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불레즈

피에르 불레즈 [1] - 총렬음악

Onsol 2017. 2. 22. 16:24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다. 단지 모방만 한다면 그것으로 끝일 뿐 아무 쓸모가 없다. 덧붙임도 창조도 없고, 그 어떠한 정당화도 참신한 논리도 찾아볼 수 없는, 단순한 '인용'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예컨대 골동품 가게에서 18세기의 양초와 19세기의 의자를 구입한다고 해서 새로운 스타일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세대를 불문하고 작곡가라면 이러한 과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언가의 원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막연히 알고만 있는 것 말고, 진짜 나만의 것을 끄집어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역사의 단두대는 이러한 방향에서 이탈한 작곡가를 가차없이 처단한다."

과거 파블로 카잘스는 9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일 6시간씩 연습을 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지금도 실력이 계속 나아지고 있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자신의 음악이 언제나 미완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불레즈도 마찬가지였다. 불레즈는 이른바 '역사의 단두대'에서 이미 벗어난 지 오래이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

쇤베르크와 그의 제자들은 한 옥타브의 12개의 음들을 일정하게 배열하여 이른바 '음렬'을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음렬에 이조, 전위, 역행 등의 변형을 가하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이를 음렬기법(dodecaphony)이라고 한다. 젊은 시절의 불레즈는 음렬기법으로 작곡된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와 베베른의 교향곡에 큰 감명을 받았고, 자신도 작곡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이후 작곡가가 된 불레즈는 음렬기법에 만족하지 않았고 몇 걸음 더 나아가 강약, 음가, 음색과 같은 작곡의 모든 요소들에까지 일정한 패턴을 부여하는 기법을 고안했다. 이를 총렬주의(serialism)라 하는데, 총렬주의는 향후 10년 동안 <폴리포니 X>, <구조>, <주인 없는 망치>와 같은 작품들의 기틀이 된다. 총렬주의를 통해 작곡계로 부상한 불레즈는 이내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노노(Luigi Nono), 베리오(Luciano Berio), 케이지(John Cage)와 더불어 현대음악의 중추가 되었다.

총렬주의는 작곡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불레즈와 친했던 케이지는 일찌감치 총렬주의에 몸담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나섰는데 이는 새로운 작곡기법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수천 번의 동전던지기로 탄생된 <변화의 음악>이 그 첫 작품이었다. 불레즈는 이를 폄하하면서 낮잡아 부르는 말로 '우연성 음악'이라고 명명했다. 케이지 하면 많은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떠올리곤 하는 '우연성 음악'이 실은 불레즈가 붙인 타이틀인 것이다. 이 때문에 불레즈와 케이지는 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주류 작곡가 대열에 갓 합류한 슈톡하우젠 역시 불레즈와 강도 높은 경쟁을 벌였는데, 둘은 사적으로는 친한 친구였지만 한편으로는 서로의 작곡 방법론을 가차없이 비판했다. 다만 총렬음악의 시대가 끝나고 몇 년 후 슈톡하우젠은 불레즈만의 뚜렷하면서도 다채로운 스타일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이렇듯 불레즈는 수많은 작곡기법이 교류되는 교차로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스승이었던 메시앙도 "불레즈는 정말 총명해요...그는 변화를 이해하며 그에 대해 고민합니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죠. 바흐도 그랬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도 그랬어요. 하지만 불레즈는 그럴 수 없을 겁니다. 슬프게도 그는 위대한 작곡가이기 때문이죠." 라고 평했다.

총렬주의는 음높이뿐만 아니라 옥타브의 위치, 음색, 음가, 강도, 아티큘레이션, 음들의 밀착도 등 작곡의 모든 구성부분들에 규칙을 부여하는 것이므로, 풍부한 표현을 삽입하기에는 과한 제약이었다. 이는 총렬주의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적인 작곡법이 아니라, 더욱 확장된 작곡법으로 발전하기 위한 단계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총렬주의는 작곡가에게 엄격하고 까다로운 구속을 경험하게 하여 음악적 시야를 유연하게 단련시키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오랜 시간 제약과 속박을 받으며 살다가 자유를 얻게 되면 전과는 완전히 다른 시야로 세상을 보게 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불레즈가 총렬기법을 사용하여 <주인 없는 망치>의 작곡에 착수했을 때 그는 이미 좀더 자유로운 표현에 다가갈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데, 실제로 1950년대에 불레즈가 작곡한 곡들의 대부분은 그 자체로 완결적인 작품이라기보다는 총렬이라는 엄격한 규칙 속에서 얼마나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지를 실험하는 의미를 가지는 작품들이었다. 이 시기의 작품들 대부분은 지금은 자주 연주되지 않는데, 가령 <힘을 위한 시>, <폴리포니 X>, <막스 에곤의 죽음> 등 당시의 작품들은 무대에 올려지지 않은지 수십년이 지났다. 다만 당시의 결과물들이 폐기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 이를테면 <힘을 위한 시>에 대한 연계곡으로 <응답>이 추후 작곡되었고, <막스 에곤의 죽음>이 뒷날 <한 겹 두 겹>의 종악장으로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또 당시 작품들 중 <주인 없는 망치(Le marteau sans maitre)>는 예외적으로 현재까지도 불레즈의 아이콘으로서 자주 연주되는 작품이다(https://pilebunker.tistory.com/22).

 

피에르 불레즈 [3] - <주인 없는 망치(Le Marteau sans maître )>

<주인 없는 망치>는 시인 르네 샤르(Rene Char)의 시를 가사로 차용한 작품이다(과거에도 불레즈는 샤르의 시를 가사로 차용한 칸타타 <물의 태양>과 <혼례모습>을 작곡한 적이 있었다). 1930년대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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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후반에 이르자 총렬주의는 본래의 의미를 넘어 지나치게 강박적인 매너리즘에 이르고 있었고 수단을 넘어 목적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속박이 지나치면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 법이었고, 이제는 총렬주의의 그늘에서 빠져나올 시기가 온 것이었다. 1960년대에 이르러 불레즈는 총렬음악에서 벗어나, 샤르(Rene Char)와 미쇼(Henri Michaux)의 시, 몬드리안(Piet Mondrian)과 칸딘스키(Vassily Kandinsky)의 그림을 작곡에 흡수하여 더욱 대담하고 창의적인 시도를 시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