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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론 [4] - 신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 등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자는 그것이 실제로 '있음'을 보여줄 책임이 있다.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있음'을 전제로 한 논의는 언어낭비이다. 대표적인 예가 신학인데 신이 이미 존재한다고 전제하고 모든 논의를 시작하며 현상을 그 같은 전제에 끼워맞추기 위한 그런 특수한 양식의 연구만 하기 때문에 학문으로서의 성격을 전혀 가지지 못한다. 그나마 연금술은 온갖 실험을 통해 화학으로 거듭났고 점성술의 방대한 관측결과는 천문학의 탄생에 기여했지만 신학은 그런 것도 없다. 법학에서 등장하는, 관념세계에만 있을 법한 개념들은 사실 현실의 문제점들을 나름대로 설명하고 해결하려는 그런 목적으로 탄생한 것이다. 존재하는 것을 규명하고 이름을 붙이기 위한 것이다. 그러..

인구론 [3] - 행복

맬서스는 수명을 연장할 수 없는 여러 이유를 든다. 이를테면 콩 한알이 양배추마냥 커질 수 없는 것처럼 수명이 조금 늘어날 수는 있어도 획기적으로 길어지기는 어렵다는 소리다. 물론 지금 와서 보면 틀린 소리지만 당시 유전학 수준에서는 충분히 할 법한 이야기였다. 사실 수명이 얼마나 되든 인간이 포태와 동시에 죽음을 향해 곤두박질친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맬서스의 이런 주장은 과학적인 견해라기보다는 육신이든 영이든 불멸의 경지라는 것이 있다는 그런 믿음과 그 신봉자들에 대한 조롱이었다. 맬서스의 비아냥은 인간의 선의와 박애정신도 겨냥한다. 이기심을 강조하는 수준에 그친 아담 스미스와 달리 개인이 박애정신과 선의를 가진다는 것과 그에 기반해서 사회를 발전시킨다는 것 그 자체가 아예 허튼소리라..

인구론 [2] - 형벌의 본질

존재하는 시스템에 대한 인사이트나 무엇이 시스템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인사이트 그걸 담고 있으면 그게 법학고전이다. 인구론은 무엇이 법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찰, 어떤 법이 어떤 효과를 불러올 것인지에 대한 예측 같은 전형적인 법학의 과제를 다루고 있다. 불행에 대한 역사적 분석, 복지와 빈민구제에 대한 회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법정책적 제안으로 쓴 법철학서이다. 전체 줄기뿐 아니라 세부에서도 법학적 탁견이 보이는데 형벌 관련 부분이 특히 그렇다. 인간이 선하고 지적이며 자기통제적인 존재라는 믿음은 단지 망상에 지나지 않으며 본능적인 욕구에 따른 일탈에 대한 감시와 처벌은 단지 당연히 필요한 것일 뿐 거기에 무슨 교화적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범죄자를 감옥에 가두는 것은 특히 효과적인 방법이..

인구론 [1] - 개설

인구론은 총 6판까지 있는데 초판의 내용이 가장 압축적이고 일목요연하다. 개정판으로 갈수록 내용이 방대해지고 구체적 사례들과 정책제안들이 추가되며 편제도 바뀌는데 결국 초판의 부연이고 가독성도 별로이다. 국내 번역본으로는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제6판만 있다. 메리 셸리의 아버지이자 1세대 아나키스트인 윌리엄 고드윈 이 사람의 주장을 논박하는 것이 초판의 내용이다. 개체로서의 인간의 선함을 굳게 믿었던 고드윈에 대해 시스템주의자인 맬서스가 던지는 비판은 매우 통렬하다. 고드윈은, 성욕이란 통제할 수 있는 것이고, 아예 성욕을 제거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하여 맬서스는 그것은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이고, 제 아무리 스스로를 철저히 통제하는 사람이라도 성욕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다..

형사소송구조론 - 의사소통적 형사소송모델

이 글은 형사법학자이자 법철학자인 변종필 교수의 박사논문이기도 한 의 간단한 리뷰이다. 이 책은 형사소송절차를 직권주의나 당사자주의가 아닌 의사소통적 모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실체적 진실이란 허구의 개념이고, 형사소송에서 진실은 소송참여자들의 의사소통과 합의를 통하여 구성된 형식적, 절차적 진실이며, 그 진실이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에 참여하는 피의자/피고인에게 충분한 법적 청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하버마스의 진리합의이론, 하쎄머의 절차적 진실개념, 칸트의 도덕원리론, 로틀로이트너/칼리에스와 하버마스의 의사소통모델을 순차로 연결시켜 가며 설명하는 문헌이다. 형사소송구조론에 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필독해야 할 책이지만 시중에서 구할 수 없고, RISS 원문서비스도 안 되고..

요건사실론 [5] - 금전채권양도

1. 序 양수금청구의 요건사실은 ① 양도대상채권의 존재, ② 채권양도계약의 체결, ③ 채권양도 대항요건(양도인의 통지사실 또는 채무자의 승낙사실)의 구비이다. 양수금에 고유한 항변의 예는 다음과 같다. 2. 양도금지특약이 존재한다는 항변 가. 피고인 채무자는 ① 양도금지특약이 있었던 사실, ② 원고인 양수인에게 양도금지특약의 존재에 관한 악의 내지 중과실이 있었던 사실을 주장∙증명하여 항변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중과실’이란 통상인에게 요구되는 정도의 상당한 주의를 하지 않더라도 약간의 주의를 한다면 손쉽게 그 특약의 존재를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주의조차 기울이지 아니하여 특약의 존재를 알지 못한 것을 말한다(대법원 2010.5.13. 선고 2010다8310 판결). 나. 특별한 사정이..

변호사시험 합격수기

1. 序 사실 합격수기는 아니고 그냥 로3 1년 동안 무슨 책 봤는지 소개하는 글임. 하루 집중시간을 3~4시간 정도 확보했다(책상에 앉아있는 시간 말고 집중시간 말하는 거임). 다만 상법을 제외한 민사법과 형사법에 편중되었고, 공법과 상법은 1년 내내 거의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장에 들어갔다. 상법과 공법은 유독 잘 감이 안 잡혔고, 지루해서 집중이 잘 안 되었던 탓에 공부시간 확보를 의욕적으로 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상법/공법에서는 하위권 점수를, 민법/민사소송법과 형사법에서는 상위권 점수를 받았다(선택형은 102개). 공법의 경우 모의시험 때에도 언제나 최하위권-중하위권이었고 변호사시험에서도 딱히 개선되지 않았다. 언제나 공법에서 과락을 간신히 면한 점수를 민사법에서 회복하는 식이..

근거없는낭설/法律 2017.04.22 (10)

에드가르 바레즈 [2] - <인테그랄(Integrales)>

1915년에 미국 생활을 시작한 바레즈(Edgard Varese)는 미국의 1차대전 참전과 광란의 1920년대(Roaring Twenties)를 생생히 체험했다. 당시 미국은 도시화와 산업화로 한창 호황이었다. 풍요감과 빈곤, 활발함과 소외감이 병존하는 한복판에서 바레즈는 1924년 의 작곡에 착수하여 이듬해 완성한다. 바레즈는 이 곡의 작곡의도가 'spatial projection', 즉 소리를 통해 다차원의 공간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고, 실제로 지속음 체계 하에서 피콜로의 초고음과 트롬본의 초저음, 그 외의 목관과 금관들, 그리고 타악이 각자 소리덩어리를 이루어 면(plane)을 생성해내는 공간적 풍경은 이 작품의 대종을 이루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공간에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이 아닌..

음악/바레즈 2017.04.20

요건사실론 [4] - 변제공탁

1. 序 금전채무의 이행은 원칙적으로 채권자의 주소에서 하여야 하므로, 어느 경우에나 변제공탁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민법 제487조는 수령거절, 수령불능, 채권자불확지의 세 가지 경우에만 변제공탁을 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대개 문제되는 것은 수령거절과 채권자불확지). 원고의 금전청구에 대하여 피고가 변제공탁의 항변을 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공탁원인사실과, 공탁금이 채무 전부를 만족시키기 충분한 사실을 주장∙증명하여야 한다. 2. 공탁원인 가. 수령거절 원고의 금전청구에 대하여 피고가 수령거절을 공탁원인으로 주장하려면, ① 변제의 제공을 한 사실 및 ② 채권자인 원고가 이를 수령하지 않은 사실을 증명하여야 한다. 다만 채권자가 미리 수령을 거절하였다면 변제의 제공 없이 바로 공탁할 수 있으며, ..

에드가르 바레즈 [1] - <밀도 21.5>

는 , , , 와 더불어 바레즈(Edgard Varese)를 대표하는 곡으로 20세기의 플루트 레퍼토리 중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프랑스 플루티스트 조르주 바레르(George Barrere)에게 헌정된 곡으로, 제목은 그가 가진 악기의 백금 밀도가 21.5인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 곡이 기계적이고 금속적으로 들리도록 의도된 작품이라는 설명이 오래 전부터 있어 왔으나, 이는 바레즈가 메트로놈 템포를 정확히 지키라고 요구하였을 뿐 그 외 다른 표현적 지시를 일절 하지 않은 점이나, 곡 제목에 특별한 정서적인 의미가 없는 점에서 비롯된 막연한 생각이다. 는 1883년에 태어나 포스트 바그너 전통의 최전성기에 젊은 시절을 보낸 음악가가, 템포의 자유로운 운용과 감정과잉이 심지어 미덕으로 취급되던 시대에 작..

음악/바레즈 2017.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