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불레즈

피에르 불레즈 [8] - <파생 2>

Onsol 2017. 3. 9. 02:13

아마추어 지휘자이자 음악평론가인 톰 서비스(Tom Service)가 가디언지에 <Why Boulez is like a bait ball>이라는 제목으로 2008년 12월 런던 공연 후기를 기고한 것이 있어 번역해 본다. 짧은 영어실력에 터잡은 발번역이지만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란다.

 

Why Boulez is like a bait ball

Tom Service: About half an hour into Dérive 2, it came to me what the music was making me feel like ...

www.theguardian.com

숨가쁜 한 주였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사이먼 래틀과 계몽시대 오케스트라의 슈만 교향곡 전곡 사이클이 있었다.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연주였으며, 슈만은 19세기 작곡가들 중 가장 저평가된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다. 특히 2번 교향곡의 느린 악장에서는 바흐와 모차르트, 브람스, 브루크너 심지어 말러의 모습까지 보였다. 그것으로 충분치 않았는지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피에르 불레즈와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Ensemble Intercontemporain)의 올리비에 메시앙과 엘리엇 카터의 탄생 100주년 기념 콘서트가 있었다. 런던에서의 음악생활을 연중 계속되는 축제처럼 만들어준 4일이었다.

하프 셋, 피아노 셋, 타악주자 셋 편성의 <삽입절에(Sur Incises)>와 11명의 연주자를 위한 <파생 2(Derive 2)>라는, 불레즈의 최신작 두 곡의 공연은 특히 탁월했다. 두 작품 모두 40분이 넘는 대곡이고, 끝없는 개작과 확장에 대한 불레즈 특유의 집착의 결과물들 아니던가. 1998년작인 <삽입절에>는 격렬한 타악의 향연이 점차 눈부신 화성의 두루뭉술한 정지상태로 변모해 나가는, 실로 다채로운 소리세계를 보여주었다. 듣는 내내 한시도 몰입감을 잃을 수 없을 정도로 품위 있고 관능적이었다. 종결부가 끝나자 꽉 찬 관중석에서 우뢰 같은 찬사가 쏟아져 나왔다.

<파생 2>는 <삽입절에>의 아이디어들을 한 차원 높게 끌어올린다. 45분짜리 곡이었는데, 들어보니까 20분짜리로 쓸 수도 있었고, 한편 200분짜리로 쓸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오직 하나의 코드에 기반한 곡이기 때문이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격렬하게 달렸다가 완만하게 수축하는 등 표면상으로는 변화무쌍하지만 결국 코드 한 개만 가지고 하는 것이다. 표면에서는 모든 것이 바뀌지만 깊은 아래에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닫혀 있지만 한편 무한한 확장이 가능한 음악세계라니 기묘하지 않은가. 마치 45분 내내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데, 이런 음악이 취향에 맞는 청자라면 초기 불레즈의 관습타파적인 과격함과는 거리가 아주 먼, 고혹적이고 최면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피아노를 위한 <노타시옹> 또는 피아노 소나타 2번에서의 불레즈에서 <파생 2>의 불레즈로 변모하는 동안 6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그만큼 작곡 성향 역시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파생 2>는 확실히 프랑스적인 감성을 담고 있다. 흡사 드뷔시가 <바다>에서 제시했던 주제 한개를 가지고 45분 내내 확장을 거듭하는 것 같다. 이는 이 곡의 매력이지만 동시에 한계이기도 한데, 드뷔시가 보여주었던 만큼의 변화무쌍함과 다채로움은 나타나지 않는다. 어젯밤 공연의 전반부를 차지했었던 엘리엇 카터보다도 덜하다. 카터 역시 미리 일정한 코드를 제시한 다음 이를 확장시키는 식으로 작곡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상당히 역동적이고 극적인 환상을 보여주는 반면, 불레즈는 극적인 연출은 하지 않는다.

2001년 BBC의 자연 다큐멘터리 <블루 플래닛>에서 정어리 등 작은 물고기 떼들이 만들어내는 위장 모형(bait balls; 청새치 등 포식자에게 대응하기 위해 떼를 지어 한 덩어리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습성을 말한다-역자)이 소개된 적이 있다. 물고기들의 위장 모형은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고, 항상 모습이 다르지만 본질은 늘 같은 것이며, 유지하는 데에는 지속적인 동력이 필요하다. <파생 2>가 정확히 그와 같은 작품이다. 듣는 동안 마치 물고기 떼의 한 구성원이 된 느낌을 준다. 중심 코드가 구심을 잡아주는 동안은 탈출할 수 없고, 음악이 멈추어야만 빠져나올 수 있다. 무리가 깨지는 때가 청새치가 돌진하는 순간이듯, 음악이 멈추면 듣는 이도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