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크세나키스

이안니스 크세나키스 [2] - <전이(Metastasis; 메타스타시스)>

Onsol 2021. 10. 24. 20:10

20세기의 걸작 관현악곡이자 크세나키스를 대표하는 작품인 <전이(Metastasis; 메타스타시스)>를 소개한다. 이전 글에서도 잠깐 언급한 적이 있었다.

 

이안니스 크세나키스(Iannis Xenakis, 1922-2001)

이안니스 크세나키스는 1922년 루마니아의 브러일라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크세나키스의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어머니는 크세나키스가 5살일 때 출산 중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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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면서도 대규모 편성을 요하지 않는 데 비해, 음반이 의외로 몇 없는 편이다. 모리스 르루(Maurice Leroux)와 프랑스 국립관현악단의 1965년 녹음이 있고, 비교적 최근의 것으로는 아르투로 타마요와 룩셈부르크 필하모닉의 2006년 녹음이 있다. 전자는 해석과 녹음에 크세나키스 본인이 관여를 많이 한 것으로, 자작자연이 없는 이 곡에 있어서 사실상이라 결정반이라 보아도 무방하며 향후에도 대체품이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우선 들어보자.

Maurice Le Roux, Orchestre National De L'O.R.T.F., LE CHANT DU MONDE 1965.

도입부(영상 기준 00:00~02:53)

46개 현악기가 모두 동일한 음(G)에서 나지막하게 느린 호흡의 크레센도를 시작한다. 간헐적인 우드블록 타성과 피치카토가 들리는 가운데, 개별 악기들이 각자 다른 시점에 음을 변경하며 글리산도에 착수한다. 마디가 지날수록 글리산도의 층(層)이 한겹 한겹씩 쌓이다가 34마디에 이르러 각자 다른 음들(A, B, C, D, E, F, G)에 멈추어 몇 초간 지속된다. 이것은 추상미술이 점차 일그러지며 불쾌하게 극사실주의적인 그림이 되거나 디오라마가 해상도가 높아지면서 실물로 비화되는 과정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멀쩡한 사물들이 환각으로 왜곡되는 과정일 수도 있다.

1-55마디.

일시적인 정적(01:22)을 거쳐 12개의 모든 음에서 거칠고 강한 트레몰로가 몇 초간 펼쳐지다 멈춘다. 타악기가 잠시 주의를 환기하더니 점프스케어로 트레몰로 총주가 다시 시작되어 또 몇 초간 이어지는데 이번에는 피치카토가 신경질적으로 섞여 나온다. 여기에서부터 계속해서 일시 정적과 트레몰로 총주의 반복구간이 나타나고, 금관악기가 트롬본, 트럼펫, 호른 순으로 개입하며 확장적인 음향이 추구된다. 금관의 소리는 전반적으로 현의 총주를 뚫고 나오기보다는 그 밑에 아슬아슬하게 잠겨 있는 정도로 그치나, 트롬본의 으르렁대는 글리산도가 이룩해내는 공포감의 묘사와 트럼펫의 시간차 찌르기 공격을 통해 출구 없는 막막함을 숨막히게 표현해내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안과 밖, 위와 아래가 정신없이 전환되면서 현실도피의 시도가 번번히 실패함을 보여준다. 현의 트레몰로가 급작스럽게 잦아들었다가 현의 주도로 E에서 고음역 글리산도가 시작되고, D#, G#을 거쳐 A에서 한동안 지속되다가 마무리되며 도입부가 끝난다.


전개부(영상 기준 02:54~07:50)

104마디부터, 바이올린(3) 및 첼로(3)의 조성적이지는 않으나 음렬적이지도 않은 합주로 전개부가 시작된다. 운궁들이 하나같이 의도적으로 빗겨가면서 중요한 기억이 하나둘씩 환기되고 과거의 일들이 교차적으로 복기된다. 그러다 잠깐의 정적을 거쳐 운궁이 일치하면서 합주로 전환되며, 음색도 전혀 다르게 바뀌어 글리산도와 트레몰로 위주로 진행된다. 점점 개입하는 악기들이 늘어나는 한편 규칙적인 피치카토와 더불어 음향이 확장된다. 기억의 취합 과정에서 축적되는 고통을 표현하던 피치카토는 202마디에 이르러 트롬본이 끊어낸다(05:13 부근). 

그 후 파트별 음향의 다채로운 교차로 호르몬에 따른 심리변화, 인지부조화, 정신분열, 수면장애 등이 나타나는데, 불규칙적인 트롬본과 현의 글리산도/피치카토/콜레뇨로 분노와 공포, 고통의 몸부림이 갈수록 고조된다. 이 부분은 동시대의 많은 총렬작품들이 보여주는 조잡하고 천편일률적이며 난해하기 그지없는 예측불가능성(예측가능성x)이 아닌, 비교적 쉽고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흐름을 갖고 있다.

&lt;메타스타시스&gt;의 도형악보.


종결부(영상 기준 07:50~)

종결부에서는 첫 부분의 글리산도와는 정반대의 형식을 보여주는데, G에서 시작하여 악기별로 각자 여러 개의 음으로 분화되었던 첫 부분과 달리 여기에서는 현악이 열 두개의 반음에서 시작하여 점차 글리산도를 통해 G#로 수렴한다. 힘없이 잦아들다가 다시 간략한 트레몰로 총주로 마무리된다. 수미쌍관을 이루기는 하였으나 도입부와 대비하여 어떻게 된 것인지 석연치 않고 전혀 나아진 것 없는 상황을 드러낸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하며, 바로 첫 부분으로 되돌아가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 여기까지 듣는 데 익숙해졌다면 로즈바우트의 초연녹음도 들어보자.

Hans Rosbaud, SWF Symphony Orchestra, COL LEGNO 1955.

이 곡을 소개할 때에는 보통 필립스관의 활용을 비롯한 건축적 측면과의 융합을 꾀하였다는 점과, 음향을 조탁함에 확률이론의 방법론을 차용하였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대체적이나, 듣는 사람 입장에서 곡 구성에 쓰인 건축이나 작곡의 이론적 측면을 잘 알고 있는 것이 작품 자체를 즐기는 데 별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건축기법을 사용했다 한들 곡 자체로 무슨 건축을 표현하려 한 것도 아니고, 음향 자체로부터 그것이 건축과 밀접불가분의 관련이 있음을 추론해 낼 수도 없다. 작품이 작곡가 사후 오래도록 살아남기 위해서는 작곡기법 자체의 참신함만으로는 부족하고 결국 음색, 음향 면에서의 몰입도를 전제로 구성 면에서의 논리필연성과 전체적인 설득력까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메타스타시스>가 걸작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 곡은 1954년도에 작곡되었음에도 현대 어느 스릴러영화의 ost로 채택해도 손색이 없는, 어지간한 허섭쓰레기 같은 연출도 그럴싸하게 백업해줄만한 강력한 음향과 서스펜스를 가지고 있다. 곡의 트레이드마크는 글리산도지만, 글리산도만큼이나 트레몰로와 우드블록 등의 활용도 동시대 작품들 중 손에 꼽게 훌륭하며, 파멸적 상황 자체가 객관적인 공포감과 이성의 끈을 간신히 잡았다 다시 놓치는 것을 반복하는 절망적인 심리를 훌륭한 질감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구성 면에서도, 일상적으로 겪을 법한 공포감과 정신병을 기교적인 플롯으로 흡입력 있게 풀이한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