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 켈젠(변종필/최희수 역), 《순수법학》, 길안사, 1999
Hans Kelsen, Reine Rechtslehre (1963)
<차 례>
[10] - 법동태학 中(법질서의 단계구조 1: 위계질서)
[11] - 법동태학 下(법질서의 단계구조 2: 규범충돌)
32. 법률관계
지금까지의 설명을 바탕으로 켈젠은 ‘법률관계’ 개념을 재검토한다. 전통법학은 ‘법률관계’라는 말을 권리(전통적 의미에서의)와 의무의 주체들 사이의 관계를 가리키는 용어로만 썼는데, 켈젠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이를 비판한다.
i) 하나는, 이러한 관념은 법질서가 만들어내는 관계들의 양상을 충분히 포착하지 못하는 협소한 정의라는 것이다. 법질서가 구성하는 관계는 단지 ‘A가 B에게 급부할 의무를 지고, B가 A에 대해 권리를 갖는 관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법질서는 규범을 창조할 권한을 지닌 자와 이를 적용하는 자 간의 관계, 그리고 규범을 창조・적용하는 자와 이를 통해 의무와 권한을 부여받는 자 간의 관계도 구성하기 때문이다. 가령 입법기관과 법원·행정기관 사이의 관계, 법원·행정기관과 그 규범에 의해 의무·권한을 갖게 되는 사인들 간의 관계, 강제집행을 할 권한을 가진 자와 그 집행의 대상이 되는 자 사이의 관계 모두 ‘법질서가 만들어낸 관계’이다. 이들을 빼고 단지 ‘의무주체와 권리주체 사이의 관계’만을 법률관계라 부르는 것은 지나치게 협소한 관념이라는 것이다.
「전통적 이론에 따르면 법률관계개념은 법의무개념 및 권한개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권리주체 상호간의 관계, 즉 법의무의 주체와 그에 상응하는 권한주체 상호간의 관계(이 경우 ‘의무’와 ‘권한’은 전통적 이론에 따라 이해된다)로 정의된다. … 전통적 정의(定義)는 너무 협소하다. 법질서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권리주체 상호간의 관계 … 뿐만 아니라, 규범을 창조할 권한 있는 개인과 이 규범을 적용할 권한있는 개인 상호간의 관계 및 규범을 창조하거나 적용할 권한 있는 개인과 이 규범에 의해 의무를 지거나 권한을 갖게 되는 개인 상호간의 관계도 창설하기 때문이다.」(262쪽)
또 켈젠은, 전통법학이 사법관계를 ‘대등한 당사자 간의 관계’, 공법관계를 ‘국가와 국민 사이의 상하관계’라고 설명하는 것 역시 적절치 않다고 본다. 상하관계라고 하지만 사실은 i) 사적 관계에서는 의무의 주체와 그 의무의 상대방이 되는 권한주체의 관계가 중심에 놓이고, ii) 공적 관계에서는 규범을 창조·적용할 의무를 지는 기관과, 그 규범에 의해 의무·권한을 부여받는 개인의 관계가 문제될 뿐이다. 차이는 공간적・위계적인 상하관계의 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규범의 단계와 기능상의 위치에 있을 뿐이다. 이때 규범을 창조하거나 적용하는 자들도 그것들을 수권하는 상위규범에 예속된다는 점에서 결국 규범에 대한 관계에서는 ‘하위자’에 불과하다. 실제로 ‘위’에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규범이고, 사람들은 언제나 그 ‘아래’에 놓인다. 입법기관·재판기관은 법질서 바깥에 있는 상위의 존재가 아니라, 법질서에 의해 기능이 부여된 주체들일 뿐이다. 상하관계라는 것은 결국 법규범이 개인들의 행위를 규율하고 있다는 사실을 ‘위에서 수권한다, 명령한다’식의 은유로 표현하는 단어에 불과한 것이다.
「만약 전통적 법학이 사적 법률관계와 공적 법률관계를 구별하고, 전자가 대등한 당사자간의 관계인 반면에 후자는―국가와 국민과의 관계이기 때문에―상하관계라는 점에서 양자의 차이점을 찾는다면, 전통적 법학은 전자의 경우에는 법의무의 주체와 그에 상응하는 권한의 주체 상호간의 관계가 문제되는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법규범을 창조하거나 적용할 권한 있는 개인과 이 법규범에 의해 의무와 권한을 갖게 되는 개인 상호간의 관계가 문제된다는 점을 그러한 차이의 본질로 삼고 있음이 명백하다.」(263쪽)
「법규범을 통해 의무나 권한을 가지게 되는 개인들에 비해 ‘상위’에 있는 것은 규범을 창조하거나 적용하는 개인들이 아니라 의무나 권한을 확정하는 규범들일 뿐이다. … 이 경우 만약 우리가 개인들을 법질서의 규범들에 비해 ‘하위’에 있는 것으로, 법질서의 규범들을 개인들에 비해 ‘상위’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면, 우리는 일종의 공간적 비유를 사용하는 것이며, 이것은 법질서의 규범들이 개인들의 행위를 명령・수권하거나 적극적으로 허용한다는 것, 즉 법질서의 규범들이 개인들의 행위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니라는 점을 유의하여야 한다.」(264쪽)
켈젠은, ‘법 자체를 대상으로 삼는 인식’ 즉 법학적 인식의 관점에서는 개인 상호간의 관계가 아니라 규범 상호간의 관계, 또는 규범에 의해 규정된 요건사실들 상호간의 관계만이 진정한 고찰대상이라고 한다. 법규범은 개인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개인의 행위(작위·부작위), 또는 그 행위와 결합된 사실을 내용으로 삼기 때문이다. ‘법률관계’라고 할 때 엄밀히 말해 우리가 다루는 것은 개인들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규범과, 규범에 의해 규정된 사실상태들 사이의 구조다.
「법, 다시 말해 법규범에 지향된 인식관점에서 볼 때 개인들 상호간의 관계가 아니라―그 개인들에 의해 창조되거나 적용되는―법규범들 상호간의 관계만이 또는 법규범에 의해 규정된 요건사실들 상호간의 관계만이 고찰대상이 된다.」(264-265쪽)
ii) 다른 하나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전통법학에서 말하는 ‘법률관계’, 즉 ‘권리의무관계’에서의 ‘권리’란 단지 법의무의 반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권리’란 주관적 사권(쟁송제기권)이나 정치적 권리라는 켈젠의 입장에서는, 통상적 민사관계에서의 (급부)청구권은 단지 그 상대방이 부담하는 법의무에 상응하는 반사에 불과하며, 이때 소위 ‘권리’와 ‘의무’는 실질적으로 동일한 내용을 서로 다른 측면에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켈젠은 ‘권리의무관계’라는 의미에서의 ‘법률관계’ 개념은, 이 둘의 구분을 마치 법적으로 의미 있는 것처럼 전제하는 용어로서, 실은 ‘법의무가 존재한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는 공허한 동어반복이라고 한다.
「법적으로 의미있는 사태에 대한 설명이 의무지워진 행위를 제재의 조건인 행위의 반대행위라고 말함으로써 완전하게 기술되는 것이라면, 그 누군가가 그에 대해 어떤 타인이 의무지워진 방식대로 행위할 것이라는 점에 대한 (반사적) 권리를 가진다는 언명은 그 타인이 그 누군가에 대해 일정한 방식으로 행위할 의무를 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265쪽)
켈젠은 ‘두 개인 사이의 권리-의무관계’라는 것은 법적 권능으로서의 주관적 사권의 경우에 비로소 존재한다고 본다. 즉,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의 의무위반에 대해 소를 제기해 법원이 제재를 명하는 개별적 법규범을 창설하도록 절차를 개시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질 때, 비로소 두 개인 사이에 ‘법률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법률관계는 권능을 가진 자와 의무를 지는 자 사이의 관계, 동시에 소송제기라는 행위와 불법행위라는 행위 사이의 관계, 따라서 제재의 조건으로 설정된 요건사실들 상호간의 관계로 파악된다.
「두 개인 상호간의 법률관계,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법질서를 통해 규정되는 두 개인의 행위 상호간의 법률관계는 특수한 의미에서의 주관적 권리의 경우에 존재한다. 즉 일정한 방식으로 행위해야 할 의무부담자의 상대방인 개인에게 법질서가 일정한 법적권능, 즉 소송을 통해 법원에 의한 개별적 법규범―이것은 의무위반적 행위를 하는 개인에게 일반적 법규범에 예정된 제재가 가해질 것을 명령한다―의 정립에 이르게 될 절차에 착수할 법적 권능을 부여하는 경우에 존재한다. 이 경우 법률관계는 그러한 법적 권능이 부여된 개인과 의무를 지는 개인 상호간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관계는 법적 권능의 행사를 그 본질로 하는 행위(소송)와 제재의 대상이 되는 행위(불법행위) 상호간의 관계에 다름 아니다.」(265-266쪽)
이는 전통법학이 말하는 공법관계(공적 법률관계)와 구조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켈젠은 말한다. 이 경우 원고가 갖는 법적 권능이나 국가기관인 법원이 갖는 재판권이나, ‘제재를 명하는 개별적 법규범의 창조’에 참여하는 권한이라는 점에서는 같다는 것이다. 만약 법원의 기능이 국가기관의 기능으로서 국가에 귀착되고 국가와 피고 사이에 ‘상하관계’가 있다고 표현한다면, 같은 이유에서 원고와 피고 사이에도 상하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상하관계란 결국 법질서와 개인 사이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쟁송에서도, ‘상위’에 있는 것은 국가(기관으로서의 재판부)라는 인격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법질서의 규범들이다. 국가기관인 개인이 다른 개인의 행위를 규율하는 규범을 창조·적용한다는 사실을 공간적 은유로 말한 것이 ‘국가가 개인보다 위에 있다’는 표현인 것이다. 이 은유를 걷어내고 나면, 남는 것은 오로지 법규범의 구조, 곧 ‘조건으로서의 인간행위에 효과로서의 제재를 결부시키는 규범이 존재한다’는 진술뿐이다.
「왜냐하면 원고가 가진 법적 권능의 본질은 의무위반적 행위자에 대해 제재를 명하는 개별적 법규범의 창조에 참여할 권한이기 때문이다. … 상하관계, 즉 전통적 이론에 따를 경우 법공동체(법원을 통해 대표되는 국가)와 피고 상호간의 상하관계는 원고와 피고 상호간에도 존재한다. 이 경우에 존재하는 상하관계란 법질서와―이 법질서에 의해 그 행위가 규율되는―개인 상호간에 존재하는 상하관계와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그 개인의 행위가 법질서의 규범내용을 이루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한 비유적 설중을 통해 선언되고 있는 권위는 법질서의 권위이며, 이러한 권리는 법질서 고유의 규정들에 따라 일정한 개인들에 의해 창조되고 적용되면서 다른 개인들에게 의무와 권한을 부여한다.」(266-267쪽)
켈젠은 쌍무계약의 경우 ‘법률관계’란 두 의무 사이의 결합관계를 가리킨다고 한다. 가령 매도인의 인도의무와 매수인의 대금지급의무는 상호 견련되어 있으며, 이 경우 ‘법률관계’는 매도인의 의무를 정하는 규범과 매수인의 의무를 정하는 규범 상호간, 보다 구체적으로는 각 당사자에게 명령된 행위들 상호간의 관계로 파악된다.
「일방의 타방에 대한 의무가 타방의 그 일방에 대한 의무와 결합되어 있는 경우, 예컨대 매매계약의 경우, 예컨대 매매계약의 경우와 같이 물건의 인도의무가 판매대금 지급의무와 결합되어 있는 경우에는 특별한 유형의 법률관계가 존재한다. 이 경우 법률관계는 매수인의 의무에 관한 규범과 매도인의 의무에 관한 규범 상호간 혹은 매수인과 매도인 상호간,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법질서에 의해 명령되고 있는 일방의 행위와 법질서에 의해 명령되고 있는 타방의 행위 상호간에 존재한다.」(267쪽)
마지막으로 켈젠은, 법률관계 개념을 ‘법형식이라는 옷을 입은 생활관계’로 보는 사회학적 관점에도 정면으로 반대한다. 이러한 관점은 성적·경제적·정치적 생활관계가 먼저 사회 속에 실재하고, 법은 단지 그 위에 외적 형식과 규정을 부여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하지만, 실제 법률관계는 ‘법에 의해 단순히 외양만 규정된 생활관계’가 아니라 법규범을 통해 비로소 구성되고 창설되는 관계라는 것이다.
「법률관계는 법규범을 통해 그 외양이 규정되는 생활관계, 다시 말해 흡사 법형식이라는 옷을 입은 그 어떤 내용이 아니라 형식 그 자체이며 법규범을 통해 비로소 구성되고 창설되는 관계이다. 예컨대 혼인관계는 법을 통해 단순히 특수한 형식만을 획득하는, 이성간의 성적・경제적 관계의 복합체가 아니다. 법질서가 없이는 혼인과 같은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267-268쪽)
가령 ‘혼인이라는 생활관계가 먼저 있고, 그 위에 법이 외적 틀을 얹는다’는 설명은 순수법학 관점에서 볼 때 틀린 설명이다. 혼인이라는 법률관계는 법규범의 복합체로서만 존재하며, 이 규범 복합체가 특정한 의무·권능의 집합을 구성한다. 이때 법률관계란, 규범들 상호간의 관계 혹은 그 규범에 의해 구성된 요건사실들(행위 등) 상호간의 관계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이는 사실적 차원의 인간관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유효한 법질서에 대한 관념이 없다면 애초에 성립하지 않았을 인간관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혼인·계약 등 많은 관계는, ‘법적으로 유효한 행위’라는 관념이 행위 동기로 작용하지 않았다면 현실에서도 성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에서, 법질서에 대한 관념을 통해 창조된 사실적 관계이기도 하다. 법률관계는, 순수법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무엇보다 법규범의 구조와 그 상호관계를 가리키는 개념이며, 인간관계는 이 규범구조를 통해서만 법학의 대상이 된다.
33. 권리의 주체―인(人)
a) 권리주체
이어 켈젠은 전통적 이론에서 말하는 ‘권리주체(Rechtssubjekt)’ 개념도 다시 검토한다. 전통법학에서 권리주체는 ‘권리와 의무의 주체’라고 정의된다. 그리고 언어관용상 법규범을 창조하거나 적용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자는 (국가의) ‘기관’으로 불린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권리를 법의무의 반사가 아닌, 소송을 통해 의무불이행을 주장하고 제재를 명하는 개별적 법규범의 창조에 참여할 수 있는 법적 권능(주관적 사권)으로 이해하는 이상, ‘권리주체’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렇다고 법규범창조적 권능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 권리주체를 법기관과 동일시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이에 켈젠은 ‘권리주체’는 단지 법적 의무의 주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전통적 이론에 따를 경우 권리주체(Rechtssubjekt)란 법적 의무 또는 권한의 주체가 되는 자이다. 권한을 단순히―법적 의무를 통해 함께 규정되는―반사적 권리가 아니라 소송을 통해 법적 의무의 불이행을 주장할 수 있는 법적 권능, 즉 의무불이행에 대한 대웅행위로서 제재의 집행을 명령하는 법원의 재판(즉 개별적 법규범)의 창조에 참여할 수 있는 법적 권능으로 이해한다면, 그리고 법규범을 창조하거나 법규범을 적용할 수 있는 권한으로서의 법적 권능의 주체가 항상 권리주체라고 지칭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권리주체라는 개념을 법적 의무의 주체에 국한시키고 법적 의무의 주체라는 개념을 법적 권능의 주체라는 개념과 구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268-269쪽)
켈젠은, 순수법학의 관점에서 ‘권리주체’나 ‘기관’이라는 인적 표현은, 실체를 지시하는 개념이 아니라, 단지 규범이 지시하는 인간행위의 기능적 차이를 가리키는 보조개념일 뿐이라고 한다. 어떤 개인이 ‘의무의 주체’라는 말은 그 사람의 일정한 행위가 의무의 내용이며, 그 반대행위가 제재의 조건이 된다는 뜻이고, 어떤 개인이 ‘법적 권능의 주체’라는 말은 그 개인의 일정한 행위가 규범의 창조나 적용에 참여한다는 뜻일 뿐이다. 따라서 법을 과학적으로 서술할 때의 1차적 대상은 ‘개인’ 그 자체가 아니라 규범내용으로서의 행위(작위·부작위)이며, 그 위에 ‘권리주체’나 ‘법기관’이라는 인격적 용어는 설명 편의를 위한 은유에 불과한 것이다.
「이 경우 유의해야 할 것은, 어떤 개인이 법적 의무의 주체라거나 법적 의무를 가진다고 말하는 것은 곧 그 개인의 일정한 행위가 법질서에 의해 확정된 의무의 내용이 되며 따라서 그 반대행위가 제재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는 점, 또한 어떤 개인이 법적 권능이나 권한의 주체라거나 법적 권능 또는 권한을 가진다고 말하는 것은 곧 법질서에 따라 그 개인의 일정한 행위에 의해 법규별이 창조되거나 적용된다는 것 혹은 그 개인의 일정한 행위들이 법규범의 창조나 적용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이다.」(269쪽)
「‘권리주체’나 ‘법기관’이라는 인적 개념들은 법의 서술을 위해 불가피한 개념들은 아니다. 이들은 반사적 권리개념과 같이 설명의 편의를 위한 단순한 보조개념에 불과하다. 이들 개념이 지닌 보조개념으로서의 성격을 인식할 경우에만 우리는 그 개념들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한 성격을 인식하는 것이 순수법학의 과제이다. 비록 순수법학이 이들 개념을 사용하더라도, 바로 이와 같은 의미로 사용할 따름이다.」(269-270쪽)
b) 자연인
켈젠은 권리주체 개념과 연결된 ‘인격’과 ‘자연인’ 개념을 분석한다. 전통법학은 ‘권리주체’와 ‘인격’을 거의 동의어로 사용한다. 즉 인격이란 ‘권리·의무의 소지자’라는 추상적 개념이며, 그 소지자가 인간이면 자연인, 단체면 법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연인은 ‘자연적 인격’, 법인은 ‘인위적·법학이 구성한 인격’이라고 한다.
「전통적 이론은 권리주체개념을 인격과 동일시한다. 그에 따르면 인격이란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말한다. 그러나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 예컨대 결사나 주식회사, 시자치단체 등과 같은 일정한 단체도 역시 인격으로 설명되고 있기 때문에, 인격개념은 권리와 의무의 ‘소지자’로 정의되며, 이 경우 인간뿐만 아니라 이상과 같은 다른 존재들도 소지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 인간이 고려대상이 되고 있는 권리나 법적 의무의 소지자인 경우를 자연인(physische Person)이라 부르며, 이상과 같은 다른 존재들이 고려대상이 되고 있는 권리나 법적 의무의 소지자인 경우를 법인(juristische Person)이라고 부른다.」(273-274쪽)
그러나 켈젠은 이 구분 자체가 오해라고 한다. 우선, ‘법질서가 인간에게 인격성을 부여한다’는 말의 의미는 결국 ‘법질서가 인간행위를 의무와 권리의 내용으로 삼는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법)인격을 가진다’는 표현은, ‘법적 의무와 주관적 권리를 가진다’는 표현 외에는 달리 표현하는 바가 없다.
「그렇다면 이제 법질서가 인간 또는 일정한 인간에게 법인격성, 즉 인격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전통적 이론이 표현하고자 하는 사태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법질서가 인간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권리를 부여한다는 것, 다시 말해 법질서가 인간의 행위를 의무와 권리의 내용으로 삼는다는 데 있다. ‘인격이다’ 또는 ‘법인격성을 가진다’라는 말은 법적 의무와 주관적 권리를 가진다는 말과 동일한 것이다.」(274-275쪽)
그렇다면 ‘자연인’ 역시 법이 구성한 법적 인격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인은 단순히 ‘실재하는 인간 개인’이 아니라, 동일한 인간행위를 내용으로 하는 의무·권리의 복합체(규범복합체)의 통일체를 의인화한 개념이다. 나무가 줄기·가지·잎·꽃이라는 요소들의 통일체를 가리키는 총괄명칭이지, 그 요소들 외에 독립된 실체가 아니듯, 인격도 의무와 권리들의 통일체를 수사적으로 재현한 이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법적 의무와 주관적 권리의 ‘소지자’로서의 인격은 법적 의무 및 주관적 권리와 구별되는 어떤 것이 아니며, 그러한 법적 의무와 권리의 소지자를 곧 인격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예컨대 우리가 실재론적 사고를 표현하는 명사들을 사용하여 줄기, 큰 가지, 잔가지, 잎사귀 및 꽃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하는 나무가 이러한 줄기, 큰 가지, 잔가지, 잎사귀 및 꽃과 구별되는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이러한 요소들의 통일체를 의미하는 총합개념에 불과한 것과 마찬가지다. … 이러한 법적 의무와 주관적 권리의 통일체가 인격개념 속에 비유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인격이란 이러한 통일체의 의인화일 뿐이다(275쪽).
이 관점에서 보면, 자연인과 법인 사이의 차이는 실재하는 인간이냐, 단체냐의 차이가 아니다. 두 경우 모두에서 ‘권리와 의무의 소지자’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위를 내용으로 하는 법규범들의 복합체다. 법인의 권리·의무도, 자연인의 권리·의무도 결국 특정한 인간행위를 통해서만 행사·이행·침해될 수 있기 때문에, ‘인간과의 관련성’은 자연인과 법인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오로지 인간의 행위를 통해서만 권리의 행사나 의무의 이행 또는 그 침해가 가능하다. 따라서 인간과의 관련성이 자연인과 법인을 구별하는 계기가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른바 자연인 역시―법인과는 달리―일정한 자격을 갖춘, 즉 권리와 의무의 소지를 그 특징으로 하는 인간으로 정의될 수 없다. … 자연인 역시 권리와 의무를 가진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를 그 내용으로 하는 의무와 권리의 통일체인 것이다.」(275-276쪽)
그래서 켈젠에게 ‘자연인’이란 실증적으로 존재하는 인간과 동의어가 아니다. ‘자연인’이란 ‘동일한 인간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권한을 부여하는 법규범들의 통일체’, 곧 규범복합체의 ‘의인화’라는 점에서, 법인과 마찬가지로 법학이 만든 법적 구성물, 보조개념이다. 인격·자연인·법인은 모두 ‘권리주체’라는 이름 아래 규범구조를 인간이라는 형상으로 묶어 표현하는 도식적 장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른바 자연인이란 인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동일한 인간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권한을 부여하는 법규범들의 통일체, 즉 의인화된 통일체인 것이다. 자연인은 자연적 실재가 아니라 법학에 의해 창조된 법적 구성물이며, 법적으로 의미 있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보조개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른바 자연인은 법적 인격인 것이다.」(276쪽)
c) 법인(단체)
통상 전통법학은 ‘단체’를 ‘법질서가 의무를 부과하고 주관적 권리를 부여하고 있는 인간들의 결합’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때 그 의무와 권리는 단체 구성원 개인들의 의무·권리가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단체는 일반적으로 법질서가 의무를 부과하고 주관적 권리를 부여하고 있는 인간의 결합으로 정의되며, 이 경우 의무나 권리는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그 단체를 구성하고 그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인간의 의무나 권리로 간주될 수 없다.」(277쪽)
즉 단체의 권리·의무는 구성원들의 권리·의무와 구별되는 층위의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그 권리·의무가 단체 구성원의 이익과 관련되지만, 전통적 이론은 그것을 구성원 개인의 권리·의무로 돌리지 않고 ‘단체의 권리·의무’라고 해석하며, 단체에게도 ‘인격’을 부여한다. 가령 단체가 주택을 임차하거나 토지를 매수하는 경우 임차권·소유권의 주체는 구성원이 아니라 단체 자체이고, 권리침해시 소를 제기하는 주체도 개별구성원이 아니라 단체이며, 강제집행으로 징수된 금전도 구성원 재산이 아니라 단체 재산에 귀속된다는 것이다.
「주택임대인에게 임차료를 지불하거나 토지매도인에게 매매대금을 지불해야 할 의무 또는 자치단체에 토지세를 납부해야 할 의무는 그 구성원의 의무가 아니라 단체의 의무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즉 단체가 불법행위를 행할 경우, 임대인이나 매도인의 제소 또는 조세당국의 처벌절차는 구성원이 아니라 단체 자신을 상대로 진행되기 때문이다.」(277쪽)
흔히 단체가 그 자체 행위인격으로서 ‘행위’를 하고, 법질서가 단체에게 법의무와 주관적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단체의 행위라는 것은 실제로는 개인의 행위다. 가령 ‘단체가 계약한다’, ‘단체가 소를 제기한다’, ‘단체가 불법행위를 한다’라고 할 때,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은 언제나 어떤 개인의 행위, 즉 기관의 행위이다. 이는 앞서도 이야기했듯 의제적 조작, 즉 귀착의 논리에 따라 단체의 행위로 간주되는 것이지 단체 자체가 자연적 실체가 있어서 행위인격이 된다고는 할 수 없다. 단체의 의무와 단체의 권리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로 의무를 부담하거나 쟁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은 인간에 한정되며, 이것은 의제를 통해 법인에게 귀착되는 것이다.
「법인인 단체의 법률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유형의 방법이 있다. 즉 행위인격으로서의 단체가 일정한 행위(특히 법적 행위)를 정립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방법, 예컨대 단체가 계약체결과 같은 법률행위를 하고 소송을 제기하며 나아가 단체가 법적 의무를 이행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행위를 통해 법적 의무를 침해함으로써 불법행위를 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방법이 그 하나이고, 법질서가 단체에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주관적 권리를 부여하기 때문에 단체가 법적 의무나 주관적 권리의 주체가 된다고 설명하는 방법이 다른 하나이다. 단체를 행위인격으로 파악하는 전자의 설명방법에 따를 경우, 언제나 일정한 개인의 행위가 거론되며 단체는 이 개인의 행위를 통해 행위한다. 단체의 작위나 부작위로 해석되는 것, 법인과 관련되고 법인에게 귀착되는 것은 언제나 일정한 인간의 작위나 부작위이다. 법인인 단체가 일정한 인간을 통해 행위하고 그 인간의 행위가 법인에게 귀착되는 경우, 이러한 인간은 법인의 기관으로 지칭된다. 행위인격으로서의 단체의 문제는―이미 앞서 다루었던―공동체기관의 문제, 즉 특정한 개인에 의해 수행된 기능의 공동체에의 귀착의 문제이다.」(278쪽)
「법인인 단체를 의무와 주관적 권리의 주체라고 설명하는 방법에 따를 경우,―인간의 행위가 의무와 권리의 내용을 구성하는 한―언제나 일정한 인간의 의무와 권리로서의 의무와 권리가 거론된다. 하지만 이러한 의무와 권리는 법인의 의무와 권리로 해석되고 법인에 관련되며 나아가 법인에 귀착된다. 따라서 법인의 의무와 권리는 인간(즉 전통적 이론에 의하면 자연인)의 의무와 권리가 아니라고 보는―또는 동시에 인간의 의무와 권리가 될 수 없다고 보는―견해는, 물론 법인인 군체에 관한 전통적 이론은 이를 인정하고 있지만, 이미 처음부터 배척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279쪽).
요컨대 ‘법인의 권리·의무는 인간의 권리·의무와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식의 견해는 처음부터 잘못된 전제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법인의 행위나 의무・권리라고 할 때 실제로 존재하고 또 문제되는 것은 언제나 인간의 행위와 그에 대한 규범뿐이며, 법인은 그것을 묶어주는 하나의 법적 구성·의인화일 따름이다.
◎ 행위주체로서 법인
둘 또는 그 이상의 개인이 특정한 경제적·정치적·종교적·인도적 목적을 공동으로 추구하기로 하고, 그 협력행위를 하나의 특별한 규범질서에 따라 조직화할 때, 그 규범질서는 단체의 정관이 된다. 이 정관은 국가법질서가 규정한 요건을 갖추면 효력을 취득한다. 이로써 단체는 국가법질서라는 전체 법질서 안의 부분법질서로 편입된다. 즉 단체는 실체가 아니라 ‘정관이라는 규범질서가 만들어내는 의인화된 구성물’인 것이다. 단체의 행위란 단체라는 실체가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정관이 규정한 개인의 행위가 ‘단체의 행위’로 귀착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단체를 구성하는 규범질서는 그 단체의 정관이며, 이것은 국가의 법질서가 규정하고 「있는 법률행위를 통해 효력을 가지게 된다. … 단체란 다름 아닌 이들 인간의 일정한 행위가 부분법질서에 의해 규율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비유적 표현일 뿐이다.」(279-280쪽)
「인간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정관에 의해 규정된 일정한 작위 또는 부작위를 통해 비로소 단체, 즉 정관에 의해 구성되는 공동체에 소속된다. 정관에 의해 규정된 일정한 작위나 부작위만이 단체에 귀착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위가 단체에 귀착된다는 것은 인간의 행위가 그 행위를 규정하고 공동체를 구성하는―귀착이라는 말로써 의인화되어 있는―규범질서와 관련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280쪽).
사유상으로 구성원의 모든 행위는 규범질서에 의해 공동체에 귀착될 수 있다. 즉 누구나 ‘기관’이 될 수 있다. 다만 현실의 언어사용에서 ‘기관’이라는 말은 분업적으로 수행되는 기능, 즉 정관이 정한 방식에 따라 특정한 자격으로 임명된 개인이 수행하는 기능에만 붙여진다.
「그러나 언어관용상 단지 분업적으로 수행되는 기능, 즉 기능수행을 위해 임명된 개인들에 의해 수행되는 기능만이 공동체에 귀속되고 따라서 정관의 규정에 따라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개인들만을 ‘기관’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단체의 ‘기관’과 단체의 구성원은 구별될 수 있다.」(280쪽).
「우리가 이러한 기능들을 단체에 귀속시키고 단체를 행위인격으로 설명하며 나아가 … 단체가 행위한다라고 말하는 경우, 이미 기관성의 일반적 문제를 논의하면서 설명했던 바와 같이, 우리는 의인화적 은유를 통해 일종의 의제를 행하는 것이며, 이러한 의제는 법정대리인의 법적 행위를 그에 의해 대리되는 행위무능력자에게 귀착시키는 경우와 동일한 유형의 것이다.」(281쪽)
켈젠이 특히 경계하는 것은, 이 의인화를 실체화해 버리는 태도이다. 즉, 법인이 마치 실제로 하나의 초인간적 실체나 유기체처럼 존재하는 것처럼 취급하면서, ‘국가라는 실체가 자기 법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같은 질문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켈젠에게 이런 질문은, 원래는 복잡한 법적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기 위해 만든 보조개념(의인화)을 실체로 오해하면서 생겨나는 가짜 문제에 불과하다.
「의인화적 은유에 불과한 것을 실재적 존재나 일종의 초인간 또는 유기체로 잘못 해석하는 것은 복잡한 법적 사태에 대한 설명을 단순화하거나 명료화할 목적으로 법학에 의해 구성된 사유방편 또는 보조개념을 실체화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할 것이다. 이러한 실체화는 기술하고자 하는 사태의 본질을 흐리게 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 해결을 위해 헛된 학문적 노력을 기울이게 하는 그릇된 문제의식을 낳게 된다.」(281쪽)
◎ 의무와 권리의 주체로서 법인
켈젠은 법인의 ‘권리’나 ‘의무’ 역시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결국 인간의 행위를 규율하는 규범의 구조 속에서 설명될 수 있는 기능적 개념이라고 한다. 법인의 권리와 의무란 궁극적으로 인간행위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으며, 법인 스스로가 독립적 실체로서 의무를 이행하거나 위반할 수는 없다. 법인이 의무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단지 정관이 특정 역할을 개인에게 부여하고, 그 행위가 단체의 행위로 귀착됨을 의미한다. 법인의 의무란 정관이 규정한 개인의 의무로서 단체에 귀착된 것을, 법인의 권리란 정관이 규정한 기관의 권능이 단체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것을 말한다.
「단체를 행위인격으로 설명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의무와 권리의 주체로 설명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의인화적 은유가 사용되며, 이 경우 ‘권리’는 전통적 언어관용에 따른 기술적 의미에서의 주관적 권리, 즉 법적 권능뿐만 아니라 적극적 허용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281쪽)
「이미 강조한 바와 같이, 의무나 권리는 언제나 일정한 인간의 행위를 그 내용으로 한다.」(282쪽)
「이들 개인은 그 속성상 단체의 기관으로서 의무를 이행하거나 침해하며 또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임이 분명하다.」(282쪽)
i) 법의무는 항상 ‘제재의 조건이 되는 금지행위’와 결부되어 있으며, 그 의무를 부담하는 주체는 자신의 행위로 제재를 초래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인간이다. 법문상 법인이 직접 의무의 주체로 규정되더라도 실제로는 인간의 행위로 인해 그로 인한 제재가 단체에 의제적으로 귀착되는 것이다. 켈젠은 법인의 불법행위능력이라는 것도 이러한 규범적 구성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법의무의 주체는 자신의 행위를 통해 제재를 야기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개인, 즉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고 중지할 수도 있는 개인, 즉 잠재적 범죄인이다.」(283쪽)
「법질서가 법인인 단체의 것으로 해석되는 의무를 확정하고 있는 경우에 나타나는 사태의 본질은 … 개인에 대한 규정 … 은 단체의 정관에 위임하고 … 제재라는 해악의 감수를 단체에 귀속시킬 수 있는 그런 방식으로―제재를 규정한다는 점에 있다.」(284쪽)
「여기서는 우선 의무란―귀착이라는 의제에 의존하지 않고―자신의 행위를 통해 이행되거나 침해될 수 있는 개인의 의무라는 점, 하지만 의무불이행에 대해서는 이 개인이 아니라 다른 개인(또는 개인들)이 그 인적・물적 책임을 지게 된다는 점만을 확인하고자 한다. 정관은 자신의 행위를 통해 의무를 이행하거나 침해할 수 있는 개인을 규정함으로써, 즉 그 개인에게 또 그 개인에게만 그러한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함으로써―다시 말해 광의의 의미에서 수권함으로써―간접적으로 이러한 행위까지도 규정한다. 따라서 이와 같이 규정된 개인의 의무이행행위나 의무침해행위 및 이를 통해 이행되거나 침해된 의무는 단체를 구성하는 규범적 부분질서인 정관과 관련될 수 있다. 의무가 법인인 단체에 귀착되고 단체가 의무의 주체로 해석되며 나아가 의무를 사실상 이행하거나 침해하는 개인이 단체의 기관으로 해석되는 경우에 존재하는 사태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러한 의제적 귀착을 통해 법인은 의무부담능력과 범죄능력(또는 불법행위능력)을 가진 것으로 설명된다.」(284쪽)
ii) 기술적 의미에서의 주관적 권리, 다시 말해 ‘소송을 통해 의무불이행을 주장할 수 있는 법적 권능’도, 비록 법문상 법인이 이를 직접 갖는 것처럼 표현되지만, 실제로는 정관에 의해 특정 기관에게 부여된 권능이 행사되고 그것이 법인에게로 귀착될 뿐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관이 주체가 되어 기관의 행위능력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기술적 의미에서의 주관적 권리, 즉 소송을 통해 의무불이행을 주장할 수 있는 법적 권능 … 이 단체에 귀속되는 경우, 이러한 법적 권능은 정관에 의해 규정된 기관에 의해 행사될 수 있다. 이러한 권리의 주체는 기관이다.」(293쪽)
「단체에 대한 의무 또는 단체의 반사적 권리에 대해 말하는 경우 이러한 귀속에는 … 정관이 규정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즉 법인인 단체에게 법적 권능을 귀속시키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단체를 구성하는 그와 같이 의인화된 부분법질서와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294쪽)
앞서도 언급했듯 귀착이란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귀착은 규범적 구성의 문제일 뿐 실제적·형이상학적 실체 존재와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가령 법질서는 법인은 의무부담능력은 인정하면서 불법행위능력(범죄능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 법인은 ‘이행할 수 있지만 침해할 수는 없는’ 방식으로만 의무의 주체가 된다.
「귀착이란 실행될 수 있는 가능한 사유작용이긴 하지만 반드시 실행되어야 하는 사유작용은 아니다.」(285쪽)
「단체는―이행할 수는 있지만 침해할 수는 없는―의무의 주체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이러한 제한적 의미에서 의무부담능력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285쪽)
◎ 책임주체로서 법인
한편, 켈젠은 법인의 ‘범죄능력’(Deliktsfähigkeit)과 ‘책임’(Verantwortlichkeit)도 엄밀히 구별한다. 범죄는 언제나 개인의 행위이며, 따라서 실제 의미에서의 범죄능력은 인간에게만 존재한다. 법인이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어디까지나 인간의 행위를 단체의 것으로 귀착시키는 특정한 해석 양식에 기반할 뿐이다. 따라서 단체의 범죄능력을 부인하면서 책임만을 인정할 수도 있다. 단체를 직접적으로 범죄행위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책임의 귀착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단체의 범죄능력을 부인한다고 해서 동시에 단체의 책임가능성마저 부인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경우 단체의 책임은 자신의 범죄, 즉 단체에게 귀착가능한 범죄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타인의 범죄, 즉 정관에 의해 의무를 이행하도록 규정된 개인이 범한 범죄에 대한 책임일 뿐이다.」(290-291쪽)
법인에 대한 형사제재의 직접적 대상은 대체로 재산인데, 그 재산은 ‘단체재산’이자 동시에 구성원들의 집단재산이다. 단체 기관의 행위가 정관에 의해 규율된 범위 안에 있는 경우, 그 행위는 단체에 귀착되고, 그에 따른 제재는 단체의 재산을 대상으로 집행된다. 이때 책임의 실질적 부담자는 단체의 구성원이다.
「국가법질서가 단체에게 부과하고 있는 의무의 불이행에 대한 대응행위로서 이 재산을 대상으로 하여 강제집행이 행해지는 경우, 강제행위는 기관, 즉 의무불이행에 대해 인적 책임만을 지는 기관을 대상으로 행해진다. 이에 반해 단체가 재산의 주체로 간주되는 경우라면, 단체는 그의 재산을 통해 책임을 진다고 말할 수 있다.」(291쪽)
「일반적인 언어관용에 따를 경우 이러한 재산을 이루는 권리들은 단체에 귀착된다. 그러나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우리는 이러한 권리들을 단체구성원의 공동권리 또는 집단권리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이들 권리를 단체구성원에게 집단적 권리로서 귀착시킬 수 있다. 어쨌든 이것이 권리의 소지자로서 의제적 인격을 구성하는 해석보다 좀 더 현실적인 해석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가법질서가 단체에 부과하고 있는 의무를 단체의 기관이 이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단체 구성원이 그 집단재산으로써 책임을 진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민사적 강제집행의 대상이 되는 의무불이행에 대해 단체가 책임을 진다고 말할 때 염두에 두는 사태는, 강제집행의 대상이 되는 재산에 대한 처분권을 가지는 기관은 인적 책임을 지고, 단체 또는 단체구성원은 단체의 재산 또는 단체구성원의 집단재산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재산을 통해 책임을 진다고 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단체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면, 단체의 재산 또는 단체구성원의 집단재산으로 해석되는 재산으로 구성된 재산적 가치의 강제적 박탈을 그 본질로 하는 해악의 감수를 단체에게 귀착시키는 것이다.」(291-292쪽)
이처럼 법인에 대한 재산형집행이 결국―의제적 귀착을 통한―단체구성원의 집단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이라는 점에 비추어볼 때, 법인에 대한 자유형이나 사형을 상정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가령 일부 기관의 행위를 법인에게 귀착시켜 단체구성원 전체에 대한 자유형이나 사형을 과하는 것은 논리상 가능한 것이다. 다만 형법상 개별책임원칙에 반하기에 그런 입법을 하지 않을 뿐이다.
「법인에 대해 벌금형을 부과한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불합리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 또한 이것은 법인의 재산―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단체 구성원의 집단재산―에 대해 강제집행이 행해지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점, 따라서 단체가 범죄를 이유로 처벌된다라고 하는 표현은 구성원이 집단적으로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의미일 뿐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 국가법질서는 자유형이나 사형을 통해 실현되는 집단책임을 확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 그러나 형법이 이상에서 설명한 집단책임을 확정한다 하더라도 관련자들에 의한 자유형 또는 사형의 감수가 집단에게 귀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며, 나아가 이런 경우 귀착이라는 사유조작을 표현하는 말은 수용되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292-293쪽).
◎ 법인과 법인격 : 법학의 보조개념
결론적으로 법인이란 실재적 존재가 아니라 법학이 구성한 보조개념(의인화된 규범구성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법인격’이라는 것도 법학의 편의를 위한 해석도구일 뿐, 법 자체가 창조하는 실체적 존재가 아니다. 법질서는 오로지 인간의 행위를 규율할 뿐이며, 법인이나 법인격이라는 개념은 그러한 규범체계를 이해하기 위한 보조적 장치인 것이다. 켈젠은 법을 설명함에 있어 이러한 개념이 반드시 필수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한다.
「법인에 대한 이상의 분석을 통해, 법인 역시 이른바 자연인과 마찬가지로 법학의 구성물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법인은 그 자체 사회적 실재도 … 법의 피조물도 아니다.」(296쪽)
「법질서가 인간에게 법인격성을 부여한다라고 말할 경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법질서가 인간의 행위를 의무와 권리의 내용으로 삼는다는 것일 뿐이다.」(296쪽)
「이와 같은 의무와 권리의 통일체를 인간개념과 구별되는 자연인개념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법학이다. … 이러한 개념을 보조개념으로서 이용할 수는 있겠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296쪽)
「법은 인간의 행위를 그 내용으로 하는 의무와 권리를 창조하지만 인격을 창조하지는 않는다.」(297쪽)
「협의의 법인개념도 법학의 구성물, 즉 보조개념이다. 우리는 법을 설명함에 있어 이 개념을 이용할 수 있지만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297쪽)
이로써 켈젠은 전통적 법학이 유지해온 ‘객관적 법(규범체계)’과 ‘주관적 권리(권리주체의 이익 내지 법적 힘)’ 사이의 이원적 구도를 해체한다. 종래의 법이론은 권리주체의 ‘자기결정’ 혹은 ‘이익’이라는 형이상학적·윤리적 개념을 법질서로부터 독립된 영역으로 간주하여,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이익에 대해 법적 보호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법적 현상을 규범으로 환원하는 순수법학에서, 권리는 이익보호를 위한 독자적 실체가 아니라 규범의 한 기능적 표현이다. 우리가 ‘권리’라고 부르는 것은 법의무의 반사이거나, 법의 창조나 적용에 참여할 수 있도록 법규범에 의해 부여된 권능이다. 이들을 객관적 법질서와 대립하는 별개의 영역으로 취급하거나 묘사하는 것은 허구에 불과하다.
「전통적 법학의 관념에 따를 경우 … 권리는 객관적 법, 다시 말해 규범체계로서의 법질서와 대립되며 이것과 구별되는 영역이다.」(297-298쪽)
「순수법학은 법규범의 복합체를 의인화한 것인 인격개념을 해체하고 의무와 (기술적 의미에서의) 주관적 권리를 법규범 … 에로 환원시킴으로써, 이른바 주관적 의미에서의 권리를 객관적 법에로 환원시킴으로써 이러한 이원론을 제거한다.」(298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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