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없는낭설/法律

기초자치단체 변호사 단상 [2] - 법령해석, 법률자문

GENA 2021. 9. 27. 12:09

시/군/구청이 기본적으로 법집행기관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자치사무를 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잡다한 사업들을 벌이곤 한다. 기존에 나와 있는 정책들을 조금 확장하거나 변형시키는 정도를 넘어 아예 새로운 종류의 일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단체장의 의지일 수도 있고 부서장이 의욕이 넘쳐서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 그 사업은 -대체로 불필요하고 사회적 낭비를 초래하는 수가 많은 것은 둘째치고- 법에 맞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기존에 다른 지자체에서 안했다는 것은 그걸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서 안 한 것이 아니라 뭔가 문제가 있어서 안 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법에 안 맞는 경우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단순히 법령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위법한 경우이다. 그게 그거 아닌가 할 수도 있지만 뜻이 다르다.

법령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란 현행법이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허용하고 있다고 볼 수도 없는 사업, 즉 단지 체계정당성 측면에서 법령과 맞지 않는 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가령 몇 년 전부터 몇몇 지자체에서 민원서류를 배달해 주는 사업을 해 왔는데, 현행 민원행정법이나 전자정부법을 체계적으로 해석했을 때 배달형식의 서류교부는 예정되어 있지 않으며 그런 교부를 상정할 경우에 아귀가 안 맞게 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달교부 자체가 위법하다고까지 볼 것은 아니다(물론 구조적으로 본인확인이 필요한 민원서류는 이런 식으로 처리할 수가 없을 것이므로 배달이 가능한 서류는 고작해야 토지대장 같은 것에 그칠 것이고, 그나마도 수수료를 받고 배달해 주는 형태이기 때문에-수수료를 안 받으려면 조례개정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공직선거법 위반임- 인터넷발급에 비해 장점이 한 개도 없어서 도저히 못 써먹을 물건이다).

위법한 경우란 말 그대로 법이 직/간접적으로 불허하는 일을 벌이는 것이다. 사유 없는 제재처분(가령 건물에 대한 이행강제금인데 토지소유자에게 부과한다든가, 시정명령 없이 몇 년치 이행강제금을 한꺼번에 부과한다든가 하는), 현행법이 정면으로 금지하는 사업(과거 이런저런 경로로 수집한 주민들의 개인정보를 DB화시켜서 홍보문자를 보낸다든가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분쟁이나 감사에 걸릴 소지가 많고, 걸리지 않더라도 손톱 밑에 박힌 가시로 남게 된다.

자문이나 상담 중에 두 번째 경우(위법한 경우)에 해당하는 사유를 발견했으면 확실히 안 된다고 말해줘야 한다. 안 되는 것을 된다고 하는 변호사는 그 기관을 위해서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나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으며 있어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부서에서 굳이 밀어붙이자고 하여 강행하는 분위기로 가는 수도 많은데, 이 경우에도 굳이 재검토나 번의를 하지 말고 오히려 반대의견 피력을 더 확실히 해야 한다. 그리고 단체장이나 부서장의 의지에 따라 부득불 '그럼 한번 해보시라'는 소리를 하더라도 반드시 위법한 건 위법한 거라는 디스클레이머를 달아야 한다. 추후 문제가 생길 시 단체장은 '기억이 안 난다'고 하거나 '실무자는 해당 부서장이었다'는 변명을 할 것이고, 부서장은 '변호사가 분명 된다고 했다'고 할 것이다.

첫 번째 경우(법령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는 조금 애매한 편이다. 된다고 해도 말이 되고 안 된다고 해도 말이 되기 때문이다. 변호사 개인 성향에 따라 또는 해당 사업부서 담당자나 부서장과의 관계에 따라 결론이 결정될 것인데, 시장/군수/구청장이 강한 의지로 추진하려고 한다면 어지간해서는 된다고 해주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따지고 보면 윗선에서는 분쟁이나 감사를 걱정하지 체계정당성은 걱정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위법한 것을 위법하다고 해 주는 것으로도 기관 내 변호사의 책무는 충분히 이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영역을 떠나서 ‘되게 하는 방법’까지 찾아줄 필요는 없고 가능하지도 않은 것이다. 그것은 사업부서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기본적으로 성의가 있는 질의에만 성의 있는 답변을 해야 한다. 가장 성의 있는 질의란 어떠한 법령조항을 특정해서 거기에 배치되는지 안 배치되는지를 물어봐 주는 것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법령명이라도 특정을 해 줘서 위법한지 아닌지를 물어야지 그래도 좀 생각이란 것을 하고서 질문을 던졌다고 할 수 있다. 그걸 떠나서 특정 사업을 적법하게 하는 방법이나, 전반적으로 위법성이 없는지 여부를 물어보는 것은 성의 없는 질의, 생각 없는 질의이다. 적법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는 것은 사업부서에서 해야 할 일을 변호사에게 떠넘기겠다는 소리와 같고, 전반적으로 위법성이 있는지 검토해 달라는 말은 대한민국에 법령이 거의 5천개가 되는데 그것을 다 뒤져 달라는 소리와 같은 것이다. 그런 질문에는 답변도 성의 없이 해야 한다. 그나마 가장 관련 있어 보이는 법령이나 조항을 특정한 다음, ‘이 조항에는 특별히 위반되는 게 없어 보인다’고만 하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문제의 조항을 특정해 달라'고 하는 정도면 족하고, 저인망식으로 관계법령을 훑어 찾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식으로 용케 어떤 법령에 위반된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하더라도 담당자가 진심으로 고마워해 주는 일은 결단코 없으며, 오히려 이렇게 물어보면 이렇게 찾아주는구나 하는 안 좋은 인식이 생겨 향후 일만 버거워지게 된다. 또 그런 폐습의 악영향은 본인의 대에서 그치지 않고, 후임자에게도 미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