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없는낭설/法律

형사소송에서 법적 청문 원칙

GENA 2024. 4. 2. 09:58

. 청문원칙의 의의

법적 청문의 요청이란, 절차의 주재자가 경청하는 가운데 절차참여자에게 사실상ㆍ법률상의 문제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보장해야 함을 말한다. 이는 i) 주관적 측면에서 인간의 존엄성 및 그에 뿌리박고 있는 실질적 법치국가원칙에서 비롯되는, 근원적인 절차적 기본권인 ‘법적 청문권’으로 나타난다(경우에 따라서는 피고인ㆍ피의자 외에 다른 절차참여자도 이를 향유할 수 있다). 또한, ii) 객관적 측면에서, 절차참여자들의 공정한 논쟁을 제도적으로 규율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절차규범, 즉 ‘법적 청문 원칙(Grundsatz des rechtlichen Gehörs)’으로 표현된다.

청문원칙은 인간의 인격에 대한 ‘존중의 기본원칙’으로서 법치국가적 형사소송의 핵심요소이므로, 청문기회 보장 여부는 입법자의 전적 재량에 맡겨진 사항이 아니다. 그리고 청문이 가장 핵심적 의의를 갖는 단락은 공판이지만, 공판절차에서 청문권보장이 실효성을 지니려면 수사절차를 포함한 형사절차의 전체 단락에서 청문원칙이 충실히 구현되어야 한다.

법적 청문은 i) 법원이 사안에 관한 절차참여자들의 개별적 인식이 담긴 진술ㆍ주장을 폭넓게 수집할 수 있도록 하여 사안을 적확하게 확정하는 데 이바지하며(사안확정 기능), ii) 절차참여자들(특히 피고인)을 소송주체로 승인함으로써 이들을 소송절차로 통합하는 계기로 작용한다(소송절차로의 통합 기능). 아울러 iii) 피고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충실히 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그가 법원의 최종적 판단을 좀 더 수월히 받아들이고 절차종결 후 사회로 재통합될 수 있도록 한다(재통합 기능; 이는 예방적 측면에서도 유익하게 작용할 수 있다).

Ⅱ. 청문원칙의 내용

1. 진술권보장

⑴ 진술권보장의 의의

청문원칙은 (단지 판결 전에 입장을 밝힐 수 있게 해주는 것을 넘어) 절차 전반에 참여해 의견을 진술할 권리를 적극적으로 부여할 것을 요구한다. 이에 청문원칙 구현의 가장 기본적 형태는 의견진술권의 충실한 보장이라 할 수 있다. 진술권 보장의무로부터 i) 제출된 증거 및 주장을 진지하게 고려할 의무 및 그에 따른 논증ㆍ회답의무, ii) 진술내용을 조서 등에 충실히 남길 기록의무, iii) 언어능력 부족 등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한 보호ㆍ배려의무 등이 파생된다.

⑵ 수사단계에서의 진술권보장

i)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피의자를 신문하는 경우에는 피의자에게 이익되는 사실을 진술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제242조). 신문에 참여한 변호인은 신문 후 의견을 진술할 수 있고, 신문중이라도 부당한 신문방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검사ㆍ사법경찰관의 승인을 얻어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제243조의2 제3항). 피의자와 변호인의 진술은 피의자신문조서에 기록한 후(같은 조 제4항, 제244조 제1항) 피의자에게 보여주어야 하고, 피의자가 그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의견을 진술한 경우 그 또한 조서에 기재해야 한다(제244조 제2항).

ii)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경우 법원은 지체없이 그를 심문해야 한다(제201조의2). 이때 피의자는 이익되는 사실을 진술할 수 있으며(규칙 제96조의16 제1항), 피의자의 법정대리인, 가족, 동거인, 고용주 또한 법원의 허가를 얻어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같은 조 제5항). iii) 구속된 피의자 또는 그 변호인 등은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법원은 48시간 이내에 피의자를 심문해 석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제214조의2 제4항, 규칙 제105조). iii) 지방검찰청검사장 또는 지청장은 불법체포ㆍ구속의 유무를 조사하기 위해 검사에게 매월 1회 이상 관하(管下) 수사관서의 체포ㆍ구속장소를 감찰하도록 해야 한다. 감찰하는 검사는 체포ㆍ구속된 자를 심문하고 관련서류를 조사해야 한다(제198조의2 제1항).

신문(訊問)은 사실관계 확인 등을 목적으로 ‘캐어묻는(訊)’ 것이고(피의자신문, 증인신문 등), 심문(審問)은 피의자ㆍ피고인에게 적극적 의견진술의 기회를 부여해 그 내용을 ‘살피는(審)’ 것이다(구속전피의자심문, 구속적부심사 등). 사안규명을 위한 조사절차로서의 본질을 지니는 전자와 달리, 후자는 의견진술권 보장을 위한 청문절차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 다만, 신문절차에서도 가급적 청문권을 보장해야 하며, 심문절차라 해서 사안규명과 전혀 무관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⑶ 공판단계에서의 진술권보장

i) 법원은 공소장이 접수된 경우 피고인에게 그 부본을 송달해야 하며(제266조), 피고인에 대한 소환장송달과 제1회 공판기일 사이에 최소 5일 이상의 유예기간을 두어야 한다(제269조). 이익되는 사실의 진술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ii) 피고인은 공판정에 출석할 권리가 있으며, 피고인이 불출석한 경우 특별한 규정(제277조, 제277조의2 제1항 등)이 없으면 개정하지 못한다(제276조). 

iii) 검사가 공소장에 의해 공소사실ㆍ죄명 및 적용법조를 낭독하거나 공소사실의 요지를 진술함에 대해 피고인ㆍ변호인은 그에 대한 인정 여부 및 이익되는 사실을 진술할 권리가 있다(제286조). 이를 위해 검사에게 공소사실의 특정을 요구하고(제254조), 그 변경에 일정한 제한을 가하고 있는바(제298조 제1항), 심판의 대상이 된 범죄사실이 특정되지 않고서는 적정한 의견진술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iv) 공판정에서 검사의 좌석과 피고인의 좌석은 대등한 높이로 마주보고 위치하며, 피고인은 변호인 옆에 앉는다(제275조 제3항). 심리적 위축은 적극적 의견개진에 방해요소가 되는 까닭이다.

v) 증거조사에서 피고인ㆍ변호인은 증인신문에 참여해 증인을 신문할 권리가 있고(제161조의2) 증인신문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에도 자신에게 필요한 사항의 신문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제164조 제1항). vi) 증거조사 종료 뒤 검사가 사실과 법률적용에 관해 의견을 진술한 후에 피고인과 변호인은 최후진술을 할 수 있다(제303조).

vii) 공판기일의 소송절차에 관해 피고인ㆍ증인ㆍ감정인ㆍ통역인ㆍ번역인이 한 진술과 피고인ㆍ변호인의 최후진술은 공판조서에 기재해야 하고(제48조 제2항 제1호, 제51조 제2항 제8호, 제13호), 검사ㆍ피고인ㆍ변호인이 그 기재에 대해 변경을 청구하거나 이의를 제기한 경우에는 그 취지 및 그에 대한 재판장의 의견을 기재한 조서를 당해 공판조서에 첨부해야 한다(제54조 제3항, 제4항).

viii) 피고인 등의 보석청구가 있는 경우 법원은 지체없이 심문기일을 지정해 피고인을 심문해야 한다(규칙 제54조의2). ix) 재심청구에 대해 결정을 함에는 재심청구자와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제432조).

개별적으로 피고인ㆍ변호인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취지의 규정이 없더라도, 절차진행에 있어 중요한 결정이나 명령을 하기 전에는 가급적 피고인ㆍ변호인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의견의 수용 여부와 상관없이, 그러한 청문기회 부여 자체가 피고인의 절차로의 통합 및 절차종결 이후 사회적 통합을 촉진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2. 각종 고지의무

의견진술권의 충실한 보장을 위해서는 그 전제로서 절차참여자, 특히 피의자ㆍ피고인이 자신과 관련된 사실관계나 법적 쟁점에 관한 사항을 충분히 숙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요청은 다시 수사기관ㆍ법원의 일정한 고지의무를 형성하는바, 그 예로는 i) 체포시 피의사실 고지의무(제200조의5), ii) 구속영장 발부 전 구속사유 고지의무(제72조), iii) 구속 후 공소사실  요지 고지의무(제88조), iv) 공소장부본 송달의무(제266조), v) 진술거부권 등 고지의무(제266조의8 제6항, 제283조의2 제2항, 제244조의3), vi) 증거조사결과에 대한 의견요청의무 및 증거조사신청권 고지의무(제293조), vii) 피고인 퇴정중 이루어진 증언의 요지 고지의무(제297조 제2항), viii) 공소장변경허가신청사실 고지의무(제298조 제3항), ix) 상소기간 고지의무(제324조) 등이 있다.

Ⅲ. 청문원칙의 한계

법적 청문의 요청은 절차참여자에게 자신의 관점을 국가에 제출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함을 본질적 요소로 한다. 그러나 언제나 무한정의 의견진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일정한 제약이 따른다.

먼저, 형사절차의 구조 자체, 특히 피의자ㆍ피고인(변호인)과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과 역할의 현저한 차이에서 비롯되는 근원적 제약이 있다. 형사절차는 일정한 범죄사실에 관해 피의자ㆍ피고인이 그 행위주체일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진행되기에, 그의 입장을 ‘살피는(審問)’ 과정만큼이나 사건에 관해 ‘캐묻는(訊問)’ 과정이 현실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이익되는 사실을 진술할 기회가 보장된다고는 해도, 일차적으로 사안확정을 위해 어떠한 질문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는 수사기관이나 법관이 결정할 문제이며, 질문의 종류ㆍ방향ㆍ취지를 피의자ㆍ피고인(변호인)이 선택하거나 유도하기는 어렵다. 또 애초에 쟁점이 되는 범죄사실 및 적용법조를 특정하는 단계에서도 피의자ㆍ피고인 등이 관여할 수 있는 범위는 상당히 한정되어 있다. 요컨대, 법적 청문(권)을 보장한다는 것이 반드시 절차참여자가 자신이 원하는 진술을 자신이 원하는 맥락이나 쟁점에서 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음으로, 일정한 법률상 요건이 갖춰진 때에는 구체적 청문 자체가 생략ㆍ제한되는 경우가 있다. 가령, i) 경미사건에서는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아도 공판을 개정할 수 있고(제277조), ii) 구속사건에서 법원은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을 거부하고 인치가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피고인 출석 없이 공판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제277조의2 제1항). 그리고 iii) 재판장은 소송관계인의 진술 또는 신문이 중복된 사항이거나 소송과 무관한 사항인 때에는 소송관계인의 본질적 권리를 해하지 않는 한도에서 이를 제한할 수 있다(제299조). 또한, iv) 피고인이 진술하지 아니하거나, 재판장의 허가 없이 퇴정하거나, 질서유지를 위한 퇴정명령을 받은 경우 법원은 피고인의 진술 없이 판결할 수 있다(제330조).

Ⅳ. 위반의 효과

법적 청문 원칙을 구현하는 규정을 위반한 경우에는 그와 관련된 소송행위나 증거조사 또는 재판이 위법하게 되는바,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i) 수소법원이 제72조의 규정을 위반해 피고인에게 범죄사실의 요지, 구속의 이유 및 변호인선임권을 고지하지 않거나 변명할 기회를 주지 않고서 한 구속영장 발부결정은 위법하여 항고법원에 의한 취소대상이 된다(제414조 제2항). ii) 피고인ㆍ변호인에게 최후진술기회를 주지 않은 채 심리를 마치고 선고한 판결은 위법하다(대법원 1975. 11. 11. 선고 75도1010 판결). iii) 공판에서 피고인이 미리 증인신문에 참여할 의사를 밝혔음에도(제163조 제1항) 참여기회를 보장하지 않은 경우 그 증인신문은 위법하며(대법원 1969. 7. 25. 선고 68도1481 판결), 이는 그 증인신문에 변호인이 참여했더라도 마찬가지다.

 

참고문헌

청문원칙에 관해 웹DB에 읽을만한 논문이 많지 않아 아래에 하나 업로드한다. 이 글의 내용은 대체로 아래의 논문에 기반하고 있다. 97년에 써진 글이라 실정법규정에 대한 설명은 현행규정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으니 이론적인 부분만 참고바람.

변종필, 형사소송과 법적 청문, 인권과정의 제245호, 199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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