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 켈젠(김성룡 역), 규범의 일반이론, 아카넷, 2016
Hans Kelsen, Allgemeine Theorie der Normen (1979)
제32장 의무
어떤 사람이 특정한 행위를 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는 것은 그 행위를 명령하는 규범, 즉 그 위반행위에 대해 제재를 당위로 결부시키는 규범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의무는 규범과 별도의 존재가 아니라 규범이 특정한 주체에게 적용되는 방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규범이 명령하는 행위를 수행하면 규범에 부합하는 것이며, 그 행위를 하지 않으면 규범을 위반하는 것이다. 이처럼 의무는 규범의 기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개념이다.
「하나의 규범이 하나의 특정한 행위를 명령한다는 것은 하나의 규범이 하나의 특정한 행위를 할 것을 의무 지우고 있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다. 한 인간이 ‘의무 지고’ 있다 혹은 특정한 방식으로 행위할 ‘의무’를 갖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행위를 명령하는 하나의 규범이 효력이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 의무는 그 규범과 상이한 것이 아니고, 그 행위가 명령된 주체에 대한 관계에서는 그 규범이다. 그것을 통해 의무가 충족되는 행위는 그것을 통해 규범이 준수되는 행위이고, 사람들이 그것으로 규범에 복종하는 행위이며, 규범에 부합하는 행위이다. 그것을 통해 사람들이 의무를―우리가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이―‘침해하는(verletzt)’ 행위는 그 규범에 부합하지 않는(nichtentspricht) 행위이거나―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곤 하듯이―그 규범에 ‘모순되는(widerspricht)’ 행위이다.」(1편 263쪽)
도덕규범이 특정한 행위를 명령하는 것처럼 법규범 역시 특정한 행위를 명령한다. 따라서 법의무와 도덕의무는 모두 규범적 질서에서 발생한다. 다만 법과 도덕의 차이는 제재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제재의 구조와 방식에서 나타난다. 법은 규범위반행위를 조건으로 제재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의무를 구성한다. 반면 도덕은 규범 자체가 특정 행위를 직접적으로 명령하고, 그 위반에 대한 사회적 반응을 별도의 규범으로 결합한다.
「법규범과 같이 도덕규범은 하나의 특정한 행위를 명령하기 때문에, 법의무들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의무들도 있다. 의무개념을 도덕의 영역으로 축소시키는 것은 근거가 없다. 물론 우리는 도덕의무들과 법의무들을 마치 우리가 도덕과 법을 필히 구별해야만 하는 것과 같이 반드시 구별해야만 한다. 그것들은 그 규범들의 기능과 대상을 통해 구별되지는 않는다. 또한 거의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듯이 법은 제재를 규정하지만 도덕은 어떠한 제재도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통해 구별되는 것이 아니고, 도덕은 하나의 특정 행위를 명령하고, 그래서 도덕의무로 만들고, 그리고 규범에 적합한 행위는 물론 규범위반행위에도 하나의 제재를 결합하는 반면에, 법은 그에 반하는 행위를 조건으로 하나의 제재를 당위된 것으로 설정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특정 행위를 명령한다.」(1편 263-264쪽)
일반적으로 제재는 규범위반 행위에 대한 불이익으로 이해된다. 법에서는 이러한 제재가 생명, 자유, 재산 등의 박탈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도덕영역에서의 제재는 처벌이 아니라 비난이나 경멸과 같은 사회적 반응의 형태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하나의 규범적 질서에서 규정된 제재를 일반적으로 한 인간에 대한 하나의 악으로 느끼게 되는 특정 행위이고―(그) 질서규범에 맞게―만약 그 사람이―혹은 그에 대해 하나의 특정한 공동체적 관계에 있는 다른 사람이―그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식으로 행위한 경우에 그에게 부과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 해악(Ubel)은―법적 제재들의 경우에서와 같이―생명, 자유, 경제적 재화와 기타 재화들과 같은 가치들을 강제로 박탈하는 것에 있을 수 있지만 또한―도덕적 제재들에서와 같이―규범위반적인 행위의 불승인에, 비난의 표현에, 경멸의 표시와 기타 유사한 행위에 존재할 수도 있다.」(1편 265쪽)
제33장 권리
전통법학에서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 대해 특정 행위를 해 줄 의무를 지고 있다면, 그 상대방은 그 행위를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설명하곤 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속이지 않을 도덕적 의무를 지고 있다면, 나는 그가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을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 경우 권리는 독자적 실체가 아니라 타인의 의무를 반사적으로 표현하는 개념이다. 즉, 이러한 의미에서의 권리란 타인의 의무가 거울에 비친 상과 같은 것이다.
「누군가가 다른 한 사람에 대해 하나의 특별한 행위를 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 타인은 이러한 행위에 대한(행위를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은 도덕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을 의무를 지고 있으므로, 나는 그 타인이 나를 속이지 않는 것에 대한(않을 것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하나의 특정한 행위에 대한 권리는 그 타인의 이러한 행위에 대한 의무의 (거울에 비친) 상(Reflex)이다. 이것은 하나의 특정 행위가 단지 다른 한 사람 혹은 다른 사람들에 연관된 경우에만 그 행위를 명령하는 도덕규범과 법규범들의 사회적인 성격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다. 그 한 사람의 권리는, 그에 대응하는 의무가 존재하는 자의 관점에서 볼 때, 그 다른 사람의 의무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단어의 주관적인 의미에서 하나의 ‘권리’라고 말한다.」(1편 268-269쪽)
| [미주 85] 분트(Wilhelm Wundt)는 법을 규범과 법질서로 파악하면서도, 정작 그 질서의 내용을 설명할 때는 ‘권한들’과 ‘의무들’의 총체라고 말하면서 권한을 먼저 내세운다. 이것은 우연한 문장 배열이 아니라, 법을 주관적 권리들의 체계로 이해하려는 전통적 사고방식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에서는 의무가 독자적 규범적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권리의 반사물이나 보장수단으로 간주된다. 먼저 권리가 있고 그 다음에 그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의무가 따라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먼저인 것은 어디까지나 의무이다. 더 정확히는, 명령하는 규범이 가장 먼저이다. 「의무에 대한 주관적인 권리의 우월성이라는 잘못된 생각의 가장 전형적인 예는 빌헬름 분트(Wilhelm Wundt)가 자신의 Logik, III. Band., 3, Aufl., Stuttgart 1908에 적고 있는 이 문제에 대한 기술이다. 분트는 실은 법을 규범으로 파악했고, 따라서 본질적으로는 명령으로 파악했으며(568쪽 이하 참고), 물론 단지 규범들의 하나의 체계일 수 있는 법질서의 개념으로 작업했다(577쪽을 비교할 것). 하지만 그는 법을 “한 공동체에서 유효한 상위의 의지가 이 공동체의 개별 구성원들에게, 그리고 자신 스스로에게 승인한 권한들과 의무들의 총체”라고 정의했다(578쪽). 이러한 ‘공동체에서 유효한 상위의 의지’가 단지 문제되는 의지적 행위의 의미인 규범들에서만 표현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개념정의에서는 규범의 개념은 도대체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이 개념정의에서는 ‘권한들’이 첫 번째의 자리를, ‘의무들’이 단지 두 번째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도 특징적이다.」(2편 125-126쪽) 주관적 권리의 행사로부터 의무가 ‘논리적’ 혹은 ‘윤리적’ 결과로 나온다는 주장은 이중으로 잘못되어 있다. 첫째 i) 의무는 권리행사 이후에 비로소 생기는 결과가 아니라, 이미 유효한 규범이 존재하는 한 처음부터 존재한다. 예컨대 A가 B에게 1000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면, A의 지급의무는 B가 권리를 행사하기 전부터 존재한다. 둘째 ii) 의무는 사고의 방법이나 논리적 도출의 방법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의무는 언제나 하나의 의지적 행위의 의미인 규범으로서만 존재한다. 권리의 행사로부터 의무가 ‘논리적으로’ 발생한다는 설명은 규범의 생성과 논리적 추론을 혼동한 것이다. 나아가 분트가 말하는 ‘자유로운 의무’라는 표현도 자기모순적이다. 의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구속적이며, 그 이행 여부가 자유에 맡겨져 있는 상태와 양립할 수 없다. 「따라서 분트는 또한 582쪽에서 “저마다의 주관적 권리에는, 다른 한편 그 권리의 행사로부터 필연적인 논리적 및 윤리적인 결과로 나오는 의무들이 대응한다. 그것들은 두 가지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그 권리들의 행사로부터 권한(권리)이 없는 자들(개인 및 공동체, 그리고 거기에는 특히 법공동체 자체도 속함)에게 부과되는 그러한 의무이다. -이것은 주관적인 권리의 논리적 결과이고; 그것은 그 (권리의) 관철을 위한 수단을 고려할 때 필수적인 것으로 도출되는 결과이다. 그리고 두 번째 그룹의 의무들에는 권한 있는 자들에게 부과되는 그런 의무이고, 그 의무를 위해서는 단지 권리의 행사가 동시에 법공동체의 이익 자체이다. 이것은 주관적 권리의 윤리적 효과들이고 … 따라서 이러한 관점하에서 주관적 권리들로부터 나오는 의무들은 강제의무와 자유로운 혹은 도덕적인 의무로 갈라진다.”라고 한다. 강제적인 것이 아니고 자유로운 의무는 그 자체 하나의 모순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의무에는 그것이 강제적이다. 즉 구속적이다. 의무진 자에게 그것을 충족하거나 충족하지 않는 것이 ‘자유에 맡겨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 본질적이기 때문이다. 그 의무의 불충족에 하나의 제재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은 법적 의무에 그런 것과 같이 도덕적 의무에도 해당하는 것이다.」(2편 126쪽) 데른부르크는 사람들이 먼저 개인의 권리들을 의식하고, 그 다음에 그러한 권리들의 추상화를 통해 법질서 개념에 도달했다고 본다. 이러한 설명의 배후에는 자연법적 사고가 깔려 있다. 권리가 먼저 사실적 현실이나 인격적 존중 속에서 주어져 있고, 법질서는 그것을 뒤늦게 포착하여 체계화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것은 존재에서 당위를 끌어내는 잘못된 추론이다. 사실상의 존중이나 사회적 관습이 곧바로 법적 권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적 권리는 오직 규범적 질서 안에서, 특히 유효한 규범에 의해 구성될 때에만 성립한다. 주관적 권리를 객관적 법보다 앞선 원초적 실재로 이해하는 것은 전형적인 자연법론적 오류다. 「하인리히 데른부르크(Heinrich Dernburg)의 “System des Römischen Rechts”, Der Pandekten achte, umgearbeitete Auflage, Erster Teil, Berlin 1911, S. 65에서는 “주관적인 의미에서의 권리는 역사적으로 하나의 의식적인 국가의 질서가 형성되기 오래전에 존재했었다. 그것들은 개인의 인격성에 근거를 두고 있었고, 그 사람들과 그의 재화들을 위해 권리를 획득하고 빼앗을 줄 알았던 존중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추상화를 통해서 비로소 사람들은 점점 존재하는 주관적 권리에 대한 관조로부터 법질서의 개념을 획득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주관적 의미에서의 권리들은 객관적 의미에서의 권리의 배출구에 다름 아니라는 것은 비역사적일뿐만 아니라 잘못된 입장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설명의 배후에는 권리들은 사실상의 사실관계로부터 나온다는, 법은 사실적인 사실관계에 내재한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이것은 자연법론을 특징짓는, 존재에서 당위로의 잘못된 추론(궤변)인 것이다.」(2편 128쪽) |
그러나 법 영역에서 ‘주관적 권리’는 보다 특수한 기술적 의미를 지니는 개념이다. 권리란 단순히 타인의 의무의 반사적 표현이 아니라, 그 의무가 불이행되었을 때 법적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권한을 뜻한다. 즉 제재를 명령하는 개별 규범의 형성이 특정 주체의 소제기나 청구행위에 의존할 때, 그 주체는 법적으로 특수한 힘(Rechtsmacht)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이 힘이 바로 기술적 의미의 권리이다. 따라서 주관적 권리는 단순한 이익이나 기대가 아니라, 법질서가 특정인에게 부여한 절차적·규범적 권한이다.
「하지만 또한 주관적 의미에서의 권리는 법질서의 영역에서 하나의 특수한 기술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한 사람의 ‘권리’는 단순히 한 다른 사람의 의무의 상이 아니다. 그 의무의 불충족이 발생한 경우에 법적용기관으로부터, 특히 법원에 의해서, 명령될 제재가 단지 그 의무의 불충족으로 인해 자신의 이해에 침해를 입게 된 주체의 청구에 의해서 이루어질 때에만 주관적 의미에서의 이 권리가 존재한다. 따라서 그것으로 제재가 명해지는 개별규범의 설정은, 그―충족되지 아니한―의무의 대상인 자의 행동―소제기나 재판상 청구―에 좌우된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그 의무를 확정하는 권리를 자신의 처분하에 두는(처분권이 있는) 것이고, 그 권리는 그의 권리이다.」(1편 269쪽)
이러한 주관적 권리는 독립된 심리적 상태나 자연적 소유물이 아니며, 법질서가 특정 주체에게 부여한 규범적 힘일 뿐이다. 권리는 ‘법적으로 보호된 이익’ 자체가 아니라, 그 이익을 보호하는 법적 구조이다. 권리는 특정 주체가 법적 절차를 개시하여 제재를 명령하는 개별규범의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는 객관적 법의 한 기능이다. 이 점에서 주관적 권리는 객관적 법과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객관적 법의 한 표현양식이다.
「하지만 이 ‘주관적 의미’의 권리는 객관적 의미의 법, 법적 규범과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때로 받아들이듯이 하나의 법적으로 보호된 이익이 아니다. 그것은 규범이고, 객관적 법(Recht)이며, 구체적인 사례에서 제재를 명령하는 개별적인 규범의 창출을 하나의 다른 주체의 그것에 향해진 행위에 의존하게 하는 것이고, 이 주체에게 이러한 행위에 대한 권한을 부여하는 규범인 것이다. 그것은 법적으로 보호된 이익이 아니고, 이러한 이익의 보호이다. 그리고 이러한 보호는 그 객관적 법이 하나의 주체에게 그의 행위를 통해, 그의 의무를 침해한 주체에 대해 하나의 제재의 집행을 규정하는 하나의 개별규범이 만들어지는 절차를 시작하게 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의 주관적 권리를 가졌다.”는 것은 객관적 법으로부터 수여된 특수한 법력(Rechtmacht), 즉 하나의 특수한 행위―소제기나 재판상 청구―를 통해 개별적 법규범의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1편 269-270쪽)
| [미주 86] 해거스트룀은 채권자의 권리나 채무자의 의무에 대응하는 어떤 사실을 현실세계에서 찾을 수 없다고 보고, 그러한 개념들을 형이상학적 허구로 취급한다. 물론 현실을 자연적 사실로만 이해한다면, 의무나 권리에 대응하는 물리적 사실을 찾을 수 없다는 해거스트룀의 주장은 맞다. 그러나 의무나 권리는 사실이 아니라 사실의 ‘의미’이다. 그것들은 자연적 현실의 일부가 아니라, 법창조행위의 의미로서 존재하는 규범적 실재이다. 그것을 형이상학으로 몰아내야 할 이유는 없으며, 오히려 법학은 이러한 의미 구조를 인식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주관적 권리와 의무를 부정하는 것은 결국 당위 자체를 부정하는 관점이다. 「해거스트룀(Hägerström, Inquiries into the Nature of Law and Morals, Uppsala 1953, S. 8)은 법적 의무와 주관적 권리의 개념을 ‘신비주의적’인 것으로 거부했다: “법적 의무라는 개념은 어떤 사실을 지시함으로써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신비주의적인 불명확한 기초를 가지고 있다. 마치 권리(right)가 그런 것과 같이.” 4쪽에서 그는 다른 주체의 특정한 행위에 대한 한 주체의 주관적 권리에 부합(corresponds)하는 사실(fact; Tatsache)에, 예를 들어 채무자의 금전지급에 대한 채권자의 권리와 같은 사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그러한 사실을 찾지 못한다. 그는 “그곳에는 그러한 사실들은 존재하지 않고, 우리는 여기서 현실. 실제(reality)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념들(이상)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라고 확언한다. 이것은 만약 ‘실제 현실(reality)’이 정신적인 실제가 결코 아닌, 단지 자연적인 실제로 이해된다면 맞는 말이다. 채권자의 주관적 권리에는 사실상 어떠한 존재사실도 부합하지 않고, 채무자의 당위, 즉 하나의 사실이 아니고 하나의 사실의 의미, 하나의 행위의 의미가 부합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 세상의 현실에서 이루어진 하나의 행위의 의미로, 하나의 법창출행위의 의미로, 당위를 인식한다면, 이러한 당위를, 해거스트룀이 한 것과 같이,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개념으로 폄하하고, 따라서 학문적인 인식으로부터 배제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다. 주관적 권리와 법의무의 개념을 ‘불명확한 신비적’ 개념으로 거부한 것은 그가 당위를 부정한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2편 129쪽) |
이러한 기술적 의미의 권리 부여가 법질서의 본질적인 요소는 아니다. 법질서의 본질은 의무를 부과하고 특정 행위를 명령하는 데 있다. 권리, 특히 주관적 권리는 이러한 의무 구조를 전제로 해서만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이론에서 권리개념을 의무보다 앞세우는 전통적인 자연법적 사고는 부적절하다. 법이론에서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은 권리보다는 의무, 곧 규범의 명령기능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의무개념이 도덕적으로 고귀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아니다. 의무란 단지 유효한 규범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특수한 기술적 의미에서 ‘권리’로 표현되는 힘을 부여하는 것은 하나의 실정법 질서의 가능한 하나의 기능이지, 어떠한 필연적인 기능인 것은 아니다. 의무들을 부과하는 것, 즉 특정한 하나의 행위를 명령하는 것은 저마다의 실정 도덕질서 혹은 법질서에 본질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 단어의 저마다의 가능한 의미에서 ‘권한(Berechtigung)’은 하나의 의무지움, 즉 하나의 명령을 전제하기 때문에―또한 소극적인 의미에서 허용되었음은 단지 하나의 특정한 행위를 명령하는 하나의 규범적 질서 내에서만 가능하다―한 사람의 권한들과 특히 기술적인 의미에서의 권리들은 다른 사람의 의무 없이는 가능하지 않지만, 의무들은 기술적인 의미의 권리들 없이도 전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만약 전통적인 법학이 (물론 자연법의 영향을 받아서) 권한의 개념을 주관적 권리로서 전위에 세운다면,―‘의무와 권리’가 아니라―‘권리와 의무’라고 한다면, 그 의무를 단지 권리의 보호 혹은 보장으로만 인정한다면, 심지어 의무들은 단지 도덕에서만 법에서는 단지 ‘권리들’이 있다고 주장된다면, 그건 적절하지 않다: 사람들이 실정 도덕질서 혹은 법질서의 기능을 서술하면서 ‘의무’와 ‘권한’개념을 이용한다면, 의무의 개념은 명령의 규범적 기능을 위한 표현으로서 법학에서는 물론 윤리학에서도 필히 그 중심이 되어야만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개념에 무언가 하나의 높은 서품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하나의 정해진 행위에 도덕적으로 혹은 법적으로 의무진다는 것에 이러한 행위를 명령하는 하나의 도덕규범 혹은 법규범이 유효하다는 것과 무언가 다른 것이 표현될 수 있다는 것도 아니며, 특히 법의무의 개념에 무언가 하나의 도덕적 가치가 부여되는 것도 아니다.」(1편 270-271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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