개념에서는 이끌어낼 수 없다.」(504-505쪽)
44. 법관과 세계관
법관이나 법이론가가 국내법우위론 또는 국제법우위론 중 어느 하나를 채택할 때, 그 선택은 법적 필연이 아니라 세계관적·정책적 결단일 수밖에 없다. 자국의 주권성에 가치를 두는 자는 국내법우위론을, 세계법공동체의 이념에 가치를 두는 자는 국제법우위론을 선호할 것이다. 전자는 인식의 중심을 고유한 자아에 두고 외부세계를 자아의 표상으로 파악하는 주관주의적 세계관과, 후자는 인식의 출발점을 자아가 아니라 외부세계에 두는 객관주의적 세계관과 유사한 구조를 취한다.
이러한 선호는 법질서의 내용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아니며, 순수법학의 과제는 이 중 어느 하나를 정당화하는 데 있지 않다. 주권개념의 두 의미, 즉 최고법질서로서의 주권과 행위자유로서의 주권을 혼동하는 데서 기만적 추론이 발생하며, 그러한 기만적 추론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나 평화주의 이데올로기 양쪽 모두에서 가능하다. 순수법학은 이러한 선택들이 과학적 필연이 아니라 가치판단임을 드러냄으로써 이데올로기의 외피를 벗겨내고자 한다.
「법학적 고찰에 기초해서 양자 중에 어느 하나의 법학적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결정 자체는 법학의 몫이 아니다. 이러한 결정은 과학적 고려 이외의 다른 고려, 즉 정책적 고려에 의해서만 내려질 수 있다. … 순수법학은 이러한 기만적 추론의 베일을 벗김으로써, 즉 이러한 기만적 추론으로부터 그 자체 논박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논리적 증명력의 외양을 벗겨냄으로써, 그리고 이러한 추론을―동일한 성질의 반대논증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정치적 논증으로 돌려버림으로써, 정치적 발전에 대해 이들 두가지 방향 중 어느 하나에 이르는 길을 열어 놓기는 하되 어느 한 방향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거나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론으로서 순수법학은 이러한 두 방향에 대해 전혀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509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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