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로스트로포비치의 하이든 첼로 협주곡집

GENA 2017. 3. 8. 00:31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이하 '슬라바'라고만 씀)와 아카데미 관현악단의 1975년 녹음. 40년 넘게 수많은 이들의 극찬을 받아왔기에 굳이 나까지 거기에 보태야 하나 싶을 정도인 레퍼런스 중의 레퍼런스다. 일정한 음색, 균일한 비브라토, 고정된 템포에 거침없는 운궁으로 마치 드론으로 공중촬영하듯 음표들의 파노라마를 보여준다. 특정 음표에 대한 줌인을 전혀 하지 않고도 높은 몰입도를 유지한다(비슷한 컨셉의 해석을 안너 빌스마의 1989년 연주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지휘자인 슬라바와 음악학자인 빌스마가 서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접근했음에도 같은 궤의 해석을 도출하는 것을 보면, 연구자로서의 시각과 자세는 연주 스타일에 확실히 영향을 주는 모양이다). 고전을 현대적인 언어로 논리정연하게 풀어내는 방법에 관한 교과서적인 가르침을 주는 녹음이다.

슬라바는 1번 C장조의 경우 루돌프 바르샤이가 지휘한 1963년 실황까지는 사들로의 카덴차를 사용했고, 벤자민 브리튼이 지휘한 1964년 녹음에서부터 비로소 브리튼이 작곡한 현대음악풍 카덴차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슬라바의 해석은 이 때를 기점으로 완성되었다고 보면 되는데, 실제로도 1964년 녹음과 1975년 녹음 간의 해석 차이가 거의 없다. 브리튼의 카덴차는 곡에 등장했던 주제의 일부를 짧게 제시한 다음 조바꿈을 통해 구조를 쌓아올리고, 다시 다른 주제를 간략히 소개한 뒤 조바꿈을 거쳐 구조를 쌓아올리고...를 반복하는 형식으로 크로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불필요한 감정소모를 차단하고 음표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 이상의 세부묘사를 하지 않는 슬라바식 프레임과 맞물려 절묘한 시너지를 낸다. 본곡의 주제들은 고전적이고 스탠다드하여 예측 가능하지만, 이를 미묘하게 비튼 브리튼의 카덴차에는 현대인의 의뭉스러움과 예측불가능성이 녹아 있는데, 슬라바 특유의 호쾌한 음색과 명료한 아티큘레이션은 이 둘을 하나로 버무려 준다. 아울러 이와 같이 확장된 저변 덕택에 3악장, 특히 235마디 이후에서는 22마디부터 30마디까지에서 보여주었던 장쾌하고 고급스러웠던 주제제시가 아깝지 않을 만큼 강렬한 종결감을 느낄 수 있다.

느긋한 템포와 조심스러운 다이나믹 변화, 나지막한 하모닉스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슬라바는 2번을 1번보다 더 고전적인 곡으로 해석하는 듯하다. 물론 논리적 일관성은 두드러지는 편이고, 1번에서와 마찬가지로 특별히 어느 음표에 비중 없이 한 땀 한 땀 빚으며, 자잘한 꾸밈음이나 인사치레 애드립도 당연히 없다. 다만 1악장 전반부를 마무리하는 77마디에서 화음을 가필한 것이 눈에 띄는데, 마침표 제대로 찍고 투티로 넘기겠다는 중간확인적 선언 되겠다(맥락이 다르기는 하나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3악장 막바지에서도 화음 가필을 한 바 있다). 1악장 카덴차는 슬라바가 직접 작곡한 것으로 이 녹음의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1963년 녹음까지만 해도 클렝겔이 작곡한 것에 슬라바 본인의 표현을 섞어놓은 하이브리드 카덴차를 사용했는데, 이후 클렝겔의 냄새가 완전히 빠지면서 슬라바의 오리지널 작품으로 개작되었다. 앞서 제시되었던 주제들이 조바꿈과 구조적 확장을 통해 현대적인 음악어법으로 재구성된 명작이다. 물론 그만큼 난해한 핑거링을 자랑한다.

작곡가이자 지휘자, 피아니스트 겸 첼리스트인 올라운더 뮤지션으로서 색채의 다양성을 배격하고 냉정히 악보를 분석하여 선 굵은 스케치로 속기하는,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진한 흑백의 연주 되겠다. 그가 <메사제스키스>의 초연자임에도 불구하고 녹음을 전혀 남기지 못했다는 점은 늘 아쉬운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