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 켈젠(김성룡 역), 규범의 일반이론, 아카넷, 2016
Hans Kelsen, Allgemeine Theorie der Normen (1979)
제22장 규범들의 대상: 인간들의 행위
규범이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대상은 인간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이다. 규범은 준수되고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존재의 행위를 전제로 한다.
「하나의 규범의 대상, 그것은 하나의 규범에서 규정된 것, 당위로 정해진 것인데, 하나의 이성을 지니고 의지를 가진 존재의 행위이고, 그것은 우리의 오늘날의 세계관에 따를 때 한 인간의 행위이다. 왜냐하면 그 규범은 준수되어야만 하고 적용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규범은 단지 그 규범의 이러한 의미내용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행위할 생각이 있는 존재에 향해진 것이라는 전제하에서만 합목적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다.」(1편 184쪽)
그러나 역사적으로 법질서가 항상 인간의 행위만을 대상으로 했던 것은 아니다. 원시사회나 중세사회에서는 동물이나 무생물도 법적 책임의 주체처럼 취급되는 사례가 존재했다.
「원시 사회에서는 동물, 식물은 물론 무생물의 행위도 법질서에 의해 마치 사람의 경우와 같이 동일한 방식으로 규율될 수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단지 개화된 시민 사회의 (법)질서에만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을 우리는, 한 사람을 죽인 황소가 당연히 형벌로 살해(도살)되어야만 한다는, 성경에서 읽는다… ‘소가 남자나 여자를 뿔로 받아서 그가 죽었을 경우, 그 소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 … ’」(1편 184쪽)
현대적 관점에서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규범내용은 고대사회의 애니미즘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에는 동물이나 무생물에도 영혼이나 의지가 있다고 믿었기에 그 행위가 규범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오늘날 우리들의 관점에 비추어 불합리한 규범내용은, 사람들만이 아니라 동물들도, 그리고 무생물인 대상들도 하나의 ‘정신(Seele)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그들과 인간 사이에는 어떠한 본질적인 차이도 없다고 하는 애니미즘적인 생각에 근거하고 있다.」(1편 185쪽)
그러나 현대의 법질서는 이러한 관점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늘날의 법질서는 동물이나 사물 자체의 행위를 규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를 규율한다. 다만 인간의 행위가 동물이나 사물과 관련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현대의 법질서는 동물의, 식물의, 그리고 생명 없는 대상들의 행위를 규율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들의 행위를 규율한다 … 물론 그러한 법규범들을 통해서 그렇게 보호된 동물, 식물, 그리고 무생물의 행위가 규율되는 것이 아니라, 그 규범이 금지하는 인간의 행위가 규율되는 것이다.」(1편 185-186쪽)
사람들은 흔히 규범이 ‘인간’에게 향해진다고 말하지만, 이는 심리적 관점에서의 표현일 뿐이다. 규범적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인간 자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간의 ‘행위’이다. 선악이나 적법성 같은 가치판단 역시 인간이 아니라 행위에 귀속된다.
「물론 주의해야 할 것은, 그 규범들이 규정하고 있는, 즉 그 규범들의 대상은 하나의 특정의 인간의 행위이지―종종 주장되고 있는 바와 같이―인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 인간이 아니라 그 인간의 하나의 전적으로 특정한 행위가 사람들이 말하곤 하듯이 하나의 규범에 부합하거나 위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무언가가 ‘좋다’ 혹은 ‘나쁘다’, ‘선하다’ 혹은 ‘악하다’고 하는 가치판단이 무언가가 하나의 규범에 일치한다 혹은 반한다를 의미한다면, 그 ‘좋다’ 혹은 ‘나쁘다’는 하나의 인간의 속성이 물론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아니고, 하나의 특정한 인간의 행위의 속성인 것이다.」(1편 186-187쪽)
「그―규범의 대상을 구성하고, 규범으로부터 당위된 것으로 설정된―행위가―규범에 맞게 혹은 규범위반적으로 행위하는 인간과는 다른―한 인간과 관계하는 한, 그 인간 자체는, 한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규범의 내용에서 나타나지만, 그 대상으로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규범의 대상은 단지 인간의 행위이다.」(1편 187쪽)
| [미주 70] 가치판단은 인간 자체에 직접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에 귀속된다. 도덕적 평가의 직접적인 대상도 인간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이다. 가령 한 인간이 ‘선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의 성격 자체가 선하다는 의미라기보다 그의 행위가 반복적으로 규범에 부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인간이 하나의 도덕적으로 ‘선한·좋은’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의 행위가 항상, 혹은 대부분, 유효한 것으로 전제된 도덕규범에 부합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한 인간은 옳은·정당한 혹은 옳지 않은·부당한 인간일 수 없다. 단지 하나의 행위만이 이렇게 표현된 속성을 가진다.」(2편 106쪽) |
물론 경우에 따라 인간은 행위의 객체로도 등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절도나 살인을 금지하는 규범에서는 피해자가 행위의 객체가 된다.
「동시에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은 하나의 인간의 행위의 주체로서는 물론 객체로서도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1편 187쪽)
제23장 규범에 포착된 인간의 행위
규범이 규정하는 인간의 행위는 단순히 외부에서 관찰가능한 행위에 국한되지 않는다. 규범은 외적 행위뿐 아니라 인간의 의도나 태도와 같은 내적 행위도 규율할 수 있다. 도덕규범에서는 특히 이러한 내적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사랑, 증오, 의도와 같은 심리적 상태는 외적으로 관찰되는 행위와 분리될 수 없으며, 규범은 이러한 내적 요소까지도 요구하거나 금지할 수 있다. 따라서 규범이 규정하는 행위는 단순한 물리적 행동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의도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행위이다.
「규범의 대상을 구성하는 행위는 하나의 외적인 행위 혹은 하나의 내적인 행위일 수 있다.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도덕규범은 외적 행위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먼저―하나의 내적 행위를 요구한다. 우리가 ‘모살하다’를 의도적인 타인의 죽음 야기라고 이해한다면, ‘너는 모살해서는 안 된다.’라는 규범도 하나의 외적이고 하나의 내적인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다.」(1편 189쪽)
규범이 요구하는 행위는 작위와 부작위라는 두 가지 형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작위는 어떤 행위를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이고, 부작위는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부작위가 단순한 무행동이 아니라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 행위라는 점이다. 따라서 부작위는 언제나 어떤 특정한 행위와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어떤 행위를 하라는 규범은 그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금지하고, 반대로 어떤 행위를 하지 말라는 규범은 그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요구하는 구조를 가진다. 작위와 부작위는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규범구조의 두 표현 방식인 것이다.
「그 행위는 하나의 적극적인 작위(aktives Tun)이거나―그와 동일한 것을 의미하는―하나의 행위(Handeln)일 수 있지만, 그것은 또한 하나의 소극적인 부작위일 수 있다. 우리는 ‘부작위’를 단지 하나의 전적으로 특정한 행위와 연관하여 언급할 수 있다. 단지 전적으로 특정한 하나의 행위만이 부작위된다. 하나의 전적으로 특정한 행위를 요구하는 규범은 이 행위의 부작위를 금지한다. 하나의 특정 행위의 부작위를 요구하는 하나의 규범은 이 행위를 금지한다.」(1편 189쪽)
언어적으로 볼 때 부작위는 종종 ‘하지 마라’라는 부정 형태로 표현되기 때문에 부정과 동일한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부작위는 논리적 부정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부정은 판단의 영역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논리적 연산이며, 규범이나 명령은 판단이 아니라 요구이기 때문이다. 가령 ‘거짓말하지 마라’라는 규범은 ‘거짓말하라’라는 규범의 부정이 아니라 독립적인 규범적 명령이다.
「하나의 행위의 부작위는 그 행위의 부정, 부인이 아니고, 하나의 행위의 부작위의 요구는 하나의 행위의 요구의 부정이 아니다. 부정될 수 있는 것은 항상 하나의 이루어진 혹은 시도된 판단(Urteil)일 뿐이다. … ‘A는 속이지 않는다’는 판단은 단지 ‘A는 속인다’는 판단의 부정으로서만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속이지 마라.’라는 규범은 ‘속여라!’라는 규범의 부정(Negation)이 아니다.」(1편 189쪽)
| [미주 71] 라이트(G. H. von Wright)는 어떤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그 행위의 ‘부정’이라고 설명하며, 그것 역시 하나의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자신의 논문 ‘Deontic Logic’, Mind, vol. LX, 1951, S. 1ff에서 하나의 특정 행위의 부작위를 ‘주어진 행위의 부정(Negation)으로 표시한 라이트(G. H. Wright)에게는 이의를 제기해야만 한다. 그는 2쪽에서 ‘따라서 주어진 행위의 부정(행위)에 의해서 우리는 한 사람에 의해 수행된 그 행위를, 그가 그 주어진 행위를 수행하지 않은 경우에만, 그리고 단지 그런 경우에만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대부금을 반환하는 행위의 부정은 그것을 반환하지 않는 행위이다.’라고 한다.」(2편 106-107쪽) 그러나 부작위는 하나의 새로운 행위가 아니라 특정 행위가 수행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어떤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행위를 수행한 것과 동일하게 취급될 수 없다. 실제로 수행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행위 자체이지, 행위의 부작위가 아니다. 어떤 사람이 대부금을 반환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가 ‘어떤 행위를 수행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단지 특정 행위(반환행위)를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대부금을 반환하지 않는 것은 어떠한 ‘행위’도 아니고, 하나의 행위의 부작위, 즉 대부금의 반환에 존재하는 그 행위의 부작위인 것이라고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그 행위의 부작위가 아니라, 단지 행위만이 수행(perform)될 수, 말하자면 실행(ausgeführt)될 수 있는 것이다.」(2편 107쪽) |
도덕체계와 법체계는 사회질서다. 도덕규범과 법규범은 개인의 내적 상태를 규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인간들의 관계를 질서화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규범의 대상이 되는 인간 행위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관계는 타인을 직접적으로 대상으로 하는 행위일 수도 있고,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관련된 행위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살인, 절도, 기만과 같은 행위는 특정 타인과의 관계에서 규율되지만, 군복무나 반역과 같은 행위는 공동체 전체와 관련된다. 규범의 대상이 되는 행위는 항상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된다.
「도덕과 법은 공동체의 질서이고, 단지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규범의 대상을 구성하는 행위는,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그 이해관계를 건드림으로써―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타인에게 관련된 한 인간의 행위이다.」(1편 191쪽)
언뜻 순결이나 자살금지와 같은 규범은 개인 자신에게만 관련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규범 역시 궁극적으로는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개인의 행위는 비록 직접적으로는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간접적으로는 공동체의 이익이나 질서와 연결되어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라는 개념도 실제로는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사회적 의무이다. 모든 규범적 의무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규범들이 규정(결정)하는 인간의 행위는 사실 직접적으로는 단지 그 인간에게만 관련된 것이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공동체에 속하는 다른 인간들에게도 관련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공동체에 대한 간접적인 연관성, 그 행위가 공동체의 이익에 기여하거나 그것을 침해한다는 사정이 이러한 행위가 하나의 규범의 대상이 되는지에 결정적인 것이다. 또한 소위 자신 스스로에 대한 인간의 의무들은 사회적인 의무이고, 달리 말해 다른 인간들에 대한 그 인간의 하나의 행위를 규정하는 규범들의 기능인 것이다.」(1편 192쪽)
제24장 규범의 내용으로서 인간행위의 조건과 효과
규범이 항상 단순히 하나의 행위만을 직접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규범은 대부분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만 어떤 행위를 요구하거나 금지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러한 조건은 때로 인간의 행위일 수도 있지만, 인간의 행위와는 다른 사실일 수도 있다. 즉 규범은 인간의 행위를 규정하면서도 동시에 그 행위가 발생하는 조건적 상황과 관련된다. 따라서 규범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행위 자체뿐 아니라 그 행위가 어떤 조건 아래에서 요구되는지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인간의 행위가 규범의 대상으로 표현된다면, 그것은 인간의 행위가 그 규범에서 당위된 것으로 정해졌다는 의미에서 그런 것이다. 이미 앞에서 언급되었듯이, 이것은 그 규범이 단지 인간의 행위에만 연관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정적인 도덕 및 실정법의 규범들이 하나의 특정 인간의 행위를 항상 특정한 조건들 아래에서만 규정(지시)하고 있는 한 그 규범들은 또한 이러한 조건들에 관련된다.」(1편 193쪽)
이러한 조건이 반드시 동일한 행위주체의 행위일 필요는 없다. 어떤 규범에서는 한 사람의 행위가 조건이 되고 다른 사람의 행위가 결과로 요구될 수 있다. 가령 절도를 저지른 사람이 있을 경우 법관이 처벌해야 한다는 규범에서, 절도행위는 조건이 되고 처벌행위는 규범이 요구하는 행위가 된다. 또한 어떤 경우에는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자연적 사실이 규범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나 자연재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상황적 조건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이 존재할 때 특정한 인간 행위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규범은 여전히 인간 행위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그 조건은 그 사람의 행위가―결과로서―규정되어 있는, 예를 들어 ‘한 인간이 죄를 범했다면 그는 속죄를 해야 한다.’는 규범에서, 그 인간의 행위일 수 있다. 하지만 또한 그 조건은, 예를 들어 ‘만약 누군가 절취하였다면 법관은 그를 처벌하여야만 한다’ 혹은 ‘만약 누군가 속였다면, 그의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그 행위를 불승인해야만 한다’와 같은 규범에서처럼, 그의 행위가 규정되어 있는 사람과는 다른 사람의 행위일 수도 있다.」(1편 193-194쪽)
어떤 규범은 특정한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를 금지하거나 요구한다. 예를 들어 살인을 금지하는 규범은 타인의 죽음을 초래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다. 여기서 규범이 직접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인간의 행위이지만, 그 행위가 초래할 수 있는 결과 역시 규범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따라서 규범은 행위뿐 아니라 그 행위가 초래하는 결과와도 연결된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 자체가 규범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모살의 부작위를 요구하는 규범은 사실상 이루어진다면 다른 인간의 의도적인 죽음을 그 효과로 가지거나 가질 수 있는 행위의 부작위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 규범은, 어떠한 행위가 아니라, 하나의 생리학적(physiologisch) 사실인 한 인간의 죽음에 관련된 것이다.」(1편 194쪽)
이것이 규범이 자연적 사건을 직접적으로 요구하거나 금지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규범이 직접적으로 당위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은 항상 인간의 행위뿐이다. 자연현상이나 물리적 사건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규범의 직접적 대상이 될 수 없다. 비가 내리거나 지진이 발생하는 것과 같은 사건을 규범이 요구하거나 금지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러한 생각은 자연물에도 의지와 정신이 있다고 보는 애니미즘적 세계관을 전제할 때만 가능하다. 따라서 규범의 직접적인 내용은 언제나 인간의 행위로 한정된다.
「인간의 행위와는 모종의 다른 것, 예를 들면 비가 내림과 같은 자연적인 사건(일의 경과)들 혹은 지진을 요구하거나 금지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한 규범들을 상정한다는 것은 하나의 애니미즘적인 사고, 즉 그의 행위가 요구되거나 금지되는 인간과 유사한 본성을 가진 사물은 오성과 의지를 타고났으며, 따라서 규범에 따를 수 있다는 생각을 전제하는 것이다.」(1편 194쪽)
| [미주 72] 홀(Hall)은 규범문(normative sentence)을 ‘어떤 사실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하는 문장’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자연현상에 대해서도 규범문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가령 ‘지진은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문장). 「홀(Hall, What is Value, New York-London 1952, S. 155)은 ‘규범문’(normative sentences)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것들은 아마도 어떤 사실이 있어야만 한다(혹은 있었어야 했다)는 것을 말하는 문장으로 기술될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지진은 없어야만 한다거나 다른 자연적 재앙들은 있어서는 안 된다.’를 하나의 규범문으로 부르기를 원한다.”」(2편 108쪽) 그러나 규범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언제나 인간의 ‘행위’에 대해 요구나 금지를 제시해야 한다. 자연현상은 인간의 의지에 의해 통제될 수 없기 때문에 규범의 직접적인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한 생각은 자연을 의지를 가진 존재로 이해하는 애니미즘적 세계관에서만 가능하다. 규범은 인간의 행위를 대상으로 할 때에만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자연재해가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는 문장은 규범이 아니라 단순한 소망의 표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것은, ‘규범문’이 하나의 명령, 무언가 금지된 혹은 요구된 규범으로 이해되는 한, 옳지 않다. 한 인간은 지진이나 다른 자연재앙이 없기를 소망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인간은 지진 혹은 다른 하나의 자연재앙이 발생해서는 안된다고 유의미하게 명령할 수는 없다.」(2편 108쪽) |
이전에 언급했듯, 규범이 어떤 행위를 요구한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사건의 인과적 설명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어떤 사람이 규범을 만들 때 특정 행위를 현실에서 발생하게 만들고자 하는 목적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규범의 의미 자체가 아니라 규범설정행위의 목적과 관련된 문제이다. 규범의 인식은 존재사실의 인과적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당위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규범을 현실사건의 인과적 설명으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
「규범은 현실에서 존재하는, 그에 부합하는 행위, 즉 사실상 단지 현실에서만 존재하는 행위로 일어날 수 있는 행위를 목적으로 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규범은 이러한 그에 상응하는 행위를 목적으로 한다고 확정하는 것은, 규범을 창설하는 인간은 존재현실(Seinswirklichkeit)에서 일어나는 규범을 설정하는 행위로 현실에서 일어나게 하기를 원하는 그 규범에 부합하는 행위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 그리고 규범설정행위는 그러한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확정(Feststellung)은 현실에서 발생하는 일에 관련된 것이고, 두 개의 존재사실 사이의 하나의 인과적 관련인 수단-목적관계에 관련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관계는 규범설정행위의 의미인 당위의 인식인 규범의 인식에서는 문제되지 않는다.」(1편 195쪽)
제30장 구성요건확정의 의미
*제30장의 후반부는 여기서, 전반부는 다른 포스팅―[1] - 규범―에서 각각 정리함.
법원이 어떤 사건에 대해 판결을 내리기 전에 특정 사실을 확정하는 행위는 진술의 형태를 가진다. 예를 들어 법관이 ‘피고인이 절도를 저질렀다’고 확정하는 경우, 이는 사실에 대한 진술이며 논리적으로는 참이나 거짓일 수 있다. 그러나 법적 절차에서 중요한 것은 이 진술의 진실여부가 아니라 그 확정행위 자체이다. 법적 절차에서 제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실제 범죄사실 자체가 아니라 권한 있는 기관이 그 사실을 확정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법적 판단은 사실판단의 진리와 동일한 차원에서 이해될 수 없다.
「예를 들어 만약 한 법관이 일반규범에서 규정된 제재, 구금형을 하나의 개별규범에서, 하나의 주어진 사례에서 명령하기 전에, 한 특정 인간이 하나의 절도를 범했다는 것을 확정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확정은 그 의미가 하나의 진술인 하나의 행위이고, 그 진술은 진술로서 참 혹은 거짓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법적 절차에서는 확정의 행위가 문제된다. 이 행위는 일반적인 법규범에서 하나의 제재가 결합되어 있는 하나의 조건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은 확정행위(진술)의 의미가 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법관의 판결이 기판력을 가지게 되는 순간, 충족되는 것이다.」(1편 255-256쪽)
전통적 법학에서는 범죄라는 사실이 존재하면 그에 따라 제재가 부과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제재의 조건은 범죄사실 자체가 아니라 법원이 그 사실을 확정하는 행위이다. 법질서에서 효력을 가지는 것은 객관적 사실 자체가 아니라 권한 있는 기관의 확정이다. 따라서 법원의 확정행위는 단순한 기술적 진술이 아니라 규범적 기능을 수행한다. 법원은 단순히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제재를 가능하게 하는 구성요건을 창설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절도라는 사실이 아니고, 혹은 일반적으로 말하면, 그 자체 범죄라는 사실이 아니며, 일반규범이 제재를 결합하고 있는 이러한 사실의 법적용기관을 통한 확정인 것이다. 이것은 또한 꼭 제재의 집행 명령에 이르러야만 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소위 민사법원의 소위 확정판결에도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그 판결들의 의미는, 만약 앞에서 이루어진 확정판결에서 확정된 사실의 확정이 명령될 제재의 조건의 확정인 하나의 법적 절차에 이르게 되는 경우에, 이러한 명령은 새로운 확정 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에 있다. 법원으로부터 적용될 규범이 하나의 제재를 결합하고 있는 구성요건을 확정하는 법원의 그 행위의 진정한 본질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는 이러한 사실관계가 기술되는 전통적인 법언어로부터 해방되어야만 한다.」(1편 256쪽)
법적 효과는 실제 사건 자체와 결합되는 것이 아니라 법원의 확정행위와 결합된다. 법은 현실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직접적으로 조건으로 삼지 않는다. 법이 조건으로 삼는 것은 특정 권한을 가진 기관이 그 사건이 일어났다고 확정하는 행위이다. 인간은 사건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법규범의 조건으로 취급할 수 없고, 오직 사건에 관한 진술을 통해서만 그것을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순수하게 인식론적으로는 어떤 것 혹은 과정들도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하나의 인간의 인식에서 어떤 것 혹은 사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입법자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어떤 것이나 사건 그 자체가 아니고, 어떤 것과 사건들에 관한 진술들, 인식내용을 표현하는 진술들이다. 따라서 입법자는 사건(발생한 일) 그 자체를 특정한 효과의 조건으로 할 수는 없다. 입법자는 단지 누군가 인간에 의한 하나의 특정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확정을 하나의 특정한 결과의 조건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입법자는 그가 이것을 할 때, 어떤 사람의 확정이 유일하게 결정적인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하나의 특정한 사건이 발생했는지에 관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직접적인 혹은 간접적인 인지를 근거로 이루어지는 확정들이 매우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이 하나의 특정한 효과를 결합하는 조건은 소송규정에 따라 권한 있는 법원의 확정이고, 하나의 특정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확정이다. 즉, 그것의 의미가 이러한 진술인 법원의 행위이다.」(1편 257쪽)
법관의 사실확정은 단순한 기술적 진술이 아니라 규범적 의미를 가지는 행위이며, 그 확정행위는 제재를 명령하는 개별규범의 성립조건이 된다. 실제로 범죄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법원이 그 사실을 확정하고 판결이 확정되면 그 판결은 법적으로 유효하다.
「법은 효과로서 하나의 제재를 실제로 일어난 과정 그 자체를 조건으로 결합하는 것이 아니고, 법관의 확정행위의 의미인 진술의 진실에 결합하는 것도 아니며, 그 의미가 하나의 특정한 법원에 의해 적용될 일반규범에서 정해진 사건(Vorgang)이 일어났다는 진술인 관할 법원의 기판력 있는 확정행위에 결합하는 것이다.」(1편 258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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