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순수법학

켈젠 순수법학 강독[13] - 법과 국가 下(국가-법 이원론 비판)

斧針 2025. 12. 17. 14:00

한스 켈젠(변종필/최희수 역), 《순수법학》, 길안사, 1999 
Hans Kelsen, Reine Rechtslehre (1963)

<차 례>

[01] - 법과 자연 上

[02] - 법과 자연 下(사회질서, 법질서)

[03] - 법과 도덕

[04] - 법과 과학 上

[05] - 법과 과학 下

[06] - 법정태학 上(제재, 의무, 책임, 권리)

[07] - 법정태학 中(행위능력과 권리능력)

[08] - 법정태학 下(법률관계, 권리주체)

[09] - 법동태학 上 (근본규범)

[10] - 법동태학 中(법질서의 단계구조 1: 위계질서)

[11] - 법동태학 下(법질서의 단계구조 2: 규범충돌)

[12] - 법과 국가 上(공법-사법 이원론 비판)

[13] - 법과 국가 下(국가-법 이원론 비판)

[14] - 국가와 국제법

[15] - 해석

[16] - 부록 1(정의의 규범들)

[17] - 부록 2(자연법론)


 

39. 전통적인 국가법 이원론

전통적 법이론은 국가를 법과 구별되는 실체로 상정하면서도, 동시에 국가를 법적 주체로 규정하는 이원적 태도를 취해 왔다. 여기서 국가는 법적 의무와 권한의 주체이자, 법질서와는 독립된 실존을 가진 존재로 간주되는바, 이는 국가를 법의 산물로 파악하면서도, 법 이전에 존재하는 힘의 주체로 상정한다는 점에서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전통적 법이론이 인정하는 공법과 사법간의 대립 속에서 이미 근대법학 및 모든 사회사상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이원론, 즉 국가와 법의 이원론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전통적인 법이론과 국가론은 국가를 법과는 구별되는 존재로서 법과 대립시키면서도 동시에 국가를 법적 존재라고 주장하는바, 이 경우 전통적 이론은 국가를 법적 의무와 권한의 주체인 인격으로 간주하면서 동시에 국가에 대해 법질서와는 독립된 실존을 부여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427-428쪽)

이러한 국가-법 이원론은 사법영역에서 개인의 법인격을 법질서에 선행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사고방식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개인을 객관적 법질서 이전에 존재하는 의욕과 행위의 주체로 상정하는 것과 국가를 집단적 통일체로서 법 이전에 실존하는 존재로 이해하는 것은 궤가 비슷한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사법이론이 본래 개인의 법인격성으로부터 출발해 그것이 논리적・시간적으로 객관적 법 즉 법질서에 선행한다고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법이론 역시 의욕과 행위의 주체로 나타나는 집단적 통일체로서의 국가를 법과 독립적인 것, 심지어 법에 앞서 실존하는 것이라고 본다. 또한 국가는 법, 즉 ‘국가 자신의’ 법인 객관적 법질서를 창조하고 나아가 스스로를 이에 복종시킴으로써, 다시 말해 자신의 법을 통해 스스로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그 역사적 임무를 수행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국가는 초법적 존재이자 일종의 힘센 거인으로서 또는 사회적 유기체로서 법의 전제이지만, 동시에 법에 복종하고 법에 의해 의무와 권리를 부여받는 까닭에 법을 전제로 하는 법적 주체이다. 이것이 바로 국가이측면설이자 국가의 자기의무부담이론(Selbstverpflichtungs-Theorie)이다.」(428쪽)

 

 

40. 국가-법 이원론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켈젠은 이러한 이론이 단순한 이론적 오류가 아니라,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전통적인 국가론과 법이론이 국가·법 이원론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이원론이 국가를 정당화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법을 만들고 그 법에 복종하는 존재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국가는 법과 구별되는 인격으로 상정되어야 한다. 법을 국가의 힘과 대립되는 정의롭고 정당한 질서로 전제해야만, ‘법에 복종하는 국가라는 바람직한 이미지를 선전할 수 있게 된다. 국가의 힘은 오직 법이라는 정당한 질서를 통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으며, 국가는 법치국가원리를 준수함으로써 정당성을 획득하고 이 정당성은 법을 제정하고 준수한다는 형식에서 도출된다는 설명이 그것이다.

「전통적인 국가론과 법이론은 이러한 이론, 즉 그 속에서 분명하게 선언되고 있는 국가・법 이원론을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국가・법 이원론은 결코 과대평가되어서는 안될 특별한 의미를 떤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법이 그 법을 창조하면서 동시에 그에 복종하는 국가를 정당화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국가를 법과는 다른 인격으로 상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법은 국가와 본질적으로 상이한 질서, 그리고 국가의 본질적 속성인 힘(Macht)과 대립되는 질서, 따라서 그 어떤 의미에서든 정당하고 정의로운 질서로서 전제되어 있을 경우에만 국가를 정당화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는 권력(Gewalt)이라는 단순한 사실에 근거하여 법치국가가 되며, 법치국가는 법을 만듦으로써 스스로를 정당화한다.」(428-429쪽)

그러나 켈젠은 이 정당화 전략이 근본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국가를 종교적·형이상학적으로 정당화하는 시도가 실패한 것처럼, 법을 통한 국가정당화 역시 동일한 한계를 지닌다. 국가는 결국 권력이라는 사실에 의해 존재하며, 법은 그 권력을 규범적으로 조직하는 형식일 뿐이다. 법이 국가를 초월한 정의의 질서로 상정되는 순간, 법이 실제로 어떻게 창조되고 집행되는지는 은폐되며, 그러한 은폐가 바로 이데올로기의 기능이라는 것이다(429).

 

 

41. 국가와 법의 동일성

 

a) 법질서로서의 국가

국가를 실체나 인격적 초월자로 파악하는 형이상학적 방식을 배척하면서, 켈젠은 정치적 조직으로서 국가는 결국 강제를 규정하는 규범질서, 즉 법질서 그 자체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모든 법질서가 곧 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 이전의 원시적 법질서나 국가 위에 있는 국제법질서 역시 강제질서일 수 있지만 그것이 곧바로 국가가 되지는 않는다.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규범의 창조와 적용을 위해 분업적으로 기능하는 기관들이 설치되어야 하며, 그 질서는 일정한 수준의 집중화를 이룬 조직으로서의 성격을 획득해야 한다. 집중화의 정도는 입법의 형식, 재판기관의 존재, 제재집행의 방식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가령 원시적 법질서나 일반적 국제법질서에서는 관습에 의해 일반규범이 형성되고, 법원과 같은 집중화된 적용기관이 결여되어 있으며, 제재집행이 자력구제의 형식으로 분산되어 수행되기에, 여기서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란 결국 상대적으로 집중화된 강제질서인 것이다.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그리하여 모든 형이상학과 신비주의로부터 해방된 국가인식은 국가라는 사회적 구성물을―이미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인간행위의 질서로 파악하는 방법 이외의 방식으로는 국가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국가는 정치적 조직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가 강제질서라는 것을 표현할 뿐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정치적 조직이 갖는 특별한 ‘정치적’ 요소는 인간에 의해 인간에 대해 행사되면서 그러한 질서에 의해 규율되는 강제, 즉 그러한 질서가 확정하고 있는 강제행위를 그 본질로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법질서가 그에 의해 규정되어 있는 일정한 조건에다가 연계시키고 있는 그러한 강제행위이다. 정치적 조직으로서 국가는 법질서이다. 하지만 모든 법질서가 국가인 것은 아니다. 원시사회에 존재했던 국가 이전의 법질서도, 국가 위에 있는(또는 국가 상호간의) 국제법질서도 국가는 아니다. 국가이기 위해서는 법질서가 협의의 특별한 의미에서 조직으로서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해 법질서는 그 질서를 구성하는 규범의 창조와 적용을 위해 분업적으로 기능하는 기관들을 설치해야 하며, 어느 정도의 집중화를 이루고 있어야 한다. 국가는 상대적으로 집중화된 법질서이다.」(429-430쪽)
「국가의 법질서는 이러한 집중화란 측면에서 국가 이전의 원시적 법질서나 국가 위에 있는(또는 국가 상호간의) 일반적 국제법 질서와 구별된다. 이들 양자에 따르면, 일반적 법규범은 하나의 중앙입법기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관습의 방법으로 창조되는데, 이는 곧 일반적 법창조의 절차가 분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국가 이전의 법질서나 국가 위에 있는(또는 국가 상호간의) 법질서는 일반적 규범을 구체적 사안에 적용할 권한을 가진 법원을 설치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법질서에 복종하는 주체 스스로에게 이러한 기능을 수행할 권한, 특히 법질서에 의해 확정된 제재를 자력구제의 방법으로 집행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430쪽)

이처럼 국가를 법질서로 이해하는 관점은 전통적 국가요소론의 해체로 확장된다. 국민·영토·국가권력이라는 세 요소는 자연적 사실이 아니라, 법질서의 적용범위와 실효성이라는 법적 범주로만 규정될 수 있다. i) 국민은 언어·인종·종교·세계관 등의 실질적 동질성에서 도출되는 실체적 통일체가 아니라, 동일한 법질서가 효력을 미치는 인적 범위로 파악된다. ii) 영토 또한 지리학적 공간의 사실적 경계가 아니라, 특정 법질서의 장소적 적용범위로 정의될 뿐이며, iii) 시간적 실존 역시 국가법질서의 시간적 적용범위로 정식화된다. 국가권력은 사실상의 폭력이나 지배관계의 총합이 아니라, 규범의 창조·적용을 통해 행사되도록 권한이 부여된 권력으로서 규범적 성격을 띤다. 요컨대, 국민영토주권이라는 3요소는 국가를 자연적 실체로 세우기 위한 재료가 아니라, 법질서라는 틀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 법적 표지인 것이다.

「전통적 국가론에 따를 경우 사회적 공동체로서의 국가는 세 가지 요소, 즉 국민과 국가영토 및 독립적 정부에 의해 행사되는 이른바 국가권력으로 구성된다. 이 세 요소는 법적으로만 규정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일정한 법질서의 효력과 적용범위로서만 파악될 수 있을 뿐이다.」(431쪽)
「국민, 국가영토 및 국가권력이라는 세 요소를 가진 국가는 상대적으로 집중화된, 그 장소적・시간적 적용범위에 있어 제한된, 주권적 또는 국제법에 의해 직접적으로 규율되는, 대체적으로 실효성 있는 법질서로 규정된다.」(435쪽)

우선, i) 개인이 국가의 구성원인지 여부는 심리적 애착이나 충성의 강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동일한 법적 구속의 범위에 속하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국가를 사랑하거나 숭배하는 태도는 국민성을 설명하는 부수적 현상일 뿐이며, 증오하거나 무관심하더라도 법적으로는 국민일 수 있다. 국민의 통일성은 경험적 상호작용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법적 구속의 동일성에 근거한다.

「어떤 사람이 국가의 일원인지 여부는 심리학적 문제가 아니라 법적 문제이다. 국민을 형성하는 사람들의 통일체는 다름 아닌, 동일한 법질서가 이들에 대해 효력을 가지며 이들의 행위가 동일한 법질서에 의해 규을된다는 사실에서 인식될 수 있다. 국민이란 국가법질서의 인적 적용범위이다.」(432쪽)

다음으로, ii) 국가영토 역시 자연적·지리학적 실체가 아니라 법적 인식에 의해 구성되는 적용범위이다. 동일국가의 영토는 반드시 연속된 지표면일 필요가 없고, 바다나 타국 영토에 의해 분리된 공간도 동일한 국가의 공간이 될 수 있다. 국가영토의 경계와 통일성은 자연과학적 인식으로는 설명될 수 없으며, 오직 법질서의 장소적 적용범위라는 구성으로만 정의될 수 있다.

「국가영토란 일정한 제한된 공간을 의미한다. 이것은 일정부분 그 한계가 확정되어 있는 지표면이 아니라 3차원적 공간을 의미하며, 이른바 국경선으로 둘러싸인 영역의 지하공간은 물론 지상공간까지 포함한다. 이러한 공간적 통일체가 자연적・지리학적인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어떤 국가의 영토라고 할 수 없는 바다 혹은 다른 국가의 영토에 의해 서로 분할되어 있는 영역들도 동일국가의 공간이 될 수 있다. 국가의 공간적 경계가 어떻게 결정되어야 하는지, 이러한 공간적 통일체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자연과학적 인식으로는 대답될 수 없고 오직 법적 인식으로만 대답될 수 있다. 이른바 국가영토는 국가법질서의 장소적 적용범위로서 정의될 수 있을 뿐이다.」(433쪽)

끝으로, iii) 국가의 실존은 공간뿐 아니라 시간에 의해 제약되므로, 시간적 적용범위의 개념도 필수적인바, 켈젠은 국가가 언제 시작하고 언제 소멸하는가 역시 자연적 사건의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법적 문제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개별국가법질서의 장소적·시간적 적용범위를 확정하고 상호 구분하여 국가들의 병존과 선후를 법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은 국제법이라는 점에서, 국가법질서도 국제법질서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밖에 전통적 국가론은 국가가 공간적 실존뿐만 아니라 시간적 실존도 갖는다는 점, 공간이 국가의 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면 시간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 나아가 국가는 새로 생겨날 수도 소멸할 수도 있기 때문에 국가의 실존은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에 의해서도 제약받는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의 공간적 실존이 국가법질서의 장소적 적용범위이듯이, 국가의 시간적 실존은 국가법질서의 시간적 적용범위이다. 또한 국가의 공간적 한계에 관한 문제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시간적 한계에 관한 문제, 즉 언제 국가가 시작되고 언제 국가가 그 실존을 그치는가의 문제는 법적 문제이지, 결코 자연적 현실에 바탕을 둔 인식에 의해 대답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433쪽)

 

b) 법인으로서의 국가

단체가 법인으로서 의무·권리의 주체가 되는 것은 특정한 규범질서가 분업적으로 기능하는 기관들을 통해 행위를 구성하고, 그 행위를 단체에 귀착시키는 법적 사유조작을 통해 가능해진다. 국가 역시 기관을 통해 기능을 수행하는 공동체이며, 그 공동체를 구성하는 질서가 국내법질서(국가법질서)라는 점에서 단체법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국가를 실재적 행위주체로 상정할 것이 아니라, 특정 행위를 국가에 귀착시키는 조건을 법질서의 규정 속에서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다. , 국가인격의 문제는 존재론이 아니라 귀착론이며, 언어사용과 법적 구성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법인으로서의 국가, 즉 행위주체이자 의무・권리의 주체로서의 국가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법인으로서의 단체의 문제와 동일하다. 국가 역시 단체이다. 즉 분업적으로 기능하며 직・간접적으로 이러한 기능을 수행할 임무를 띤 기관을 두고 있는 규범질서에 의해 구성되는 공동체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를 구성하는 질서가 법질서이며, 이것은 국제질서 내지 국제법질서와 구별하여 국내법질서 내지 국가법질서라고 불린다.」(435쪽)

◎ 행위주체로서의 국가: 국가기관

행위주체로서의 국가를 논하는 국면에서 국가가 행했다라는 문장은 사실판단이 아니라 귀착판단이다. 사실적 층위에서 행위를 하는 것은 언제나 특정 인간이며, 국가라는 초인격적 실체가 행위를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행위라는 표현이 의미를 갖는 것은 오직 그 행위가 국가공동체를 구성하는 법질서에서 조건 또는 효과로서 규정되어 있을 때뿐이다. 그러므로 국가기능의 존재 여부를 사실의 존부로 묻는 방식은 질문 자체가 잘못 정식화된 것이다. 올바른 질문은 특정 인간의 행위가 국가에 귀착될 수 있는지, 귀착된다면 그 조건이 무엇인지에 관한 것이다.

「국가가 행위주체를 의미하고 국가가 이러저러한 것을 행했다라고 말하는 경우, 일정한 인간에 의해 정립된 행위를 국가에 귀착시키며 이 행위를 국가행위 또는 국가기능으로 특징지우는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 다시 말해 왜 일정한 인간이 일정한 행위를 정립함에 있어 국가의 기관으로 간주되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국가법질서에 복종하는 단체인 법인과 관련하여 제기된 이와 유사한 문제에 대해 앞에서 대답했던 바와 동일하다. 일정한 개인의 행위를 법질서에 의해 구성된 국가공동체에 귀착시키는 것은 단지 그 행위가 국가공동체를 구성하는 법질서에서 조건 또는 효과로서 규정되어 있다는 것을 표현할 따름이다. 행위인격, 특히 법적 의무를 이행하고 주관적 권리를 행사하는 인격으로서의 국가의 문제는 귀착의 문제이므로, 문제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려면 이러한 사유조작의 성질을 인식해야 한다.」(436쪽)

국가인격은 실재가 아니라 법적 사고의 보조적 구성물이며, ‘어떤 기능이 국가기능인가라는 질문은 그것이 국가에 귀착될 수 있는가의 문제로 환원될 때에만 올바른 물음이 된다.

국가기능은 법질서가 규정하는 기능에 한정된다. 법질서가 규정한 기능이 국가인격에 귀착된다는 것은, 그 기능이 법질서의 통일성에 관련되어 있음을 표현한다. 따라서 법질서가 규정하는 모든 기능은 원칙적으로 국가에 귀착될 수 있다. 이러한 국가가 수행한다는 식의 언명은 이러한 귀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통법학에서 이런 식의 은유를 언제 사용하고 언제 사용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관된 기준이 없다.

「법으로 지향된 고찰관점에서 볼 때 법질서가 규정하는 기능만이, 즉 협의의 또는 광의의 법기능만이 국가기능으로 파악될 수 있다. 법질서에 의해 규정된, 일정한 인간에 의해 수행된 기능이 국가인격에 귀착된다는 것은 이러한 기능을 규정하는 법질서의 통일성과의 관련성을 표현한 데 불과하므로, 법질서를 통해 규정된 모든 기능은 이 법질서를 의인화한 것인 국가에 귀착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은유를 사용하여 표현하자면, 법질서가 규정하고 있는 모든 기능은 인격으로서의 국가에 의해 수행되는 기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말은 곧 그 기능이 법질서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는 의미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은유를 사용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태는 은유 없이도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은유를 이용하는 것이 어떤 이유에서건 장점이 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이용한다. 행위인격으로서의 국가의 문제는 귀착의 문제이며 이러한 귀착은 언어사용을 통해 표현되기 때문에, 일정한 기능이 국가기능인가 하는 문제에 대답할 수 있으려면 언어사용상 그러한 기능이 국가에 귀착되는지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사용은 통일적이지도 일관되지도 않다.」(437쪽)

법질서가 기능을 분업적으로 수행할 임무를 부여한 개인이, 법질서가 규정한 절차에 따라 그 기능을 수행하는 경우, 그 기능은 국가에 귀착된다. 이 귀착을 통해 법질서는 의인화되고, 그 의인화된 법질서가 인격으로서의 국가로 표현된다.

「국가가 국가기관인 일정한 인간들을 통해 일정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말할 경우, 국내법질서를 통해 규정된 일정한 기능들이 어떤 조건하에서 국가에 귀착되는가를 법적 언어를 통해 확인하고자 한다면, 일반적으로 볼 때 법질서를 통해 규정된 기능은 그것이 법질서에 의해 그 임무를 부여받고 있으면서 분업적으로 기능하는 개인에 의해 수행되는 경우에만,―같은 말이지만―개인이 법질서에 의해 규정된 절차에 따라 그러한 기능을 수행할 임무를 부여받고 있는 경우에만, 국가에 귀착된다.」(438쪽)

국가라는 말은 크게 두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i) 국민과 영토를 포함하는 전체법질서의 의인화로서의 광의의 국가이고, 다른 하나는 ii) 공무원 자격을 가진 분업적 기관들의 행위를 규율하는 부분법질서의 의인화로서의 협의의 국가이다. 후자는 정부를 정점으로 하는 관료적 공무원기구로서의 국가로서, 그 부분공동체에 귀착되는 기능만을 국가기능으로 이해하는 경향과 연결된다.

「사회질서로서의 국가는―위에서 정의했던 바와 같이―(국제법질서와 구별되는) 국내법질서이다. 인격으로서의 국가는 이러한 국내법질서의 의인화이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했던 바와 같이, 유의해야 할 점은 이러한 국가개념 이외에 제2의 국가개념, 즉 전자와 구별되지만 그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또한 전자에 포함되는 국가개념이 사용된다는 것이다. … 법질서의 영역적 적용범위 내에서 살고 있는 모든 개인의 행위를 규율하며 나아가 일정한 영토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법공동체로서의 국가를 구성하는 전체법질서의 의인화가 아니라 (부분)법질서의 의인화, 즉 분업적으로 기능하면서 ‘공무원’의 자격을 지니고 있는 기관으로서의 성격을 가진 개인들의 행위를 규율하는 국내(국가)법질서의 규범들로 구성된 (부분)법질서의 의인화이다.이러한 부분법질서는 단지 이들 개인들만이 소속되어 있는 부분공동체를 구성한다. 이러한 부분공동체에는 이들 개인들이 수행하는 기능만이 귀착된다. 이것이 정부를 그 정점으로 하는, 관료적 공무원기구로서의 국가이다. 법인에의 귀착의 문제는 국가법질서 아래에서 창설된 단체로서의 법인에 관한 앞서 행한 분석에서 이미 논의되었던 까닭에 국가인격의 문제를 설명함에 있어 중복될 수밖에 없다. 굳이 중복설명의 필요성을 언급하자면, 법적사고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유조작의 성질을 제대로 파악함으로써 전통적 견해에 대한 중대한 수정을 가할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울 수 있겠다. 이러한 인식을 통해 국가인격을 법과는 다른 실체로 보는 대단히 잘못된 관념을 깨뜨릴 수 있으므로, 그러한 인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439쪽)

전통적 국가론이 제시하는 입법·행정·사법의 삼분은 결국 법기능의 분류이며, 켈젠에게서는 법창조와 법적용이라는 동태적 구조 속에서 다시 이해된다. 입법이 국가기능으로 귀착되는 것은 의회가 법질서가 규정한 절차에 의해 선출되어 분업적으로 일반규범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반면 선거를 통해 의회를 구성하는 기능은 법률창조절차의 핵심 요소임에도, 지배적 언어관용에서는 국가기능으로 잘 지칭되지 않는다. 이는 귀착이 사실이 아니라 언어사용과 결합된 구성임을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전통적 국가론에 따르면 국가에 귀착되는 기능은 입법, (통치를 포함하는) 행정 및 사법으로 구별된다. 이미 설명했듯이 이 세가지 기능은 법창조기능이나 법적용기능과 같은 협의의 의미에서의 법기능이든 아니면 법준수기능까지 포함하는 광의의 의미에서의 법기능이든 간에 여하튼 법기능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단계의 일반적 법규범을 창조하는 입법을 국가기능으로 해석한다면, 이것은 그 기능이 법질서가 규정하고 있는 절차를 통해 선출된 의회에 의해, 즉 분업적으로 수행되기 때문이다.」(439-440쪽)

관습에 의해 일반규범이 창조된다는 사실이 국가와 무관한 법의 존재를 입증하는 근거로 제시되기도 하지만, 관습 역시 법질서가 규정한 일반적 법창조의 요건사실이므로 원칙적으로 국가에 귀착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귀착되지 않는 것은, 통상적으로 분업적 기관이 특별한 절차에 따라 수행하는 기능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배적 언어관용을 통해 선언되고 있는 귀착―이것은 국가를 행위인격으로 보는 사고의 기초가 된다―의 성질을 이해함에 있어 매우 특징적인 점은 관습을 통한 일반적 법규범의 창조를 국가에 귀착시키지 않으며 국가기능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관습법은, 국가와 법을 서로 다른 두 가지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논자들에 의해, 법은 국가에 의해 창조되지 않거나 또는 반드시 국가에 의해 창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 따라서 국가와는 전혀 무관하게 창조되는 법이 존재한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한 논거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관습은 입법과 꼭 마찬가지로 법질서가 규정하고 있는, 일반적 법창조의 요건사실이기 때문에 입법과 마찬가지로 국가에 귀착될 수 있을 것이다. 관습법의 창조가 국가에 귀착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입법의 경우와 같이 분업적으로 기능하고 특별한 절차에 따라 그러한 기능을 부여받은 기관의 기능이 아니라는 점 때문일 뿐이다.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분업적으로 기능하는 기관이 국가공무원으로서의 자격을 갖지 않더라도, 입법기능은 국가에 귀착된다.」(440-441쪽)

국가행정의 경우 켈젠은 법기능으로서의 통치·행정이 법창조와 법적용을 통해 의무를 부과하고 제재집행이 분업적 기관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국가에 귀착된다고 본다. 그러나 전술했듯 국가행정은 이에 그치지 않고, 국가가 직접적으로 경제적·문화적·인도적 활동을 수행하는 형태로 확대될 수 있다. 이 경우 국가에 귀착되는 기능은 법창조·법적용이 아니라 법준수기능이며, 국가가 직접 상태를 초래하는 활동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활동의 국가화는 공무화, 즉 공무원 자격을 가진 분업적 기관을 통해 수행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국가행정으로 해석되는 활동이 국가목적의 직접적 실현을 뜻하는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법의무의 내용을 이루는 것은 바로 국가에 귀착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국가에 귀착되는 기능은 법창조기능이나 법적용기능이 아니라 법준수기능이다. 의무의 준수가 국가에 귀착되고 국가기능으로 해석될 경우의 의무란 ‘공무원’이라는 특별한 법적 지위를 부여받고 있는 분업적으로 기능하는 기관의 의무이다. 국가목적을 직접적으로 실현하는 국가기능, 즉 직접적인 국가행정이 존재하는 경우는―흔히 말하듯이―국가가 그에 복종하는 개인들에게 일정한 행위를 해야 할 의무를 부과하는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일정한 상태를 초래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해 국가가 이러한 법률을 구체적 사안에 적용하고 그 법률에 확정되어 있는 제재를 집행하는 상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그가 의도한 상태를 스스로 초래하는 경우, 즉 국가기관을 통해―지배적 언어관용에 의하건대―국가에 귀착가능한 방법으로 그러한 상태를 초래하는 경우, 예컨대 국가가 철도를 건설・운영하고 학교나 정신병원을 세우며 교육을 행하거나 병자를 치료하는 경우이다. 요약하자면 국가가 사인과 마찬가지로 경제적・문화적 또는 인도적 활동을 수행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활동의 ‘국가화(Verstaatlichung)’는 이러한 활동의 공무화(Verbeamtung), 즉 공무원으로서의 자격을 가진 분업적으로 기능하는 기관을 통해 그러한 활동을 집행하는 것을 의미한다.」(442-443쪽)

대  표

대표(Repräsentation)라는 개념은 어떠한 기능이 국가인격뿐 아니라 국민에게 귀착된다는 것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인다. 즉 단체로서의 국가뿐 아니라 국민 역시 귀착점이 될 수 있다는 관념하에서의 표현인 것이다. 가령 의회가 국민을 대표한다는 표현은, 그 기관이 국가기관으로서 기능한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기능을 국민에게 귀착시키는 언어적 장치를 제공한다. 이는 주로 선거에 의해 구성된 기관에 관해 쓰이지만, 언어관용은 일관되지 않기 때문에 선거와 무관한 귀착도 대표라는 말로 불리며, 심지어 절대군주나 독재자에 대해서도 국민을 대표한다는 표현이 사용되고는 한다.

「위에서 설명했던 기능이 의제적 인격으로서의 국가에 귀착된다고 해서 이러한 귀착이 결코 유일하게 가능한 귀착은 아니다. 일반적 언어관용에 의하건대 사실상 또 다른 귀착이 이용되고 있으며, 이것은 국가인격에의 귀착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대표(Repräsentation)라는 개념을 통해 이루어지는 귀착이 곧 그러한 귀착이다. 때때로 우리는 국가기관이 국가를 ‘대표한다’라고 말함으로써 국가기관성, 즉 국가기관이라는 개념을 통해 실현되는 국가인격에의 귀착을 뜻하는 국가기관성을 대표와 동일시한다. 그러나 특수한 의미에서 대표라는 개념은 일정한 기능이 국가인격이 아닌 국민에게 귀착됨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이용된다. 우리는 예컨대 의회와 같은 일정한 기관에 대해 이 기관은 그 기능을 행사함으로써 국민을 대표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로써 국가인격에의 귀착, 즉 국가기관으로서의 그 기관의 특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446쪽)

켈젠은 이 대표를 대리(Vertretung)와 동일한 의미로 본다. 행위무능력자가 법정대리인을 통해 행위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정대리인의 행위가 본인에게 귀착된다는 의미이며, 대표라는 귀착구조의 전형을 드러낸다. 이때 대표자의 의사는 피대표자의 의사라는 서술은 대표를 설명하는 핵심처럼 보이지만, 켈젠에 따르면 이는 의제이다. 법적 언어관용이 이익을 의사와 어느 정도 동일시하는 경향 때문에, 대표자의 의사가 곧 피대표자의 의사라는 식의 동일성이 설정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대리인이나 대표자의 의사는 본인이나 피대표자의 의사와 구별되는 의사이며, 선거권자의 지시에 기속되는 경우에도 그 독자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법정대리나 근대의회의 자유위임처럼 대표자가 피대표자의 의사에 전혀 구속되지 않는 경우에는, 의사동일성의 의제적 성격이 더욱 분명해진다.

「‘대표’는 대리(Vertretung)와 같은 의미인 것이다. 우리는 행위무능력자는 물론 스스로 행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법정대리인을 통해 행위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법정대리인이 그의 행위를 통해 본인의 이익을 실현해야 하기 때문에 그의 행위가 행위무능력자에게 귀착된다는 의미이다. 어떤 기관이 자신의 기능수행을 통해 국가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들인 국민을 대표한다고 말한다면, 그리하여 그 기관의 기능을 이들 개인에게 귀착시킨다면, 이 경우 우리는 자신의 기능이 국가인격에 귀착됨으로써 국가기관으로 간주될 수 있는 개인이 법적으로 또는 단순히 도덕적으로만 자신의 기능을 국가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들인 국민의 이익을 위해 행사하도록 구속되어 있다고 생각한다.」(446-447쪽)

대표를 의사동일성으로 설명하는 모든 시도는 결국 의제를 수반한다. 대표자의 의사가 피대표자의 의사와 동일하다는 전제는, 실제로 기능을 수행하는 개인의 의사와는 다른 의사가 마치 타인에게 귀착되는 것처럼 구성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제이다. 그리고 설령 법률행위에 의한 대리(임의대리)나 혹은 등족회의의 대표가 선거권자의 지시에 기속되고 언제든지 선거권자에 의해 소환될 수 있는 신분제도하의 대표와 같이 대표의 의사가 다소간 피대표자의 의사에 구속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에도 대리인 또는 대표자의 의사는 본인 또는 피대표자의 의사와는 구별되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행위무능력자의 법정대리의 경우 또는 의원이 그 기능수행에 있어 법적으로 독립성을 갖는 근대의회의 국민대표―우리는 흔히 이것을 ‘자유위임’이라고 부르곤 한다―의 경우와 같이 대리인 또는 대표자의 의사가 본인이나 피대표자의 의사에 결코 구속되지 않는 경우에는 의사동일성의 의제적 성격이 훨씬 분명하게 나타난다.」(447쪽)

이러한 귀착구조에서 선거와 임명이라는 기관창설 방식은 의제의 성격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 가령 의회가 국민에 의해 선출되었다는 사실, 법관이 군주에 의해 임명되었다는 사실은, 대표 개념이 작동하는 귀착의 의제성을 강화하거나 약화시키지 않는다. 결정적인 것은 그 기능이 귀착되는 개인 또는 개인들의 이익을 위해 행사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법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적 공식도 의제적 귀착이며, 절대군주나 독재자가 국민의 진정한대표라는 주장도 귀착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성격을 가진다. 어느 쪽이 더 의제적이거나 덜 의제적인 것이 아니라, 모두 귀착이 갖는 의제의 일반적 구조 안에 놓인다.

「의회가 국민에 의해 선출되고 법관이 군주에 의해 임명된다는 사실은 대리개념이나 대표개념에 기초한 귀착의 의제적 성격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기관을 창설하는 방법은 그 기관의 기능을 다른 기관이나 국민에게 귀착시킬 수 있는 가능성과는 무관하다. 결정적인 것은 어떤 기능이 개인 또는 개인들의 이익을 위해, 즉 그 기능이 귀착되는 개인 또는 개인들의 이익을 위해 행사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국민에 의해 선출된 의회가 국민을 대표한다고 보는 이론적 견지에서 그러한 의회가 존재할 경우 법률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거나 혹은―다수의 민주공화국 헌법에서와 같이―법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는 것이 의제적 귀착이라면, 일정한 정치적 신조에 따라 주장되고 있는 견해, 즉 절대군주나 독재자는 국민의 ‘진정한’ 대표라는 견해 역시 귀착이며, 그에 비해 더 의제적인 것도 덜 의제적인 것도 아니다.」(448쪽)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언제 어떤 조건 하에서 그러한 귀착이 이루어지는가에 있다. 이러한 귀착을 실재적 존재에 관한 진술로 해석하는 태도, 즉 국가나 단체라는 법인이 구성원과 구별되는 실재적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고는 비과학적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법을 과학적으로 설명함에 있어 어떤 조건하에서―일정한 개인에 의해 수행된 기능을 법인이나 타인에게 귀착시키는 것을 그 본질로 하는―의제를 이용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어떤 조건하에서 기관성, 대리 또는 대표라는 개념의 사용이 과학적으로 정당한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귀착의 성질을 분명히 인식하고, 나아가 법인에의 귀착(즉 기관성)이라는 개념이 표현하는 바는 그러한 기능이 곧 그 기능을 규정하고 있으면서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법질서의 통일성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며, 또한 개인이나 개인들에의 귀착 특히 국가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개인인 국민에의 귀착을 뜻하는 대리개념이나 대표개념이 표현하는 바는 곧 기능을 행사하는 개인들이―그 기능을 그 기능이 귀착되는 대상인―개인이나 개인들의 이익을 위해 행사하도록 법적으로 또는 단지 도덕적・정치적으로만 구속되어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전제하에서 가능하다.」(448-449쪽)

대표 개념은 종종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민주주의 원리의 실질적 수정이나 폐지를 은폐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의회를 국민의 대표로 설명함으로써 민주주의가 사실상 선거권을 가진 일정 범위의 국민에 의해 제한된다는 점이 가려질 수 있으며, 독재자가 국민을 대표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민주주의 원리가 폐지되었음에도 마치 유효한 듯한 인상을 조성할 수 있다. 켈젠은 이와 같은 경우 의제의 사용이 과학적 설명이 아니라 권위 강화의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전락한다고 본다. 특히 독립적 법관이 군주를 대표한다는 의제는 정당화될 수 없으며, 군주의 권위를 고양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입헌군주제로의 이행 과정에서 군주로부터 박탈된 기능을 다시 군주에게 귀착시키는 효과를 갖는다고 한다.

「만약 어떤 기능이 법인에 귀착된다는 언명, 즉 단체나 국가라는 법인이 어떤 기관을 통해 그 기능을 수행하고 의무를 이행하며 권리를 행사한다라는 언명, 다시 말해 그러한 귀착의 의미를 다음과 같은 의미로 해석한다면, 즉 그러한 기능의 소지자이자 동시에 그 기능을 통해 이행되고 행사되는 의무・권리의 주체인 법인이 단체나 국가의 구성원과는 구별되는 실재적 존재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이 경우 의제의 사용은 비과학적인 것이다. 또한 행위무능력자의 법정대리에 있어 행위무능력자가 권리능력 있는 것처럼 의제하는 경우, 의회를 국민의 대표로 설명함으로써 국민의 자기결정이라는 민주주의원리가 사실상―숫자상으로 다소간 탄력적일 수 있는―일정범위의 국민에 의한 의회의 선출에 제한됨으로 인해 나타나게 되는 민주주의원리의 중대한 수정가능성을 은폐하고자 하는 경우 또는 절대군주나 독재자가 국민을 대표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사실상 민주주의 원리가 완전히 폐지되었음에도 여전히 그것이 유효한 것처럼 보고자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449쪽)

 의무의 주체로서의 국가

통상 국가는 ~할 의무가 있다라는 표현은 엄밀한 법의무 개념을 전제하지 않은 채 사용된다. 앞서 켈젠은 법질서가 일정한 행위의 반대행위를 제재의 조건으로 삼고 그 제재로서 강제행위를 연계시키는 경우에만 법의무가 성립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 정의를 엄격히 적용하면, 흔히 국가에 귀착된다고 말해지는 의무는 사실상 법적 의무가 아니라 도덕적·정치적 의무의 실질을 갖는 경우가 빈번하다.

「국가의 의무에 관해 말할 때 우리는 흔히 부정확한 법적 의미로, 즉 엄밀하게 정의된 법의무개념을 사용하지 않고서 그렇게 말하곤 한다. 그러한 개념, 특히 이 책에서 수용하고 있는 개념―이에 따르면 법질서가 일정한 행위와 반대되는 행위에 대해 제재로서의 강제행위를 연계시키고 있는 경우에 그 일정한 행위를 해야 할 법적 의무가 존재한다―을 전제로 한다면, 국가에 귀착되는 법적 의무란 대부분 존재하지 않고 단지 국가의 도덕적・정치적 의무만이 존재하게 된다.」(450쪽)

특히 국가는 범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언명이 많은 경우 그러하다. 형벌은 법적용기관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으로만 구성되어 있고, ‘형벌을 부과하지 않음이 제재의 조건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면, 처벌은 법적 의무의 내용이 아니다. 그러한 경우 국가는 범죄자를 처벌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법의무 서술이 아니라 법질서에 지향된 정치적·도덕적 요청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만약 그러한 의무가 법적용기관의 직무의무로 존재한다면, 그 의무는―논리적으로 볼 때―의무침해까지도 국가에 귀착되는 경우에만 국가에 귀착될 수 있다. 왜냐하면 법적의무의 주체란 자신의 행위를 통해 의무를 침해할 수 있는 자, 즉 잠재적 범죄자이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국가의 형벌의무라는 표현은 기관의 직무의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법질서에 지향된 도덕적・정치적 요청, 즉 사회적으로 유해한 행위에 대해서는 제재로서의 형벌을 연계시켜야 한다는 요청을 표현할 따름이다.」(450-451쪽)

기본권·자유권과 국가의무의 관계도 같은 틀에서 다시 정리된다. 통상 기본권은 국가가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와 대립된다고 설명되지만, 켈젠은 헌법상 자유·평등을 침해하는 법률을 제정하지 말라는 금지는 입법기관의 법적 의무가 아니라, 위헌법률을 특별절차로 폐지할 수 있는 가능성에 불과하다고 본다. 따라서 입법기관은 위헌법률을 제정하지 말아야 할 법적 의무를 진다라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국가원수나 각료의 비준·공포·부서에 관한 협력거부의무가 설정될 수는 있으나, 그것은 직무의무로 간주되며, 그 경우에도 국가인격에 귀착시키는 추가적 조작은 필요하지 않다. 결국 입법에서 국민의 자유·평등을 존중해야 할 국가의 의무란 법적 의무가 아니라 헌법적 보장의 요청이라는 도덕·정치적 지향이라는 것이다.

「이미 기본권과 자유권에 관한 앞의 분석을 통해 이들 권리가 그 자체 주관적 권리가 아니라는 점, 헌법에 의해 보장된 평등이나 자유를 침해하는 일정한 법률을 제정하지 말라는 ‘금지’는 입법기관의 법적 의무가 아니라 단지 하나의 가능성, 즉 위헌법률을 특별한 절차를 통해 폐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할 뿐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헌법적으로 보장된 평등이나 자유를 침해하는 법률을 제정해서는 안될 입법기관의 법적 의무란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원수나 각료가 비준이나 공포 또는 부서를 통해 그러한 법률의 제정에 협력해서는 안 될 법적 의무가 존재할 수는 있지만 그러한 의무는 직무의무로 간주되며 따라서 국가라는 법인에의 귀착은 더 이상 필요없다는 점에서, 국민의 평등과 자유를 존중해야 할 국가의 의무는 단지 법질서에 지향된 도덕적・정치적 요청, 즉 위에서 설명했던 헌법적 보장의 요청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하다.」(451-452쪽)

국가에 법적 의무를 귀착시키려면, 그 의무의 이행뿐 아니라 침해까지도 국가에 귀착될 수 있어야 논리적으로 일관된다. 그러나 귀착은 가능한 사유조작이지 필연적 사유조작이 아니며, 언제나 의제를 내포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언어관용은 의무침해를 국가에 귀착시키지 않으면서 의무나 의무이행만을 국가에 귀착시키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은 국가권위를 보존하는 방향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 가령 국가는 의무에 따라 법을 행하지만 불법은 행할 수 없다는 관념이 그것이다.

「법인 일반, 특히 국가라는 법인에게 법적 의무를 귀착시키는 것은 기관에 의한 의무의 준수뿐만 아니라―국가도 불법을 행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의무의 침해까지도 국가에 귀착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논리일관될 것이다. 하지만 귀착이란 단순히 하나의 가능한 사유조작일 뿐, 결코 필연적인 사유조작은 아니며 언제나 의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 언어관용상 의무침해를 국가에 귀착시키지 않으면서 의무나 의무이행행위만을 국가에 귀착시키는 것도 가능하다.」(452쪽)

국가법질서 내부에서는 국가는 결코 불법을 행할 수 없다는 공식이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 이 공식은 국가를 법을 의욕하는 존재로 은유화하고, 불법을 수권의 범위를 벗어난 인간의 행위로 처리함으로써 국가귀착을 차단한다. 그러나 켈젠은 이 차단이 논리적 필연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법정책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본다. 불법은 법의 부정이 아니라 법질서가 특수한 효과(제재)를 결부시키는 조건이며, ‘위법적법의 대립은 논리적 대립이 아니라 목적론적 대립일 뿐이다. 불법이 법질서가 규정하는 요건사실인 한, 그 역시 법질서의 의인화된 통일성에 관련되어 국가에 귀착될 수 있다. ‘국가는 불법을 결코 행할 수 없다는 결코 절대적이고 필연적인 원칙이 아닌 것이다.

「그러한 제한이 불법의 국가에의 귀착이 논리적 모순을 뜻한다는 의미에서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 그리고 불법은―국가불법의 관념을 거부하는 견해가 전제하고 있듯이―법의 부정이 아니라, 전술한 것처럼, 법이 특수한 효과를 결부시키고 있는 조건인 것이다. 어떤 행위가 법에 ‘위반되는’ 행위라는 언명은, … 그러한 위법행위와 ‘적’법행위간의 논리적 대립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양자간의 목적론적 대립을 표현하고 있을 따름이다.」(454쪽)
「지배적 언어관용에 따르면 분업적으로 기능하는 기관으로서 법질서에 의해 그 권한을 부여받은 개인에 의해 이행되어야 할 의무만을 국가에 귀착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러한 개인이 국가기관인 자신에 의해 이행되어야 할, 형사제재하에 놓여 있는 의무를 침해한 때에는 국가기관으로서 행위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의무이행행위를 하는 경우에만 그는 기관으로서 행위하는 것이다. 의무의 이행으로 나타나는 행위만이 국가에 귀착되고 의무의 침해로 나타나는 행위는 국가에 귀착되지 않는다면, 따라서 국가가 아니라 행위하는 개인만이 잠재적 범죄자로 고려된다면, 그가 이행할 수는 있으되 침해할 수는 없는 의무가 국가에 귀착된다.」(455쪽)

국가법질서에서 의무와 불법이 국가에 귀착되는 전형적 예는 재산법적 급부의무가 존재하는 경우에 드러난다. 의무의 이행이 국가재산으로부터 이루어져야 하거나, 불이행 시 강제집행이 국가재산에 대해 이루어지는 때에는, 의무와 그 이행은 물론 침해까지 국가에 귀착된다. 가령 죄 없는 자에게 형벌이 집행되었던 경우에는 손해배상을 국가재산으로부터 하도록 규정할 수 있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국가에 대한 판결과 국가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이 가능해진다. 이런 경우 국가가 법적 의무를 침해했다는 언명이 성립할 수 있다. 이때 제재는 국가인격에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으로 구성되며, 국가는 인격으로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재산으로 책임진다.

「국가법질서에 의해 확정된 의무는 물론 그 의무의 침해가 사실상 국가에 귀착되는 경우는 그 의무가 재산법적 급부를 그 내용으로 삼는 경우에만, 예컨대 국가재산으로부터 의무가 이행되어야 하거나―일반적으로 고려대상이 되는 한―강제집행이 국가재산에 대해 행해져야 하는 경우일 뿐이다. … 이런 경우 우리는 국가가 자신의 법적 의무 … 를 침해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의무는 물론, 의무의 이행과 침해까지도 국가에 귀착시킨다. 그리고 고려대상인 재산이 국가재산으로 해석된다는 전제하에서, 제재의 감수까지도 국가에 귀착시킨다.」(455-456쪽)

◎ 권리의 주체로서의 국가

앞서 켈젠은 진정한 의미의 주관적 권리라는 것은 어떤 실체적 이익에 대한 소유나 보호가 아니라, 의무(=반사적 권리)의 불이행을 주장할 수 있는 법적 권능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한 권능을 부여받은 자가 바로 권리주체. 국가의 권리라 불리는 것도 그 실질은 국가기관으로서 그 권능을 행사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다. 다만 그 권능의 행사가 국가에 귀착됨으로써, 국가법질서의 것으로 돌려지는 것이다.

「우리가 주관적 권리를 반사적 권리로 이해한다면, 즉 앞에서 설명했던 것과 같이 의무―이는 반사적 권리와 동일하다―의 불이행을 주장할 수 있는 법적 권능이 부여된 반사적 권리로 이해한다면, 그리고 권리의 주체는 곧 법질서가 이러한 법적 권능을 부여하고 있는 개인이라면, 그렇다면 국가의 권리로 해석되는 권리는 그 속성상 국가기관으로서 이러한 법적 권능을 행사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이다. 국가에의 귀착이 표현하는 바는 곧 이러한 법적 권능이 일정한 개인에 의해 행사될 수 있음을 확정하고 있는 국가법질서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458쪽)

국가에 대한 의무라는 것도 국가라는 실체에 대한 의무가 아니라, 특정 행위가 국가기관의 기능으로서 수령·집행되도록 구성된 의무이다. 의무는 언제나 다른 인간()에 대해서만 행해질 수 있으나, 그 상대방의 행위(의무이행의 수령·확인·집행)는 국가기관으로서의 개인이 수행하는 기능이 될 수 있다. 병역의무나 조세납부의무가 그 전형이며, 급부의 수령이 기관의 직무의무로 구성되는 한, 수령행위는 국가기능으로 귀착된다. 이때 국가를 위하여수령한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수령행위가 특정 개인의 이익을 위한 사적 수령이 아니라 국가에 귀착되는 기능이라는 점을 표시하는 언어관용이다.

「사실상 의무로서 부과되어 있는 인간행위는 다른 인간(또는 인간들)에 대해서만 행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의무지워진 행위를 통해 함께 규정되는 그에 상응하는 행위, 즉 의무이행의 대상인 다른 인간(들)의 행위를 의미하는 반사적 권리의 행사는 국가기관으로서의 자격을 가진 개인의 기능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러한 행위는 국가에 귀착될 수 있다. 예컨대 병역의무나 조세납부의무와 같이 일정한 급부의무가 존재하는 경우가 그러한 경우이다.」(459쪽)

국가가 재산을 소유하고 관리하는 장면도, 귀착이라는 사유방식을 빌리지 않고 담백하게 보면, i) 처분권능·소송권능은 특정 자격을 가진 분업적 개인들에게 유보되어 있고, ii) 다른 개인들은 수인의무를 짐으로써 배제되어 있는 모습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분업적 개인들을 소유권자로 보지 않는다. 문제의 기능과 권리는 그 개인의 이익을 위해 위임된 것이 아니라 전체의 이익’, 즉 법질서로 형성된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위해 위임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 전제가 지시하는 방향에 따른 귀착의 결과물로, 국가소유권은 공동체화·사회화된 소유권으로서 집단소유권으로 이해되고, 국가재산은 국가구성원의 집단재산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물건에 대한 개인의 소유권은 모든 타인들이 그 물건에 대한 그의 사실상의 처분, … 수인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 소송을 통해 이를 주장할 수 있는 법적 권능도 가진다는 점에 그 본질적 특성이 있다. … 만약 우리가 물건에 대한 국가의 소유권으로서 해석되는 사태를 귀착이라는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기술하고자 한다면, 물건에 대한 사실상의 처분권과 법률행위에 의한 처분권이 일정한 개인, 즉 분업적으로 또 직무의무의 이행을 통해 처분행위를 행하는 일정한 개인에게 유보되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461쪽)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이상의 기능들은, 이룰 그때그때 행사하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즉 법질서를 통해 형성된 공동체에 속하는 모든 개인들의 이익을 위해 그에게 위임되어 있다고 볼 것이기 때문이다. … 소유권의 국가화는 언제나 소유권의 공동체화 내지 사회화로 이해된다. 이 두 개념은 동의어로 사용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소유권은 국가구성원의 집단소유권이며 국가재산은 국가구성원의 집단재산이다.」(462쪽)

 

c) 국가의 이른바 자기의무부담; 법치국가

국가의 이른바 자기의무부담(Selbstverpflichtung), ‘법 이전의 국가가 먼저 법을 만들고 그 다음 자의적으로 그 법에 복종한다는 서술을 전제로 한다. 국가가 법과 독립된 사회적 실재로 먼저 존재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자기에게 의무를 부과한다는 도식이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실존이라고 표현되는 사태란 결국 특정 인간행위가 국가행위로 귀착되고, 그 귀착이 그러한 행위를 특별한 방식으로 규정하는 법질서에 근거하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국가가 법을 창조한다는 표현의 진정한 의미는, 법에 따라 국가로 귀착되는 행위를 수행하는 인간이 법을 창조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법에 앞선 국가가 법을 만든 뒤 그 법에 복종한다는 생각은 시간적으로 보나 논리적으로 보나 허구적이다.

「국가가 법을 창조한다는 것은 법에 따라 자신의 행위가 국가에 귀착되는 인간이 법을 창조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곧 법이 그 자신의 창조를 규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실존에 있어 법에 앞서 있는 국가가 법을 창조하고 그런 연후에 법에 복종하게 되는 과정은 있지도 않으며 또 있을 수도 없다. 자신에 의해 창조된 법에 복종하는 국가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의 행위 특히 법의 창조에 지향된 인간행위를 규율하고 동시에 이러한 인간을 그에게 복종하도록 하는 법이 존재할 따름이다.」(462쪽)

국가의 자기의무부담이라는 표현은 단지 국가인격에 귀착되는 의무·권리가 법질서에 의해 확정된다는 것, 다시 말해 국가인격이 법질서의 의인화라는 조건 아래에서만 사용될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의미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귀착은 단지 인식의 보조수단이며, 인식의 대상으로 실존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오로지 법(규범체계)이다. 즉 자기의무부담은 실체적 국가의 자율적 결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법질서가 구성한 의인화의 언어가 낳는 표면적 도상(圖像)인 것이다.

「국가인격에 귀착되는 의무와 권리가 다름 아닌 법질서―이것이 의인화된 것이 국가인격이다―에 의해 확정되어 있다는 의미에서만 우리는 국가의 자기의무부담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 인식의 대상으로서 실존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법일 뿐이다.」(463-464쪽)

이로부터 켈젠은 법치국가(Rechtsstaat)개념의 지위를 다시 정립한다. 순수한 인식론적 정의, 즉 순수법학적 정의에서 법치국가라는 말은 개념적으로 특별한 가치평가를 담지하지 못하는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국가를 법질서 그 자체로 보는 이상 모든 국가는 법치국가이기 때문이다. ‘법치국가를 민주주의, 법적 안정성, 권력통제, 기본적 자유보장 등을 아우르는 실천적 표지로 이해하는 것은 법적 분석이 아니라 단지 정치적 언어관용에 따른 것이다.

「국가를 법질서로 승인한다면 모든 국가는 법치국가(RechtsStaat)이며, 따라서 법치국가라는 표현은 동어반복이다. 하지만 법치국가란 말은 사실상 특별한 국가유형, 즉 민주주의와 법적 안정성의 요청에 부합되는 국가유형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464쪽)

전통적 이론이 국가를 권력과 의지의 실체로 상정하는 방식은, 신학이 신을 세계 밖에 두면서도 세계 안에 내재시키는 모순(초월성과 내재성의 동시 주장)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자기의무부담은 이 신학적 도식의 국가론적 변형이며, 그 결과 국가는 법을 통해 정당화되려 한다. 그러나 법으로 국가를 정당화하는 시도는 결국 법으로 법을 정당화하려는 순환으로 귀결될 뿐이다. 이 순환이 가능하려면 이 어떤 때는 실정법(강제질서), 어떤 때는 정의(정당한 법)라는 서로 다른 의미로 쓰여야 한다. 켈젠은 이 의미혼동을 폭로함으로써 정당성 이데올로기의 한 축을 폐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정치적 가치판단이 아니라 법실증주의적 인식론의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전제주의적이고 불안정한 강제질서도 여전히 법질서이며, 그에 의해 구성된 공동체도 국가, ‘법치국가이다.

「국가를 법과 동일시하는 것, 즉 국가를 법질서라고 보는 인식이 곧 순수한 법학의 전제이다. 하지만 국가와 법의 동일성을 통찰하고 나아가 법, 즉 정의와 동일시할 수 없는 실정적 법이란 강제질서이며, 이러한 강제질서는 의인화된 형상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의인화의 베일을 뚫고 인간행위에 의해 정립된 규범으로 나아가는 인식의 관점에서 볼 때 국가로 나타난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국가를 법을 통해 정당화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 이것은, 법이라는 동일한 표현이 어떤 때는 실정적 법의 의미로, 다른 때는 정당한 법(즉 정의)의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 한, 법을 통해 법을 정당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국가를 ‘법치’국가로 정당화하고자 하는 시도는 곧―이미 강조했듯이―모든 국가는 법질서라는 의미에서 법치국가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쓸모없는 시도임이 밝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결코 정치적 가치판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법치국가개념을 민주주의와 법적 안정성의 요청에 합치되는 국가에 한정하는 것은 그러한 성질을 띠는 강제질서만이 ‘진정한’ 법질서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전제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제는 자연법적 선입견이다. 전제주의적 성격을 띠고 무제한적인 탄력성으로 인해 결코 법적 안정성을 제공하지 못하는 상대적으로 집중화된 강제질서도 법질서이며,―우리가 질서와 공동체를 분리하는 한―그러한 강제질서를 통해 구성된 공동체 역시 법공동체이자 그 자체 국가인 것이다. 일관된 법실증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법이란 국가와 꼭 마찬가지로 인간행위의 강제질서가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도 인식될 수 없으며, 이로써 이러한 질서의 도덕가치 또는 정의가치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국가는 법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법적으로 파악될 수 있을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470-471쪽)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