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불레즈

피에르 불레즈 [3] - <주인 없는 망치(Le Marteau sans maître )>

Onsol 2017. 2. 22. 17:23

Pierre Boulez, Ensemble Intercontemporain, DG 2002.

<주인 없는 망치>는 시인 르네 샤르(Rene Char)의 시를 가사로 차용한 작품이다(과거에도 불레즈는 샤르의 시를 가사로 차용한 칸타타 <물의 태양>과 <혼례모습>을 작곡한 적이 있었다). 1930년대 초반 샤르가 초현실주의에 터잡은 연작시 <주인 없는 망치>를 발표하자 불레즈는 이를 자신의 음악어법으로 함축하여 표현하기로 결심한다. 불레즈는 <주인 없는 망치>처럼 반항을 모티브로 하는 시에는 전통적인 음악어법을 입혀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고, 악기편성에서부터 악장 구조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쓰기로 결심한다.

샤르의 시는 간결하고 응축된 문장 어법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관현악 표현을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불레즈는 알토 성악가가 한 악장에서 가사를 부르면 다른 악장에서는 앙상블이 이를 받아치고, 확장시키고 코멘트를 다는 식의 구조를 도입했다. 악장 배치에도 1악장(L'artisanat furieux의 서주) - 2악장(Bourreaux de solitude에 대한 코멘트 1) - 3악장(L'artisanat furieux) - 4악장(Bourreaux de solitude에 대한 코멘트 2) - 5악장(Bel edifice et les pressentiments) - 6악장(Bourreaux de solitude) - 7악장(L'artisanat furieux의 종주) - 8악장(Bourreaux de solitude에 대한 코멘트 3) - 9악장(다시 Bel edifice et les pressentiments)의 독특한 순서를 매겼다.

작곡과정에서 불레즈는 친구인 민족음악학자 샤프너(Andre Schaeffner)의 사무실을 자주 방문하여 그 곳에서 전 세계의 전통음악들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다. 아프리카와 인도차이나반도 지방의 전통악기들의 독특한 음향에 매료된 불레즈는 그 악기들을 실제로 활용하기로 결심했고, 그리하여 <주인 없는 망치>는 1950년대 당시로서는 대단히 이례적인 악기편성을 갖추게 되는데, 금관악기는 단 한개도 없고 알토 독창, 알토 플루트, 비올라, 기타, 비브라폰, 실로림바, 그리고 퍼커션이라는 독특한 진용이었다. 실로림바는 고음역이 추가된 마림바와 같은 것로서 아프리카의 악기였고, 비브라폰은 금속 건반타악기로서 인도네시아의 전통악기였으며, 기타는 일본에서 사용하는 것이었다. 알토 독창의 호흡이 플루트와 연결되고, 플루트의 호흡은 비올라의 운궁과 연결되고, 비올라의 피치카토가 기타의 탄주와 연결되고, 기타의 탄주가 다시 비브라폰의 타건과 연결되고, 다시 실로림바의 타건으로 연결되는 식으로 활용되었다. 이와 같은 과정으로 알토에서 실로림바로 은근하게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기법은 이후 불레즈의 작품들에 종종 등장하게 된다. 가령 <삽입절에>에서는 피아노와 하프, 타악의 조합으로 같은 시도를 선보였고, <한 겹 두 겹>에서는 소프라노 성악과 실로폰, 하프의 음색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모습을 보인다.

<주인 없는 망치>는 1955년 바덴바덴 국제현대음악연구회(International Society for Contemporary Music) 축제에서 프랑스 대표작으로 등장해 초연되었다. 당시 국제현대음악연구회의 프랑스 회원들은 이 곡의 연주를 강하게 반대했으나 바덴바덴 방송교향악단(現 남서독일 방송교향악단)을 이끌던 슈트로벨(Heinrich Strobel)이 연구회에서 소개된 모든 작품들을 다 연주할 것을 고집했다. 그렇게 하여 이 곡은 1955년 6월 한스 로즈바우트의 지휘로 처음 무대 위에 올려지게 된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으며 이내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다. 1957년에는 샤를 십자 아카데미(Charles Cros Academy) 상을 수상했으며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품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녹음은 대부분 불레즈 자신의 지휘인데, 대표성을 지니는 것을 두 개 꼽자면 도맹 뮈지칼과 한 1964년 데카 녹음, 앵테르콩탕포랭과 한 2002년 DG 녹음(맨 위 이미지)을 들 수 있다. 아래 영상은 불레즈 85세 생일 기념공연에서 서동시집 단원들과 한 것이고 녹음으로도 나와 있다(https://youtu.be/3rqL0c8-IvQ). 그 외 브루노 마데르나의 1961년 녹음도 유튜브에 올라와 있으나 별로 추천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