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의 베토벤 교향곡 5번 마스터클래스

GENA 2013. 9. 6. 21:48

 

4악장 초반부에서 저음현 파트에 바순의 소리를 충분히 살려주라고, 비올라가 비브라토를 너무 많이 쓰면 클라리넷이 묻힌다고 경고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오케스트라에 사유할 기회를 부여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아르농쿠르스럽다. 4악장 연습 중 다시 1악장으로 돌아가서, 'C장조가 이렇다. 그렇다면 C단조는 어떻게 연주되어야 하겠는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도입부 1-5마디의 '빠바바밤' 부분에서는 독재자에게 속박당한 자의 몸부림을 예로 들며 '진정으로 고통스러운 포르티시모'를 요구하고, 6-9마디는 '독재자가 버티고 있고 경찰이 감시하고 있으니 너무 강하게 치고 나와서는 곤란하다'고 하며 흥분하지 말라고 단지 속삭이기만 하라고 조언한다. 6-9마디의 4개 마디는 단순히 덤덤한 피아노가 아니라, 1마디부터 5마디까지는 독재자의 속박이고, 6마디부터 9마디까지는 민중의 신음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1마디의 포르티시모와 6마디의 피아노 사이의 다이나믹 대비가 아주 크다. 또 43-51마디에서는 단순한 포르테에 머물다가, 52마디부터는 마치 악어가 갑자기 입을 벌리듯 기습적인 포르티시모를 연주하라고 한다. 또한 43마디부터 55마디까지 이어지는 현악의 8분음표들은 독재자가 행하는 고문이며, 59마디의 호른 솔로는 민중들이 질식해 죽기 직전에 호흡을 할 수 있도록 잠시 환기를 시켜주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한다. 호른 솔로에 뒤따라 63마디부터 시작되는 4분음표들은 언젠가는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연출하는 칸타빌레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아르농쿠르에 의하면 1악장에 나타나는 표정은 크게 두 가지로,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과 겁에 질려 눈치를 살피는 두려움이 그것이다. 196마디부터 목관파트와 현악이 주고받는 2분음표들은 그러한 두려움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1악장이 독재자와 그의 경찰들에 짓눌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의 극단을 상징화한 것이라면, 2악장은 압제에 시달리는 민중들이 몰래 교회에 모여서 신의 자비를 구하며 경건한 기도를 올리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일전에 아르농쿠르의 브람스 인터뷰를 본 일이 있는데,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과거의 고정된(petrified) 아이디어들에 머물러(glued) 있어서는 안 된다,' '왜 아직도(why still) 이 음악을 연주해야 하는가, 또한 어떻게 연주되어야 하는가'와 같은 말을 했던 것이 떠오른다. 여기에서도, 비록 아르농쿠르의 베토벤관이 직접적으로 소개되지는 않지만, 끊임없는 장면의 상상과 역동적인 비유들, 그리고 그 특유의 흥분이 가득 들어찬 눈망울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40분짜리 마스터클래스는 단순히 '이 마디에서는 이렇게 연주하고 저 마디에서는 저렇게 연주해야 한다'는 기교적인 레슨이 아니라, 관행에 얽매이지 말고 지금 현재(hic et nunc) 어떻게 연주되어야 하는지 생각하고, 오케스트라 스스로가 자신들이 연주하는 마디마디가 어떠한 상을 가지는지를 사색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