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없는낭설 28

변호사인 소송수행자

변호사로서 소송수행자를 하는 경우에도 변호사인 티를 내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다. 서면에 들어갈 말은 다 들어가게 하되 폰트는 함초롬바탕으로 줄간격은 건드리지 말고 중간중간 오탈자 좀 섞어주고 변론기일에는 캐주얼하게 입고 나가고 그렇게 일반 공무원처럼 보이도록 노력하라. 그러면 지엄하신 판사님들께서 알아서 코치해줄 것이다.

감염병예방법 제49조

사실 제왕적인 조항이다. 일일이 입법을 해서 규율해야 할 내용까지 행정청더러 알아서 하라고 한다. 특히 문제는 못된 습관, 툭하면 집합금지를 시키는 버릇을 만든다는 것이다. 광역으로 대집행을 한바탕 하고 나면 십중팔구 그 이튿날 집단민원이 발생하는데 방역지침, 집합금지고시로 미리 막아버리고 위반하면 제재처분을 할 수 있다. 가능한 행정벌이 늘어난다는 것은 폭처법위반으로 고발할 수 있다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이다.

문해력

기록을 빠른 시간에 읽고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는 능력 대부분의 지방의회의원에게는 그 능력이 없다. 물론 자신은 그 능력이 있다고 생각들 하지만 전문직 등 일부 특이케이스를 제외하면 실제로 그걸 가진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위원회에서든 행정사무감사에서든 결국 파편 몇 개에 의존해 까막잡기를 하게 된다. 재선 삼선 사선이 되어도 마찬가지이고 전문위원 두명이 붙어도 마찬가지이다. 단체장의 경우 역량면에서 특별히 나을 건 없으나 적어도 공무원들의 백업, 정보비대칭 버프 덕택에 외관상 티는 잘 안 나게 된다. 그렇지만 기록해석능력을 익히며 사는 삶 그것은 단체장, 의원이 되는 루트와는 십중팔구 거리가 멀다. 그래서 지방자치는 태생적으로 소모적이고 피로할 수밖에 없다.

과태료

지방의회의 서류제출요구(행정사무감사)에 정당한 사유 없이 불응하는 경우 과태료 부과대상이 된다. 이 경우 의장이 단체장에게 불응사실을 통보하면 단체장이 과태료부과처분을 하게 되어 있는데 서류제출 요구의 대상이 단체장인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과태료 제재가 불가능하게 된다. 자기 자신에게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것은 개념상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가능하다 해도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마땅한 보복수단이라고는 단체장을 직무유기죄로 고발하거나 예산을 삭감하는 방법 정도밖에는 없다. 이 경우 단체장도 맞고발을 하거나 재의요구, 의결무효소송으로 대응할 수 있다. 재의요구는 대개 기삿거리가 된다.

최후의 보루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곁에 소수의 사람만 남아야 하고 꼭대기에 근접해져야 하며 혼자만의 공간이 넓어져야 한다. 사내변이든 공직이든 방을 따로 주는 극소수의 자리가 아닌 이상 많은 사람과 부대끼기 마련이고 꼭대기에 근접해봤자 어디까지나 중간관리자이며 공간은 턱없이 비좁은 닭장이다. 그래서 사내변호사나 공직은 어릴 때 시작해야 하고 어릴 때 시작했어도 나이가 차는데 진급이 안되면 아무리 일이 없어도 그 조직에서 나와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높은 티어 회사의 낮은 자리보다 낮은 티어 회사의 높은 자리가 삶의 존엄성을 지키는 데 더 도움이 된다. 6급도 중앙부처는 쓰레기지만 지방청이나 광역단체부터는 그럭저럭 할만 하고 세무서나 소규모 기초단체에서는 제법 괜찮다. 세무서 납세자보호실장보다 지방청 송무국이 더 고..

불가근 불가원

어느 직장에 있든 마찬가지겠지만 1인 사내변은 특히나 다른 직원들과 너무 멀어서도 안되겠지만 너무 가까이 지내는 것도 좋지 않다. 친밀하게 지내기는 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내가 무언가 요구할 수 있을 만큼 가끔은 다른 사람의 요구를 들어줄 필요도 있다. 종종 농담 따먹기를 할 수도 있고 이따금씩 여럿이서 밥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 친해질 필요는 없다. 첫 번째는 구설수 때문이다. 멀리 지내면 한정적인 구설수만 생기지만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많을수록 구설수는 구체화, 체계화되기 쉽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구설수는 나와 나의 평판에 영향을 주고 피로감과 시간낭비를 늘린다. 점심은 혼자 먹는 경우가 다른 사람들과 먹는 경우보다 많아야 좋고 내 업무는 추상적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 구체적으로는 잘 알려..

근거없는낭설 2021.11.29

비교법

법학은 곧 비교법학이다 하는 말이 있지만 사실 비교법연구의 99%는 별 쓸모가 없다. 국내법에 관한 법학논문이라는 물건의 목적이라는 것이 결국 실무가들에게 지침을 제공하는 것인데 대부분의 경우 비교법 부분에서는 뭔가를 얻지 못한다. 정말 역량 있는 연구자가 생산한, 역사적 맥락과 로컬라이징 방법을 모두 제안하는 그런 유용한 실무적 인사이트를 주는 비교법연구는 대개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대다수는 사례해결법보다는 시스템, 그러니까 조직법이나 형사사법체계 같은 것들이 대상이다. 스스로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비교법은 과감히 포기하는 편이 좋다. 충분한 경험과 충분한 사색, 둘 중의 하나만 있어도 그것에만 기반해 사고를 확장하며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경험과 사색 둘 다 뒷받침되면 훌륭한 ..

기초자치단체 변호사 단상 [5] - 단체장과 지방의회 간 갈등

공법학 교과서에서는 단체장-지방의회 간 갈등의 예로 보통 단체장이 조례개폐청구를 각하한 사례(2007헌바75), 단체장이 공유재산 관리계획 변경안을 가결선포한 것에 지방의회의원들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사례(2009헌라11), 단체장이 의회사무과(국) 직원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지방의회가 위헌심사형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사례(2012헌바216), 단체장이 지방의회 동의 없이 자치사무 민간위탁계약을 갱신한 것에 대해 지방의회가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사례(2012), 지자체 소속 공무원의 파견에 관한 사항에서 지방의회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한 조례의 효력을 단체장이 문제삼은 사례(2000추67), 공유재산심의회 위원을 의장이 추천하도록 하는 조례의 효력을 단체장이 다툰 사례(96추15), 지방공..

기초자치단체 변호사 단상 [4] - 무리수를 둘 때

간혹 언론보도된 사안이나 집단민원이 제기되는 사안, 정치적/사회적 자존심이 걸린 사안에서는 상당한 무리를 감수하고 일을 추진할 때가 있다. 외부에 자문을 의뢰한 결과 하나같이 부정적인 답변들만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강행하기도 한다. 대개는 소속직원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사인에게 행정벌을 과하는 등의 제재처분을 집행하거나, 보여주기식으로 기획쟁송을 시작하는 형태를 띤다. 제재처분의 경우 불복이 제기되어 소송으로 이어지면 기관이 패소할 확률이 높은데, 지면 가급적 거기에서 멈춰야 한다. 애초 무리를 한 것이었음을 스스로 알면서 끝까지 다퉈보겠다고 불복절차를 밟는다면 벌써 괴롭힘, 몽니의 의도가 눈에 보이게 되어 모양이 좋지 않을뿐더러, 또 다시 언론을 타거나 지방의회의 눈에 걸려 감사라도 받게 되면 애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