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쇤베르크: 모세와 아론(Moses und Aron) - 피에르 불레즈, 로열 콘서트헤보우

Onsol 2013. 7. 2. 16:14

Pierre Boulez, Koninklijk Concertgebouworkest Amsterdam, DG 1995

-줄거리-

제1막

제1장
모세가 신을 애타게 찾는다. 불타는 가시덤불 속에서 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신은 모세에게 선택받은 이스라엘인들을 집결시키도록 지시한다. 신은 이스라엘인들이 이제 이집트의 육체적, 정신적 속박에서 자유롭게 될 것이며, 우상숭배를 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한다. 모세는 신의 지시를 충분히 이해했지만 자신은 신에 대해서는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다고 호소한다. 그러자 신은 모세의 형 아론에게 이스라엘인들을 설득할 능력을 주었다고 말한다. 신은 자신이 끝까지 이스라엘인들과 함께할 것이며, 이스라엘인들의 국가는 다른 모든 국가들의 모범이 될 것이라고 한다. 모세는 아론을 만나기 위해 사막으로 간다.

제2장
모세는 아론에게 자신이 신으로부터 받은 지시에 대해 설명하고, 어떠한 형상으로도 표현될 수 없는 추상적인 신의 존재를 강변한다. 아론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신의 존재를 사람들이 과연 믿을까 의심한다. 하지만 파라오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인들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모세의 생각에 동조하게 된다.

제3장
이스라엘 군중들은 아론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 갈등하기 시작한다. 이스라엘인들은 이미 파라오의 지배 하에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사제는 더 이상의 신은 불필요하다며 반대한다. 몇몇 사람들은 모세가 거론하는 신이 피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반면에, 젊은이들은 모세의 신에게 복종할 의사를 밝힌다.

제4장
군중들은 자신들이 신의 명령을 들을 준비가 되었다고 말한다. 모세의 말이 아론의 노래를 통해 전해진다. 전지전능한 신인데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아론의 설명에 군중들은 비웃는다. 모세는 신의 진정한 뜻이 아론의 말을 통해 곡해되어 전달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그러나 아론이 모세의 지팡이를 뱀으로 변하게 하였다가 다시 지팡이로 만들자 군중들은 동요한다. 아론은 모세가 지나치게 고지식하다며 때로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한다. 아론은 재차 모세의 손을 썩어들어가게 했다가 다시 순식간에 치료시키는 기적을 보인다. 군중들은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존재를 믿게 되고, 이집트의 압제와 그들의 우상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한다. 제3장에서 등장한 사제가 이집트를 탈출하여 사막을 건너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아론은 이집트의 노예로 죽어간 이스라엘인들을 애도하고 훗날 이집트인들이 물로써 파멸할 것임을 예언하며 나일강의 물을 피로 변하게 하였다가 다시 물로 바꾼다. 마침내 군중들은 모세와 아론을 따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 사막으로 향한다.

막간 장면

모세는 신의 목소리를 좆아 홀로 산 정상으로 올라가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모세와 그의 신이 자신들을 버렸다며 의심하기 시작한다.

제2막

제1장
모세는 산 정상에서 40일동안 신이 내려줄 계명을 기다린다. 지도자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공황상태에 빠져 우왕좌왕한다. 원로들은 아론에게 상황을 수습해 줄 것을 간청한다.

제2장
이스라엘인들이 아론과 원로들을 둘러싼다. 그들은 모세와 그의 신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말하며, 과거에 믿던 우상들을 다시 믿자고 한다. 아론은 그들의 협박을 이기지 못해 결국 그들로 하여금 형상화된 신, 금송아지를 만들게 한다. 변덕스러운 군중들은 금세 안정을 찾는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향해 경배한다.

제3장
저녁이 된다. 사람들은 큰 잔치를 준비한다. 병에 걸린 여인은 금송아지를 만져 기적적으로 치유된다. 걸인들은 그들의 넝마를 금송아지에게 바친다. 몇몇 노인들은 자신들의 마지막 순간을 금송아지의 발 밑에서 보낸다. 제1막에서 가장 먼저 모세의 추종자가 된 젊은 남자가 금송아지를 파괴하려 하자 군중들은 그를 살해한다. 70명의 원로들이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은 음주가무를 즐긴다. 그들은 나체의 처녀 네명을 죽여 제물로 바친다. 이내 모든 사람들이 광기에 휩싸이고, 지칠 때까지 난교 파티를 벌인다.

제4장
모세는 십계명이 새겨진 석판을 들고 산을 내려온다. 모세는 산 아래 상황을 파악하고는 아연실색한다. 모세의 경멸과 분노가 섞인 외침에 금송아지는 분해되어 버린다. 군중들은 두려워하며 모세 앞에 엎드리면서도 금송아지의 파괴를 애석해한다.

제5장
아론은 모세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는 사람들을 사랑했고 신도 틀림없이 믿었지만 도저히 군중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세는 형상의 무의미함을 계속 강조하며 보지 않고도 추상적으로 믿는 것의 가치를 강변한다. 아론은 다급히 십계명 석판을 가리키며 형상도 믿음의 일부가 아니냐고 묻는다. 그러자 모세는 석판을 깨뜨려 부수어 버린다. 다시 (모세의) 신에게로 돌아선 이스라엘 군중들은 다시 모세를 따라 여행을 시작한다. 밤에는 불기둥이, 낮에는 연기기둥이 그들의 길잡이를 해 준다. 모세는 이 불기둥과 연기기둥마저 우상적인 형상화로 본다. 하지만 아론은 그것들이 진정한 신의 계시라고 말한다. 모세는 신의 뜻이 정녕 언어로 인한 곡해나 형상화를 통하지 않고서는 전달되지 못하는 것인가 생각하며 절망한다.

제3막

모세가 아론을 비난하며, 군중들에게 아론의 말이 아닌 신의 뜻을 믿어야 한다고 호소한다.


쇤베르크는 제3막은 쓰지 않았다. 본래 제3막은 장이 1개밖에 없는 단막으로 모세와 아론의 대화만으로 짜여지도록 했다. 죽음을 앞둔 쇤베르크는 자신이 이 곡을 완성할 수 없을 것이라며 그냥 대사로만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좋은 캐스팅이다. 밉살스러운 아론으로 메리트는 잘 어울린다. 피트만-제닝스는 이 레코딩에서 처음 알게 된 바리톤인데 아주 마음에 든다. 극도로 지적이고 고자세이며 다소 곤한 모세의 모습을 잘 그려낸다. 불레즈와 함께하는 RCA는 그야말로 거품 한방울 없는 얼음조각 같다. 무엇보다도 하이라이트인 2막 3장. 금송아지를 둘러싼 정신없는 춤의 향연, 처녀들을 죽여 제물로 바치고, 모두가 이성을 잃고 강간, 살인을 난행하는 장면. 극도로 히스테릭하며 통제되지 않은 분노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여기에서 불레즈는 끔찍한 광기를 생생하게 현출하면서도 동시에 그 특유의 명료하고 깨끗한 소리로 황홀감마저 전해준다. 클루티히와 솔티의 녹음도 훌륭하지만 여기에는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아래는 내지에 인쇄된 불레즈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해 번역한 것이다. 자신이 녹음한 CD를 20년 동안 한번도 듣지 않은 불레즈의 쿨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지금껏 런던에 있는 동안 콘서트 홀에서만 이 오페라를 지휘했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모세와 아론>이 오페라가 아니라 오라토리오이며, 쇤베르크가 나중에서야 오페라로 바꾼 것이라고들 합니다. 이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제 생각은 좀 다르거든요. 가령 합창의 경우 이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마치 카멜레온과도 같이, 때로는 분열되어 때로는 강경하게 주인공 중 한 명을 지지합니다. 분노에 차 있고, 동시에 유순하고, 미주알고주알 말이 많습니다."

"쇤베르크가 이 오페라에서 이야기하는 바를 단순히 액면 그대로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이 오페라는 신에 관한 것이 맞습니다. 재현할 수 없는 신. 볼 수도 없는 신. 이런 말들이 끊임없이 되풀이되죠. 하지만 종교는 이 다면적인 작품의 한 요소에 불과합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보면 좀더 형이상학적인 문제가 나옵니다. 어떠한 목적, 또는 목표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삶에 있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목표가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 또 그 목표가 무엇인지 말로써 표현할 수가 있는가? 이것은 종교라는 주제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문제들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예술과 언어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의문을 포함합니다. 어떠한 결과를 낼 수 있는 미혹적인 언어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미혹적인 언어로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을까? 저는 이 문제가 인간으로서의 쇤베르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종교와 정치는 이 오페라에서 아주 밀접하게 얽혀 있습니다. 정치에서는 신앙과 미신이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심원하지는 못하지만 같은 맥락이죠. 독재가 무엇입니까? 말의 힘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는 신념 중의 하나잖아요. 독재는 말로 내뱉는 언어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세가 극중 '오 말이여, 그대 말이여, 나에게는 없는!'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독재에 대한 반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오페라의 첫 두 막은 이런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말을 가지지 못하는 자는 힘을 가지지 못한다, 뒤집어 말하면 달변인 자가 곧 지배자이다. 역사적으로 정치나 종교에서 이런 현상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페터 슈타인과 저는 제3막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 가능한지 고민했습니다. 제3막은 제가 설명한 것과는 반대되거든요. 진실을 왜곡해 힘을 잃은 아론 대신, 모세가 전면에 나서 자신의 태도를 견지하면서 진실의 힘이 좀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인데... 음악적인 면에서는 아주 약간의 스케치만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대사에 힘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음악이 필요하고, 단순히 대사의 주고받기만 무대에 올리게 되면 용두사미가 되죠. 솔직히 논리흐름이 중요한 게 아녜요. 제3막은 신의 불가시성과 불가현성이라는 주제를 반복합니다. 연출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다소 빈약한 것이며, 더 이상 진전이 없는 것입니다. 쇤베르크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모종의 대화를 새로 쓰려고 했을 것 같습니다. 군중과의, 합창단과의 대화일 수도 있고, 신과의 대화일 수도 있겠지요. 알 수 없는 일이지만요. 여하튼 우리는 제3막을 생략하게 되었습니다."

(3막에서 <영화의 어느 장면을 위한 부수음악(Begleitmusik zu einer Lichtspielszene)>을 연주하는 방안은 이제는 유효하지 않은 것인가요?) "아닙니다. 헤르만 셰르헨이 1959년 베를린 오페라 하우스에서 모세와 아론을 독일 초연할 때, 3막의 대사 위에 불타는 가시덤불 장면의 음악을 덧씌웠습니다. 신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니 썩 나쁜 발상은 아니었지요. 그리고 곡이 전체적으로 하나의 완성품이 되었구요. 하지만 같은 음악이 계속 흘러나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쇤베르크는 항상 의미없는 반복을 질타했습니다."

"제 위치는 -모세나 아론이 아니라- 합창단의 그것과 같습니다. 두 명의 주인공들을 대하며, 모든 것을 그들과 논의합니다. 때로는 그들에게 반대하고 때로는 동의합니다. 그들 둘 다와 완벽하게 혼연일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모세는 고집이 셉니다. 낡은 가치들을 계속 추구합니다. 이건 금세 알아챌 수 있어요. '뭔가 좀 다른 걸 생각할 수는 없는가?'라고 꼬집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될 겁니다. 그리고 아론에게는 '헛소리를 하는 것은 당신의 자유지만, 그로 인해 결국 어떻게 될까?'라고 말해 주고 싶을 겁니다. 모세는 유혹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론은 끊임없이 욕망하는 군중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 틀리지 않다고 봅니다. (지휘자인) 저는 수없이 다양한 태도들로 반응하는 합창단과 같습니다. 다양한 성격들 때문에 일관된 태도를 갖추지 않습니다. 심지어 하룻밤 새에도 태도가 변합니다."

"...페터 슈타인은 암스테르담에서 제 2막의 안무를 리허설할 때 제 예전 레코딩을 사용했습니다. 저는 그 때 제 1974년 녹음을 처음 들었어요. 꽤나 충격받았습니다. 그 때와 지금은 연주방식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1974년 녹음은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지만, 런던 녹음은 콘서트 무대공연이었기 때문에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했습니다. 악보를 해석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악절들을 세부적으로 공부했습니다. 몇몇 장면들은 그들이 정확히 어떻게 쓰여졌으며, 쇤베르크가 어떠한 음악어법을 사용했고 12음기법을 어떻게 운용했는지 이해하기 위해 음악학적 분석까지 했습니다. 이를 통해 선율들 및 대위법들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상호작용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