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없는낭설/法律

기초자치단체 변호사 단상 [4] - 무리수를 둘 때

GENA 2021. 10. 13. 21:39

간혹 언론보도된 사안이나 집단민원이 제기되는 사안, 정치적/사회적 자존심이 걸린 사안에서는 상당한 무리를 감수하고 일을 추진할 때가 있다. 외부에 자문을 의뢰한 결과 하나같이 부정적인 답변들만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강행하기도 한다. 대개는 소속직원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사인에게 행정벌을 과하는 등의 제재처분을 집행하거나, 보여주기식으로 기획쟁송을 시작하는 형태를 띤다.

제재처분의 경우 불복이 제기되어 소송으로 이어지면 기관이 패소할 확률이 높은데, 지면 가급적 거기에서 멈춰야 한다. 애초 무리를 한 것이었음을 스스로 알면서 끝까지 다퉈보겠다고 불복절차를 밟는다면 벌써 괴롭힘, 몽니의 의도가 눈에 보이게 되어 모양이 좋지 않을뿐더러, 또 다시 언론을 타거나 지방의회의 눈에 걸려 감사라도 받게 되면 애꿎은 직원들만 고생하는 것이다. 전치절차에서 이겼어도 마찬가지인데, 작정하고 다투는 사람에게 전치절차란 그것이 소청위든 노위든 조세심판원이든 행심위든 뭐든간에 잠깐 거쳐가는 간이역 정도의 의미밖에는 없는 물건이다. 전심에서 이기고 1심에서 졌으면 그건 그냥 싸움에 진 것이며, 한번 이기고 한번 졌다고 정신승리를 할 일이 아니다. 전치절차에서 이긴 것은 전반전에서 어쩌다 눈먼 골 하나 넣은 것이고, 1심 패소는 후반전에서 패널티킥으로 세 골을 먹힌 것이기 때문이다(그게 실체적으로 이유가 없어서였든, 단순 절차적인 하자가 있어서였든 관계없이). 그러나 이런 사고방식을 경영진에게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회사들이 상당히 많다.

기획쟁송은 누군가에 대한 고소고발일 수도 있고, 공무원 개인이나 지방자치단체 자체를 원고로 하는 민사소송일 수도 있는데, 대개 공소제기나 청구인용판결보다는 법적 분쟁을 일으키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다. 승패보다도 그것을 시작하였음을 외부에 공표하거나 상대방에게 이제 그만 항복하라는 명시적/묵시적인 압력을 넣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설렘 또는 분노에 부푼 가슴으로 시작하였더라도 대저 그처럼 마음속에 치솟는 불길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사그라들기 마련이기에 흐지부지 고소취소나 소취하 등으로 끝나게 된다. 오기로 끝까지 물고늘어져 본들 결국 불기소결정이나 청구기각판결이 기다리고 있고, 당초의 목표가 하나도 달성되지 못함은 물론 역풍이나 불지 않으면 다행이다. 역시나, 경영진이 이것을 끝내 납득 못하는(머릿속으로는 하더라도 마음으로는 못 받아들이는) 회사들이 많다.

이런 일들은 사실 법무의 탈만 쓰고 있을 뿐 사실은 법무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변호사가 손을 많이 대려 하면 안 된다. 기관장과 어느 정도 라포가 없는 이상은 이런 일들을 대할 때에는 글도 쓰지 말고 말도 적게 해야 하며 특히 자기 생각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면 안 된다. 말리면 미운털이 박히고, 권하면 나중에 원망을 듣는다. 무슨 사실관계를 어떤 요건에 어떻게 끼워맞추면 되는지, 가망이 있는지 없는지 정도를 무미건조하게 얘기하는 정도로만 그쳐야 한다. 또 의견을 서면으로 남기는 것은 좋지 않은데, 듣기 좋은 의견이면 변호사에게 위험할 내용이고, 변호사에게 안전한 의견이면 듣기 싫을 내용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상대방도 서면을 원하지 않을 확률이 높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특정한 결론을 정해서 서면을 써달라고 하면, 작성일자라든가 명의 등은 적지 말고 메모 형태로만 만들어 주는 선에서 끝내야 한다.

경영진과 직원들 간의 생각이 다른데 본인이 심정적으로 직원들에게 공감이 가는 사안이라면, 경영진에게는 경영진이 싫어하지는 않을 이야기(좋아할 이야기x)를, 직원들에게는 직원들이 좋아할 이야기를 해주면 된다. 경영진과 직원들 모두에게 각자가 좋아할 이야기를 해주면 변호사에게는 반드시 안 좋은 부작용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