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 켈젠(김성룡 역), 규범의 일반이론, 아카넷, 2016
Hans Kelsen, Allgemeine Theorie der Normen (1979)
제25장 규범의 기능들: 명령, 허용, 수권, 폐지
규범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특정 행위를 명령하는 것이다. 일반적 언어관용에서는 명령과 금지를 서로 다른 기능처럼 구별하지만, 이것은 기능의 차이가 아니라 대상 행위의 차이일 뿐이다. 금지는 특정 행위의 부작위를 명령하는 것인바, 명령 역시 특정 행위의 부작위를 금지하는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언어적으로는 ‘명령하는 것’과 ‘금지하는 것’을 구별한다. 하지만 그것은 두 개의 상이한 기능들이 아니라 상이한 행위와 관련한 단일하고 동일한 기능이다(하나의 행위와 이러한 행위의 부작위), 저마다의 금지는 하나의 명령으로 기술될 수 있다. ‘사람은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는 ‘사람은 도둑질을 부작위해야만 한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명령으로 기술될 수 있다.」(1편 196쪽)
특정 행위를 명령하는 규범은 동일한 의미에서 그 행위의 부작위를 금지하는 규범으로 표현될 수 있다. 반대로 특정 행위를 금지하는 규범 역시 그 행위의 부작위를 명령하는 규범으로 기술될 수 있다. 따라서 규범 기능을 분석할 때 명령과 금지를 별개의 기능으로 설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저마다의 명령도 금지로 기술될 수 있다. ‘사람은 진실을 말해야만 한다.’는 명령은 ‘사람은 속여서는 안 된다.’라는 금지로, 즉 진실을 말하는 것을 부작위해서는 안 된다고 기술될 수 있다.」(1편 197쪽)
일반적 언어사용에서는 ‘해야 한다’는 표현이 명령에만 대응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반면 허용이나 수권은 각각 ‘해도 된다’, ‘할 수 있다’와 같은 표현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순수법학>에서 설명했듯 허용하거나 수권하거나 폐지하는 것 역시 규범의 기능이므로, ‘당위’는 명령에 국한하지 않고 규범의 기능 전반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당위’는 특정 행위가 명령된다는 의미뿐 아니라, 권한이 부여되거나 행위가 허용된다는 규범적 상태를 표현하는 데에도 사용되는 넓은 개념이다.
「명령함은 그 유일한 기능이 아니다. 하나의 규범은 특정한 행위를 명령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정한 행위를 수권할 수도 있다. 그리고 끝으로 하나의 다른 규범의 효력을 무효로 해버릴 수도 있다. 즉 다른 규범을 폐지할 수 있다. … 허용하는 것도 규범적 기능의 하나로 간주된다. … 통상적인 언어관용에 따르면 단지 명령만이 ‘해야만 함(Sollen)’에 상응한 것이다. 수권함에는 ‘할 수 있음(Können)’이, 허용에는 ‘해도 됨(Dürfen)’이 상응하는 것이다. 단지 무언가가 그에게 명령된 자에 대해 우리는, 그는 ‘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무언가가 그에게 허용된 자에게 우리는 그는 ‘해도 된다’, 무엇에 대해 권한을 수권받은 자에 대해서 우리는 그는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또한 권한을 부여하는 규범이 하나의 ‘당위’를 규정했다고도 하고, 허가의 경우에는 하나의 ‘당위’가 있다고도 한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당위·해야만 함(Sollen)’으로 명령, 수권, 허용의 세 가지 규범적인 기능들을 표현한다면, 권한을 부여하는 것과 허가하는 것은 하나의 당위에 대해 본질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1편 198쪽)
‘허용’이라는 표현은 서로 다른 두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어떤 행위가 규범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금지되거나 명령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는 경우이다. 이 경우 허용은 단지 규범의 부재를 의미할 뿐이며, 어떠한 규범적 작용의 결과가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허용은 규범의 기능이 아니라 단순히 규범이 적용되지 않는 행위의 상태를 설명하는 표현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태에서 행위는 단지 자유로운 것으로 표현될 수 있다.
「‘허용한다(erlauben)’라는 말로는 매우 상이한 것들이 표현된다. ‘하나의 특정행위가 허용되었다.’는 진술은 도대체 어떠한 규범도 이러한 행위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고, 특히 이 행위는 금지된 것도 명령된 것도 아니라는 것, 달리 말해 이러한 행위도 그 부작위도 규범을 통해 명령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허용됨’, ‘허용되어 있음’은 하나의 단순한 부정적 의미를 가진다. 하나의 특정 행위가 이러한 의미에서 ‘허용되었다’는 것은 이러한 행위를 명령하거나 금지하는, 적극적으로 허용하거나 수권하는 어떤 규범도 (효력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의미에서 ‘허용함’은 따라서 결코 하나의 규범의 효력이 아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하나의 규범의 효력으로서 ‘허용함’이란 없다. 단지 어떠한 규범의 대상도 아닌 하나의 행위(예를 들어 숨쉼, 생각함)의 특성으로서 ‘허용되어 있음’만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우리는 또한 그 행위는 자유(frei)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순수한 부정적인 의미에서 하나의 특정 행위가 허용되어 있다는 것은 단지 어떠한 규범도 도대체 이러한 행위 또는 그 부작위를 명령하는 효력 있는 규범으로 존재하지 않는 경우만이다.」(1편 200-201쪽)
그러나 허용은 또 다른 의미로도 사용된다. 어떤 행위를 금지하거나 명령하던 규범이 폐지되거나 그 효력이 제한될 때, 그 행위는 이제 허용된 것으로 표현된다. 이 경우 허용은 단순히 규범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규범의 효력이 제거되거나 제한된 결과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에서 허용은 규범적 작용의 결과이며, 하나의 규범기능과 관련된다.
「하지만 하나의 특정 행위가 허용되었다는 것은 또한 하나의 특정 행위를 금지하는(혹은 그와 동일한 의미인, 이러한 행위의 부작위를 명령하는) 규범의 효력이 하나의 다른 폐지하는 규범을 통해 효력을 상실하게(폐지) 되었고, 그래서 이러한 행위는 더 이상 금지된 것이 아니다(혹은 더 이상 명령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1편 201쪽)
이것이 적극적 의미의 허용이다. 여기서 허용은 독립적인 기능이라기보다 금지를 제거하거나 제한하는 규범작용의 결과이다. 즉 허용은 금지의 폐지 또는 제한으로 환원될 수 있다.
「적극적 허용의 규범적인 기능은 폐지의 기능으로, 즉 하나의 특정한 행위를 금지하는 규범의 효력의 무효화 혹은 제한으로 환원할 수 있다.」(1편 202쪽)
허용과 명령은 서로 배타적이다. 하나의 행위가 단지 허용된 것이라면 그것은 명령된 것이 아니다. 반대로 하나의 행위가 명령된 것이라면 그것은 허용된 것이 아니다. 허용은 행위할 수도 있고 행위하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가능성을 의미하지만, 명령은 그러한 선택을 제거한다. 따라서 두 개념은 동일한 행위에 대해 동시에 적용될 수 없다.
「만약 하나의 행위가 단지 허용되었다면, 그것은 명령된 것이 아니다; 만약 하나의 행위가 명령되었다면 그것은 허용된 것이 아니다. 물론 때때로 하나의 명령된 행위는 허용된 것이기도 하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 만약 하나의 명령된 행위가 또한 허용된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명령되었고, 따라서 또한 허용된 것과 같이, 동시에 선택권을 가진 것일 수도 있고, 가지지 않은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1편 203-204쪽)
| [미주 77] 메이네츠는 법규범이 수행하는 기능을 금지, 명령, 허용, 면제의 넷으로 구분했다. 이러한 구분은 법적 규율의 다양한 형식을 포괄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일정한 설명력을 가진다. 특히 그는 허용과 면제를 구별하면서 법적으로 자유로운 영역의 존재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규범기능의 구조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그는 규범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인 ‘폐지’를 고려하지 않았다. 또한 명령과 금지를 서로 다른 규범적 기능으로 이해한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금지는 사실상 특정 행위의 부작위를 명령하는 것이므로 규범기능의 관점에서는 명령과 동일한 기능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메이네츠(Máynez, “Die höchsten Prinzipien der formalen Rechtsontologie und der juristischen Logik”, Archiv für Rechts- und Sozialphilosophie, Bd. XIV, 1959)는 법규범들은 단지 금지함, 명령함, 허용함, 그리고 법적으로 면제함(법적으로 자유로운 영역)의 기능들만을 가진다고 받아들였다. 그는 193쪽에서 … ‘금지된 것, 명령된 것, 허용된 것, 그리고 법적으로 면제된 것 … ’을 언급했다. 동시에 그는 ‘면제된(자유로운)’ 행위를 법적인 허용의 ‘하위유형’으로 보고, ‘법적으로 의무진’ 행위를―그것은 물론 ‘명령된 것’이다―그것의 다른 하위유형으로 본다고 표현했다(196쪽). 여기서 메이네츠는 법적 규범들의 폐지기능을 무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금지함과 명령함은 두 개의 단일하고 동일한 규범적 기능 … 임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상위한 행위방식, 즉 무언가의 ‘작위’와 ‘이러한 작위의 부작위’의 ‘명령’이 문제됨에도 불구하고, ‘금지함’과 ‘명령함’을 두 개의 상위한 규범적 기능으로 구분하였다.」(2편 112-113쪽) 메이네츠의 또 다른 문제점은 허용과 수권을 동일한 것으로 이해했다는 데 있다. 그는 허용을 주관적 권리의 행사와 연결하면서 권리의 인정 자체를 허용의 의미로 파악했다. 그러나 권리의 인정은 단순한 허용과는 다른 규범적 기능이다.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특정 행위를 단순히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행위를 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허용기능이 아니라 수권기능에 해당한다. 「또한 그는 ‘허용함’과 ‘수권함’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는 193쪽에서 “법적 의미에서 허용된 것은 주관적인 권리들의 행사를 그 자체 포함하고 있는 행위이다.”라고 하고 “법은 권리의 인정과 의무들의 부과를 통하여 행위를 규율하는 것이다.”(194쪽)라고 했다. 메이네츠에 따르면, 우리는 주관적 권리들의 행사에 있어서, 법적인 규율의 하나인, ‘허용함’을 사용하기 때문에(그는 193쪽에서 “권리를 행사하는 자의 행위는 필연적으로 허용된 것이다.”라고 했다), ‘허용함(Erlauben)’은 주관적인 권리들의 인정을 뜻한다. 이러한 주관적 권리들의 ‘인정’은 하지만 법적 권한(Rechtsmacht)을 부여하는 것이고, 하나의 ‘수권(Ermächtigen)’이고, 그것은 본문에서 상세하게 표현된 소극적, 그리고 적극적 의미에서의 ‘허용함’과는 본질적으로 상위하다.」(2편 113쪽) 메이네츠는 법적 규율의 구조를 설명하면서 금지와 허용 사이에는 제3의 가능성이 없다고도 주장했으나, 명령이 바로 그 제3의 가능성에 해당한다. 행위가 명령된 것이라면 그것은 단순히 허용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명령과 허용은 서로 다른 규범적 기능이기 때문이다. 「메이네츠는 195쪽에서 “만약 하나의 행위가 법적으로 규율되고 있다면 그것은 단지 금지되거나 허용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은” 자명한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근본원칙에 우리는 배중률의 존재론적 법적 공리라는 이름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법적 금지됨과 법적 허용됨 사이에는 어떠한 제3의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tertium non datur).”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스스로, 이미 확인했듯이, 금지됨과 허용됨 외에 ‘규정(지시)된 것’(즉 명령된 것)과 ‘법적으로 면제(자유로운 영역)된 것’을 구별했다. … 하나의 행위는 금지될 수도 허용될 수도 없고, 그것은 명령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만약 하나의 행위가 명령된 것이면 그것은 ‘허용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명령하다’와 ‘허용하다’는 상이한 규범적 기능들이기 때문이다. … 만약 하나의 행위가 허용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금지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명령된 것일 수 있는 것이다.」(2편 114쪽) 「197쪽에서 그는 “만약 법적으로 명령된 모든 것이 법적으로 허용된 것이라면, 하나의 특정한 행위에 의무를 진 자는 필연적으로 그에게 명령된 것으로 할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의무자의 권리).”라고 말했다. 여기서 하나의 명령된 행위는 하나의 허용된 행위라는 가정이 ‘의무’와 ‘권리’의 개념을 섞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2편 115쪽) |
소극적 의미에서 허용된 행위는 자유의 영역에 속한다. 즉 어떤 행위가 금지되지도 명령되지도 않는다면, 그 행위나 그 부작위를 통해 어떤 규범도 침해되지 않는다. 또한 적극적 의미에서 허용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어떤 금지규범이 제한되거나 폐지되어 특정 행위가 허용된 경우, 그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허용규범이 침해되는 것은 아니다. 허용규범은 특정 행위를 명령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허용은 규범위반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만약―하나의 특정 행위를 금지하는(혹은 그 행위의 부작위를 명하는)―규범의 효력이 하나의 다른 규범을 통해 효력을 상실하거나 제한되었기 때문에, 하나의 행위가 적극적인 의미에서 허용되었다면, 이러한 하나의 행위를 허용하는 규범은 침해될 수 없다.」(2편 204쪽)
| [미주 78] 라이트(G. H. Wright)는 ‘의무적인(obligatory)’, ‘허용된(permitted)’, ‘금지된(forbidden)’이라는 세 가지 의무론적 양식을 구별하면서 금지와 의무를 허용개념을 통해 정의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방식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가령 ‘금지’를 ‘허용되지 않음’으로 정의함은 아무런 설명도 제공하지 못하고 단지 동어반복, 순환논증이 될 뿐이다. 「라이트(G. H. Wright, “Deontic Logic”, Logical Studies, London 1957, S. 58)는 이미 지적했듯이 세 가지의 ‘의무론적 양식’, 즉 ‘의무적인(obligatory)’, ‘허용된(permitted)’, ‘금지된(forbidden)’을 구분했고, ‘의무적인’과 ‘금지된’의 양식을 ‘허용’이라는 양식을 통해 정의하려 했다. 그는 ‘금지되어 있음’은 ‘허용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만약 하나의 행위가 허용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금지된 것이라고 불린다. 예를 들어: 절도는 허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것은 금지된 것이다.” … 하지만, 만약 하나의 행위가 허용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금지된 것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고, 그 반대이다: 만약 하나의 행위가 금지되었다면, 그것은 허용되지 않은 것으로 표현된다는 것이고, 여기서 ‘허용된’은 ‘금지되지 아니한’과 같은 의미이다.」(2편 115쪽) 라이트는 또한 의무를 행위의 부작위가 허용되지 않는 상태로 정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 역시 부정확하다. 행위의 부작위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표현은 결국 그 행위가 명령된 것이라는 의미에 불과하다. 이러한 설명 역시 허용개념을 사용하지 않고도 충분히 기술될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경우 규범의 기능은 단순히 특정 행위를 명령하는 것이다. 「라이트는 하나의 행위가 명령되었다는 것은 그것의 부작위는 허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61쪽). “우리는 그것을 하지 않도록 허용되지 아니한 것을 해야만 한다.” 또다시 이것도, 만약 하나의 행위의 부작위는 허용되지 않았다면 그 행위는 명령된 것으로 표시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이다: 만약 하나의 행위가 명령되었다면, 그 행위의 부작위는 허용되지 않은 것으로 표시된다는 것이고, 여기서 ‘허용된’은 ‘금지되지 아니한’과 같은 것이다.」(2편 116쪽) 라이트는 행위의 부정이 금지된 경우 그 행위가 의무적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는 규범구조를 부당히 역전시킨 표현이다. 실제로는 특정 행위가 명령되었기 때문에 그 행위의 부작위가 금지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의 해설은 규범의 기능을 정확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통해 규범을 설명하는 것에 불과하다. 「라이트는 이러한 맥락에서, “만약 하나의 행위의 부정이 금지되었다면, 그 행위 자체는 의무적인 것으로 불린다. 예를 들자면: 법에 복종하지 않는 것은 금지되었다. 따라서 그 법을 따르는 것이 의무적이다.”(61쪽)라고 말했다. 고려되는 규범적 기능은 명령함이기 때문에, 금지함은 하나의 부작위의 명령이기 때문에, 만약에 우리가 하나의 행위의 명령되었음을 그 행위의 부작위가 금지되었음으로 말한다면, 거꾸로 된 것이다. ‘법률에 복종하는 것이 명령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금지하다’는 개념을 이용하려고 한다면, 사실 ‘법률에 따르지 않는 것은 금지되었다’고 말한다는 식으로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법률에 따르지 않는 것은 금지되었고, 따라서 법률에 복종할 것이 명령된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사실관계를 뒤집는 것이다.」(2편 116쪽) |
가령 ‘허용될 수 있는 행위만이 명령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타당하지 않다. 동일한 행위가 서로 다른 규범에 의해 상반된 규정의 대상이 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가능하다. 즉 하나의 규범에서는 특정 행위를 금지하면서 다른 규범에서는 동일한 행위를 명령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은 규범충돌의 사례에 해당한다. 규범 충돌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며, 이론적으로도 부정될 수 없다. 따라서 허용가능성을 명령의 전제조건으로 보는 견해는 규범충돌의 가능성을 설명할 수 없다. 이에 관해서는 추후 다시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단일하고 동일한 행위가 하나의 효력 있는 규범에서는 금지되고, 그리고 동일시점에 유효한 하나의 다른 규범에서는 명령되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하다. 그렇다면 규범충돌(Normenkonflikt)이 있는 것이고, 규범충돌들의 존재는 부정될 수 없다.」(2편 205쪽)
‘금지되지 않은 것은 허용된 것이다’라는 명제는 종종 법질서의 일반 원칙처럼 언급된다. 그러나 이 명제는 허용의 의미에 따라 서로 다른 문제를 낳는다. 만약 허용을 단순히 ‘명령되지도 금지되지도 않은 상태’라는 소극적 의미로 이해한다면, 이 명제는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금지되지 않은 것이 곧 명령되지도 금지되지도 않은 것이라는 설명은 개념적으로 동일한 내용을 반복하는 모순적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허용되었음이 명령된 것도 금지된 것도 아니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다면 그 법칙은 맞지 않다. 왜냐하면 ‘금지되지 않은 것은 명령되지도 금지되지도 않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의 모순(Widerspruch)이기 때문이다.」(1편 206쪽)
반대로 허용을 적극적 의미에서 이해하더라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적극적 의미의 허용은 금지규범의 폐지나 제한을 통해 발생하는데, 이 경우 ‘금지되지 않은 것은 허용된 것이다’라는 명제는 결국 ‘금지되지 않은 것은 금지되지 않은 것이다’라는 동어반복이 된다. 때문에 입법자가 이 원칙을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이다.
「허용되었음이 위에서 표현한 적극적인 의미를 가진다면, 이러한 의미에서 허용된 것은 즉 금지된 것이 아니고, 그 규칙은, 금지되지 않은 것은 금지되지 않은 것이라는, 순환논증(Tautologie)이 되어버린다.」(1편 206쪽)
‘허용되지 않은 것은 금지된 것이다’라는 반대명제 역시 일반원칙으로서 성립하기 어렵다. 이 명제는 사실상 모든 행위를 금지하는 일반적 금지규범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모든 행위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고, 입법자가 예외적으로 허용한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구조를 가정해야 한다. 이러한 체계는 이론적으로는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법질서에서는 구현되기 어렵다. 현실의 법질서는 대부분의 행위를 자유 영역으로(자유의 최소한) 남겨두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나, 실제적으로는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1편 206쪽)
이 명제가 입법기관이나 법원, 행정기관의 행위에만 적용된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타당하지 않다. 법창조나 법적용은 단순히 허용된 행위가 아니라 특정 기관에 권한이 부여된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위는 허용의 문제라기보다 수권의 문제이다. 법의 창조와 적용을 허용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은 규범 기능의 차이를 흐린다. 법질서에서 이러한 행위는 허용이 아니라 권한의 배분을 통해 가능해진다.
「법의 생성과 적용을 위해서는 특수한 기관들이 수권을 받는다; 그것은 그들에게 단지 허용된 것만이 아니다; 그리고 수권함·권한을 줌은 (적극적 의미에서의) 허용함과는 상이한 규범적 기능이다.」(1편 207쪽)
제26장 수권
수권은 특정 행위를 직접 명령하거나 금지하는 기능이 아니라, 특정 개인에게 규범을 설정하거나 적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기능이다. 즉 수권은 규범의 내용이 아니라 규범을 생산하고 적용하는 능력 자체를 배분하는 규범적 작용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수권은 규범 질서의 구조적 형성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권한을 부여함(수권함)의 규범적 기능은 한 개인에게 규범들을 설정하고 적용하는 권한을 수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도덕규범은 그 아버지에게 자신의 아들을 구속하는 명령을 내릴 권한을 부여한다. 하나의 법질서는 특정 개인들에게 법규범을 생산해내거나 법규범을 적용하는 권한을 부여한다.」(1편 208쪽)
법질서는 스스로의 생산과 적용을 규율한다. 즉 법질서는 단순히 행위를 규정하는 규범들의 집합이 아니라, 그 규범을 누가 만들고 누가 적용할 수 있는지를 규정하는 규범체계이다. 따라서 수권규범은 법질서의 작동방식 전체를 결정하는 핵심요소가 된다.
「법은 자신의 고유한 생산과 적용을 규율하기 때문에, 법에서의 수권의 규범적 기능은 특별히 중요한 하나의 역할을 한다. 단지 법질서가 이러한 권한을 수여한 개인들만이 법규범을 생산해내거나 적용할 수 있다.」(1편 208쪽)
수권이 존재한다는 것은 동시에 수권되지 않은 행위의 개념을 가능하게 한다. 특정 행위를 수행할 권한을 부여받지 않은 개인이 규범을 설정하거나 적용하려는 경우, 그 행위는 객관적으로 법창조·적용의 성격을 가지지 않는다. 비록 행위자가 주관적으로 법적 행위를 수행한다고 생각하더라도 이러한 행위는 법적 효과를 발생시키지 못하며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것에 대해 수권을 받지 않은 개인은 법을 생산할 수 없거나 법을 적용할 수 없다. 그의 행위는 비록 주관적으로는 이러한 의도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법창조 혹은 법적용의 성격을 가지지 않는다.」(1편 209쪽)
이러한 행위는 법적 효력이 없는 것이지 ‘불법’이 되는 것이 아니다. 즉 수권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그 행위를 금지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특정 행위가 별도의 규범에 의해 금지된 경우에만 그것은 위법행위가 된다. 수권되지 않은 행위는 단순히 무효일 뿐이며, 위법성은 별도의 금지규범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행위들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법효과(Rechtswirkung)가 없는 것이다; 그것들은 무효이다. 즉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1편 209쪽)
수권된 행위는 반드시 명령된 행위일 필요는 없다. 특정 개인에게 규범을 설정하거나 적용할 권한이 부여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권한을 반드시 행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입법기관은 헌법에 의해 법률을 제정할 권한을 부여받지만, 그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 법위반이 되지는 않는다.
「하나의 도덕규범 혹은 법규범을 통해 권한이 부여된·수권된 행위는―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또한 명령된 것일 수도 있다.」(1편 210쪽)
물론 경우에 따라 규범창조는 명령된 것일 수도 있다. 가령 개별사건에서 법관에게는 법을 적용할 권한이 부여되며, 동시에 그 권한을 행사해야 할 의무가 부여된다. 이러한 경우 법관이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그는 공무상 의무를 위반하게 된다. 따라서 수권과 명령은 동일한 기능은 아니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결합될 수 있다.
「단지 그것이 또한 명령되었을 때만, 그 부작위는 도덕위반 혹은 법위반인 것이다. … 만약 그가 구체적인 사례에서 자신에게 수권된 권한을 행사하지 않으면(부작위하면) 그는 자신의 공무를 침해하는 것이고, 명령을 위반하는 것이며, 위법하게 행위하는 것이다.」(1편 210쪽)
수권은 특정 행위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지, 그 행위를 수행할 것을 직접적으로 명령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권은 간접적으로 명령을 포함할 수 있다. 즉 한 개인에게 규범을 설정할 권한을 부여하는 경우, 그 규범에 종속되는 다른 개인들에게는 그 규범을 준수할 의무가 발생한다.
「권한을 부여함(Emächtigen)의 규범적 기능은 허용(Erlauben)의 규범적 기능과 같고, 따라서 명령함(Gebieten)의 규범적 기능과는 상이하다. 하지만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명령을 암시할 수 있다.」(1편 211쪽)
가령 헌법이 입법기관에게 법률을 제정할 권한을 부여하면, 그 법률은 법질서에 종속된 개인들에게 구속력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헌법은 입법자에게 규범을 설정할 권한을 부여함과 동시에, 간접적으로 그 규범에 대한 복종을 명령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헌법의 한 규범이 입법기관에 일반적으로 (법질서에 종속된 주체들에게) 구속적인 규범을 만들 권한을 부여했다면, 입법기관의 일반적인 법규범을 창설한 권한뿐만 아니라, 법수범자인 주체들에 대한 그 법규범의 구속성도 헌법에 근거한다.」(1편 211쪽)
명령이나 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규범은 준수되거나 침해될 수 있다. 반면 허용이나 수권과 같은 규범은 준수나 침해의 대상이 아니라 단지 ‘적용’의 대상이 된다. 규범을 준수하는 행위와 규범을 적용하는 행위는 서로 다른 차원의 행위이다.
「한편으로 명령(혹은 금지)의 기능과 다른 한편으로 (적극적인) 허용과 권한부여의 기능 간의 차이는 규범의 준수 혹은 침해와 규범의 적용을 구별하는 것에서 표현된다. … 원고로서 혹은 검사로서 법관을 통한 제재 명령을 청구하거나 법관으로서 제재를 명하거나 혹은 강제집행기관으로서 명령된 제재를 집행하는 자는 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단지 하나의 규범을 준수할 수 있는 자만이, 또한 그것을 침해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단지 하나의 특정 행위를 명령(혹은 금지)하는 규범만이 준수되거나 혹은 침해될 수 있다.」(1편 213쪽)
제31장 법에 의한 인간행위의 적극적 혹은 소극적 규율
*서술의 전개에 비추어 제31장을 여기서 다루도록 함.
법이 인간행위를 규율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특정 행위를 명령하거나 금지하는 적극적 규율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 행위에 대해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행위를 소극적으로 허용하는 방식의 규율이다. 일반적으로 법이 어떤 행위를 규율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명령이나 금지와 같은 적극적 규율을 떠올리지만, 소극적 허용 역시 법질서의 작용 방식이다. 법규범이 특정 행위를 요구하거나 금지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그 행위를 법적으로 자유롭게 만드는 효과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법적으로 명령되지도 금지되지도 않은 행위는 ‘자유로운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자유는 법질서 밖의 상태가 아니라 법질서 내부에서 인정된 자유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자연적 자유가 아니라 법률상 자유이다.
「이미 언급한 부분에서는 규범적인 법기능들로, 명령함, 특정 행위의 적극적인 허용과 수권이 언급되었으나, 법규범으로부터는 요구되지도 금지되지도 않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법규범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행위의 소극적인 허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러한 하나의 소극적으로 허용된 행위는 법적으로 규율된 것으로―사실 적극적으로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소극적으로는 법적으로 규정된(rechtlich geregelt) 것으로―간주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위는 하나의 법규범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에서. 특히 법적으로 요구되거나 금지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법의 규율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또한 어떠한 법규범에 의해서도 규정되지 않은 행위도―실제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잠재적인―법질서에 종속되는 것이다. 어떠한 법규범의 대상도 아닌, 법적으로 요구되지도 금지되지도 않은 하나의 행위는 자유로운 것이다. 만약 법적으로 명령되지도 금지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한 인간이 어떠한 규범의 대상도 아닌 하나의 행위를 하는 것이 자유라면, 그것은 그가 그렇게 행위하는 것이 법률상(von Rechts wegen) 자유라는 것이다.」(1편 259-260쪽)
결국 법질서에 속한 인간의 모든 행위는 법적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규율되는 것이다. 어떤 행위가 법에 의해 명령되거나 금지되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규율되는 것이고, 아무런 규정이 없는 경우에는 소극적으로 허용되는 방식으로 규율된다. 따라서 법질서 내부에서 법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 행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법질서는 하나의 완결된 규범체계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법질서에는 원칙적으로 ‘흠결’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행위가 법적으로 규율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경우에도 실제로는 그 행위가 법적으로 자유로운 행위라는 판단이 가능하다.
「우리가 이러한 의미에서 법규범을 통한 하나의 적극적인, 그리고 소극적인 인간행위를 구별한다면, 법질서에 종속된 한 인간의 저마다의 행위는―적극적 혹은 소극적으로―법적으로 규율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이러한 의미에서―법질서의 폐쇄성(Geschlossenheit der Rechtsordnung)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의 특정 인간의 행위가 법적으로 규율되지 않았고, 따라서 실정(유효한) 법은 이러한 행위에 적용될 수 없다는 의미로 ‘흠결’을 이해한다면, 법에서는 어떠한 ‘흠결’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실정법은 한 인간이 자신에 의해 드러난 행위로 인해 법적으로 책임을 지게 되는 모든 사례들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1편 260쪽)
만약 법원이 어떤 행위가 어떠한 법규범에 의해서도 금지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면, 법원은 피고인을 무죄로 판결하거나 청구를 기각한다. 이 역시 ‘법이 적용된’ 결과다. 법질서는 금지된 행위가 존재할 때에만 제재가 부과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죄판결은 하나의 법적 규범, 즉 해당 사례에서 제재가 부과되어서는 안 된다는―소극적 허용으로 표현된―개별적 규범을 적용한 결과이다.
「법원이 공적인 기소자에 의해서 혹은 사적인 기소인(원고)에 의해 법원의 판단에 넘겨진 피고인 혹은 피고의 행위가 효력이 있는 어떠한 법규범에 의해서도 금지된 것이 아니라고 혹은 심지어 유효한 어떠한 법규범에 따를 때에도 금지되지도 명령되지도 않은 것이라고, 즉 어떠한 실정 법규범의 대상이 아니라고 확정했다면, 그 법원은 실정법을 적용하여 피고인을 무죄방면하거나 피고에 대해 향해진 소를 기각하여야만 한다. 이것은 또한 법원이, '입법자는 대상사례를 예견하지 않았고, 만약 입법자가 이런 사례를 예견했다면 그는 그러한 유형의 사례들에 관련된 하나의 규범을 창설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고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믿는 경우에도 그렇다. 또한 이러한 법원의 판결은 하나의 개별적 법규범, 즉 이러한 사례에서는 제재로서 어떠한 강제행위도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법규범을 표현한다.」(1편 260-261쪽)
| [미주 84] 페렐만과 올브레히츠-티테카는 법체계가 폐쇄적 질서라는 설명을 거부하면서, 현실의 법에서는 모든 사건을 미리 예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사건과 새로운 상황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에 법질서는 논리적으로 완결된 체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특히 ‘새로운 수사학’의 논증이론과 연결되는데, 그들은 법관의 판단을 형식논리의 적용이 아니라 설득과 논증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법은 개방적이며, 법관은 새로운 사례에 대해 규범을 창조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페렐만과 올브레히츠-티테카(Ch. Perelman & L. Olbrechts-Tyteca, Traité de l’Argumentation. La nouvelle rhétorique, 2. Aufl., Bruxelles 1970, S. 176)는 내가 나의 Reine Rechtslehre(1934)에서 주장했던 법체계의 폐쇄성에 관한 입장을 거부했고, 사실 모든 판결될 사례들이 예견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그 근거였다. “완전히 명료한 개념은 모든 적용들이 알려진 개념이다. 그리고 예측하지 못한 사용인 새로운 사용은 허용하지 않는다. 단지 성스러운 혹은 인습적으로 제한된 지식만이 그러한 요구에 들어맞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켈젠이 제한하는 것처럼, 법에서 닫힌 질서(ordre fermé)를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법관은 형식논리자의 예처럼 한 번에 그 체계의 적용 분야를 제한할 수 있다. 법률의 침묵, 모호함이나 불충분함을 들어 법관이 판결하지 않는다면 재판거부(de déni de justice)를 범하는 위험을 가져온다(프랑스 민법 제4조). 매번 법관은 비록 법률에서 규정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법적 규정이 상황에 적용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해야 한다.”](2편 124쪽) 그러나 프랑스 민법 제4조는 법질서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동조는 법률의 침묵이나 불명확성을 이유로 판결을 거부하는 것을 금지한다. 즉 법관은 어떤 경우에도 판결을 내려야 한다. 이 규정은 법질서가 항상 적용 가능한 규범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법률이 특정한 행위를 금지하지 않는다면 법관은 무죄를 선고하거나 청구를 기각해야 한다. 이 역시 법의 적용이다. 법률의 침묵은 법질서의 공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제재를 부과할 근거가 없다는 규범적 판단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로 프랑스 민법(나폴레옹법전) 제4조가 이 법체계의 폐쇄성을 증명하고 있다. 법률이 ‘침묵하고 있으면’, 즉 주어진 사례에 하나의 불법효과를 결합하는 규범을 함유하고 있지 않으면, 법관은 공소를 기각하고, 피고인을 무죄 석방해야만 하며, 이것도 그 법을 적용해서 하는 것이다. 그 상황은 ‘모호한(obscurité)’ 경우와 차이가 나지 않는데, 즉 법률이 너무 ‘모호해서(dunkel)’, 법관이 그 법에서 사례에 적용 가능한, 실질적으로 정해진 규범을 도출할 수 없는 경우와 차이가 나지 않는다. 법관은 이 법을 적용해서 청구를 기각하고,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야만 한다.」(2편 124-125쪽) 법률이 ‘불충분하다’는 판단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법관의 가치판단이다. 법관이 어떤 규범이 부적절하거나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은 법적 효력을 변경시키지 않는다. 법관은 자신의 가치판단에 따라 기존 규범을 대체할 권한을 가지지 않는다. 만약 법관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입법자가 법관에게 그러한 권한을 명시적으로 위임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법실증주의적 입장에서는 이러한 권한 위임이 실정법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한 법관은 기존 규범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 「‘불충분한·부족한’은 법적용기관의 주관적인 가치판단이다. 법관이 법을 불충분한(unzulianglich) 것으로 판단하더라도 또한 그 법률을 적용해야만 한다는 것은, 단지 법관은 하나의 유효한, 그에 의해 불충분한 것으로 여겨진 규범의 자리에 (대체해서) 그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규범을 대체 설정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는 원칙의 결론일 뿐인 것이다. 이 양 저자에 의해 주장된 이론에 이르는 결론은 권한위임인데, 이것은 적용될 법률이 법관에게 줄 수는 있지만, 반드시 주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민법(나폴레옹 민법전)은 어쨌거나 부여하지 않았다.」(2편 125쪽) 하나의 사건이 법정에 제기되면 가능한 결과는 두 가지뿐이다. 제재가 부과되거나, 제재가 부과되지 않거나이다. 이 두 가능성 중 하나는 반드시 선택되어야 한다. 제3의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에서 법질서는 폐쇄적이다. 법질서는 항상 사건을 규범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입법자가―법관의 입장에 따를 때―문제되는 법적 규정이 주어진 사례에 적용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예견하지 않았다는 것은, 단지 법관의 추정이 문제되고 있는 한에서는, 실정법적 관점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법관이 하나의 법적 규정이, 사실 법률의 표현에 따르면 아니지만, 그 외의 입법자의 증명 가능한 의도에 따를 때, 주어진 사례에 적용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필히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믿는다면, 그는 그 규정을 바로 실정법적 원칙에 따라 적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유효한 법질서는 여하튼, 소가 제기되어야만 하거나, 피고인이 유죄판결을 받아야만 하거나, 혹은 소가 기각되어야만 하거나, 피고인이 무죄선고되어야만 하는 경우라면 항상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제3의 가능성은 없다(Tertium non datur). 여기에 바로 법체계의 폐쇄성이 있다.」(2편 125쪽) |
일반적으로 법에 흠결이 있다고 말할 때 우리는 법이 특정 상황을 규율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의 흠결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사람들이 ‘법의 흠결’이라고 부르는 것은 법질서 자체의 결함이 아니라 단지 법과 도덕 사이의 간극을 가리킬 뿐이다. 어떤 행위가 법적으로는 허용되어 있지만 도덕적·정치적 관점에서는 금지되어야 한다고 생각될 때 사람들은 그것을 법의 흠결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법의 적용가능성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법의 적용 결과가 도덕적 기준과 충돌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사람들은 보통, 실정법에 따를 때 소극적으로 허용된, 즉 법적으로 금지되지도 허용되지도 아니한, 달리 말해 자유인 하나의 행위가 무언가 하나의 도덕적-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법적으로 요구되거나 금지되었어야만 했을 때, 법에서의 ‘흠결’이라고 말한다. 그런 경우 ‘법에서의 흠결’은 법과 도덕 사이에, 그리고 말하자면 실정법과 하나의 특정한 도덕적-정치적 질서 사이에 하나의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 실정법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 아니고, 실정법의―의심할 바 없이 가능한―적용이 특정한 도덕적·정치적 근거들로 인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 이러한 의미에서 실정법의 적용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한다.
법관이 도덕적 또는 정치적 원칙에 따라 소위 ‘법의 흠결’을 보충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면, 이는 사실상 그러한 도덕적 원칙이 법적 효력을 가지는 규범으로 승인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법관이 법의 흠결을 보충한다는 것은 도덕적 원칙이 법질서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엄격한 법실증주의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권한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될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만약 우리가 법을 적용하는 기관이 이러한 '흠결을 메울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것은 법적용기관이 실정법을 통해 구체적인 사례를 그에 의해 유효한 것으로 전제된 도덕적-정치적 원칙에 따라 판단할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를 통해 이러한 도덕적 정치적 원칙은 실정법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게 된다. 즉 하나의 법규범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렇기 때문에 실정법이 그 사례에 적용 가능하다는 것이 된다. 물론 실정법 질서가 그러한 수권을 명시적으로 혹은 묵시적으로 함유하고 있다는 증명은 수미일관된 법실증주의의 관점에서는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한 증명 없이는 하나의 ‘흠결을 채우는’ 법관의 판단은 단지 기판력의 원칙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1편 262쪽)
제27장 폐지
폐지(derogation)는 단순히 ‘새 규범이 생김’이 아니라, 기존 규범의 효력(Geltung)을 다른 규범이 끊어버리는 특수한 기능이다. 폐지는 어떤 행위를 ‘하라/하지 마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당위로 설정되어 있던 당위를 ‘비당위(Nicht-Sollen)’로 전환한다. 명령·수권·허용과 달리 ‘행위의 당위’를 직접 구성하지 않고, 그 당위의 ‘철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도덕영역에서도 폐지가 논리적으로 가능하지만, 실정도덕에서는 통상 폐지보다 효력기간의 도과나 실효성 상실이 더 일반적인 소멸방식이다. 그러한 소멸방식들와 폐지 사이의 구별점은, 폐지는 ‘다른 규범에 의해’ 규범의 효력이 제거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폐지는―효력이 있는―규범의 효력이 다른 규범을 통해 상실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규범을 폐지하는 규범의 기능은 다른 규범들의 기능과 같이 하나의 특정 행위의 명령, 수권, 허용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조건들 아래에서는 하나의 특정 행위가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 유효한 규범에서 규정되어 있는 하나의 행위가 당위되어 있음(Gesollt-Sein)을 폐지하는 것이다. 그것은 당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당위, ‘당위 아님(Nicht-Sollen)을 규정하는 것이다.」(1편 215쪽)
폐지규범은 ‘부작위를 명령하는 규범’과과 구별된다. 부작위명령은 여전히 어떤 행위를 대상으로 삼아 새로운 당위를 설정하지만, 폐지는 새로운 행위를 당위화하지 않고 기존 당위의 효력만 제거한다. 따라서 ‘A를 해야 한다’의 폐지는 ‘A를 하지 말아야 한다’와 동일한 의미가 아니다.
「하나의 특정 행위를 당위된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하나의 규범의 효력을 폐지하는 규범은 이러한 행위의 부작위를 당위된 것으로 규정하는 규범과 혼돈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행위를 의무진 것으로 규정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의 행위의 부작위를 당위된 것으로 정하는 것도 아니다.」(1편 215쪽)
폐지규범은 기능을 수행하는 순간, 즉 상대 규범의 효력을 끊는 순간, 그 관계에서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진다. ‘폐지규범을 다시 폐지하여 옛 규범을 부활시키려는’ 시도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한바, 옛 규범은 단지 ‘폐지의 폐지’로 되살아나는 게 아니라 동일한 내용을 가진 새로운 규범을 다시 설정하는 방식으로만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폐지의 문제는 규범들의 효력범위의 문제이다. 폐지를 통해 하나의 규범의 효력이 그 시간에서 끝나게 된다면 시간적인 효력범위의 문제이다. 폐지는 하나의 규범의 효력에 대한 것이지, 그 설정행위에 대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규범의 효력만이 폐지될 수 있는 것이지, 그 설정행위가 폐지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효력을 폐지하는 규범은 하나의 행위에 연관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규범들과 같이, 준수되거나 적용될 수가 없다. 따라서 그것은 또한 침해될 수도 없다. … 그 효력은 그 규범이 이미 효력을 상실케 한 그 규범과의 관계에서는 폐지될 수가 없다. 그것은 그것을 통해 효력을 상실한 이 규범과 관련해서는 폐지 가능하지 않다.」(1편 216쪽)
물론, 폐지규범이―즉시가 아니라―장래 특정시점에 상대 규범의 효력을 소멸시키도록 설계된 경우에는, 그 특정시점이 오기 전에 폐지규범 자체의 효력을 제거하는 것은 가능하다.
「만약 폐지규범을 통해 규정된 하나의 다른 규범의 효력상실이 그 폐지규범의 창출과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보다 이후의 시점에 일어나게 되는 경우라면 다르다. 예를 들어 만약 폐지규범이 ‘그 규범의 효력과 관련하여 … 이 (폐지하는) 규범이 시행된 후 6개월이 지난 후 종료된다’라고 규정하는 경우이다. 그렇다면 그 중간시점에는 규범의 효력을 폐지하는 규범의 효력도 하나의 다른 폐지규범을 통해 폐지될 수 있는 것이다.」(1편 217쪽)
폐지규범은 명령문/당위문으로는 적절하게 표현될 수 없다. 명령문은 어떤 행위를 하라/하지 말라를 말할 뿐, 행위의 당위 자체를 ‘당위 아님’으로 만든다는 기능을 직접 표현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개 ‘~ 효력은 폐지된다’ 같은 진술 형태로 표현된다.
「폐지하는 규범은 하나의 행위의 당위도 그 행위의 부작위의 당위도 규정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행위의 비당위(Nicht-Sollen)를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규범은 다른 규범들과 같이 하나의 명령문(Imperativ-Satz) 혹은 당위문(Soll-satz)에서 표현될 수 없다.」(1편 219쪽)
「따라서 폐지하는 규범은 예를 들어 … ‘ … 라는 규범의 효력은 이로써 폐지된다’와 같은 진술의 형태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하나의 진술의 기능은 기술(서술)적인 것이 아니고 규정적(präskriptive)인 것이고, 사실 하나의 규범의 효력을 상실케 하는 기능이다.」(1편 219쪽)
| [미주 79] 법질서에서는 특정한 단어 또는 문장의 표현 자체가 일정한 법적 효과의 발생 조건으로 규정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 문제되는 언어표현은 단순한 사실진술이 아니라 법적 행위를 구성하는 요소로 기능한다. 예컨대 유언의 작성이나 혼인의 성립과 같은 법률행위에서는 특정한 문구가 표현되어야만 법적 효과가 발생하도록 규정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그 표현은 언어적으로는 하나의 진술의 형태를 취하지만, 법적 기능에 따르면 사실의 기술이 아니라 법적 효과를 발생시키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이러한 언어 표현은 단순한 의미 전달을 넘어 법질서 속에서 규범적 기능을 수행한다. 「때때로 법은 특정 개인들을 통한 특정 단어들 혹은 문장들의 표현을 특정한 법효과들의 조건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법은, 하나의 문서는 단지 그것이 무엇보다 그 자체로서 명백하게 ‘유언(Testament)’ 혹은 ‘유지(letzter Wille)’로 표현된 경우에만 효력 있는 유언이라고 규정하거나, 특히 법적으로 승인된 종교공동체의 한 성직자가 그에게 마주보고 서 있는 다른 성별의 두 인간들에게, ‘나는 이로써 너희들을 남편과 부인(부부)으로 선언한다.’라는 말을 했을 때만, 혼인이 성립(발생)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유언’ 혹은 ‘유지’라는 단어는 언어적으로 문서의 서술이고, 성직자의 단어들(성직자가 한 말들)은 언어적으로 이 단어들이 가지는 법효과의 기술, 즉 진술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의 법적인 기능에 따르면, 그것들은 기술들, 진술들이 아니고, 법적 효과들의 (전제)조건들이다.」(2편 116-117쪽) 이와 같은 법적 발화는 단순한 사실 기술과는 다른 성격을 가진다. 오스틴은 특정한 표현이 상황에 따라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어떤 행위를 수행하는 기능을 가진다고 설명하였다. 예컨대 ‘나는 약속한다’, ‘나는 경고한다’와 같은 표현은 어떤 사실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이나 경고라는 행위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법적 맥락에서 이러한 발화는 단순히 수행적 기능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법질서가 특정 발화를 법적 효과의 조건으로 규정하는 경우, 그 발화는 수행적 기능을 가지는 동시에 일정한 사실을 기술하는 측면도 가질 수 있다. 「오스틴(J. L. Austin, “Other Minds”, in: Logic and Language, Second Series, Oxford 1955, S. 146f.)은 “설령 몇몇 언어가 이제는 순전히 기술적이라고 하더라도, 언어는 원래 그런 것이 아니었고, 그들의 대부분은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 않다. 명백한 의례적인 관용구를 말하는 것이, 적정한 상황들에서는, 우리가 하고 있는 행위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하고 있는 것(I do)이다; 다른 사례들에서는 그것은 마치 말투나 표현과 같이 기능하거나, 구두점이나 서법처럼, 우리가 언어를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적용하고 있다는(’나는 경고한다’, ‘나는 묻는다’, ‘나는 정의한다’) 암시로 작용한다. 엄격히 보면 그러한 구절들은, 마치 ‘나는 약속한다.’가 나는 전적으로 비진실일 수 있는 것을 의도한다는 것을 암시하듯이, 그것이 비록 거짓말을 암시할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거짓일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2편 117쪽) 예컨대 어떤 문서가 ‘유언’이라고 표현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문서가 실제로 유언으로서의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 표현은 사실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표현은 수행적 기능과 동시에 진술적 기능을 갖는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것들은 진술들로서는 진실 혹은 거짓일 수 있다. ‘이 문서는 하나의 유언이다.’라는 문장의 축약으로 ‘유언’이라는 단어는 만약 예를 들어 그 문서에서 처분되는 물건이 그 문서를 유언으로 작성한 사람의 재산이 아닌 경우에는, 거짓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렇다면 그 문서는 유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하나의 유언의 특수한 법효과들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2편 117쪽) 혼인의 선언과 같은 발화 역시 일정한 사실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경우에는 진실이 아닐 수 있다. 예컨대 혼인을 선언하는 발화가 법적으로 요구되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그 발화가 의도하는 법적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발화 역시 단순히 행위를 수행하는 표현이 아니라 일정한 사실을 기술하는 진술로서의 측면을 가진다. 「성직자가 말한 ‘나는 이로써 너희들을 부부로 선언한다.’라는 문장은 만약 그 문장이 향해져 있는 두 사람이 이성이 아니고, 그 둘 중 한 사람이 여자 혹은 남자의 복장을 한, 두 명의 남자이거나 두 명의 여자인 경우에는 거짓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다면 성직자라는 단어는 그것이 기술하고 있는 법효과를 가지지 않고, 결혼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2편 117-118쪽) |
폐지는 일반규범(입법, 관습을 통해 창조된 규범)뿐 아니라 개별규범(판결, 행정행위 등)에서도 작동할 수 있다. 가령 상소법원이 원심판결을 파기해 그 효력을 제거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폐지하는 하나의 규범을 통해 그 효력이 폐지되는 규범은 하나의 일반적인 규범이거나 혹은 하나의 개별적인 규범일 수 있다. 후자의 경우는 예를 들어 하나의 개별적 규범의 성격을 가지는 한 법원의 판단이 보다 상급법원이 그 사안 자체를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상급법원의 판결을 통해서 폐지되는 경우에 나타난다.」(1편 220쪽)
관습에 의한 폐지는 가능하지 않다. 관습은 기존 규범을 ‘폐지’하는 규범을 만들어낸다기보다는, 불복종과 비적용을 통해 기존 규범이 실효성을 잃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폐지기능은 구조적으로 ‘의지적 규범설정’에 결부되어 있다. 즉 폐지 자체가 ‘비당위를 규정하는 기능’이자 기존규범의 효력을 소멸시키려는 의지행위의 의미이므로, 단순한 사회적 사실의 누적(관습)만으로는 그 기능을 갖춘 규범이 형성될 수 없다.
「그 효력이 폐지되는 규범은 하나의 만들어진(제정된) 규범일 수 있고, 또한 관습으로 생겨난 규범일 수도 있다. 하지만 폐지하는 규범은 관습을 통해 생겨날 수는 없다. 효력이 있는 하나의 규범은 지속적인 위반(비준수)과 비적용을 통해 (관습을 통해 하나의 특정 행위를 규정하는 규범이 생성됨이 없이도) 관습법적으로 그 실효성을 잃고, 따라서 그 효력을 잃는다. … 지금까지 유효했던 규범의 폐지가 아니라 실효성의 상실을 통한 효력의 상실이 문제되는 것이다.」(1편 220쪽)
다른 폐지규범에 의해 효력이 제거될 수 없는 규범이 있다. 즉 규범은 자기 효력에 관하여 조건을 부과할 수 있고, 심지어 ‘동일 질서 내 어떤 규범으로도 폐지될 수 없다’는 형태로 자기보존 조항을 둘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실효성의 상실에 의한 효력소멸까지 차단할 수는 없다.
「하나의 규범은 하나의 다른 규범을 통한 그의 폐지를 배제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규범은 그 실효성의 상실을 통해 효력을 잃는 것을 배제할 수는 없다.」(1편 221쪽)
공화국 헌법이 군주 헌법에 의해 폐지될 수 없다고 규정하는 것은 단순한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폐지규범의 허용범위’를 체계 내부에서 통제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통제는 절대적 봉인이 아니라, ‘폐지규범을 통한 소멸’이라는 특정 경로를 차단하는 것에 불과하다. 체계가 실제로 그 규범을 더 이상 받쳐주지 못하면 실효성 상실을 통해 붕괴할 수 있다. 폐지불가능성은 그 자체 경험적 강인함이 아니라 규범기술적 속성이다.
「하나의 규범, 특히 하나의 법규범은 하나의 특정한 행위뿐만이 아니라, 그의 고유한 효력에도 연관될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 한 공화국의 헌법은, 자신(공화주의적 헌법)은 하나의 군주적 헌법에 의해 폐지될 수 없다고 규정할 수 있고, 하나의 군주적 헌법은 자신(군주적 헌법)은 하나의 공화국적 헌법에 의해 효력이 상실될 수 없다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1편 222쪽)
폐지불가능규범의 가장 직관적인 사례가 바로 기판력이다. 기판력이 생긴 판결은 하나의 개별규범이며, 그 효력은 폐지규범에 의해 제거되지 않는다. 다만 특정 법질서가 어떤 절차(가령 재심이나 비상상고)를 통해 판결의 효력을 다시 문제삼을 수 있게 해두었다면, 그 기판력은 엄격한 의미에서의 절대성이 아니라 상대적 성격으로 축소된다. 입법행위로 개별판결을 폐지할 수 있게 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기판력이라는 실정법원칙은―그 의미에 따를 때―폐지불가능한 규범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판력이 생긴 판결은 하나의 개별규범이고, 그 규범의 효력은 하나의 폐지하는 규범을 통해 폐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기판력의 의미이다.」(1편 222쪽)
“그 법질서가, … 하나의 개별규범의 효력이 폐지될 수 있는 하나의 절차의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하지 않는 경우라면, … 기판력은 단지 하나의 상대적인 의미에서 존재하는 것이지, 엄격한 의미에서, 즉 절대적인 의미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1편 223쪽)
전통법학에서는 하나의 규범이 새로운 규범에 의해 폐지되는 경우를 전부폐지와 부분폐지로 구별해 왔다. 고대 로마법전통에서 유래하는 이 설명은, 새로운 법이 기존 법을 완전히 제거하는 경우와 일부만 변경하는 경우를 구분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새로운 규범이 기존 규범을 완전히 제거할 수도 있고, 일정한 부분만을 수정하거나 제한할 수도 있다고 이해된다. 특히 동일한 구성요건에 대해 새로운 규정을 설정하는 경우 기존 규범이 완전히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만 수정되는 것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이러한 설명은 법률 개정이나 입법 기술을 설명할 때 널리 사용되어 왔다.
「고대 로마의 법학에 따라 사람들은 전부폐지와 부분폐지 사이의 구별로서 … ‘새로운 법원칙은 지금까지의 법원칙을 전적으로 혹은 단지 부분적으로 폐지할 수 있다. 그 내용은 그 폐지에 제한될 수도 있고 혹은 그 동일구성요건에 대해 하나의 (새로운) 규정을 창설하는 것일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양 법원칙들이 상호 (병렬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닌 한 명시적인 폐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1편 224쪽)
그러나 규범은 물리적 대상처럼 일부만 제거되거나 수정된 상태로 동일성을 유지하는 존재가 아니다. 실제로 폐지되는 것은 규범 자체가 아니라 그 규범의 효력(Geltung)이다. 따라서 규범이 일부만 폐지된다는 표현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정확하지 않다. 규범이 부분적으로 폐지된다고 말하는 경우 실제로는 규범 효력의 변화가 발생한 것에 불과하다. 폐지는 언제나 규범 효력의 문제로 이해되어야 한다.
「‘폐지되는’ 것은 법원칙이 아니고 보다 정확하게는 하나의 법규범이 아니고 하나의 법규범의 효력이다. 하나의 규범의 ‘전체적인 폐지·전부폐지’가 뜻하는 것은 그 효력의 폐지, 달리 말해 그것의 특수한 실존(spezifische Existenz)의 폐지인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규범의 효력범위는 상이한 외연을 가질 수 있다. 하나의 규범은 영구적으로 유효할 수 있고, 단지 일 년 동안만 효력을 가질 수도 있다. 하나의 규범은 모든 인간에게 유효할 수도 있고, 단지 하나의 특정 종교에 속한 자들에게만 유효할 수 있다.」(1편 225쪽)
전통적 법학에서 부분폐지라는 개념이 등장한 이유는 규범을 물리적 대상과 유사한 방식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물리적 대상은 일부가 변경되더라도 동일한 대상이 계속 존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건물의 창문을 일부 변경하더라도 동일한 건물로 인식된다. 그러나 규범은 이러한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규범은 의미구조이며, 내용이 변경되는 경우 기존 규범이 일부만 수정된 상태로 지속된다고 말하기 어렵다. 따라서 규범을 물리적 대상에 비유하여 설명하는 것은 규범의 본질을 오해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규범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의 물질적 대상이 그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부분적으로 변경되는 것에 유추하여 기술한다. 그것은 우리가 예를 들어 앞쪽(정면)에 여섯개의 창을 가진 집을 그 정면에 두 개의 새로운 창을 만들거나 혹은 이미 존재하는 창 두 개를 막음으로써 변경하여도 그 변경된 집은 동일한 집으로 남아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러한 유추는 옳지 않다. 우리는 하나의 법규범을 하나의 물리적인 대상(물건)과 같이 변경할 수는 없다. 만약 하나의 법규범의 내용 변경이 발생하게 되면, 즉 하나의 다른 법규범의 내용의 부분적인 변경을 의미하는 하나의 내용을 가진 하나의 규범이 효력을 발생하기 시작하면, 단지 두 개의 가능성만이 존재한다.」(1편 226-227쪽)
규범의 내용이 변경되는 경우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은 두 가지뿐이다. 첫째, 기존 규범이 계속 효력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규범이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 두 규범 사이에는 규범충돌이 발생한다. 둘째, 후법이 전법의 효력을 폐지하여 새로운 규범만이 효력을 갖게 되는 경우이다. 어느 경우에서도 기존 규범이 일부 수정된 상태로 동일한 규범으로 지속된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부분폐지라는 표현은 규범의 실제 구조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 둘 중 하나의 가능성은 그 다른 (기존의) 규범이 변함없이 계속 유효한 경우이다. 그렇다면 서로 충돌하는 두 개의 법규범이 효력을 가지는 것이다. 혹은 첫 번째의 법규범의 효력이 후법은 전법을 폐지한다(lex posterior derogat priori)는 실정법적 원리에 맞게 폐지되는 것, 즉 두 번째의 법규범의 효력발생으로 그의 효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는 단지 첫 번째의 규범의 내용과 부분적으로 다른 내용을 가진 두 번째의 규범만이 유효한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의 법규범의 ‘부분적’ 폐지라는 이론이 취하는 바와 같이, 첫 번째 규범이 변경된 내용을 가지고 계속 효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1편 227쪽)
따라서 법학에서 사용되는 부분폐지라는 표현은 규범의 실제 존재방식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라기보다 법기술적 표현에 가깝다. 실제로는 규범의 일부 내용이 변경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규범의 효력이 폐지되고 새로운 규범이 등장하는 것이다. 다만 법률 체계의 연속성을 설명하기 위해 기존 규범이 변경된 내용으로 지속되는 것처럼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표현은 법률 개정 기술에서 흔히 나타난다. 그러나 규범 이론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규범의 변경은 항상 규범 효력의 폐지와 새로운 규범의 설정이라는 구조를 통해 이루어진다.
「또한 우리가 전통적 이론과 같이, 두 번째의 법규범, 즉 그것을 통해 첫 번째의 규범의 내용의 변경이 이루어지는 그 법규범은 이 첫 번째 규범을 폐지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경우에도, 이 첫 번째의 법규범은 변경된 내용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효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두 번째의 법규범이 효력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두 번째의 규범이 ‘첫번째 규범에서 정해진 계약체결 당사자의 최소연령은 20세로 하향되었다.’고 쓰인 경우에도 그렇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부분적으로 변경된 내용을 가진 전체 규범의 축약된 형태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론은 이미, 전통적인 이론 자체에 따를 때에도, 새로운 법규범의 내용이 이전 규범의 내용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후자(이전 규범)는 그 효력을 잃는다는 것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다.」(1편 227-228쪽)
법률개정은 전통적으로 기존 법률이 일부 수정되는 과정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규범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률개정은 단일한 규범의 부분적 변경이라기보다 다수의 개별 규범 가운데 특정 규범의 효력이 폐지되는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법률은 여러 개의 개별 규범으로 구성된 규범 집합이기 때문에, 개정은 그 구성요소 가운데 일부 규범의 효력이 상실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개별 법규범의 부분적 폐지라는 개념은 정확하지 않다. 실제로 가능한 것은 특정 규범의 전적인 폐지이며, 그 결과로 법률의 내용이 변경된 것처럼 보일 뿐이다.
「가능한 것은 사실 개별 법규범(Rechtsnorm)의 부분적 폐지가 아니라, 하나의 개별 법규범의 전적인 폐지, 즉 다수의 법규범들로 구성된 하나의 법률(Gesetz)의 구성요소인 하나의 개별 법규범의 전적인 폐지이다. 이것은 이러한 개별 법규범의 효력이 그와 동일한 대상을 다른 식으로 규율하는 법규범이 효력을 발생함이 없이 폐지되는 식으로 일어날 수 있으며, 혹은 동일한 대상을 규율하는 법규범이 효력을 발생하게 되는 식으로 일어날 수 있다. 양 사례에서 그 법률의 폐지되지 않은 법규범들은 여전히 효력을 지속한다. 양 사례에서 우리는 그 법률은 변경된 내용으로―왜냐하면 폐지된 규범이 없으므로―지속적으로 유효하다고 말할 수 있다.」(1편 228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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