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형사

무죄추정원칙

斧針 2025. 7. 29. 12:09

1. 무죄추정원칙의 의의

무죄추정원칙(Unschuldvermutungsprinzip)이란 피고인은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된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는 법치국가헌법의 기본원리로서(헌법 제27조 제4,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14조 제2) 형사소송법에도 규정돼 있다(275조의2). 다른 여러 절차원칙들과 마찬가지로 무죄추정의 요청 역시 피고인의 주관적 권리(무죄추정권)인 동시에 객관적 절차규범의 성격을 지니는바, 무죄추정원칙이라고 할 때에는 그중 후자를 가리킨다. 교과서에 따라서는 이를 적법절차원칙의 하위원리로 소개하기도 하지만, 목적 면에서나 규율영역 면에서나 적법절차원칙과는 구별되는 독자적 규범원리로 취급해야 한다고 본다.

증거법상 추정(Vermutung)이란 어떠한 사실(전제사실)이 존재하는 경우에 그로부터 다른 사실(추정되는 사실)이 추인되는 것을 뜻하는 용어이나, 무죄추정원칙에서 말하는 무죄추정i) 무죄의 법률상 추정(gesetzliche Vermutung)이라는 증거법상 요청과 ii) 유죄를 전제로 한 불이익처분의 금지라는 소송절차상 요청을 모두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이다.

무죄추정원칙의 추정이 증거법상의 법률상 추정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은 제275조의2 및 헌법 제27조 제4항의 문언에서도 알 수 있다. 무죄추정이 계속되는 시점은 유죄판결의 선고시까지가 아니라 확정시까지인데, 선고 후 확정 전의 시점은 증거법이나 사실인정론과 관련이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무죄추정원칙에서는 다음과 같은 요청들이 도출된다. 먼저, i) 유죄판결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일체의 사실, 즉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사실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확신이 있어야 인정할 수 있고, 그러한 의심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해야 한다(in dubio pro reo 원칙). 다음으로, ii)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사실은 검사가 증명해야 하며, 피고인에게 그 부존재를 증명하게 함은 허용되지 않는다(거증책임의 검사 귀속). 끝으로, iii) 국가는 유죄판결 확정 전까지는 피고인에게 유죄를 전제한 처분이나 대우를 해서는 안 된다(불이익처분금지원칙). 무죄추정원칙은 헌법이 직접 규정하고 있는 중요한 법원칙이므로, 이러한 파생원리들에 대해 법률로써 예외를 규정함은 위헌이다.

 

2. in dubio pro reo 원칙

증거에 의해 법관이 어떠한 사실의 존재에 관해 확신을 얻게 된 상태를 증명(proof)이라 한다. 무죄추정은 강한 추정이므로, 형사소송에서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사실을 증명함에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정도의 확신(proof beyond a reasonable doubt)이 요구된다(307조 제2; 그러나 이러한 요청은 형해화되어, 현실에서 판사들은 유죄추정에 입각해 심리를 진행하고 있다).

소송에서 증명을 필요로 하는 사실을 요증사실(要證事實)이라 하는바, 형사소송에서는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사실(소송조건 및 절차의 적법성에 관한 사실, 범죄성립요건에 관한 사실, 부수처분과 처단형의 도출에 필요한 사실, 선고형의 결정에 고려할 정상관계사실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요증사실의 존재에 관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확신이 없다면, 법원은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1987. 3. 24. 선고 86도2783 판결). 그 부존재가 확실히 드러난 경우는 물론, 그 존재를 단정하기 어려운 경우 즉, 진위불명(non liquet) 판정이 이루어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요증사실의 존부에 관해 조금이라도 합리적 의심이 든다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라는 요청을 in dubio pro reo(의심스러운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원칙이라 한다.

민사소송에서의 증명은 요건사실이 존재할 가능성이 부존재할 가능성보다 우월하다는 정도의 확신으로 족하고, 자백한 사실에 관해서는 별도의 증명이 불필요하다(민사소송법 제88). 반면 형사소송에서는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사실의 증명은 그 사실이 존재한다는 고도의 개연성(distinct probability)을 요하며(대법원 1991. 8. 13. 선고 91도1385 판결), 피고인이 자백하더라도 그가 범인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의 확신이 들지 않는 한 범죄사실의 증명은 인정되지 않는다.

 

3. 거증책임

. 의 의

법관에게 요증사실에 관한 확신을 주어야 하는 소송절차상 부담을 거증책임이라 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형사소송에서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사실을 인정함에는 합리적 의심 없는 정도의 증명이 요구되고, 확신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 법원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변론주의를 전제로 요건사실에 따라 배분되는 민사소송에서의 증명책임과 달리, 형사소송에서의 거증책임은 전적으로 검사에게 귀속된다(대법원 1997. 10. 10. 선고 97도1720 판결; 2006. 11. 23. 선고 2004도7900 판결).

. 내 용

객관적/주관적 구성요건해당사실은 물론, 피고인이 알리바이를 주장하고 그 사실에 대한 진위가 불분명하게 된 경우 그 알리바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도 검사가 거증책임을 진다(대법원 1985. 11. 26. 선고 85도2109 판결). 그리고 구성요건해당성이 증명되면 위법성과 책임은 추정되나, 만약 피고인이 위법성조각사유나 책임조각사유의 존재를 주장한 결과로 위법성책임의 존부가 불분명하게 되었다면 검사가 그러한 사유의 부존재에 관해 다시 거증책임을 부담한다.

형법 제310조는 명예훼손죄에 관해 그 사실적시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i) 사실의 진실성과 ii) 공익성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에 위법성조각을 인정하고 있는데, 이로써 피고인이 위 두 사실에 대해 거증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피고인은 단지 법관에게 위법성조각사유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만 주는 것으로 족하며(대법원 1996. 10. 25. 선고 95도1473 판결), 이에 따라 검사가 위법성조각사유의 부존재에 대해 거증책임을 진다.

진술의 임의성에 다툼이 있는 경우, 그 임의성을 의심할 만한 구체적 사실을 피고인이 증명할 것이 아니라 검사가 그 임의성의 의문점을 없애는 증명을 해야 한다(대법원 2006. 11. 23. 선고 2004도7900 판결).

. 거증책임의 전환

형법 제19조는 독립행위가 경합한 경우에 그 결과발생의 원인된 행위가 판명되지 아니한 때에는 각 행위를 미수범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피고인의 행위로 결과가 발생했다는 사실(, 동시범이 아닌 정범으로서 기수범으로 처벌해야 할 근거가 되는 사실)에 대한 거증책임은 검사에게 있음이 원칙이다. 그런데 형법 제263조는 독립행위가 경합하여 상해의 결과를 발생하게 한 경우에 원인된 행위가 판명되지 아니한 때에는 공동정범의 예에 의한다고 규정하여, 상해죄(폭행치사상 및 상해치사 포함)의 동시범에 한해 모든 행위자를 발생사실의 기수범으로 보는 예외를 인정함으로써 원인행위 불명시의 불이익을 피고인에게 지우고 있다. 이에 따라 상해죄의 동시범에서는 거증책임이 전환되어, 상해결과가 자신의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 피고인이 거증책임을 부담한다[부산고등법원(창원) 2015. 3. 18. 선고 2014노335 판결(대법원 2015. 5. 29. 선고 2015도4534 판결로 확정)]. 그러나 이는 무죄추정원칙에 대한 법률상 예외로서 위헌이라고 본다.

 

4. 불이익처분금지원칙

. 의 의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확정판결이 있을 때까지 무죄로 추정된다. 따라서 국가는 그 이전에는 피고인에게 형벌 또는 형벌에 준하는 사회윤리적 반가치판단이 담겨진 불이익처분을 해서는 안 된다. 헌법재판소는 여기서의 불이익처분을 유죄판결에서 비롯되는 사회윤리적 비난을 수반하는 불이익또는 유죄를 근거로 하는 부정적 의미의 기본권제한으로 정의한다[헌법재판소 2005. 5. 26. 선고 2002헌마699 (全)결정].

. 내 용

1) 공판절차에서의 불이익처분금지

미결수용자에 대해 수형자에게 적용되는 규정을 준용하거나[헌법재판소 1992. 1. 28. 선고 91헌마111 (全)결정], 구속피고인이 공판정에 출석할 때 죄수복을 착용하게 함[헌법재판소 1999. 5. 27. 선고 97헌마137 (全)결정]은 불이익처분금지원칙에 반한다. 이에 현행 형집행법은 미결수용자는 수사/공판과정에서 사복을 착용할 수 있으며 그 머리카락과 수염은 본인의 의사에 반해 짧게 깎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형집행법 제82, 83).

벌금형 등이 확정되기도 전에 이를 집행할 수 있게 하는 가납명령제도(334)는 불이익처분금지원칙에 대한 법률상 예외로서 위헌이라고 본다. 재산형집행이 곤란할 우려가 있다면 추징보전의 경우와 같이 보전처분의 방식을 취하게 함이 입법론상 타당하다. 대법원 2014. 2. 13. 선고 201315456 판결은 가납판결은 벌금, 과료 또는 추징 그 자체의 확정 전의 집행을 명하는 것이 아니고 벌금, 과료 또는 추징에 상당한 금액의 납부를 명하는 것이므로 헌법상 재산권에 관한 규정 또는 죄형법정주의에 관한 규정 등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한 바 있으나, ‘집행을 명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금액의 납부를 명하는 것이므로 위헌이 아니라는 설명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2) 공판절차 밖에서의 불이익처분금지

거증책임의 검사귀속과 in dubio pro reo 원칙이 공판의 사실심리절차에 관한 것인 반면, 불이익처분금지원칙은 공권력작용 전반에 적용되는 원칙으로서 피의자는 물론 수사대상으로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피고인에게 유죄를 전제로 한 불이익처분을 과하는 것이 금지된다면, 그보다 낮은 단계의 혐의를 받는 피의자나, 범죄혐의를 받고 있지 않은 자에 대해서도 그러한 불이익처분을 과할 수 없음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다만 기소유예처분은 법원의 유죄판결과 같이 범죄사실을 확정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잠정적가설적으로 인정하면서 소송경제 내지 특별예방의 효과를 위해 행해지는 처분이므로, 불이익처분금지원칙에 저촉되지 않는다.

제재적 행정처분이 행정청 나름의 사실판단에 따라서 이뤄진 것이라면, 각종 행정상 법원칙(행정기본법 제8조 내지 제13)에 저촉될 수는 있어도 무죄추정원칙에 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단지 피의자/피고인이 된 사실 또는 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약식명령의 청구, 발령사실 포함) 그 자체를 일정한 제재처분의 사유로 삼는 것은, 수사/소추된 사실과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실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으로서 무죄추정원칙에 반한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i) 고발만 이루어진 단계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법위반사실 공표명령을 발할 수 있게 한 독점규제법 규정[헌법재판소 2002. 1. 31. 선고 2001헌바43 (全)결정], ii) 공소제기된 사실만을 이유로 변호사에 대해 업무정지를 명할 수 있게 한 변호사법 규정[헌법재판소 1990. 11. 19. 선고 90헌가48 (全)결정]. iii) 공소제기된 사실만을 이유로 교원/공무원에게 직위해제처분을 할 수 있게 한 사립학교법, 국가공무원법의 각 규정[헌법재판소 1994. 7. 29. 선고 93헌가3 (全)결정; 1998. 5. 28. 선고 96헌가12 (全)결정], iv)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의 직무를 정지시키는 지방자치법 규정[헌법재판소 2010. 9. 2. 선고 2010헌마418 (全)결정] 등이 무죄추정원칙에 반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대법원도 기소된 사실 자체를 제재처분의 근거로 삼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한다(대법원 2018. 4. 26. 선고 2016두64371 판결).

학계에서는 무죄추정원칙 또는 불이익처분금지원칙의 내용으로서 통상 i) 진술거부권 및 고문금지, ii) 불구속수사원칙과 보석구속적부심사제도, iii) 미결구금일수 산입 및 형사보상제도, iv) 피의사실공표죄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이는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

i) 진술거부권과 고문금지는 피의자/피고인의 권리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의 권리이다. 이들은 그 자체 독립된 헌법상 기본권이지(헌법 제12조 제2) 무죄추정권의 파생권리가 아니다.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고문이나 진술강요를 당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ii) 신체구속은 형사절차의 확보(증거인멸 및 도주의 방지)를 위해 부득이 행하는 처분일 뿐 형벌과 같은 사회윤리적 반가치판단을 내재한 처분이 아니므로, 불이익처분금지원칙의 적용대상에 속하지 않는다(체포구속이 형벌과 같은 의미라면, 구속은 언제나 무죄추정원칙에 반하므로 절대적으로금지된다고 해야 한다). 불구속수사원칙이나 임의수사원칙은 적법절차원칙(특히 비례성원칙)에서 도출되며, 보석/구속적부심 역시 적법절차 구현을 위한 제도이다. 헌법재판소는 무죄추정원칙과 비례성원칙을 동일시하거나[헌법재판소 1990. 11. 19. 선고 90헌가48 (全)결정] 불구속수사원칙을 무죄추정원칙의 내용으로 파악하는 견지에서[헌법재판소 2009. 6. 25. 선고 2007헌바25 (全)결정] 보석허가결정에 대한 검사의 즉시항고를 허용하는 형사소송법 규정이 무죄추정원칙에 반한다고 한 바 있다[헌법재판소 1993. 12. 23. 선고 93헌가2 (全)결정]. 하지만 적법절차원칙은 공권력행사의 절차가 형식적, 내용적으로 정당해야 한다는 원칙이고, 무죄추정원칙은 유죄를 전제한 공권력행사는 어떤 절차에 의해서든 불가하다는 원칙이라는 점에서 둘은 엄연히 각자 고유한 규범영역을 보유한다. 불구속수사원칙은 전자의 하부원리인 비례성원칙에서 도출되는 것이고 무죄추정원칙에서 도출되는 것이 아니다.

iii) 형사보상 및 미결구금일수 산입 제도를 불이익처분금지원칙의 내용으로 보는 관점은, 이러한 제도들이 무죄추정을 받던 자를 구속하였다는 점에 대한 국가의 반성적 고려에서 나온 것이라는 시각에 기초하고 있는 듯하다. 헌법재판소 또한 미결구금일수의 형기불산입을 허용하는 형법조항[헌법재판소 2009. 6. 25. 선고 2007헌바25 (全)결정], 상소제기 후 취하시까지의 미결구금일수를 형기에 산입하지 않도록 하는 형사소송법조항[헌법재판소 2009. 12. 29. 선고 2008헌가13 (全)결정]에 대해 위헌을 선언하면서 무죄추정원칙(및 평등원칙적법절차원칙) 위반을 그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앞서 설명하였듯 구속 자체는 유죄를 전제한 처분이 아닐뿐더러, 형사보상은 헌법에서 직접 규정하는 기본권이자 공법상 손실보상제도이고, 미결구금일수의 본형산입은 불구속피고인과 구속피고인 간에 공평을 기하려는 제도로서(평등원칙) 무죄추정원칙과의 사이에 논리적 연결고리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iv) 피의사실공표죄는 피의사실 자체의 공표를 금지하는 것이지, 피의사실이 확정적이라는 취지의 공표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므로 무죄추정원칙의 표현으로 볼 수 없다. 이는 무죄추정권이 아니라 인격권에 근거하는 것이다.요컨대, 다른 법규범들과 무죄추정원칙 간에 때로는 중첩(교집합)이 존재할 수도 있으나, 여타의 법원칙들을 언급해야 할 자리에서 만연히 무죄추정원칙을 거론함은 바람직하지 않다. 실천적으로 국민에게 어떠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닐뿐더러, 이론적으로 다른 법원칙들과의 구별기준과 그 적용영역을 모호하게 만들어 무죄추정원칙의 독자성과 규범력을 오히려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