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한스 켈젠

켈젠 '규범의 일반이론' 강독[5] - 규범의 준수

斧針 2026. 3. 3. 16:05

한스 켈젠(김성룡 역), 규범의 일반이론, 아카넷, 2016
Hans Kelsen, Allgemeine Theorie der Normen (1979)


제10장  명령행위, 명령, 그리고 명령준수

명령과 그 준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적 행위만이 아니라, 명령하는 자와 명령수신자에게서 일어나는 내적 과정을 고려해야 한다. 단순히 한 사람이 어떤 말을 하고 다른 사람이 그에 뒤따라 어떤 행동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는 그것들을 명령준수라고 부를 수 없다. 주관적 의미에서 준수, 수신자가 명령을 이해하고, 그에 따르기를 원하며, 그 의지가 그의 행위의 동기로 작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내적 과정을 배제할 경우 명령준수라는 개념은 성립할 수 없다. 명령의 분석은 의지와 이해라는 의미 차원을 전제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주관적인 준수(subjektive Befolgung)가 문제되는 한, 즉 (규범수신자가) 명령에 따르기를 원하기 때문에, 달리 말해 그의 행위의 동기가 명령의 생각(Vorstellung)과 같기 때문에, 자신에게 향해진 표현을 명령으로 이해하고 명령에 따라 행위하는 명령수신자의 행위가 문제되는 한, 명령하는 자와 명령수신자에서의 내적 과정에 관련짓지 않고 명령, 그리고 그 준수를 기술하려는 시도는, 우리로 하여금 ‘명령’이라는 단어, 그리고 ‘명령준수’라는 개념을 전반적으로 폐지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1편 91쪽)

명령준수를 외적 사실들 사이의 인과적 연쇄로만 설명하려 한다면, 그것들을 하나의 언어적 표현과 그에 대한 외적 반응 사이의 인과관계로 환원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동일유형의 사건들 사이에 반복적 법칙성이 관찰되어야 한다. 금속이 가열되면 팽창한다는 일반적 관찰이 있을 때에만, 특정 철도선로의 팽창을 가열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특정한 유형의 표현에 특정한 유형의 행위가 규칙적으로 뒤따른다는 경험이 있어야만, 그것을 명령과 준수의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명령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며, 그러한 일반적 법칙성은 쉽게 성립하지 않는다. 더구나 무엇을 명령으로, 무엇을 준수로 분류할 것인가는 이미 해석을 전제한다. 인과적 설명 이전에 의미의 구별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순수한 외적 인과분석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우리가 문제되는 사실관계를 내적인 과정과 연결하지 않고 기술하려고 시도한다면, 우리는 명령과 준수의 관계를 단지 인간의 언어적인 혹은 기타의 인간의 외적인 표현과 다른 한 인간이 이러한 표현에 반응하는 외적인 행위 간의 인과적 관계로 설명하도록 내몰리게 된다. … 아주 다수의 사례들에서 명령들은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하나의 법칙성·규칙성이 관찰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러운 것이다.」(1편 92쪽)

어떤 표현이 명령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기준은 언어형식 그 자체에 있지 않다. 동일한 문장이 상황에 따라 진술이 될 수도 있고 명령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내일 너는 학교에 간다.”라는 문장은 단순한 예언일 수도 있고, 명령일 수도 있다. 형법전의 절도범은 구금형으로 처벌된다.”라는 문장은 언어적으로는 진술이지만, 규범적 맥락에서는 절도범을 구금형으로 처벌하라.”라는 명령의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명령과 비명령의 구별은 표현의 물리적·감각적 특성이 아니라, 그 표현에 부여된 의미에서만 찾을 수 있다.

「하나의 명령의 의미를 가지는 언어적 표현과 명령의 의미를 갖지 않는 언어적 표현의 차이점은, 즉 언어적 표현 그 자체에 있어야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니고, 마찬가지로 그것을 근거로 둘 다 명령들이 되는 두 개의 언어적 표현의 동종성·동질성도 이러한 언어적인 표현 그 자체에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로부터 도출되는 것은, (1) 언어적인 표현과 그 표현의 의미, 표현의 감각적인 인지와 그것의 이해는 구별되어야만 하고, (2) 언어적 표현의 기능, 소리를 만들어냄, 글자를 만드는 기능과 그 표현에 하나의 특정 의미를 줌, 그 표현에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는 기능은 두 개의 상이한 기능이라는 것이다.」(1편 94쪽)

아버지가 동일한 문장 너는 내일 학교에 간다.”를 한 번은 진술로, 한 번은 명령으로 사용한다면, 외적으로는 동일한 발화가 이루어진다. 전자와 달리 후자는 특정 방식으로 행위해야 한다는 의지적 행위의 표현이다. 그리고 준수란, 수신자가 그 표현을 명령으로 이해하고, 그에 부합하려는 의도를 동기로 하여 행위할 때에만 성립한다.

「한 사람의 표현이 ‘명령’으로, 다른 사람의 반작용이 이러한 명령의 ‘준수’로 기술되는 사례들은, 이러한 구별이 일어나지 않는 무수한 사례들과 무엇을 통해 구별되는 것인지를 묻는다면, 그 답은 “하나의 언어적 표현은 그것이 하나의 의지적 행위의 의미의 표현일 때, 보다 정확히는 다른 사람이 특정 방식으로 행위해야만 한다는 의미의 표현일 때, 하나의 명령이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반응은, 그것이 그 다른 사람에 의해 이해된, 그 표현에서 표시된, 의미에 상응한 행동일 때, 그리고 명령수신자의 행위의 동기가 그에게 인식된 명령에 부합하려는 의도인 경우일 때 이러한 명령의 준수이다.」(1편 95쪽)

「의지(함)와 이해(함)라는 내적 과정들에 연결 지우지 않고는, 그리고 언어적인 표현과는 다른 개념들로서 ‘의미’라는 개념의 도움 없이는, 하나의 명령인 표현들은 명령이 아닌 표현들과 구별될 수 없고, 하나의 명령의 준수인 반작용은 명령의 준수가 아닌 반작용과 구별될 수 없다. 하나의 명령과 그 인과적 연관으로 그 명령의 준수를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1편 96쪽)

 

제11장  규범의 승인과 준수

규범은 본질적으로 누군가의 행위를 향해 설정된다. 명령, 요구, 규정, 규범은 그것을 설정하는 자와는 다른 자의 행위를 대상으로 한다(앞서 언급했듯, 설령 내가 나 자신에게 규범을 설정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스스로를 규범 설정자와는 구별되는 자로 분열시켜 전제해야 한다).

「하나의 명령, 하나의 요구, 하나의 규정, 그리고 하나의 규범은 본질적으로 명령을 하는 자, 요구를 내놓는 자, 규정을 만드는 자, 규범을 설정하는 자와는 다른 한 사람의 행위에 향해진 것이다.」(1편 99쪽)
「소위, 내가 하나의 그러한 규범을 승인한다면, 다른 사람에 의해 나에게 향해진 명령에 동의한다면 그렇다.」(1편 100쪽)

명령에 동의하는 것과 진술에 동의하는 것은 다르다. 진술은 참과 거짓의 문제에 속한다. 진술에 동의하는 것은 그 진술을 반복함으로써 그 참을 승인하는 또 하나의 진술이다. 반면 명령은 참도 거짓도 아니다. 명령에 동의한다는 것은 의지의 일치를 의미한다. 명령에 대한 동의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그 명령을 스스로에게 다시 향하게 하는 의지적 행위이다.

「참(진실)도 거짓(비진실)도 아닐 수 있는 하나의 명령에 동의하는 것은 참이거나 거짓인 진술에 동의하는 것과는 구별되어야만 한다. 하나의 명령에 동의하는 경우에는 명령하는 자와 명령받는 자의 ‘의지(의사)’에서 일치가 나타난다. 진술에 동의하는 경우에는 그 진술을 하는 자의 ‘사고’와 그 진술을 인식하는 자의 사고 사이에서 일치가 나타난다.」(1편 100쪽)
「하나의 명령, 다른 한 사람의 특정 행위를 규정하고 있는 하나의 규범에 대한 동의는 그 자체가 하나의 명령이고 실제로 그 동의되는 그 명령의 반복이지만, 그것은 동의하는 혹은 승인하는 주체로부터 자기 스스로에게 향해진 것이다.」(1편 100-101쪽)

다만, 명령에 동의하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준수하려는 의지는 동일하지 않다. 내가 타인의 명령을 스스로에게 다시 향하게 한다면, 나는 그 명령에 동의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그 명령을 실행하려는 의지를 발생시킨다는 뜻은 아니다. 동의는 나는 그것을 해야만 한다.”라는 당위의 표현이고, 준수는 나는 그것을 한다.”라는 행위의 의욕이다.

「그 의미가 이러한 명령인 그 의사·의지는 명령을 받는 자가 그 명령된 것을 하려는 의사, 명령을 따르려는 의사와 동일하지 않다. … 나는 내가 어떤 것을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어도 그것을 하기를 원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하려고 원함이 없이도 그 무엇을 해야만 한다고 원할 수 있다.」(1편 101쪽)

가령 부하는 상관의 명령에 동의했더라도 그것을 실행할 능력이나 의지를 결여할 수 있다. 반대로, 명령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외적 사정 때문에 그것을 실행할 수도 있다.

「우리는 단순히 하나의 명령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명령을 준수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 명령에 동의함이 없이도 준수할 수 있는 것이다.」(1편 102쪽)

규범을 승인한다는 것은 그것을 준수한다는 것과 동일하지 않다. 나는 약속은 지켜야만 한다.”는 일반규범을 승인하면서도, 실제로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 있다. 내가 그 불이행을 비난한다면, 바로 그 비난이 내가 그 규범을 승인했음을 전제한다. 승인과 실행은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하지만 하나의 규범을 승인하는 것은 그 규범을 준수하는 것과 동일하지 않다.」(1편 103쪽)
「만약 내가 나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비난한다면, 내가 이러한 나의 행위 자체를 불승인한다면, 나는 ‘사람들은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라는 규범을 승인했어야만 하는 것이고, 말하자면 나는 내가 한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는 것을 의욕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나는 내가 한 약속을 지킨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하기를 원하는 것만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한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을 원하지 않아도, 내가 한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는 것은 반드시 의욕(원)할 수 있어야만 한다.」(1편 103쪽)

[미주 41]

헤어
(R M. Hare, The Language of Morals, Oxford 1964, S, 19f))는 명령에 대한 동의를 그 명령의 실제 이행과 동일시한다. 헤어는 진술에 대한 동의와 명령에 대한 동의를 대칭적으로 구성하려 한다. 진술에 대한 동의가 그 진술을 참으로 믿는 데에 있는 것처럼, 명령에 대한 동의도 그 명령을 실제로 수행하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리고 단지 우리가 그것은 진실이라고 믿는 경우에만 우리는 진실한 것이라는 진술에 우리가 동의한다고 한다면, 다른 한편 만약 그리고 단지, 화자가 우리에게 하라고 한 것을 우리가 하거나 해결하는 경우에만 우리는 우리들에게 표현된 2인칭의 명령에 동의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등식은 성립할 수 없다. 명령에 대한 동의는 그 명령을 자기 자신에게 향하게 하는 하나의 의지적 행위이며, 그것은 곧 나는 이것을 해야만 한다고 승인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이 승인행위가 곧바로 그 행위를 실행에 옮기는 의지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승인과 실행은 서로 다른 차원의 의지행위이다(2편 70쪽).

사람은 어떤 행위를 해야만 한다고 진심으로 믿고, 그 규범을 스스로 승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그 행위를 수행하지 못할 수 있다. 두려움, 약점, 외적 강제, 심리적 무능력 등은 승인된 규범의 실행을 방해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의욕하면서도 그것을 할 수 없는 상황은 충분히 가능하다. 명령에 대한 동의를 그 명령의 준수와 동일시하는 것은, 규범의 승인과 규범의 실행을 구별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오류이다. 규범의 승인이라는 것은 당위에 대한 의지적 수락을 의미하며, 실행은 사실적 차원에서의 행위이다. 둘은 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동일하지 않다(2편 70쪽).

우리는 타인의 행위를 직접적으로 의욕할 수 없다. 우리가 원할 수 있는 것은 단지 타인이 어떤 행위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 행위에 대한 의지와 타인의 행위에 대한 명령적 의지의 본질적 차이이다. 자기 자신에게 명령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 의미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행위의 당위이다. 장래의 결심 역시 곧바로 당위와 동일시될 수 없다. 내가 무엇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해야만 한다는 의지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A는 타인인 B의 행위를 의욕(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지 자신 스스로의 행위만을 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A는 단지 다른 사람인 B가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것만을 원할 수 있다. 이것은 자신 스스로의 행위에 향해진 의지(Wollen)와 다른 한 사람의 행위에 정향된 의지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이다. 다른 한 사람의 행위에 향해진 의지적 행위의 경우, 그것은 하나의 명령 사례인데, 한 사람의 의지적 행위의 의미는 다른 사람의 행위가 아니고, 다른 사람의 행위의 당위, 즉 명령에서 명령된 행위의 당위인 것이다. 또한 자신 스스로에게 향해진 명령의 경우에도 명령의 수신자는 다른 한 사람으로서, 즉 제2의 자아로서 명령자에 대응하는 것이기에, 우리가 자신 스스로에게 명령하는 행위의 의미는 자신 스스로의 행위인 당위인 것이고, 행위가 아니며, 우리가 명령된 것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원하는 것이지, 명령된 것을 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1편 104-105쪽)

[미주 42]

모리츠
(Manfred Moritz, “Gebot und Pflicht, Eine Untersuchungzur imperativen Ethik", Theoria, vol. VII, 1941, S. 220)는 명령의 구조를 의지의 대상으로 환원하여 설명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명령은 곧 하나의 의욕이며, 명령하는 자는 어떤 사태의 실현을 원한다. “무언가를 명령하는 자는 무언가를 원하는 자이다. 명령하는 주체는 그 명령의 목적의 실현을 원한다. 명령문 문을 닫아라!’에서는 그 문의 닫힘이 원해지는 것이고, 그처럼 다른 사례들에서는 또한 다른 주체가, 명령을 받는 주체가 부름을 당하고 그에 의한 명령의 목적 실현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명령의 본질을 정확히 포착하지 못한다. 명령의 의미는 어떤 사태 자체의 실현이 아니라, 특정한 주체에게 그 사태를 실현할 것을 당위로 부과하는 데에 있다. ‘문을 닫아라라는 명령에서, 명령하는 자가 의욕하는 것은 단순히 문의 닫힘이라는 상태가 아니다. 그가 의욕하는 것은 수명자가 문을 닫아야만 한다는 것이다(270).

문의 닫힘이라는 물리적 상태는 누구에 의해서든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명령은 특정한 수신자에게 향해진다. 그 명령의 의미는 수신자의 행위의 당위에 있다. 따라서 명령하는 자가 원하는 것은 수명자의 행위의 실현이 아니라, 수명자의 행위가 당위로 설정되는 것이다. 수명자가 실제로 문을 닫는다면, 그 행위는 수명자의 의욕에 의해 실행된다. 그 순간 문을 닫는 것을 원하는 주체는 수명자이다. 명령하는 자는 수명자가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욕한다(2편 70쪽).

 

제12장  규범의 타당성(Geltung)과 규범의 준수 혹은 침해

직접적으로 준수되거나 침해될 수 있는 것은 추상적/가설적 형식으로 존재하는 보편규범이 아니라 개별적 규범이다. 준수나 침해라는 평가는 오직 구체적 상황에서 특정 조건이 실현되었을 때에만 가능하다. 예컨대 누군가 약속을 했다면 그는 그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라는 일반규범은 추상적 형식에 머문다. AB에게 1000마르크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지급했거나 지급하지 않았을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준수 또는 침해를 말할 수 있다. 이때 일반규범은 “AB에게 1000마르크를 지불해야만 한다.”라는 개별적 규범으로 전화된다.

「하나의―정언적 혹은 가설적으로 타당한―보편규범이 아니라, 단지 정언적으로 유효한 하나의 개별규범이 직접적으로 준수되거나 침해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규범준수로 혹은 규범침해로 평가될 행위는 단지 추상적인 일반규범에서의 특정한 조건이 구체적으로(in concreto) 실현되었을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약속을 했다면 그는 그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라는 하나의 보편적인 도덕규범이 정해져 있다면, 특정한 인간 A가 특정한 인간인 B에게 예를 들어 1000마르크를 지불하겠다고 약속한 경우에, 그리고 A가 B에게 1000마르크를 지불했거나 지불하지 않은 경우에만, 하나의 규범준수 혹은 규범침해라고 말할 수 있다.」(1편 106쪽)

이때 개별규범은 단순히 일반규범 속에 함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개별규범이 일반규범 속에 암시되어 있다고 간주된다. 그러나 규범의 효력은 의지행위에 근거하는바, 일반규범을 설정한 권위자가 장래의 구체적 사례를 모두 미리 포섭했다고 보는 것은 허구적 가정에 불과하다. 가령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라는 개별진술이 모든 인간은 죽는다.”라는 일반진술에 논리적으로 포함될 수 있다고 해서, 개별규범의 효력이 일반규범에 논리적으로 포함된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개별적 정언규범은 일반규범에서 암시(함축)되어(impliziert) 있다고 받아들이는 가정은 하나의 허구(Fiktion)에 근거한다. 즉 그 의미가 개별규범인 의지적 행위는 그 의미가 일반규범인 하나의 의지적 행위에 암시되어 있다는 허구에 근거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일반규범을 창설한 권위(자)는 만약 그(권위자)가 인간 A가 인간 B에게 1000마르크를 지불하기로 약속했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알게 되었다면, 또한 추상적인 그 일반규범에서 당위 지워진 행위가 구체적인 경우에도, 즉 A가 B에게 1000마르크를 지불해야만 한다는 것이 되는 개별적이고 무조건적인 규범을 설정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허구이다.」(1편 107쪽)
「“인간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라는 진술의 진실이 보편적인 진술, “모든 인간은 죽는다.”라는 일반적인 진술에서 사실상 암시되었다는 것으로부터 하나의 개별규범의 효력이 그에 상응하는 하나의 일반규범의 효력에 암시되어 있다는 것이 도출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강조되었듯이, 하나의 규범의 효력은 그 의미가 그 규범인 의지적 행위라는 사실에 의존하지만, 하나의 진술의 진실은 그것이 생각되었다는 사실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1편 108쪽)

규범의 준수 또는 침해는 행위자가 관련된 일반규범을 인식하고 있음을 전제한다. 예컨대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일반규범이 있을 때, A는 이를 승인하여 자신에게 너는 너의 원수 B를 사랑해야만 한다.”라는 개별규범을 설정할 수 있다. 이 경우에만 준수나 침해가 성립한다. 그러나 A가 그 일반규범 자체를 승인하지 않는다면, 그의 관점에서는 준수도 침해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규범의 준수와 침해는 적어도, 그의 규범합치적 혹은 규범위반적인 행위가 문제되는 사람에게 그 행위에 관련된 보편적인 규범이 알려져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여기서 두 개의 가능성이 도출된다. 원수 B를 갖고 있는 인간 A는 그 일반 도덕규범 자체를 승인할 수 있다. 즉, ‘너 A는 너의 원수 B를 사랑해야만 한다!’라는 개별적 정언규범을 자신 스스로에게 향하게 할 수 있다. 이 규범을 그는 따를 수도 있고 침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또한 그는 그에게 인식된 일반규범에 대한 승인을 거부할 수도 있다.」(1편 108쪽)

그러나 일반규범이 개인에 의해 승인되지 않더라도,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은 그 규범에 근거하여 행위를 평가할 수 있다. 도덕질서가 특정 행위를 의무로 설정하고 있다면, 그 행위는 타인에 의해 승인되거나 불승인될 수 있다. 이러한 승인 또는 불승인은 일반규범을 구체적 사례에 적용하는 개별규범의 설정을 전제한다.

「만약 우리가 그 일반규범은 그가 그것을 그 자체 승인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효력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그가 그것을 승인하지 않아도 그 일반규범은 그의 행위에 또한 적용된다는 것, 그의 행위가 이러한 일반규범에 따라 선한 것으로 혹은 악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도덕질서의 규범들이 문제되는 한 일반규범의 승인에 관계하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승인 혹은 불승인에도 해당하는 것이고, 또한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 측에서도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하나의 도덕질서가 하나의 특정 행위를 특정한 조건하에서 당위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면, 그 규정은 또한 한 특정 인간의 그에 상응한 행위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승인되는 것임을 규정하는 것이고, 이에 상응하지 않는 행위는 불승인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규정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1편 109쪽)

도덕적 자율성은 일반규범이 반드시 개인 스스로에 의해 창설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일반규범은 관습이나 예언자적 권위에 의해 설정될 수 있다. 자율성은 오히려 그 일반규범을 구체적 사례에 적용하는 과정, 곧 개별규범의 승인행위에 있다.

「여기에 우리가 도덕의 자율성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 이러한 자율성은 도덕의 그 일반규범들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그의 행위가 이에 관련되어 있는 개인 스스로로부터 설정되어야만 한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보편규범들은 관습을 통해서 혹은 뛰어난 인물들을 통해 설정될 수 있고, 그런 한에서는 그런 하나의 도덕은 타율적이다. 이러한 일반규범을 구체적인 사례들에 적용하는 것은 단지 개별적인 규범들을 통해, 즉 개인이 일반적인 도덕규범을 승인하고 그 스스로에게 향하게 한 개별규범들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에 있다.」(1편 110-111쪽)

결국, 누군가가 이 일반규범은 아무도 승인하지 않아도 유효하다.”라고 말할 때, 그는 이미 그 규범의 효력을 승인하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 판단은 그 규범의 효력을 전제한다.

「만약 우리가 하나의 일반적 도덕규범은, 어느 누구도 이 일반적 도덕규범을 승인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의 행위가 이에 관련된 주체에게는 유효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도덕의 그 자율성은 이러한 제한적인 의미에서도 부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렇게 주장하는 한, 우리 스스로 문제되는 일반규범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단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문제되는 행위를 선한 것으로 혹은 나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1편 111쪽)

 

제13장  효력의 객관성

보편적·가설적 규범은 설정되는 순간부터 효력을 갖는다. 여기서 효력이란, 그 규범이 하나의 실제적 의지행위의 의미로서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효력은 본질적으로 조건부이다. 가설규범은 그 자체로는 직접 준수될 수도, 침해될 수도, 적용될 수도 없다. 규범의 유효함을 준수·적용되어야 함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한, 직접적인 준수·적용의 가능성은 오직 개별적 정언규범에만 귀속된다. 따라서 가설규범의 효력은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것이다.

「일반·보편적, 가설적인 규범은, 그것이 창설되는 순간 효력을 가진다. 그 규범은 ‘유효하다’, 즉 그 규범은 하나의 실제적 의지적 행위의 의미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규범은 단지 조건적으로 유효하며 그 자체로서, 즉 일반적 가정적(가설적) 규범으로서는 직접적으로 준수될 수 없고, 침해될 수 없고, 적용될 수도 없다. 하나의 규범이 ‘유효하다.’는 것이 그 규범은 준수되고 적용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뜻하고, 단지 하나의 개별적 정언규범만이 직접적으로 준수되거나 적용될 수 있으나, 하나의 일반적 가정적 규범은 단지 간접적으로 준수되거나 적용될 수 있다는 의미라면, 하나의 일반적 가정적 규범은 단지 간접적으로만 유효(효력)할 수 있다.」(1편 112쪽)

이 간접성은 매개항을 요구한다. 가설규범은 추상적으로 당위지워진 행위를 제시할 뿐이고, 그 행위가 구체적으로 당위지워지려면 이에 상응하는 개별적 정언규범이 성립해야 한다. 다시 말해, 가설규범의 효력은 개별규범의 효력을 통해 중재된다. 이 중재는 개별규범을 설정하는 개인의 승인행위를 전제한다. 그 점에서 승인이론이 제기하는 핵심, 즉 질서의 효력이 종속자들의 승인에 의존한다는 논지는 일정 부분 수용된다. 다만 그 의존은 처음부터 끝까지가 아니라, 가설규범의 완결된 효력에 관한 조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일반적 가정적 규범에서 추상적으로 당위지워진 것으로 설정된 행위가 구체적으로 당위지워진 것으로 설정되는, 일반적 가정적 규범에 상응한, 개별적 정언규범의 효력을 통해서 중재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 개별적 정언규범을 창설하는 개인을 통한 일반적 가정적 규범의 승인을 전제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다양하게 주장되는 승인이론, 즉 하나의 도덕질서 또는 법질서의 효력은 그 질서에 종속되는 개인들을 통한 승인에 의존하는 결과가 되는 승인이론에 동의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의 일반적 가설적 규범의 효력은 그 규범의 창설(설정)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적 효력은 결코 완전한 효력이 아니다.」(1편 112-113쪽)

따라서 가설규범의 효력은 정태적 성질이 아니라 절차적 성질을 갖는다. 규범은 설정되는 순간에 시작되지만, 그때의 효력은 아직 미완의 상태다. 추상적 조건이 어떤 구체적 사례에서 충족되는 즉시, 효력의 절차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 계속이란 개별적 정언규범의 창설로 나아가는 것을 말하며, 이는 일반규범의 개별화 과정으로 규정된다. 이 관점에서 효력은 어떤 고정된 속성이 아니라 움직이는 과정이다. 규범은 단지 하나의 문장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례 속에서 자기 자신을 개별적 규범으로 변환시킨다.

「하나의 일반적 가정적 규범이 효력을 가지게 되는 그 절차는 그 규범의 설정행위로서 종료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일반적 가설적인 규범에서 추상적으로 규정된 조건이 구체적으로 주어지는 즉시 그 절차는 반드시 계속되어야만 하고, 일반적인 규범에 상응하는 개별적 정언적 규범의 창설로 이어져야 한다. 이것은 그 일반규범의 개별화(individualisierung) 절차인 것이다. 하나의 일반규범의 특수한 실존인, 그 일반규범의 ‘효력’은 결코 어떠한 정적인 상태가 아니고, 동적인 과정이다.」(1편 113쪽)

[미주 43]

그레이
(John Ch. Gray, The Nature and Sources of the Law, 2. Aufl., 1927)모든 법은 법관이 만든 법이며, “법의 완전한 효력, 단어의 완전한 의미에서 법의 효력이 얘기될 수 있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일반규범에 상응하는 규범의 창설이 법관을 통해 아직 추가되어야만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일반규범이 제정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법이 완전한 효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사건에서 그것에 상응하는 개별규범이 법관에 의해 설정되어야 비로소 법이 현실적으로 작동한다는 이러한 통찰은 분명 의미가 있다(2편 70-71쪽).

그러나 키저(Cassius J. Keyser, “On the Study of Legal Science”, Yale Law Journal, vol. XXXVIII, 1928~1929)처럼 법학의 주제는 법관의 특징적인 행위이고, “법규는 그 자체 법이 아니, “제정법은 사실상 그 법규의 사법적 해석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급발진이다. 만약 제정법이 그 자체로는 법이 아니고 오직 해석을 통해서만 법이라면, 법관이 해석하는 대상은 단지 틀에 박힌 문구에 불과한 것으로서 '법이 아니면서 동시에 법관의 판결을 구속하는 그 무엇'이 되는바, 이는 타당하다고 할 수 없다(2편 71쪽).

입법자는 일반규범을 창설하고, 법관은 이를 구체적 사건에 적용하여 개별규범을 형성한다. 법관의 핵심 기능은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일반규범을 전제로 하여 구체적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리고, 그 판결을 법률에 호소하여 정당화하는 데 있다. 법관이 적용하는 것은 해석행위 자체가 아니라, 해석을 거쳐 확정된 일반규범이다. 법규 그 자체는 바르게 관찰되어야 한다. 나는 비록 그것이 종종 통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전체 하나로서, 사법의 행위를 조건 지우는 상황들이라고 믿는다.”라는 키저의 설명은 법률과 법적으로 규정되지 않은 도덕적·정치적 원칙을 구별하지 못하는 위험을 내포한다. 법관이 판결에 있어 도덕적·정치적 고려를 참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법률이 부여한 권한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법률은 법관에게 일정한 재량이나 해석의 여지를 줄 수 있지만, 그 법률 자체는 여전히 법관을 구속하는 규범이다. 법의 완전한 효력은 판결을 통해 구체화되지만, 그 토대는 여전히 일반규범에 놓여 있는 것이다(2편 71-72쪽).

일반규범과 개별규범 사이에는 분명 논리적 관련성이 있다. 개별규범이 규정하는 구체적 당위내용은 일반규범이 규정하는 추상적 당위내용의 구체화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논리적 관련성이 곧바로 추론 가능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즉 어떤 사례에서 조건이 충족된다는 진술이 참이라는 이유만으로, 개별적 정언규범의 효력이 일반규범의 효력에서 논리적 연산만으로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효력은 사고의 논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의지행위의 층위에서 성립한다. 개별규범은 논리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규범적 권한을 가진 행위로 설정’, ‘정립되는 것이다.

「일반적 가설적 규범과 그 규범에 부합하는 개별적 정언적 규범 간에는 하나의 논리적 관련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의 구체적인 사례에서 조건의 실현에 해당하는 진술이 진실이라는 것을 빌미로, 개별적 정언적 규범의 효력이 일반적인 가정적 규범의 효력으로부터 논리적인 사고작업의 방식으로 추론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일반적 가설적 규범의 완전한 효력은 그에 상응하는 개별규범을 설정하는 개인으로부터 그 효력이 승인된다는 것에 의존한다는 사정에도 불구하고 그 일반규범의 객관적 효력이라고 표현될 수 있다.」(113-114쪽)

이 효력은 단지 주관적 승인에 갇히지 않는다. 일반규범은 그 스스로 승인하지 않는 개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이는 다른 개인들이 일반규범을 승인하고, 그 규범이 당위로 정한 승인·불승인의 반응을 통해 문제의 개인에게 규범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때 일반규범의 효력은 객관적이라는 평가를 얻는다. 객관성은 어떤 초월적 실체를 뜻하지 않고, 공동체적 적용 가능성, 즉 승인 주체가 당사자 개인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구조를 뜻한다. 따라서 승인·불승인 자체가 암시하는 개별적 도덕규범의 효력 또한 객관적 성격을 띤다.

「소위 그 일반규범이 그 스스로 그 일반규범을 승인하지 않는 개인에게 적용될 수 있는 한; 즉 이 규범으로부터 당위된 것으로 정해진 제재들로 개인의 규범합치적인 혹은 규범위반적인 행위에 반응하는 다른 개인들에 의해서 그 스스로 일반규범을 승인하지 않는 개인에게 적용될 수 있는 한. 환언하면 개인의 규범합치적인 행위를 승인하고, 규범위반적인 행위를 불승인하는 하나의 도덕규범들이 문제되는 한 객관적 효력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로써 또한 승인과 불승인에서 암시되어 있는 개별적 도덕규범의 객관적 효력이 주어진 것이다.」(1편 114쪽)

 

제14장  일반규범의 직접적·간접적 수신자

한 개인의 규범합치적 행위를 승인하고 규범위반적 행위를 불승인하는 것은 도덕질서 특유의 제재이며, 동시에 그 실효성의 보장이다. 인간은 타인의 존중을 원하고 무시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승인과 불승인은 행위를 유도하는 사회적 압력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법이 도덕과 구별되는 지점은 승인·불승인의 유무에 있지 않다. 양자는 모두 규범이며, 도덕체계와 법체계 모두 규범질서다. 차이는 강제행위의 당위화에 있다.

「한 개인의 규범을 준수하는 행위, 그리고 규범을 침해하는 행위를 다른 사람이 승인 혹은 불승인하는 것은 이미 앞에서 확인했듯이 도덕질서의 특수한 제재들이고 그 실효성의 보장인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현시욕구에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되기를, 그리고 무시당하지 않기를 원하고, 따라서 자신의 행위가 승인받기 위해, 불승인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 이것도 이미 확인했듯이 법이 도덕과 구별되는 것은, 제재로서 그 일반규범들이 승인된다 혹은 불승인된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의무진 것으로 규정된 하나의 특정 행위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생명, 자유, 경제적인 혹은 다른 법익들을 강제적으로 박탈하는 것과 같은 강제행위가 당위된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것에 있다.」(1편 115쪽)

[미주 45]

법의 규범적 성격을 부정하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왔다
. 그 핵심은 법을 존재규칙(Seins-Regel)’으로 이해하려는 입장, 곧 법을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행위하고 있는가를 기술하는 사회적 사실의 집합으로 파악하려는 견해다. 가령 코헨(Morris R. Cohen, Law and the Social Order, New York 1933, S. 205f.)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존재적인 혹은 기술적인 것과 규제적인 혹은 규범적인 것 사이의 이러한 범주적인 구별을 피하려는 대단히 많은 노력들이 이루어졌다. 단연코 법의 규범적인 측면을 제거하는 가장 강력한 시도는 법을 관습과 동일시하는 것이고, 사실상 사회적인 삶을 지배하고 있는 방법들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코헨의 지적은, 적어도 제정법이 지배하는 영역에서는 타당하지 않다. 그러나 설령 법을 관습법으로 한정하더라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관습은 하나의 존재사실이다. 사람들이 일정한 방식으로 반복하여 행위한다는 사실은 경험적으로 기술될 수 있다. 그러나 관습을 통해 이 성립한다는 것은, 단순한 반복적 행위가 아니라 그러한 행위가 따라야 할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행위하곤 하는 것과 같이 행위해야만 한다는 규범이 전제되어야 한다(2편 72쪽).

관습이 존재사실이라면, 관습을 통해 성립한 법은 당위이다. 마찬가지로 입법행위 역시 하나의 존재사실이다. 의회가 법률을 제정했다는 것은 사실판단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 입법행위가 규범을 산출한다는 것은, ‘사람들은 헌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행위해야만 한다는 근본규범을 전제할 때에만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법을 존재질서로 환원하려는 시도는, 존재행위와 그 의미로서의 당위를 구별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다(2편 72쪽).
 
사람들은 특정 조건하에서 특정 방식으로 행위한다는 문장은 사회적 현실을 기술하는 진술이다. 반면 사람들은 특정 조건하에서 특정 방식으로 행위해야만 한다는 문장은 규범이다. 법은 후자에 속한다(법의 규범들이 진술인 것이 아니라, 법학의 명제들이 진술이다. 법학은 이 규범은 이러한 내용을 가진다라고 말하는 학문이지, 스스로 규범을 설정하는 행위가 아니다).

법을 존재규정으로 이해하려는 또 다른 동기는, 학문은 오직 존재사실만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가정이다. 이 가정에 따르면 법이 학문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존재사실이어야 하며, 따라서 법학은 법사회학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러나 법사회학은 법 그 자체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생산하는 행위, 법을 준수하거나 위반하는 행위를 기술한다. 법을 원인과 효과의 연쇄 속에서 설명하는 작업은, 이미 법을 규범으로 전제하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다(2편 72쪽).
[미주 46]

바이어
(Kurt Baier, The Moral Point of View. A Rational Basis of Ethics, Ithaca, New York 1958, S.177)는 도덕이 규범적 성격을 지닌다는 이해 자체를 거부한다. 그는 도덕을 법의 한 유형으로 보는 시각을 명확히 배제하면서, 법을 도덕의 모델로 삼는 시도에 반대한다. 그리고 법체계가 도덕적 근거에서 비판될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도덕은 법과 같은 의미에서의 규범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바이어는 도덕의 명령적 본질을 말하고, 도덕이 중심 규칙과 세칙을 포함하는 체계라고 설명하며, 도덕률, 도덕적 금지, 도덕의 요구, 도덕적 복종 등을 언급하는바(“나는 그것을 승인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중심이 되는 규칙 혹은 세칙을 담고 있어야만 하는 도덕성의 바로 그 의미이다. 도덕은 비교적 세련되게 다듬어진 규칙들의 체계이다.”), 이들 개념은 모두 규범적 의미를 전제한다. 어떤 체계가 특정 행위를 요구하고 금지하며, 준수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규범적 질서이다. 규범이 아니라면 요구도, 금지도, 준수도 성립하지 않는다(2편 73-74쪽).
 
바이어가 제시하는 첫 번째 논거는 다음과 같다. “만약 도덕성이 완전한 법이라면, 반드시 완벽한 입법자, 신이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것이 정확하게 도덕성의 한 모델로서 법에 대한 반대 이유인 것이다.” 이 논변은 법을 입법행위에 의해서만 성립하는 질서로 이해하나, 법은 입법뿐 아니라 관습을 통해서도 형성될 수 있다. 관습법은 특정한 인격적 입법자를 전제하지 않는다. 따라서 입법자가 없다는 사실은 곧 규범성이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더 나아가 도덕규범 역시 특정 권위자의 의지행위를 통해 설정될 수 있다. 예컨대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계율은 명백히 하나의 규범설정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이를 수용하는 공동체에서 그 명령은 규범적 효력을 가진다(2편 74쪽).

바이어의 두 번째 논거는 다음과 같다. “한 집단의 법은 불법일 수 없다. 다른 한편 그 집단의 도덕은 잘못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구별은 도덕을 무엇으로 이해하는가에 달려 있다. 만약 도덕이 한 집단에서 유효한 규범체계라면, 그 체계는 그 내부에서 도덕위반적일 수 없다. 그것은 단지 다른 도덕체계와 상이할 수 있을 뿐이다. 한 집단의 법이 그 집단 내에서 불법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집단의 도덕 역시 그 집단 내에서 도덕위반적일 수 없다(2편 75쪽).

요구하고 금지하고 준수를 전제하는 체계는 규범적 질서일 수밖에 없다. 입법자의 부재는 규범성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도덕이 법과 동일한 유형은 아닐 수 있으나, 규범이라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가진다(2편 75쪽).

일반적 가설적 법규범의 직접적 수신자는 강제행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집행할 권한을 가진 기관이다. 반대로, 그 행위가 강제행위의 조건이 되는 개인은 간접적 수신자에 불과하다. 법규범은 우선적으로 집행기관에게향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 가설적 법규범들의 직접적인 수신자들은 강제행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이를 집행하는 권한이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이것을 하도록 의무를 지는 개인들인 것이다. 일반적 법규범의 단지 간접적인 수신자들은, 그들의 행위가 이러한 규범들에서 규정된 강제행위의 조건이 되는 개인들이다. 하나의 일반적인, 하나의 강제행위를 의무진 것으로 설정하는 법규범은 그 강제행위를 창설해야만 하는 개인에 의해 준수된다. 하나의 일반적인 법규범은 그의 행위가 강제행위의 조건인 개인에게 적용된다.」(1편 116쪽)

현대 법질서에서는 강제행위가 두 단계로 실현된다. 첫째 i) 조건의 충족을 확정하고 이에 상응하는 개별적 정언규범을 설정하는 단계이다. 둘째 ii) 그 개별규범을 준수하여 실제 강제행위를 집행하는 단계이다. 형사·민사 영역에서는 법원이, 행정 영역에서는 행정기관이 이 기능을 수행한다. 강제행위는 일반규범의 직접적 준수가 아니라, 법원이 설정한 개별규범의 직접적 준수이다. 일반규범은 간접적으로만 준수된다. 만약 집행기관이 집행을 하지 않는다면, 직접적으로 침해되는 것은 개별규범이다.

[강제적 행위를 집행하는 것은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 단계는 일반규범에서 추상적으로 정해진 조건이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다는 확정; 이에 대해, 일반적인 규범에서 정해진 추상적인 강제행위가 구체적으로 의무 지워진 것으로 규정되는 개별적인 정언적 규범의 설정의 단계이다. 이러한 규범은 특수한 집행기관에 향해진다. 두 번째 단계는 그 개별적 규범이 향해진 기관을 통한 개별적인 규범의 준수로서 강제행위가 집행되는 것이다.](1편 116쪽)

법관 역시 일반규범의 수신자이다. 그는 조건이 충족되었음을 확정한 뒤, 집행기관에 향한 개별규범을 설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두 가지 태도를 취할 수 있다. 하나는 일반규범을 승인하고 개별규범을 설정하는 것, 다른 하나는 구체적 사례에 대해 일반규범의 적용을 승인하지 않는 것이다.

「법관은 이러한 일반적 가설적 규범에 대하여 두 가지의 상이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 그는 그 일반규범을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서 승인할 수 있다. 즉 그는 그가 그 일반규범에 추상적으로 정해진 조건이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다는 것을 확정한 다음에 그 스스로에게 ‘법관인 너는 인간 슐체가 구금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규정하는 하나의 개별적 정언적 규범을 창설해야만 한다.’는 개별적 정언규범을 설정할 수 있다. 법관은 이러한 개별적인 정언규범을 따를 수도 혹은 침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법관은 또한 무언가 하나의 이유로 그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 일반적 가정적 규범을 승인하지 않을 수도 있고, 따라서 그 스스로에게 개별적 정언규범을 설정하지 않을 수 있다.」(1편 117-118쪽)

최종심 법원의 경우, 일반규범의 적용은 결국 그 법관의 승인에 의존한다. 일반규범은 그 자체로 자동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적용은 언제나 승인이라는 행위를 매개로 한다. 이 점에서 법에도 일정한 의미의 자율성이 존재한다.

[미주 47]

모리츠
(Manfred Moritz, “Der praktische Syllogismus und das juridische Denken", Theoria, vol. XX, 1954, S. 127)는 법관의 판결을 하나의 명령준수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 판결은 법률에 의해 동기부여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일반적인 법규범으로부터 개별 법관에게 향하는 개별적 명령을 굳이 도출하지 않더라도, 법관이 일반규범을 준수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 “하나의 법관의 판결은 그 법관이 그 판결을 선고했을 때, 만약 그 법관이 법률을 준수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당한 경우라면, 즉 만약 이러한 법관의 행위가 하나의 명령준수라고 정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경우라면, 그것은 법률을 통해 동기부여된 것이다. 사람들은 법률로부터, 즉 불특정의 사람들 한 부류에 향해진 하나의 일반적인 명령으로부터, 언제 이러한 부류에 속한 한 사람이 그 일반적인 명령을 준수하였는지를 도출해낼 수 있기 때문에, 한 법관이 자신의 판결 선고로 그 일반규범을 준수하였는지 여부를 발견하기 위해서, 우선 일반적인 명령으로부터 개별 법관에 향해진 하나의 개별적인 명령을 도출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나의 개별적인 명령을 거쳐가는 우회로는 불필요하다.”

 
그러나 일반규범은 단지 조건적 효력만을 가진다. 그것이 구체적 사례에서 작동하려면 개별적 정언규범이 설정되어야 한다. 법관이 일반규범을 준수했는지 여부는, 그가 스스로에게 일반규범에 상응하는 개별규범을 설정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일반규범에서 개별규범이 도출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규범을 논리적 명제로 오해하는 것이다. 규범의 효력은 논리적 연역이 아니라 의지적 행위를 통해 성립한다(2편 76-77쪽.
 
개별규범이 유효하려면, 그것은 반드시 어떤 의지적 행위의 의미로서 설정되어야 한다. 가령 일반규범 속에 그것이 압축되어 있다거나 내포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Rigoberto Juarez-Paz, “Reason, Commands and Moral Principles", Logique et Analyse, Nouvelle Serie, 2 Annee, 1959, S. 194ff.)은 규범을 논리적 명제와 동일시하는 오류에 해당한다. 규범은 언제나 의지적 행위의 의미이다. 규범의 효력은 설정행위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2편 76-77쪽).

법규범은 직접적으로 기관을 향한다. 행위주체는 간접적 수신자이다. 따라서 법은 행위주체에게는 타율적이다. 그러나 법적용기관이 일반규범을 승인함으로써 그것을 개별사건에 적용하는 한, 그 적용의 차원에서는 자율적 요소가 존재한다. 이 구조는 도덕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우리가, 법에서 강제행위를 규정하는 규범들은 일반적 규범과 같이 개별적인 규범도 법기관에 향해져 있는 것이지, 그의 행동이 이러한 강제행위의 조건인 사람들에게 향해져 있지 않다고 인정하고, ‘자율성’을 규범을 만들어내는 것에 연결 짓지 않고, 그 규범들의 적용에 연결 짓는다면, 우리는 또한 법의 자율성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행위가 일반적·개별적인 법규범들을 통해 의무지워진 것으로 설정된 강제행위의 조건인 사람들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자율성도 존재하지 않으며 법은 하나의 타율적 성격을 가진다.」(118-119쪽)

법규범의 객관적 효력은 법질서에 종속된 주체의 승인 여부와 무관하게 작동한다. 법의 무지는 적용을 배제하지 않는다. 또한 한 법원이 일반규범을 승인하지 않고 적용하지 않더라도, 그 일반규범의 효력은 소멸하지 않는다. 동일한 규범은 다른 법관에 의해 동일 사건에서 다시 적용될 수 있다.

「일반적 법규범의 경우에는 그 효력이 법질서에 종속된 주체들의 승인에 (전혀) 무관하면 무관할수록, 그리고 스스로 위법하게 행위한 주체에 대한 일반적 법규범의 적용이, 이 자가 그 일반규범의 효력을 알았는가 혹은 몰랐는가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면 질수록 더욱 그렇다. 이러한 행위주체측의 법의 무지는 이미 지적했듯이 법의 적용을 배제하지 않는다. 한 법원이 하나의 구체적인 사례에서 하나의 일반적인 법규범을 승인하지 않고, 따라서 적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 일반 법규범의 효력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이 일반 법규범은 그 동일 법관에 의해서, 그리고 특히 다른 법관들에 의해서 하나의 동일한 사건에서 유효한 법규범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1편 119-120쪽)

 

제15장  제1차적 법규범과 제2차적 법규범

법규범은 두 층위로 구분된다. 하나는 법기관이 강제행위를 부과하도록 규정하는 규범이고, 다른 하나는 법적 주체에게 특정 행위를 의무지우는 규범이다. 전자를 제1차적 규범, 후자를 제2차적 규범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이 이중구조를 인정하더라도, 법적 의미에서 규범의 준수 또는 침해가 판단되는 방식은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두 번째의 규범을 제1차적 규범, 첫 번째의 규범을 제2차적 규범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이러한 전제하에서 하나의 법 주체가 하나의 법규범―제2차적 규범―을 준수했는가 또는 침해했는가에 관한 물음은 단지 권한 있는 법적용기관을 통해서만 법적으로 의미 있게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제1차적 규범의 효력 외에―제2차적 규범의 효력을 개별 법규범들의 영역에 있어서도 수용한다면, 법적용기관의 결정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되어야만 한다.
“(1) 슐체는 마이어에게서 1000마르크를 절취하는 것을 부작위했어야만 했다. (2) 슐체는 마이어에게서 1000마르크를 절취하였다. (3) 슐체는 구금형에 처해져야만 한다.”라고 말하거나, 혹은 “(1) 슐체는 마이어에게서 1000마르크를 훔치는 것을 부작위했어야만 했다. (2) 슐체는 마이어에게서 1000마르크를 절취하지 않았다. (3) 슐체는 구금형에 처해져서는 안 된다.”
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1편 121-122쪽)

개별사건에서 규범의 적용은 언제나 법기관의 결정을 통해서만 법적으로 의미를 가진다. 2차적 규범의 준수 여부 역시 기관의 확정을 통해서만 법적 평가의 대상이 된다. 이 점에서 규범의 효력은 언제나 제도화된 판단과 결부되어 있다.

이론적으로는 제2차적 개별규범이 소급적 성격을 가질 수도 있다. 예컨대 슐체는 훔쳐서는 안 되었었다라는 개별규범은 사건 이후에 형성되는 규범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지나치게 기교적이며 불필요하게 복잡하다. 1차적 규범만으로도 법의 구조를 설명하는 데 충분하다(1122).

법규범이 우선적으로 법적 주체에게 향해진 요구라고 이해된다면, 요구의 본질에는 수신자의 인식이 포함된다는 견해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법의 부지는 면책사유가 아니다라는 원칙이 타당한 한, 규범은 그것을 알지 못한 자에게도 적용된다. 따라서 요구가 본질상 수신자의 인식을 전제한다는 주장은 유지될 수 없다.

「법의 부지는 면책사유가 아니라는 기본원칙이 타당하다면, 즉 하나의 법규범은 하나의 법기관에 의해서 이 법규범을 알지 못하는 하나의 법 주체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면, 요구는 요구의 수신자에게 인식되게 된다는 것이 요구의 본질에 속한다는 관점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은 아주 자명하다. 이것은 입법자의 일반적인 법적 명령뿐만 아니라 법관의 개별적인 법적 명령에 대해서도 타당한 것이다.」(1편 123쪽)

주관적 준수와 객관적 준수는 구별된다. 어떤 행위가 실제로 요구에 부합했는지 여부는, 그 행위자가 요구를 인식했는지와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판단될 수 있다. 반면 주관적 준수는 행위자가 그 요구를 이해하고 그에 따르기를 의욕했을 때에만 성립한다.

「만약 규정된 하나의 행위가 사실상 일어나거나 혹은 일어나지 않았다면, 만약 하나의 행위가 요구된 인간이 이러한 행위를 실행에 옮겼거나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면, 만약 그의 행위가 요구에 부합하거나 부합하지 않는 경우라면, 하나의 요구는 객관적으로 준수되었거나 침해된 것이고, 그 사람이 그때 그 요구를 인식하였는지 여부와는 무관한 것이다. 물론 단지 요구수신자의 행위가 그가 인식한 요구에 부합하거나 혹은 부합하지 않는 경우에만, 하나의 요구의 준수 또는 침해가 주관적으로 나타난다.」(1편 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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