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불레즈

쇤베르크: 피아노 협주곡 - 피에르 불레즈, 미쓰코 우치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Onsol 2013. 7. 2. 15:01

 

Mitsuko Uchida, Pierre Boulez, Cleveland Orchestra, PHILIPS 2000

쇤베르크는 본래 단악장 구조였던 이 곡을 4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각 부분마다 시구를 부제로 붙였다. 각각 제1부 <인생이 참 즐거웠었다(Life was so easy)>, 제2부 <그러나 갑자기 증오가 생겨났다(But suddenly hatred broke out)」, 제3부 <상황이 심각하게 되었다(A serous situation was created)>, 제4부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But life goes on)>이다. 피아노에 의한 첫 12음열(D#, A#, D, F, E, C, F#, G#, C#, A, B, G)의 제시로 곡이 시작된다. 제1부에서는 느리고 서정적인 분위기 속에 피아노 독주와 관현악의 잔잔한 대화가 흐른다. 점점 분위기가 격앙되고, 이윽고 제2부로 전환되어 거칠고 파열적인 음들을 정신없이 쏟아놓는 스케르초로 변모한다. 제3부로 넘어가면 공기가 나지막히 얼어붙으며 피아노와 타악기, 트럼펫의 표정없는 대화가 이어지고, 활짝 편 악마의 날개처럼 소름을 짓누르는 관악의 날선 성토, 카덴차풍의 독백을 거쳐 제4부의 밝고 희망적이지만 뒤끝이 완전히 개운치는 않은 결말로 끝을 맺는다.

이 곡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색안경이 세 개 있다. 첫째는 당시 유럽의 어두침침한 공기와 예술을 둘러싼 세계의 절박어린 시선이다. 기실 이것은 쇤베르크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 곡은 쇤베르크의 미국 망명 이후 두 번째로 작곡된 협주곡이고 1942년 가을에 완성되었으니 말이다. 둘째는 쇤베르크가 이 협주곡을 작곡할 즈음부터, 아니 1933년 나치에 장악당한 유럽을 떠나올 때부터 자신의 유대적 정체성을 강하게 강조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로부터 냉소를 받았다는 것이다. 당시 독일에 살던 유대인들 대부분은 스스로를 일단 독일인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유대의 혈통은 언제나 그 다음으로 여겨졌는데(적어도 나치에 의해 그 인식이 배반당하기 전까지는) 이는 쇤베르크라고 해서 다를 이유가 없었다. 한참 동안 유대적 색채를 드러내지 않고 '독일인'으로 살던 쇤베르크가 이제 와서 새삼 유대적 정체성을 유난히 강조하고 나선 것에 대해 유대인들이 고운 시선을 보낼 리 없었다.

셋째는 쇤베르크가 막다른 골목에서 탈출구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쇤베르크는 음렬주의의 태동을 주도했지만 그 혁신의 싱싱한 비릿함은 이제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었다. 또 쇤베르크는 자신의 야심작 오페라인 <모세와 아론>의 마무리를 지을 방법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고심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쇤베르크는 이제껏 손을 대지 않았던 협주곡 분야로 눈을 돌렸는데 많은 유대인 비평가들은 이를 '도피', '역행' 등으로 규정하며 비난을 퍼부었다. 쇤베르크의 피아노 협주곡은 이 모든 상황들이 녹아들어 본질을 형성한 작품으로, 전쟁 발발 전의 평화에 대한 그리움, 모든 것에 대한 단념과 자신에 대한 손가락질의 원인이 된 전쟁의 차가움, 그러나 동시에 삶에 대해 가지는 한 줄기 희망을 모두 표현하고 있다. 본래 단악장 구조인 것을 4개의 부분으로 구분해 각각 시구를 붙인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불레즈는 쇤베르크가 이 곡에서 최종적으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그래도 결국 인간의 소외감에 대한 걱정과 생명력을 향한 기대라고 해석하는 듯 같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기용했으면서도 냉랭한 금속성의 소리를 배제하고 베베른 전집에서와 마찬가지로 관능적인 소리를 통해 이 곡에 내재된 미감을 한껏 끌어내고 있다. 우치다는 곡을 주도하기보다는 불레즈의 리드를 따르면서 분위기가 격앙되는 패시지 위주로만 발톱을 드러내고, 전반적으로는 푹신푹신하고 부드럽게 풀어나간다. 전쟁이 냉각시켜놓은 먹먹한 진공상태를 표현하는 제2부, 온갖 괴로움에 대한 탈출 욕구를 호소하는 제3부보다는 제1부의 적막함과 평온함, 제4부의 나지막한 해방감과 인간성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제2부, 제3부의 곤혹스러운 고독에 주목했던 폴리니와 아바도의 1988년 녹음과는 대척점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