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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젠 '규범의 일반이론' 강독[3] - 인과적 결합과 규범적 결합

斧針 2026. 3. 2. 01:28

한스 켈젠(김성룡 역), 규범의 일반이론, 아카넷, 2016
Hans Kelsen, Allgemeine Theorie der Normen (1979)


 

6장  자연법칙과 규범

자연법칙과 규범은 모두 조건과 결과의 결합이라는 형식을 취하지만, 양자는 결합의 성격을 전혀 달리한다. 자연과학에서 “A이면 B이다라는 진술은 원인과 결과의 인과적 결합을 기술한다. 가령 열을 가하면 금속이 팽창한다는 법칙은 경험적 일반화이며, 그 필연성은 인과적 구조에 속한다. 물론 현대 물리학에서 인과적 필연(Müssen)이 절대적이지 않고 확률적 성격을 띤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것은 존재의 영역에 속한다.

반면 도덕이나 법에서의 만약 A라면 B해야 한다는 진술은 인과적 기술이 아니다. 긴급상황에서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이 가능하고, 대차를 하고 반환하지 않는 것이 가능한 한, 이 관계는 인과적 필연이 아니라 규범적 당위(Sollen)이다. 비슷한 형식적 구조에도 불구하고, 자연법칙과 규범은 존재론적으로 다른 차원에 속한다.

「특정한 하나의 조건에 하나의 특정한 결과가 결합된 저마다의 일반적 규범은, 하나의 특정한 조건하에서는 하나의 결과가 발생해야만 한다는 진술에서 표현될 수 있는 두 개의 구성요건들 간의 관계를 나타낸다. 자연과학이 열과 하나의 금속물질의 팽창 간에 존재하는 관련성을 기술하고 있는 "하나의 금속물질에 열이 가해지면, 그 금속물질은 팽창한다.”와 같은 법칙에서는, 그 조건과 결과 간의 결합은 원인과 효과 간의 결합이고, 하나의 인과적 결합이며, 그 관계의 불가결성은 필연(Müssen)이다. … 윤리학이 “만약 누군가 긴급상황에 처했다면, 우리는 그를 도와야 한다.”는 원칙에서 도덕의 일반규범을 기술하는 경우나, 법학이 “만약 누군가가 대차를 하였다면, 그는 그것을 반환해야만 한다.”라는 문장에서 일반적인 법규범을 기술하고 있다면, 조건과 결과 간의 결합은 주지하다시피 하나의 인과적인 필연성의 성격을 가지지는 않는다. 그 결합은 ‘당위’(Sollen)로 표현되는 것이지, ‘필연’(Müssen)을 통해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규범적 필연성이지, 인과적 필연성이 아니다. 누군가가 긴급상황에 처했고 그는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가능하고, 누군가 대차를 했고 그것을 반환하지 않았다는 것은 가능한 것이다.」(1편 66-67쪽)

법규범과 도덕규범은 특정한 조건 하에서 제재를 당위된 것으로 결합한다. 그 제재는 법규범의 경우에는 강제행위이고, 도덕규범의 경우에는 사회적 불승인, 비난, 경멸, 승인, 칭찬 등이다. 제재의 형태에는 차이가 있지만 양자는 공통적으로 응보적 구조를 지닌다.

「조건과 결과 사이의 관련성에서 이러한 규범적인 필연성은, 또한 불법으로 분류된 하나의 행위에 대해서 하나의 강제행위, 소위 제재를 불법효과로서 규정하고 있고, 법학이 “만약 누군가 불법을 행하였다면, 그에게는 하나의 강제행위―형벌 혹은 민사벌―가 부과되어야만 한다.”라는 명제에서 그 효력을 기술하고 있는, 일반적인 법규범을 통해 창설되는 결합에 있어서도 나타난다. 법은 본질적으로 강제질서이다. 법률은 하나의 특정한 행위를 당위되었음에 대항하는 행위에 대해서 하나의 강제행위를 그 효과로 결합하는 방식으로 규정한다. … 도덕도 하나의 제재를 규정하는 규범적인 질서이다. 왜냐하면 만약 도덕이 하나의 특정한 행위를 규정하면, 그것 또한 저항적인 행위·도덕에 위반되는 행위는 하나의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된다는 것을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덕위반행위는 공동체의 구성원들로부터 불승인되어야만 한다. 도덕은 그에 의해 기술된 반작용, 그 제재가 법에 의해 기술된 제재와 같은 강제행위의 성격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을 통해서 법과 구별된다. 즉 도덕이 저항에 부딪히는 경우에도 법의 제재와 같이 물리적인 강제의 사용을 통해 관철되는 것이 아니며, 도덕의 제재들은 법의 제재들과 같이 단지 규범위반에 대한 반작용일 뿐만 아니라, 규범에 적합한 행위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다.」(1편 67-68쪽)

법규범과 도덕규범은 응보원칙을 공유한다. 질서에 위반되는 행위에는 악이, 질서에 부합하는 행위에는 선이 귀속된다. 그러나 자연법칙과 달리 여기서의 결합은 귀속(Zurechnung)이다. 응보는 인과적 결과가 아니라 규범적 귀속이다. 이는 자연법칙과는 다른 유형의 사회적 법칙이다(169).

자연법칙은 구성요건들 사이의 기능적 관계를 기술하는 진술이다. 즉 그것은 원인과 결과의 결합을 인식적으로 서술한다. 반면 법규범은 그러한 결합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규정함으로써 창설한다. 그리고 윤리학과 법학이 제시하는 도덕명제/법명제는 규범을 기술하는 진술일 뿐 그 자체가 규범은 아니다. 도덕과 법의 규범은 명령의 의미이며, 학문적 진술은 그 규범을 기술하는 언명이다.
 
「일반적인 법규범은, 무언가 규정되고, 그래서 구성요건들 간의 결합, 즉 (법명제로 기술되는) 기능적 관련성이 처음으로 창출되는, 하나의 행위의 의미이다. 자연과학에 의해 표현되는 자연법칙이 자연을 기술하는 것과 같이, 윤리학에 의해 표현되는 윤리법칙은 도덕을, 법학에 의해서 표현되는 법칙은 법을 기술한다. … ‘법칙’은, 비록 윤리학과 도덕, 법학과 법의 혼돈이 아주 흔하다고 하더라도, 진술에서 기술된 대상과 혼돈되어서는 안 되는 하나의 대상에 관한 진술이다. 모리츠-쉴리크(Moritz-Schlick, “Fragen der Ethik”, Schrifte zur wissenschaftlichen Weltauffassung, Bd. 4, Wien 1930, S.108)는 자연법칙, 즉 ‘무언가가 사실상 어떠한 상태인가를 기술하는 공식’으로서 인과법칙을 ‘무언가가 어떻게 행위해야만 하는가라는 규정’으로서 도덕적 법칙과 법적 법칙으로부터 구분하고, “두 가지 유형의 ‘법칙’은 단지 양자가 하나의 공식으로 표현되곤 한다는 점에서만 유일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양자는 사실 절대적으로 서로 관련성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다른 두 개의 것을 동일한 단어로 표현하는 것은 정말로 한탄스러운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 앞의 인과적 필연성의 도식은 “만약 A이면 B이다(혹은 B가 될 것이다).”이고, 뒤의 규범적 필연성의 도식은 “만약 A이면 B여야만 한다.”이다.」(2편 50쪽)

 

7장 인과성과 귀속

인과성은 존재의 영역에서 조건과 결과를 결합하는 반면, 귀속은 규범의 영역에서 조건과 제재를 결합한다. 귀속은 하나의 의지적 행위에 의해 창설되지만, 인과성은 그러한 의지적 개입과 무관하다.

「도덕과 법학에 의해 도덕적 법칙과 법적 법칙에서 기술된, 하나의 일반 도덕규범 혹은 법규범을 통해 창출된 조건과 그 효과로써 제재간의 결합에서는 자연과학에 의해 구성된 자연법칙에서 표현되는 인과성의 원칙과는 사실상 구별되지만, 그 원칙에 유사한 하나의 원칙이 우리에게 다가선다. 나는 이러한 원칙을 귀속(Zurechnung)으로 표현할 것을 제안한다.」(1편 70쪽)

인과성은 무한 연쇄를 가진다. 모든 원인은 또 다른 원인의 효과이다. 그러나 귀속은 그렇지 않다. 범죄에 형벌이 귀속된다면, 그 범죄행위는 귀속의 종국점이다. 형벌이 다시 또 다른 귀속의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과성에는 종국점이 없지만, 귀속에는 있다. 이것이 두 원리의 결정적 차이이다.

「인과성과 귀속은 두 개의 상이한 유형의 기능적 관계이다. … 귀속은 그 의미가 하나의 규범인 하나의 의지적 행위(Willensakt)를 통해 창설되는 것이지만, 인과성은 어떤 그러한 개입(Eingriff)과는 무관한 것이다. 인과성과 귀속 간의 또 하나의 차이점은 모든 구체적인 원인은 하나의 다른 원인의 효과로, 그리고 모든 구체적인 효과는 다른 하나의 효과의 원인으로 고려되어야만 하고, 따라서 원인과 효과의 연쇄사슬은 양방향으로 무한하다는 것에 있다. 귀속의 경우에는 사정이 전적으로 다르다. … 일련의 귀속은 일련의 인과성과 같이 무한한 수의 구성부분들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단지 두 개의 구성부분만을 가진다.」(1편 71쪽)

물리학, 화학, 생물학은 존재, 인과법칙을 다루는 자연과학이다. 윤리학과 법학은 당위, 귀속원칙을 다루는 규범과학이다. 존재로부터는 당위가 도출되지 않으며, 전자의 방법론은 후자에 적용될 수 없다.

「인과성과 귀속의 이원주의는 물리학, 화학, 생물학, 심리학과 같은 인과적인 자연과학과, 윤리학 및 법학과 같은 규범적인 사회과학의 이원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서 표현되는 것은 존재와 당위의 근본적인 논리적 이원론인 것이다.」(1편 72쪽)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