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레즈 9

피에르 불레즈 [7] - <응답(Repons)>

1981년작 은 오랜 시간 동안 지휘에 전념해 있던 불레즈가 다시 펜을 잡아 간만에 내놓은 대형 스케일의 작품으로, IRCAM에서 나온 작품들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곡의 제목인 '응답'에는 많은 뜻이 있는데, 1차적으로는 솔로 악기들과 실내악단 사이의 대화, 악단과 관객들 사이의 대화, 잔향과 잔향 사이의 대화(스피커를 이용한 잔향 효과가 이 곡의 핵심이다)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고, 더 나아가면 서로 다른 여러 발상들 사이의 대화, 서로 다른 여러 계층들 사이의 대화 등의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한편 불레즈의 전작인 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은 24명으로 구성된 실내악단, 디지털 프로세서, 여섯 개의 대형 스피커, 그리고 6대의 솔로 악기(하프·글로켄슈필·비브라폰·심발롬·두 ..

음악/불레즈 2017.02.28

피에르 불레즈 [6] - <한 겹 두 겹(Pli selon pli)>

세 번째 피아노 소나타를 완성한 후 휴식을 취하고 있던 불레즈는 쉴 참에 소프라노와 타악 앙상블 편성에 말라르메(Stephane Mallarme)의 소네트 를 가사로 차용한 을 작곡했다. 그 직후 북독일 방송 교향악단이 작곡을 부탁해 오자 불레즈는 같은 편성으로 역시 말라르메의 시인 를 입힌 두 번째 즉흥곡을 발표했다. 1959년에는 말라르메의 시 를 붙인 세 번째 즉흥곡이 탄생했다. 같은 해 기존의 단편 작품이었던 를 개작한 이 완성되었고, 이듬해 소프라노와 피아노를 위한 가 작곡되었다가 1962년에 관현악 편곡본으로 수정되었다. 이렇게 해서 5악장 성악곡 의 초판본이 6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초판본 녹음은 불레즈 자신의 지휘와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1969년 이루어졌다. 1980년대에 이..

음악/불레즈 2017.02.28

피에르 불레즈 [5] - <메사제스키스(Messagesquisse)>

스위스의 지휘자 파울 자허(Paul Sacher)의 70세 생일이 가까워지자, 평소 그와 친했던 12명의 작곡가들이 모여 축하곡을 헌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자허와 친분이 두터웠던 불레즈 역시 여기에 합류한다. 처음에는 브리튼(Benjamin Britten)이 메인 테마를 작곡하고 나머지 11명이 각자 변주곡을 1개씩 쓰기로 했었으나, 참여한 작곡가들 모두가 열의를 보여 결국 12개의 개별 작품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작곡시에 규칙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Eb-A-C-B-E-D의 6개 음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자허의 성인 S-A-C-H-E-R의 알파벳을 기보에 대입시킨 것이다. 음계는 A부터 G까지만 있으니 S가 Eb로, H가 B로, R이 D로 되었다. 이 'S-A-C-H-E-R' 모티프는 자허..

음악/불레즈 2017.02.26

피에르 불레즈 [4] - <노타시옹(Notations)>

불레즈가 파리음악원에서 메시앙의 수업을 들을 시절 메시앙은 항상 정규 수업과는 별도로 불레즈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수업에서는 큰 비중을 두지 않았던 쇤베르크와 스트라빈스키, 바르톡의 작품들을 가르쳤다. 또한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의 가장 중요한 지지자였던 라이보비츠는 불레즈에게 쇤베르크와 베베른의 작곡법들과 메시앙의 잘 알려지지 않은 습작들을 연구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불레즈는 이들의 가르침을 종합하여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섰다.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네, 피아노 소나타 제1번은 그와 같은 가르침들을 흡수하여 탄생한 대표적인 초기 작품들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불레즈는 서른 살이 되던 해인 1955년, 제2차대전 세대들 중 가장 명철하고도 비타협적인 작곡가이자 음악적 전통 그 자체에 대한 무..

음악/불레즈 2017.02.23

피에르 불레즈 [3] - <주인 없는 망치(Le Marteau sans maître )>

는 시인 르네 샤르(Rene Char)의 시를 가사로 차용한 작품이다(과거에도 불레즈는 샤르의 시를 가사로 차용한 칸타타 과 을 작곡한 적이 있었다). 1930년대 초반 샤르가 초현실주의에 터잡은 연작시 를 발표하자 불레즈는 이를 자신의 음악어법으로 함축하여 표현하기로 결심한다. 불레즈는 처럼 반항을 모티브로 하는 시에는 전통적인 음악어법을 입혀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고, 악기편성에서부터 악장 구조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쓰기로 결심한다. 샤르의 시는 간결하고 응축된 문장 어법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관현악 표현을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불레즈는 알토 성악가가 한 악장에서 가사를 부르면 다른 악장에서는 앙상블이 이를 받아치고, 확장시키고 코멘트를 다는 식의 구조를 도입했다. 악장 배치에도 ..

음악/불레즈 2017.02.22

피에르 불레즈 [2] - 지휘자 불레즈

1960년대 중반의 불레즈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파리 극장 오케스트라를 오가는 촉망받는 지휘자였다. 처음에는 가끔씩만 지휘봉을 잡으나 점점 포디움에 오르는 일이 잦아졌고 1971년에는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뉴욕 필하모닉의 수장을 맡게 된다. NYP 상임으로 재직하는 7년 동안 불레즈는 공연 선곡으로 많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전임인 번스타인의 전통적인 고전음악 레퍼토리에 익숙해져 있던 뉴욕 시민들은 전위음악들로 채워진 불레즈의 공연프로그램에 큰 충격을 받았다. 차이콥스키와 모차르트를 즐기던 관객들은 베베른과 베르크로 채워진 팸플릿을 보고는 기겁하여 예매를 취소하곤 했다. 그러자 불레즈도 어쩔 수 없이 레퍼토리에 고전음악을 적절히 섞는 방법을 취하게 된다. "...현대음악을 무대에 올릴 때에는 고..

음악/불레즈 2017.02.22

피에르 불레즈 [1] - 총렬음악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다. 단지 모방만 한다면 그것으로 끝일 뿐 아무 쓸모가 없다. 덧붙임도 창조도 없고, 그 어떠한 정당화도 참신한 논리도 찾아볼 수 없는, 단순한 '인용'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예컨대 골동품 가게에서 18세기의 양초와 19세기의 의자를 구입한다고 해서 새로운 스타일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세대를 불문하고 작곡가라면 이러한 과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언가의 원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막연히 알고만 있는 것 말고, 진짜 나만의 것을 끄집어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역사의 단두대는 이러한 방향에서 이탈한 작곡가를 가차없이 처단한다." 과거 파블로 카잘스는 9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일 6시간씩 연습을 하는 이유를 묻..

음악/불레즈 2017.02.22

쇤베르크: 모세와 아론(Moses und Aron) - 피에르 불레즈, 로열 콘서트헤보우

-줄거리- 제1막 제1장 모세가 신을 애타게 찾는다. 불타는 가시덤불 속에서 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신은 모세에게 선택받은 이스라엘인들을 집결시키도록 지시한다. 신은 이스라엘인들이 이제 이집트의 육체적, 정신적 속박에서 자유롭게 될 것이며, 우상숭배를 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한다. 모세는 신의 지시를 충분히 이해했지만 자신은 신에 대해서는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다고 호소한다. 그러자 신은 모세의 형 아론에게 이스라엘인들을 설득할 능력을 주었다고 말한다. 신은 자신이 끝까지 이스라엘인들과 함께할 것이며, 이스라엘인들의 국가는 다른 모든 국가들의 모범이 될 것이라고 한다. 모세는 아론을 만나기 위해 사막으로 간다. 제2장 모세는 아론에게 자신이 신으로부터 받은 지시에 대해 설명하고, 어떠한 형상으로도 표현..

음악 2013.07.02

쇤베르크: 피아노 협주곡 - 피에르 불레즈, 미쓰코 우치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쇤베르크는 본래 단악장 구조였던 이 곡을 4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각 부분마다 시구를 부제로 붙였다. 각각 제1부 , 제2부 , 제3부 , 제4부 이다. 피아노에 의한 첫 12음열(D#, A#, D, F, E, C, F#, G#, C#, A, B, G)의 제시로 곡이 시작된다. 제1부에서는 느리고 서정적인 분위기 속에 피아노 독주와 관현악의 잔잔한 대화가 흐른다. 점점 분위기가 격앙되고, 이윽고 제2부로 전환되어 거칠고 파열적인 음들을 정신없이 쏟아놓는 스케르초로 변모한다. 제3부로 넘어가면 공기가 나지막히 얼어붙으며 피아노와 타악기, 트럼펫의 표정없는 대화가 이어지고, 활짝 편 악마의 날개처럼 소름을 짓누르는 관악의 날선 성토, 카덴차풍의 독백을 거쳐 제4부의 밝고 희망적이지만 뒤끝이 완전히 개운치는 않..

음악/불레즈 2013.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