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없는낭설/法律

기초자치단체 변호사 단상 [5] - 단체장과 지방의회 간 갈등

GENA 2021. 10. 21. 21:24

공법학 교과서에서는 단체장-지방의회 간 갈등의 예로 보통 단체장이 조례개폐청구를 각하한 사례(2007헌바75), 단체장이 공유재산 관리계획 변경안을 가결선포한 것에 지방의회의원들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사례(2009헌라11), 단체장이 의회사무과(국) 직원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지방의회가 위헌심사형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사례(2012헌바216), 단체장이 지방의회 동의 없이 자치사무 민간위탁계약을 갱신한 것에 대해 지방의회가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사례(2012), 지자체 소속 공무원의 파견에 관한 사항에서 지방의회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한 조례의 효력을 단체장이 문제삼은 사례(2000추67), 공유재산심의회 위원을 의장이 추천하도록 하는 조례의 효력을 단체장이 다툰 사례(96추15), 지방공기업 사장 임명시 청문절차를 규정한 조례안의 효력을 단체장이 다툰 사례(2012추169) 등을 소개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은 사실 극히 표면적이고 피상적인 부분에 불과하다. 그런 분쟁이 일어날 정도면 그 단체장과 의장·의회 간 관계는 오래 전부터 치열하고도 소모적인 처세적·법률적 갈등들로 인해 진작에 곪아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단체장과 지방의회가 서로 정중하게 잘 지내는 와중에 문득 법집행과정에서 권한의 분배나 조례규정의 합헌·합법성에 관한 이견이 생겨 부득이 이를 해결하려고 쟁송을 제기한다는 것은 좀처럼 상상하기 힘들다. 위와 같은 헌법소송들이 꽃을 피웠다면, 그에 앞서 이를테면 단체장과 의원들이 각자 서로에게 원하는 처세가 너무나 다른 가운데 정례회나 임시회에서 열심히 말싸움을 벌이다 결국 단체장이 국·과장들을 데리고 회의장에서 일제히 퇴장해 버리는 풍경이, 그리고 의장·의원들과 단체장·공무원들 간에 서로 무더기로 고소고발이 오가는 가운데 의회에서는 강도높은 행정사무감사를 벌이거나 예산삭감을 하고 단체장은 자료제출거부나 재의요구 같은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 맞서는 살얼음판의 관계가, 몇달 몇년간 반복되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의정과 행정 간 적대적인 분위기 그 자체가 냉전이고, 민형사 분쟁이 무역전쟁이라면, 헌법소송은 열전이다. 내전이 열전으로까지 불거지는 것은 극히 희귀한 일이다. 대개 책에는 열전만 소개되지만 갈등의 대부분은 냉전과 무역전쟁이고, 그것들은 정제된 텍스트로 표현하기에는 질이 너무 낮은 데 비해 규모와 복잡성은 이루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갈등이 불거지면 공무원들은 그 사이에서 난감해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대의회 업무를 하는 부서의 간부들은 평소 잘 지내던 의원들에게 갑자기 단체장의 선전포고를 전달하거나 설명하게 되어 곤혹스러울 것이고, 메신저 효과로 인해 괜히 의원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런 상황을 가급적 빚고 싶지 않기에 행정사무감사 리스크, 예산삭감 리스크를 들며 보좌진을 열심히 설득해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요지부동이다.

이 과정에서 변호사는 단체장을 위해 공격방어방법을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내밀한 영역이기에 고문변호사들에게 질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나름 결기어린(?) 전쟁에 나서는 상황에서 상근변호사에 의한 법무 백업은 절실하고 또 필수적이다. 담당자를 위해 공격방어방법을 하나하나 찾아 설명해 주는 자료를 만들어야 할 수도 있고, 전쟁의 주장(主將)인 단체장의 총괄적 의사결정이나 부단체장·국장의 세부적 의사결정을 돕기 위한 보고서를 써야 할 수도 있다. 안 그래도 간부들이 보게 될 보고서는 법률용어를 쉬운 말로 간명하게 풀이해 적어야 하고 오탈자나 비문이 없게 철저히 검수해야 하는 등 내용 외적으로 신경쓸 부분이 많기에 본래부터 소송서면이나 자문의견서에 비해 작성이 까다로운 편인데, 거기에 시의회/군의회/구의회와의 갈등까지 관련되어 있다면 그 난이도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지방의회에 보낼 공문서의 초안을 봐줘야 할 수도 있고, 간혹 단체장과 의회 중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어 지원사격을 하면서 뭔가를 요구하는 사인(私人)이 있을 경우 그 사람에게 회신할 내용의 문구를 검토해줘야 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첨삭이나 조언 정도만 해주다가, 어느 순간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그걸 담당자 대신 직접 써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사람마다 성향 차이가 있겠지만 사실 그런 문건 하나 만드는 것이 재량일탈·남용을 다투는 행정단독사건 준비서면 3개 쓰는 것보다 힘들다.

공격방어방법 찾아내기는 상당한 참을성을 요하는 작업이다. 경영진들은 어떻게 해서든 논거를 쥐어짜내서 대의회 전쟁을 수행하는 데 힘을 보태 주었으면 하기에, 마냥 잘 모른다고 하거나 원론적인 얘기만 하며 때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자아를 죽이고 '나는 없다'는 생각을 탑재하고 뭐든 발굴해내야 한다. 명예훼손·모욕·공직선거법위반·직무유기·직권남용·정통망법위반·위계공무집행방해 등 약방의 감초처럼 쓰이는 죄명이란 죄명은 다 동원한 고소고발장도, 문구 하나하나 사소하고 구차하게 꼬투리를 잡으며 위법성을 따지는 재의요구서도 쓰라면 써야 한다. 쟁점과 관련성이 없다든가, 담당공무원이나 주민의 사생활 영역에 관련된 것이라는가, 진행중인 재판이 있다든가, 직무상 비밀에 해당한다든가 하는 갖가지 핑계를 대며 자료제출요구를 거부하는 회신서도, 내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열심히 고쳐주고 첨삭해주어야 해야 한다.

물론 임용 전 이런 사정을 미리 알고 들어가기는 어렵다. 언론에 의회와 단체장의 사이가 안 좋은 것처럼 보도가 나왔으나 막상 들어가보면 이미 갈등이 해소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외부에 그 어떠한 보도도 나가지 않았음에도 막상 들어가보니 폭발 일보 직전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잘 지내다가 갑자기 어떤 사건이나 발언, 단어선택이 트리거가 돼서 관계가 냉각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