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바레즈

에드가르 바레즈 [2] - <인테그랄(Integrales)>

GENA 2017. 4. 20. 00:44

1915년에 미국 생활을 시작한 바레즈(Edgard Varese)는 미국의 1차대전 참전과 광란의 1920년대(Roaring Twenties)를 생생히 체험했다. 당시 미국은 도시화와 산업화로 한창 호황이었다. 풍요감과 빈곤, 활발함과 소외감이 병존하는 한복판에서 바레즈는 1924년 <인테그랄(Integrales)>의 작곡에 착수하여 이듬해 완성한다. 바레즈는 이 곡의 작곡의도가 'spatial projection', 즉 소리를 통해 다차원의 공간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고, 실제로 지속음 체계 하에서 피콜로의 초고음과 트롬본의 초저음, 그 외의 목관과 금관들, 그리고 타악이 각자 소리덩어리를 이루어 면(plane)을 생성해내는 공간적 풍경은 이 작품의 대종을 이루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공간에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이 아닌 심정의 공간, 공존하는 복잡한 정서들까지 포함될 수 있다.

조악한 흑백 화면 속, 광란의 1920년대 미국의 한복판을 전제하고 이 곡을 들어 보자. 아래는 티토 체체리니(Tito Ceccherini)와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Ensemble intercontemporain)의 연주다.


첫머리는 D, Ab의 꾸밈음과 함께 시작되는 Bb음의 Eb클라리넷 독주다. 단일한 지속음 체제 하에서의 불규칙적인 리듬 그 자체가 이 곡의 주선율이다. 

제1마디에서 제25마디에 이르는 내내 Bb가 중심음이 된다. 구조 속의 자유, 달갑지 않은 홀가분함 정도로 표현될 수 있으나 정확한 실체를 알 수 없는 모호한 정서다. 중간중간 리듬·강약 등에 변형이 생기거나 다른 음이 끼어드는 등의 변주가 나타나고, Eb클라리넷이 잠시 오보에나 트럼펫으로 교대되면서 음색 변화가 생기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Bb음이 지속된다는 프레임에는 변함이 없다. 제10마디부터 제14마디까지 다음의 네 덩어리들(각 트럼펫-Eb클라리넷-오보에-Eb클라리넷)이 연달아 나오는 부분이 대표적인 예다.

잠시 중심음이 이동하기는 해도 결국 한결같이 Bb로 되돌아온다. 리듬이 변형되기는 해도 큰 틀에서는 같다. 이런 식으로 계속 진행하다가 제25마디의 끝자락에 이르면 Eb클라리넷이 담당하던 중심음이 일시적으로 Bb에서 Db로 올라가며, 동시에 네 마디 동안 관악기군 전체의 총주가 이어진다. 타악기가 이 구간의 막을 내린다.


제32마디에서 제52마디까지는 제1마디부터 제29마디를 재구성하는 구간이다. 중심음이 G로 변경되고 독주 악기는 호른으로 바뀐다. 주선율은 꾸밈음이 아닌 16분음표(B, F)로 시작하면서 쳇바퀴 일상을 표현해낸다. 앞서 중심음으로 데뷔했었던 Bb음 또한 간헐적으로 등장하여 존재감을 보인다. 끈질긴 Bb음의 정체는 홀가분함과 답답함이 찝찝하게 뒤섞인 고립감이다. 베이스 트롬본, 콘트라베이스 트롬본은 이 구간 내내 무미건조한 초저음향을 깔아주며 감정 상승의 여지를 억제한다. 거대한 철제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듯한 저음은 호른의 주선율을 더욱 답답하게 들리게 한다.

제51, 제52마디에서 B#와 F의 꾸밈을 받아 G음을 연주하던 호른은 제53마디에 이르러 F음으로 퇴각한다. 제54마디에서 C트럼펫이 새로운 선율, Bb-A-E-G#-D#라는 충격파를 꽂는다. 심야에 혼자 괜히 무의미한 말을 중얼거리듯 뜬금도 없고 맥락도 없으며 반응도 없다. 제55마디부터 D#의 지속음이 머쓱하게 이어지다가 제60마디에서 다시 위와 같은 Bb-A-E-G#-D#의 외침이 두 번 연속으로 등장한다.

이번에는 오보에를 비롯한 목관이 어느 정도 반응하지만, 우연히 창문을 때리는 바람소리와 같이 무의미한 것이고 결국 지속음으로 표현되는 공허함이 뒤를 잇는다. 제70마디를 넘어서면 타악이 요란하게 겹쳐지는 루틴으로 발전하여 음향의 확장이 나타난다. 그 와중에 제93마디에서 호른과 C트럼펫이 D음을 중심음으로 하는 조성적인 선율을 잠시 내놓는다. 심벌즈도 거든다.

갑자기 찾아온 집중력과 의욕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화색도 잠시일 뿐 곧바로 끈질긴 지속음들과 타악에 분위기는 다시 흐트러지고 꼬여 간다. 앞서 고립감으로 나타났던 지속음 체계는 점점 복잡하게 확장되면서 분노감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제106마디부터 펼쳐지는 목관의 지속음 릴레이에서 Bb음을 담당하는 것은 피콜로다. 동시에 D트럼펫이 A음을 중심음으로 하여 목관들과 엇갈린 패턴으로 지속음을 이어나간다. 제117마디에 이르면 피콜로가 Bb음을 버리고 G음으로 퇴각하는 등 목관이 일제히 음정변화를 주며 정지하고 트럼펫만 남는다. 제123마디부터 제126마디까지는 관악만의 화성으로 주인공은 역시 트럼펫인데, 앞서 몇 차례의 기분전환 시도에도 불구하고 찾아왔던 지속음들에 질려 탄식하듯 사뭇 장렬하다. 곡의 중반부는 이렇게 끝난다.


제131마디에서는 제93마디의 그 선율이 중심음을 D음으로 바꾸어 다시 등장하지만, 제136마디에서 지속음들에 의해 또다시 차단당한다. 지속음의 중심음은 이 때 D였다가 제144마디에서 A음으로 교체된다. A는 Bb 직전의 음이니,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후 몇 마디 가량 타악의 소란을 거쳐 제161마디에서 오보에가 선율을 하나 제시하는데 중심음은 F다. 초입부부터 계속되어 온 피로감 쌓인 Bb음, 회의감이 반영된 타악, 그리고 번번히 무위로 돌아간 국면 전환 시도들이 쌓인 결과물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지속음으로 귀결되어 버린다.

제169마디에서 곡 초입부의 주선율이 트럼펫을 필두로 다시 회상된다.

그렇게 해서 다시 시작된 지속음 구간은 타악과 함께 제190마디쯤까지 이어진다. 오보에가 다시 위 F음 중심의 선율을 변주의 형태로 되새김질하지만 이번에도 아까와 마찬가지로 트럼펫의 초입부 주선율에 의해 끊겨버린다. 그렇게 제213마디까지 프레스토로 치달았다가 제214마디부터는 제117마디에서 제126마디까지의 탄식적인 관악 화상이 다시 등장한다. 트럼펫 중심의 총주, 코다로 막을 내린다.


바레즈의 관현악 작품 중에서는 <아메리카>, <아르카나>, <이온화> 등과 더불어 레코딩이 특히 많은 편에 속한다. 도회지의 모순적인 풍경들 그 자체에 대한 구조적 묘사에 초점을 맞춘, 불레즈의 바레즈 전집에 들어 있는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의 1984년 SONY 녹음을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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