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이 둡체크의 프라하의 봄(Pražské jaro)을 좌절시키고자 체코를 침공한 바로 그 날 런던 로열 알버트 홀에서 이루어진 공연이다. 아래에 앨범 커버 내지의 내용을 대충 번역해서 올려본다. 스트라드(The Strad)지의 음악평론가인 툴리 포터(Tully Potter)와 로스트로포비치 자신의 회고이다.
포터 : 1968년은 서방세계에서는 혁명의 해로 기억될 운명이었습니다. 주요 중심지들에서 학생들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유럽 심장부의 저 아름다운 고도시 프라하에서는 사람들이 20년간 이어져온 강경 공산주의를 거부하고 둡체크의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지지했죠. 본래는 연례 음악축제를 가리키던 '프라하의 봄'이 어느 새 히틀러, 그리고 스탈린과 그의 추종자들의 밑에서 신음하던 민족의 정치적 부활에 대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크렘린 궁전의 냉혈한들은 그러한 독립선언을 두고 볼 생각이 없었죠. 결국 8월 21일 수요일, 소련의 탱크들이 프라하로 밀고 들어왔어요. 한편 멀리 떨어진 런던에서는 제74회 BBC 프롬 공연이 한창이었어요. 우리들 음악애호가들도 체코슬로바키아의 소식을 전해들었는데, 그러고 보니 저녁 프롬 공연에서 러시아 솔리스트와 러시아 지휘자가 체코 최고의 걸작 중 하나인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할 예정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공연 반대 시위라도 해야 하는 걸까 생각했는데, 그래도 소련 정부가 자행한 일로 음악가들이 비판받아서는 안 되는 거니까... 그리고 기실, 잊지 못할 밤이 될 것이었죠.
... 실제로 그랬어요. 로열 알버트 홀에 들어서기도 전에 소련을 규탄하는 배너를 든 시위자들을 맞닥뜨렸죠. 공연 전에 무대 뒤에 있었던 찰스 데이(Charles Day)도 '모든 연주자들이 극도로 긴장해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공연장 안에서는 소련국립교향악단 단원이 자리에 앉아서 악장 아이작 주크(Issac Zhuk)의 감독에 따라 튜닝을 하려는 참에 관객석 여기저기에서 그들의 머리 위로 격한 말들이 쏟아졌습니다. 평소 런던에서 환영받는 지휘자인 스베틀라노프도, 마치 사형집행대로 끌려가는 사람처럼 등장하더라고요. 그러고는 그런 상황에서 가장 부적절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작품인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을 지휘하기 시작했죠. 어지러운 음악이 시작되고 나서도 소란은 완전히 걷히지 않았어요. 분위기가 마치, 쇼스타코비치가 자신의 교향곡 5번의 피날레의 의미가 '너의 임무는 기뻐하는 것이다, 너의 임무는 기뻐하는 것이다'이라고 씁쓸하게 회상했던 것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쇼스타코비치는 <증언(Testimony)>에서, "교향곡 5번의 즐거움은 강요된 것이고 위협 속에 만들어진 것이다. 마치 누군가가 당신을 몽둥이로 구타하면서 '너의 임무는 기뻐하는 것이다, 너의 임무는 기뻐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당신은 부들부들 떨면서 일어나 '우리 임무는 기뻐하는 것이다, 우리 임무는 기뻐하는 것이다'라고 되뇌이며 행진하는 것이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종류의 찬미일까? 이 곡에서 이를 포착하지 못하는 사람은 멍청이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요컨대 교향곡 5번 4악장의 즐거움은 사실은 억압과 강요 속에 쥐어짜진 환희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 서곡이 끝나자 극심한 소란이 찾아왔습니다. 로스트로포비치와 스베틀라노프가 들어섰지만 소란이 잦아들지 않았어요. 반소련 구호를 외쳐대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 사람들을 향해 우리는 음악을 들으러 왔지 시위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며 지지 않고 맞서는 사람들도 있었죠. 한편 도입부 투티가 시작되었고 로스트로포비치는 벌써부터 수심이 가득했어요. 연주 내내 얼굴에 눈물이 계속 흘러내리더라구요. 결국 연주가 끝났을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누그러졌고, 로스트로포비치는 앙코르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제 2번의 침통한 사라방드를 선사했습니다. 그의 침통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어요. 중간 휴식 시간 후 스베틀라노프는 단원들과 함께 좀더 자신감 있는 걸음걸이로 등장했어요. 그리고 그의 탁월한 연주자들과 함께, 제 45년 공연관람 인생 내내 들어온, 총기 넘치면서도 비통하기 그지없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0번을 시작했습니다.
... 이 음반에는 놀라웠던 그날 공연의 드보르작 연주가 들어 있습니다. 음악이 단순히 소리의 구조를 조립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보기드문 상황에 대한 기념의 의미입니다. 그날 밤의 분위기 때문에, 로스트로포비치가 수없이 공연했던 곡임에도 평소의 해석에 비하면 소리가 어쩔수 없이 불안정했습니다. 되돌아보면 그를 비롯한 연주자들이 그 곡을 끝내 완주해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지요. 로스트로포비치의 드보르작 해석은 수년간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어요. 곡에 담겨 있는 모든 정서를 쥐어짜내려고 고군분투했으니 말입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이 곡에서 열 개가 넘는 음반을 남겼고 개중에는 탈리히나 볼트와의 녹음과 같이 탁월한 것들도 있지만, 이 녹음은 아마 로스트로포비치 스스로도 기억하고 싶지 않을 겁니다. 이 녹음은 로스트로포비치가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해석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있어서, 잠시 지나쳐가는 간이역과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로스트로포비치 : 1968년 소련이 프라하를 침공하던 바로 그 날 이루어진 공연이죠. 알버트 홀이 수천의 반소련 시위대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제가 무대에 등장하자 콘서트 홀 한쪽에서는 "Soviets go home!"이라고들 외쳤어요. 반대편 발코니에서는 "go to your baskets!"라고 응수하며 우리를 옹호해 주는 사람도 있었죠. 굉장히 경직된, 그리고 격앙된 분위기였어요. 돌을 던져대는 사람들 때문에 많이 불안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아침에 전화를 걸어 공연에 가지 말라고 충고해 왔고, 이것 때문에 공연 전에 매니저에게 제 첼로를 보험에 가입시켜 달라고 했었지요. 그 날 저녁에 정말 마음을 많이 졸였어요. 제가 이 곡을 그렇게나 빨리 연주한 적도 없을 겁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버거웠던 공연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도 관객들은 체코를 사랑하는 제 마음을 이해해 주었고, 저는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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