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설/法律

유죄추정의 심증과 피해자의 이익

GENA 2024. 6. 9. 15:23

어떤 변호사 단톡방에서, 성범죄 사건 판사가 변론종결 후 피고인에게 '오랜 시간 재판 받느라 고생했다'고 말한 것을 두고 부적절하다며 문제를 삼는 사람을 봤다. 그는 피해자 변호사 입장이었는데, 물론 그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나는 그런 시각과 마음가짐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피고인의 비난가능성이 높을수록 오히려 온화하게 대해주어야 한다.

피해자 대리를 많이 하는 입장으로서 개인적으로 가장 극혐하는 류의 재판부는 바로 공판정에서 피고인에게 적대적 유죄추정의 심증을 보이며 함부로 대하는 재판부다. 단언컨대 그런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한다.

공판에서 피해자에게 가장 이익되는 것은ㅡ유죄인정을 전제로ㅡ종국판결이 신속히 확정되는 것이다. 합의를 했든 안했든 피해자로서는 재판이 빨리 끝나기를 원한다. 따라서 기왕에 유죄판결을 선고하고자 한다면 피고인이 그 결론을 순순히 수용할 가능성을 1%라도 높이는 재판부가 피해자 입장에서 좋은 재판부다.

피고인으로 하여금 판결의 결과를 조금이라도 더 잘 받아들이게 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피고인의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하고, 증거신청을 폭넓게 받아주고, 의견진술을 충분히 할 수 있게 해 주고, 공판정에서 피고인을 온화하게 대하고,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의견을 진술할 때 주의깊게 경청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판사가 법정에서 피고인을 쥐잡듯이 잡고, 변호인의 의견진술에 가소롭다는 표정을 짓거나 비웃음 섞인 코멘트를 달고, 반대신문할 때 변호인의 말을 끊고 '그런 질문을 할 필요가 있나요?' '사안과 관련이 있나요?' '신문사항 n번은 그냥 넘어가시죠' 같은 소리를 해대면 그 피고인은 자신에 대한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되고, 자연히 판결을 수용하지 못해 불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설령 객관적으로 통상의 경우에 비해 관대한 판결이 나온 때에도 도리어 양형부당으로 항소하게 될 수 있다. 재판이 길어지는 만큼 피해자의 고통도 그만큼 확대되고 연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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